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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686화 (686/705)

외전 제3부 80화

주경아의 몸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신왕기였다.

사신기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녀석들.

가만히 두고 볼 사신기가 아니었다.

도망치는 녀석들의 뒤를 물어뜯으며 놓지 않았다.

끼아악!

괴성이 들렸다.

소름 끼치는 소리.

마치 악귀가 소멸하며 지르는 비명 같았다.

[어떠하냐.]

설극이 초조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지독해요. 죽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네요.]

[몸이 많이 상하겠구나.]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만인에게는 절대자이자 공포자로 군림한 존재.

거칠 것 하나 없던 사부가 한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옆에서 경아의 내상을 치료해야겠다.]

[안 돼요!]

이준이 반대하고 나섰다.

미친 짓이다.

사신기는 포악하고 공포했다.

특히 같은 종류의 마기라면 더욱 자비가 없었다.

[그러다 사부님이 다치실 거예요.]

[경아가 오래 살 수 있다면 난… 어찌 되든 상관없다.]

이준이 말리기도 전에 무극자가 주경아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항상 멋대로 하는 사부.

자기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단다.

벌써 두 번째였다.

본인의 목숨을 버리려는 것이 말이다.

제자가 걱정하는 건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걱정 말거라. 이 사부가 누구냐. 고금제일인이니라. 준이 네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되시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평생 원망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이준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설극이 고개를 돌리며 주경아를 내려다보았다.

‘경아. 준이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혹여라도 내가 잘못된다면 경아가 준이를 달래줘.’

설극은 곧장 역천을 끄집어냈다.

사신기를 뚫고 주경아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역천의 파천멸기밖에 없었다.

그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뿜어졌다.

[큰 주인! 뭐 하는 짓이야!]

흑염마조가 설극의 어깨에서 떨어지면서 소리쳤다.

설극이 하는 건 자살행위.

의도가 성공한다 한들.

설극의 힘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내공을 사신기에 바치는 대가로 주경아의 내상을 고치는 거니까.

쉽게 말해서 사신기에 도로의 통행료를 지불하는 것.

만약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파천멸기가 강탈당하는 최악의 결과가 벌어질 터다.

[미쳤어? 당장 그만둬!]

[내가 선택한 행동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럼 작은 주인은? 주경아를 살리겠다고 작은 주인의 마음은 생각도 안 하는 거냐.]

설극의 기운이 흔들렸다.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도 이준을 아예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전생이지만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다.

현재는 사부로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관계를 밝힐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신왕기는 없앨 수 있으나.

몸이 약해진단다.

전생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 죄책감이 큰 주경아였다.

그런 아들이 내공을 주입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혀를 깨물어 죽고 싶을 심정일 터.

차라리 아들 대신 본인의 기운을 그녀에게 넘기는 게 낫다고 여겼다.

[…네가 잘 돌봐주거라.]

설극은 파천멸기를 통행료로 지불 했다.

사신기는 아군을 만난 듯.

길을 터주었다.

거대한 기운이 주경아의 내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그녀의 몸에 서서히 정착했다.

하지만 곧 난관에 봉착했다.

사신기가 통행료를 더 달라고 신호를 보내온 터.

[그만해! 역천기와 파천멸기의 균형이 깨졌어. 큰 주인이라 할지라도 이성을 유지하긴 힘들다.]

흑염마조가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설극은 본인의 모든 힘을 주경아에게 주려는 듯.

기운을 주입했다.

그의 입에서 선혈이 흘렀다.

[사부님 멈추세요!]

[이 사부가 그리 나약해 보이더냐. 끄떡없느니라.]

무극자 사부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건강하던 얼굴이 10년은 늙어 보였다.

창백해진 혈색.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던 사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모습을 더는 지켜보지 못한 이준이 무리하고 말았다.

신왕기를 없애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도 모자랄 판국에 동요를 했다.

기가 흔들리자.

사신기를 제어하지 못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설극의 호통에 이준이 뒤늦게 수습했다.

제어가 풀린 사신기를 잡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극자 사부와 사모님의 기운을 뚫고 잡아야 했다.

자칫 모두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그때.

열 개의 꼬리를 활짝 편 파랑이가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 *

[왜 다들 어렵게 가는 거예요. 쉬운 길을 놔두고.]

파랑이의 몸이 점점 커졌다.

풍성하고 윤기가 나던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등에서 검은 날개가 튀어나왔다.

[파랑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특성 ‘탐’을 버렸습니다.]

[특성 ‘절대종’을 버렸습니다.]

[특성 ‘십미호’를 버렸습니다.]

[특성 ‘청호’를 버렸습니다.]

작고 귀엽던 파랑이가 위압감 넘치는 검은 드래곤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파랑이가 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특성 ‘흑룡왕’이 새로 등록되었습니다.]

[특성 ‘대군주’가 새로 등록되었습니다.]

[특성 ‘용계의 폭군’이 새로 등록되었습니다.]

변신한 파랑이는 존재감을 한껏 표출했다.

흑룡왕을 본 그리에스가 말을 더듬었다.

“흐, 흑룡왕….”

너무도 뜬금없었다.

하찮은 몬스터 따위의 몸이 흑룡왕 파르가로 변하다니.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평생 주인 곁에서 파랑이로 남고 싶었는데 아쉬워.]

흉포한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목소리만은 여전히 귀엽고 착한 파랑이였다.

[이제야 행복해지려는데 또 시련을 겪게 할 순 없어.]

파랑이의 눈이 번쩍이자.

이준이 있는 공간에 마법진이 생겼다.

[가족이 없는 내가 희생하는 게 낫다.]

“파르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주인에게 나타날지 모르니 모든 생명에게 나에게 베풀었던 것처럼 잘 대해줘.]

파랑이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 악화가 될 뿐.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준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바로 마법진을 발동한 이유였다.

파랑이.

아니, 흑룡왕 파르가의 마법을 본 그리에스가 중얼거렸다.

“용신의 소생….”

본인의 힘을 바쳐서 생명을 살리는 마법이었다.

인간을 넘어 생태계.

심지어 하나의 층계를 복구할 수 있는 힘이었다.

[또 보자 주인.]

4대 성지의 금역이 빛에 휩싸였다.

금역에 초록색 알갱이의 비가 내렸다.

알갱이가 닿을 때마다 풀이 자라고 꽃이 피었다.

[요정의 꿀(SSS)이 생성되었습니다.]

[푸른 등불의 꽃(SSS)이 피었습니다.]

……

……

[계승의 꽃(SSS)이 피었습니다.]

4대 성지의 금역이 변했다.

마기가 넘치는 공간이 아닌.

마력, 생명이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경아와 설극에게도 초록 알갱이가 닿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생기가 넘쳤다.

외상은 어떤가.

몸에 가득한 상처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신왕기도 사라졌다.

설극도 마찬가지.

본인의 기운을 전부 주경아에게 넘기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도리어 소모된 내공이 채워진 상태.

그도 내상과 외상 모두 깔끔히 지워졌다.

이준도 두 사람과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신기에 흑룡왕의 마력이 섞인 것.

전에는 애매하게 보였던 흑룡왕의 마력이 이젠 사신기에서 정확히 나타났다.

천극자가 없앤 마력.

흑룡왕이 사라지면서 다시 만들어 주었다.

그때는 사신기와 마력을 감당할 힘이 없었으나.

지금은 충분했으니까.

“아.”

이준이 멍하니 초록 알갱이를 보았다.

파랑이가 사라졌다.

아이덴 루블리스의 전생도 떠올린 상태.

흑룡왕이 자신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잘 안다.

녀석은 소멸되지 않았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도 미지수였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게 어디 쉬운가.

그런데도 스스로 희생했다.

반가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훌쩍 떠났다.

슬픈 감정이 밀려왔지만 참았다.

녀석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전생에도 찾아왔고 현생에도 찾아왔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부모 같은 사부를 잃지 않은 것.

사부마저 사라졌다면 공허감만이 남았으리라.

“준아.”

설극이 이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어나면 다시 찾아온대요. 소멸이 아니니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슬픔은 너와 어울리지 않은 감정이니라.”

그가 이준을 위로했다.

밝은 척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쓰라릴 거다.

파랑이가 얼마나 이준을 따랐던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무림에 갇혀 있을 때부터 지켜보았던 이준과 파랑이었다.

같이 성장한 두 녀석.

슬픈 건 당연했다.

설극이 이준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데.

쿠웅!

게이트가 흔들렸다.

[큰 주인이 인계에 오래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 같다.]

설극은 신왕이 된 전륜과도 동수를 이루는 힘을 지녔다.

그가 인계에 있는 건 큰 부담이었다.

왕급 신이 인계로 내려가려면 신계의 승인이 떨어지거나.

권능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설극은 두 가지 경우를 무시하고 왔으니.

인계가 부담이 간 거다.

설극이 주경아에게 전음을 보냈다.

[경아. 신선계로 돌아가야겠어.]

[알겠어요.]

[준이에게 정체는 언제 밝힐 거야.]

[죄 많은 어미인데 밝혀서 뭐 해요.]

[평생 모르게 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때가 되면 밝힐게요.]

그녀는 여전히 이준에게 정체를 밝히는 걸 꺼려 했다.

구천옥에 수감됐던 일.

마왕이 되어 이준을 죽이려 했던 일이 떠올라 괴로웠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려 한 것.

그녀의 성격으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부끄러웠던 감정이 퇴색될 때쯤 말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준아. 사부는 이만 올라가 봐야겠구나.”

“벌써요?”

“더 위로해주고 싶지만 내가 이곳에 있으면 인계가 무너질 터. 제자가 사는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순 없지 않느냐.”

“올라가시면 또 언제 봐요?”

“모르겠구나….”

기약이 없었다.

설극이 난감해하고 있는데 주경아가 대신 대답했다.

“보러오마.”

“정말이죠?”

굳어 있던 이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럴 거죠, 가가?”

주경아의 말에 설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마.”

설극이 이준에게 약속했다.

슬슬 신선계로 돌아가야 할 때.

주경아는 예비 며느리 후보들과 인사를 나눴다.

설극은 뒷짐을 진 채 어디론가 걸어갔다.

오대가문과 마벽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설극이 그들의 앞에 섰다.

정적.

침묵이 흘렀다.

검제와 괴개는 침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삼켜야 했다.

상대는.

‘파천혈신!’

‘저자는 죽었을 텐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존재.

파괴적이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고개가 절로 아래로 내려가는 그 순간.

설극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렸다.

“어른을 보았으면 인사를 해야지 쯧. 간이 콩알만 한 놈들인지고.”

뜻밖의 말이었다.

모두를 압박하던 그의 위엄은 어디 가고.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말투가 들린 것이다.

이곳의 제일 웃어른인 검제 박춘식이 나섰다.

“파천혈신을 뵙…습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경악할만한 광경이었으나 현시대는 강자존.

강한 자가 대접받는 세상이었다.

파천혈신은 천외천 무림의 인물이니.

겉모습만으로 나이를 추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한 명밖에 없나? 아니면 본좌가 늙어서 귓구멍이 안 들린 건가.”

설극의 말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소리쳤다.

“파천혈신을 뵙습니다!”

“파천혈신이 아니고 무극자이니라.”

“무극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설극의 개꼰대 기질이 발동했다.

신선계로 돌아가기 전에 기강을 세게 잡으려 했다.

제자이자 아들을 위해서 말이다.

“넌 남궁가의 무공을 익혔구나.”

“예 어르신.”

“남궁가라. 경아. 남궁가의 아이들이 누가 있더라?”

“아린이에게 듣기론 천뢰신선은 가가께서 죽였고 창궁이 현지 하급신선 자리에 있어요.”

주경아는 인사를 나누다 말고 설극의 질문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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