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78화
[아이덴 루블리스의 기억을 전부 떠올렸습니다.]
[4차 전생 각성을 하였습니다.]
[특성 검은 대공(EX)이 개화했습니다.]
[특성 시한부 천재(EX)가 개화했습니다.]
[특성 인간 최초 용군주(EX)가 개화했습니다.]
[특성 무한의 영역(EX)이 개화했습니다.]
[모든 특성의 등급이 EX로 상승합니다.]
[등급 측정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당신은 각성자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눈에 들어온 큼지막한 메시지들.
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것과 동시에 등급이 죄다 EX로 조정되었다.
‘이 정도로도 전륜을 이기지는 못한단 말이지…’
이준은 전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거리.
마치 최종 보스인 듯 강했다.
“그사이에 전생 각성을 한 거냐. 대단한데?”
전륜은 긴장감이 없었다.
오히려 들뜬 표정.
눈을 반짝이기까지 했다.
“최선을 다해서 날 이겨봐. 네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테니까.”
전륜이 땅을 박차며 이준에게 쏘아져 갔다.
이준도 마찬가지.
정면 승부였다.
쾅!
파멸겁과 도가 충돌했다.
강력한 기파가 주위로 휘몰아쳤다.
파멸겁이 비스듬히 눕더니.
엄청난 속도로 도를 찔러냈다.
까강깡강!
쇠 부딪히는 소리가 맹렬하게 났다.
주위로 불꽃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읏, 하마터면 목이 뚫릴뻔했어.”
전륜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여유에도 이준은 공격에만 집중했다.
핏-
피가 허공에 튀었다.
전륜의 피부에 상처가 났다.
하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오른손에 쥔 도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들리는 커다란 굉음.
전륜은 미친 듯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도에서 뿜어져 나온 겁화가 이준을 불태우려 했지만.
파멸겁의 성화가 막아섰다.
이준은 혈염창법을 펼치고 있었다.
염제의 불꽃이 성화를 강화했다.
화르륵-
겁화와 성화가 서로를 물고 뜯었다.
“음…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겠어.”
그는 이준을 극찬했다.
어느새 마선 만큼 강해진 게 아닌가.
4차 전생 각성을 했다지만 너무도 빠른 성장이었다.
“아쉽지만 마무리할 시간이야. 즐거웠다.”
전륜의 눈이 화염으로 번쩍였다.
그 순간.
도가 이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큭!”
이준이 신음을 토했다.
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
파멸겁이….
두 동강 났다.
창에 깃들어 있던 주작의 힘이 허공에 흩어지려는데 사신기가 흡수했다.
“많이 아플 거야.”
전륜은 즐거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
다친 이준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이준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섰다.
“아플 텐데 가만히 있지?”
“허무하… 게 끝낼… 순 없어…”
“정신력은 인정할게.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이준이 사신기를 끌어올렸다.
내상을 심하게 입어 사신기를 사용하면 큰 고통이 뒤따를 터다.
“아아, 마선을 살려주겠다는 약속 때문이야? 내 말은 지킬 테니까 안심해.”
전륜의 말에도 이준은 꾸역꾸역 사신기를 끌어모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전륜은 이준과 눈이 마주쳤다.
“나랑 같은 미친놈이 여기에 있었네?”
전륜이 빙그레 웃었다.
이준의 눈은 죽지 않았다.
열의가 타올랐다.
이기겠다는 의지.
호승심이 가득했다.
전륜이 고민에 빠졌다.
‘이준을 죽이는 건 내 계획에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무인에 대한 예의는 최선을 다해 싸워주는 것뿐이다.
하나 이준은 자신이 계획한 일에 대한 미끼였다.
여기서 죽인다면 계획이 전부 틀어질지 모른다.
고민하는 사이.
회색 아지랑이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상으로 여전히 기운을 세세하게 조정하지 못하는 이준.
더 싸워봤자 이득될 게 없었다.
‘빨리 불러야겠어.’
전륜의 팔이 이준에게로 뻗었다.
겁화의 고리가 그의 몸을 속박했다.
마치 죄인의 모습.
그 옛날 파천혈신이 스스로 몸을 금제했던 때의 모습이었다.
* * *
신왕성 일대가 요동쳤다.
빛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설극과 신왕의 충돌.
눈으로 좇는 것도 힘들었다.
‘이럴 수 없다. 내가 저놈보다 강해야 하건만!’
신왕은 설극과 손을 나눌수록 경악했다.
자신보다 약해야 정상이었다.
한데 설극은 자신과 동수를 이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상해. 지금도 저놈이 나보다 약한데 어째서 점점 밀린단 말이냐.’
심란한 건 따로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기운을 가진 설극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감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니면 설극이 힘을 숨기고 있는 걸까.
자신이 서서히 밀리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인계에 강림한 전륜의 마음이 느껴졌다.
‘준비가 됐군.’
신왕이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이에 설극이 인상을 찌푸렸다.
“싸울 생각이 없어졌나?”
“네게 전해줄 소식이 있다.”
“헛수작 부리지 마.”
“네 제자에 관한 내용이다.”
설극의 눈이 검붉게 번쩍였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요동쳤다.
“장난을 치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어.”
“전륜이 네 제자를 잡았다고 하는군.”
신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극의 살기가 극에 도달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염라대왕도 저릿할 지경.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역천이다. 녀석이 분노하고 있어.’
염라대왕은 설극이 내뿜는 살기가 역천이라는 걸 금세 눈치챘다.
신왕은 여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였으니까.
“진정해. 살기를 뿜어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아니지. 네 행동에 따라서 제자가 살지 말지가 정해질 수도 있겠군. 큭큭.”
신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설극의 분노를 즐겼다.
신계가 두려워하는 파천혈신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허나!
신왕은 설극에 대해서 염라대왕보다 몰랐다.
그는 천극자를 두려워했지 파천혈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설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 결과.
“헉!”
신왕은 헛바람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설극이 다짜고짜 공격한 것.
신왕이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설극이 팔을 뻗을 때마다 파천멸기가 유형화가 되어 신왕을 겁박했다.
“자, 잠깐…!”
신왕이 몸을 뒤로 빼면서 말했으나.
설극은 귀를 닫았다.
그는 오직 눈앞에 있는 적을 없애고 인계로 강림할 생각이었다.
쿵!
설극의 한쪽 다리가 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열기로 가득 찬 주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강한 열기를 대변해주었다.
“저 미친놈이!”
설극의 태도에 신왕이 버럭 소리친 순간.
“천살.”
설극의 차가운 음성이 신왕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신왕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뒤늦게 들려오는 굉음 소리.
콰아아앙!
천지가 무너지는 폭음이 신왕성에 울려 퍼졌다.
“어억!”
“대왕! 땅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저, 저길 보십시오. 신왕성의 하늘이 아래로, 으악!”
땅만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신왕성의 하늘도 갈렸다.
별이 가득하던 신계가 일그러졌다.
염라대왕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극의 힘이 저 정도였나?”
역천의 힘을 끌어들이면 강하다는 사실쯤은 염라대왕도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
설극의 역천은 또 다른 자아가 아닌 마인이었다.
미완성의 무공 속에 깃든 영혼.
천극자의 작품인지라 그가 죽기 전까지 걱정하던 게 바로 역천이었다.
천극자가 우려한 대로 무지막지했다.
심지어 역천을 기반으로 만든 패천기공 아닌가.
미완의 무공에서 또 다른 미완의 무공이 파생된 상태.
역천은 그 불완전한 요소를 싸그리 없애는 게 가능했다.
패천기공과 역천은 하나였으니까.
“쿨럭쿨럭!”
신왕의 눈과 코,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기침을 다 한 그가 버럭 소리쳤다.
“네 제자가 죽어도 좋다는 말이 컥.”
신왕은 말하다 말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땅으로 처박혀야만 했다.
설극의 발이 신왕의 허벅지를 박살 냈다.
콰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네깟 놈이 누굴 건드린 줄 아느냐.”
싸늘하게 식은 음성은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 사는 괴물과도 같았다.
“끄어억!”
신왕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를 본 염라대왕이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구나.”
설극이 이겼다.
역천을 끄집어내니 신왕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끄으으… 내, 내가 죽으면… 네 제자도 살지 못해…”
신왕은 여전히 설극을 협박했다.
제자를 끔찍이도 아끼는 신선제.
이를 빌미로 전륜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신왕보다 전륜이 설극의 성격을 잘 파악한 것.
이로 인해 죽는 건 전륜이 아닌 신왕이 되었다.
“널 죽이고 인계로 내려가면 돼.”
푹-
설극의 손이 신왕의 가슴을 꿰뚫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파천멸기가 신왕의 몸을 감쌌다.
신왕기는 파천멸기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내부를 내어주어야 했다.
“으아아악!”
퍼석-
설극이 피가 묻은 손을 털어낸 후.
신왕의 머리를 밟아 터트렸다.
몸을 돌린 설극이 눈을 감고 이준의 기감을 찾았다.
잠시 후.
설극이 눈을 뜨자.
몸이 빛에 휩싸이면서 사라졌다.
염라대왕을 따라온 나찰과 야차는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신왕이 죽고 있었다.
“…”
신왕의 죽음을 누가 상상이라도 해봤겠나.
아무도 없을 거다.
머리통이 사라졌으나.
신왕은 염라대왕을 불렀다.
“끄으으… 염…라 날 살려…”
“그 힘은 나도 잠재우지 못한 힘이다.”
“거짓… 말! 끄억 날 살려주기 싫은 거냐!”
“잊은 모양인데 설극은 천극자의 제자다. 녀석이 사용한 힘은 천극자의 무공이란 말이지…”
“이렇…게 소멸할… 수 없…어…”
신왕은 삶에 미련이 뚝뚝 남았다.
신계의 정점에 서 있던 남자.
세계는 언제나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단 하나.
천극자와 관련된 일만 빼고 말이다.
신왕의 자리에 있는데 누가 소멸하고 싶을까.
영원히 정점에 서 있고 싶을 것이다.
“그만 미련을 버려.”
신왕은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한쪽 발로 섰다.
“난 절대 죽지… 않…”
신왕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산화했다.
신왕, 흑암의 소멸.
신왕은 전륜이 차지하게 되었다.
* * *
하늘을 보던 전륜이 씩 웃었다.
“멍청한 흑암 녀석. 네가 생각하는 걸 내가 못 할 것 같아? 넌 설극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소멸의 이유다.”
전륜은 옷이 바뀌었다.
검었던 무복에 하얀색이 입혀졌다.
반은 검은색.
반은 하얀색.
아예 검었던 무복에 색이 입혀지니.
전륜의 얼굴이 더욱 밝게 보였다.
흑암이 죽자 전륜이 그의 힘을 흡수한 것이다.
완전한 힘을 갖게 됐다.
“정점에 서 있는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어.”
전륜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다.
쾅!
그 속에선 살기 가득한 설극이 걸어 나왔다.
“준아.”
지독한 살기가 뿌려지는 것과는 달리.
설극의 목소리는 자애로웠다.
“사부님.”
“많이 다쳤구나.”
“괜찮습니다.”
“그래야지. 이 사부의 제자라면 끝까지 살아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설극이 이준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전륜을 무시했다.
전륜도 흥미로운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설극은 걸어가는 동안 이준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사부님. 어째서 더 젊어지신 듯하네요.”
“신선계에서 풀떼기만 먹었는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몰래 술하고 고기를 드셨겠죠.”
설극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러다 이내 다시 움직였다.
“겁화의 족쇄에 묶여 있으면서도 입은 잘 나불대는구나. 에잉 쯧. 걱정할 필요도 없겠어. 괜히 인계에 내려왔구나.”
무극자 사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
혹여나 이준이 긴장을 풀어 의식의 끈을 놓을까봐 조마조마한 상태.
계속해서 말을 거는 이유였다.
“말 돌리시는 걸 보면 정말 훔쳐 드셨네. 사모님한테 다 말해야지.”
이준의 얼굴은 창백했다.
가슴과 옆구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도 사부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정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서로 생각하는 게 똑같은 사제지간이었다.
설극이 이준의 곁에 도착했다.
그가 손을 움직이니.
이준을 속박하던 겁화의 족쇄가 풀렸다.
설극이 쓰러지는 이준을 안았다.
“사부님 낯 뜨거워요.”
“가만히 있거라. 언제 또 이 사부가 너를 안아보겠느냐.”
그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