외전 제3부 84화
“흐음….”
테구르가 알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심상치 않은 알인데… 야 기다란 것 좀 줘봐.”
“여기 있습니다, 찍!”
수하가 긴 창을 내밀었다.
테구르는 받아든 창으로 알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파직-
강력한 뇌기가 튀자.
“우왁! 놀래라.”
쫄보인 테구르가 기겁했다.
탐욕의 괴물을 죽인 후 나온 정체불명의 알.
기운도 불길했다.
“버리고 갈까?”
테구르가 고개를 돌려 수하들에게 물었다.
“게이트에서 얻은 모든 건 주인님 것이라고 대장이 말하셨는데. 찍….”
“그래도 버리고 가실 생각이십니까요, 찍?”
수하들의 말에 테구르가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그럴 수 없지. 주인님의 오른팔인 내가 귀중해 보이는 알을 버리고 가면 안 되지.”
테구르의 얼굴은 어느새 핼쑥해져 있었다.
혹시 알에서 또 다른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알 주변에서 흐르는 기운이 공격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뿐이었다.
“힘내십시오. 대장, 찍!”
“주인님이 좋아하실 겁니다요, 찍!”
수하들은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뒤에서 응원만 했다.
테구르는 이 알을 주인에게 건네줘야 한다는 일념 하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공간 주머니를 활짝 폈다.
알을 단번에 넣으려 하는 순간.
알 주변을 감싼 아지랑이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악마의 얼굴.
검은 그림자를 본 테구르가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
테구르가 덜덜 떨었다.
탐욕의 괴물을 죽였던 용기는 어디 가고 겁쟁이만 남았다.
그림자는 테구르를 공격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요?”
그림자는 아공간 주머니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주머니 속이 싫으십니까요?”
조심히 묻자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요. 제가 손수 들겠습니다요.”
그제야 그림자가 사라졌다.
테구르가 알에게 다가갔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뇌기가 흐르면 어쩌나.
혹시 자신을 잡아먹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방해물이 없었다.
손쉽게 잡은 알.
테구르가 알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 모습에 수하들이 환호했다.
“역시 우리들의 대장 찍!”
“대장이 주인님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 찌익!”
“대장이야 말로 주인님의 오른팔입니다요, 찍!”
수하들의 환호에 테구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저도 모르게 품었던 알을 머리 위로 들어보였다.
마치 트로피를 수상한 것처럼.
스케먼들에게 알을 자랑했다.
“찌이이익!”
“최고입니다, 대장. 찍!”
“주인님께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리자.”
테구르는 스케먼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스케먼들.
테구르는 알을 소중히 보듬으며 4대 성지의 금역으로 돌아갔다.
* * *
한편.
엘프의 대장로 사티아가 말했던 것처럼 대회의는 무사히 잘 끝났다.
화합의 장.
새로운 로에니아 제국의 황제나.
크세레나 신성의 대주교는 융통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변화된 시대에 순응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말파르의 드워프가 말썽이었다.
“흥. 난 인간들과 교류는 하고 싶지 않아. 지금처럼 산에 틀어박혀서 철이나 만질 거야.”
회의 내내 말론 툰두가 한 말이었다.
드워프는 폐쇄적인 종족.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꺼려했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모든 걸 줄 정도로 순수한 종족.
드워프가 단체로 금역으로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은인인 이준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이덴 루블리스의 환생이기도 했으니.
대회의에도 흔쾌히 참석한 것이다.
말론은 다른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게이트 남쪽으로 이동했다.
테구르의 대장간이 있는 곳.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이준의 무기뿐이었다.
“드워프는 여전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구나.”
대장로 사티아가 사라지는 말론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장로님. 저희도 여기에 조금만 있다가 돌아가면 안 돼요?”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헤헤.”
엘루르가 사티아의 팔짱을 끼며 배시시 웃었다.
이준과 친분이 없는 이들은 금역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몬스터인 샤크로아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불편한 모양.
이준과의 친분은 쌓지 못하고 돌아가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대주교나 제국의 새로운 황제는 현 정세에 굉장히 밝은 인물들.
세상의 중심은 이준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는 경계도 할 수 없었다.
그란투스 대륙을 엉망으로 만든 용신족을 홀로 무너뜨린 영웅.
시기와 질투는 부질없었다.
크세레나 신성과 로에니아 제국에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고 제거하려 해도 불가능했다.
이준이란 인간은 게이트란 하나의 차원을 가진 인간.
초월적인 존재였다.
괜히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이준이 살아있는 동안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진 군주가 되는 지름길이니까.
이준과 친분을 쌓는 건 다음을 기약했다.
“은인.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대회의의 내용을 국왕께 보고해야 해서 말입니다.”
“처음 봤을 때 알아봤지만 베오가 영주님의 충성심은 정말 뛰어나네요. 저라면….”
이준이 뒷말을 잇지 않았다.
자신이었다면 무능한 왕을 바로 제거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만했다.
그 무능한 왕을 직접 옹립한 게 바로 베오가 영주였으니까.
“제 잘못인 걸 어찌하겠습니까. 옆에서 성심성의껏 모시는 수밖에 없지요.”
“도움 필요하면 말하세요. 군대는 차고 넘쳐요.”
이준이 금역의 몬스터를 가리켰다.
제로니아 왕국이라면 하루면 충분했다.
샤크로아에게 명령 내리면 반나절만에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허점투성이인 제로니아 왕국.
그란투스 대륙에 균열도 사라져서 교류도 다시 시작될 터.
만약 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망할 곳이 바로 제로니아 왕국이었다.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 말하겠습니다.”
베오가 영주의 대답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베오가는 제로니아 왕국을 끔찍이도 아꼈다.
현 국왕이 정무도 돌보지 않고 계속해서 망나니처럼 군다면 단호하게 행동할 거라 보았다.
“아, 그리고 할 말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메더 루블리스를 많이 도와주세요.”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베오가 영주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띠링-
이준의 귀에 알림이 울렸다.
메시지가 홀로그램에 나타났다.
[테구르가 이끄는 제3 군단이 ‘탐욕의 그릇’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를 얻었습니다.]
[제3 군단 스케먼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귀환합니다.]
“드디어 게이트를 깼나 보네.”
이준이 흐뭇해했다.
테구르가 게이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걱정이 들었다.
녀석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일 하나는 기똥차게 하는 녀석인데 죽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약해 빠져 가지고, 돌아오면 샥쿠한테 훈련을 빡세게 시켜야겠어.”
이준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테구르가 무사히 귀환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 * *
지잉-
스케먼들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돌아왔다.
테구르는 곧장 이준을 찾았다.
“주인니이이님!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요!”
테구르가 호들갑을 떨며 돌아다녔다.
혼원문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녀석.
품에 있는 알이 떨어지지 않게끔 조심히 움직였다.
이준은 혼원문 아래, 오아시스 앞에 있었다.
“주인니이님!”
“귀 안 먹었어.”
“이것 좀 보십시오. 주인님의 오른팔인 테구르가 엄청난 걸 가지고 왔습니다요.”
테구르가 파란 줄무늬의 알을 보이며 자랑했다.
“알?”
“그렇습니다요. 안에 어떤 생명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주인님과 어울릴 겁니다요. 무려 탐욕의 괴물을 죽여서 얻었습니다요.”
알의 크기는 사람 머리통만 했다.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았다.
적당했다.
“호들갑 떨 만한 건 아닌데?”
“무, 무슨 말입니까요. 제가 봤을 때는 탐욕의 괴물과 같은 게 나올… 응?”
테구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에서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일반 동물의 알과 같았다.
“똑똑. 저기요? 집에 왔습니다요. 나와보셔야 합니다요.”
테구르가 알을 두드려 보았다.
하나 반응이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알을 요리조리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무반응.
테구르가 알을 바닥에 떨어트리려 하는 순간.
‘헉! 몸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지배했다.
알에서 나온 기운이었다.
‘보통 알이 아니라니까.’
테구르는 더 이상 알을 품고 싶지 않았다.
그는 냉큼 이준에게 알을 넘겼다.
“아무튼 심상치 않은 알이니 주인님께서 보관하십시오.”
“늦게 귀환한 것 치고는 너무 적게 가져왔는데? 밑장 빼지 마라.”
“헤헤. 역시 주인님은 귀신입니다요. 주인님의 안목을 하찮은 제가 잠시 시험해봤습니다요, 헤헤.”
테구르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티팩트를 와르르 쏟아냈다.
전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얻은 물건들이었다.
내공서와 마법서를 비롯해 다양한 보물들이 가득했다.
상당한 양의 아티팩트.
테구르는 손을 비비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빨리 칭찬해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잘했어.”
“엥? 끝입니까요?”
“그럼 늦게 왔다고 잔소리해줘?”
“아, 아닙니다요. 돌아가서 대장간 청소 좀 하겠습니다요.”
“말론 툰두가 와 있어.”
“말론 형님 말입니까요?”
“내 무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네.”
“안될 말씀인뎁쇼. 주인님의 무기는 이 오른팔인 테구르 담당 아닙니까요?”
“우선 가봐.”
“알겠습니다요. 제가 가서 무슨 일인지 제대로 물어보겠습니다요.”
테구르는 이준의 무기를 손수 점검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파멸겁 대신 새로운 장비를 만들다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테구르가 부리나케 남쪽으로 달려갔다.
“힘이 넘치는 걸 보니 다친 곳은 없나 보네.”
이준이 사라지는 테구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이 주고 간 알.
정말 평범해 보였다.
사신기를 이용해 알을 따뜻하게 했다.
움찔!
알이 들썩였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준아, 그건 뭐야?”
박정연이 다가왔다.
“테구르가 줬어. 게이트에서 얻었다네.”
“무사히 돌아왔나 보구나. 다행이다.”
박정연도 안심했다.
금역에 속한 모든 몬스터가 귀환했는데 테구르와 몇몇 몬스터만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로티틸의 페어리는 전투에 특화된 종족.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가 치유 능력도 있으니 무사히 귀환하는 건 예정됐다.
하나 테구르는 일꾼형 몬스터.
순수 육체로 싸우는 건 젬병이었다.
이준이 걱정한 게 이 때문.
마력총이 없으면 약한 종족이 바로 스케먼이었으니까.
“이제 마음이 놓이겠어.”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거짓말.”
이준이 피식 웃자 박정연도 웃었다.
어렵게 되찾은 평화.
이대로만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도 알 만져볼래.”
“그래.”
이준이 순순히 박정연에게 넘겨주었다.
“움직이는 것 같아.”
“곧 알에서 나올 듯하긴 해.”
이준과 박정연이 이야기하는 사이.
박혁진과 한지유를 포함한 아이들이 다가왔다.
박혁진은 박정연의 품에 있는 알을 보자 눈이 커졌다.
“무슨 알이야? 혹시 펫은 아니지?”
박혁진은 여전히 야수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레드급 이상의 귀여운 몬스터를 키운다고 벼르고 있는 녀석이었다.
“테구르가 게이트에서 얻어왔대.”
“개부럽다. 나도 만져볼래.”
박혁진이 알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파직!
뇌기가 튀며 손길을 거부했다.
인상을 찌푸리는 박혁진이었다.
“난 왜 거부하는 거야.”
만져보고 싶은데 만지지 못하니 화딱지가 났다.
“넌 싫대.”
“파랑이도 그러더니. 얘도 사람 차별하네.”
파랑이란 말에 이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안, 준아.”
“괜찮아.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
이준이 표정을 풀었다.
박혁진은 미안한지 화제를 황급히 돌렸다.
“지유랑 지안이도 한 번 만져봐. 나처럼 못 만지는지 보자.”
박혁진의 권유에 한지유가 손을 뻗었다.
쩌어억-
한지유의 손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접근 금지.
만지지 말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뒤이어 이지안도 만져보려 했으나 똑같았다.
한기가 흐르며 손을 얼렸다.
다른 아이들도 알을 만져보려고 차례대로 다가갔다.
하나 결과는 똑같았다.
‘지닌 내공의 성질에 따라 원소를 보이고 있어.’
진경수의 차례였다.
그가 팔을 뻗자.
화르륵!
강력한 화기가 타오르며 거부했다.
옆에 있던 이준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 보였던 불꽃은 청염.
청호에게서만 나타나던 불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