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74화
카르디의 양손에 불이 붙었다.
손을 봉인 당하니.
게이트를 소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마력이 빨려 들어가고 있어! 자라프! 넌 어떠냐.”
“나도 마찬가지네.”
마력이 밑 빠진 독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틀어막고 있지만.
몸 밖으로 나가는 양이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마력이 빠지고 있었다.
“저놈과 내 격차가 이 정도로 많이 나다니!”
카르디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가브리엘을 흡수하면 상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의 착각.
오산이었다.
상대는 개뿔.
이준에게서 살아남으면 다행이었다.
그만큼 큰 격차가 났다.
특히 가브리엘을 흡수하고 더 강해지니.
이준의 강함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격하게 부정했으나.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이 빌어먹을 기운만 어떻게 좀 하면 괜찮을 텐데.”
“내가 없애보겠네.”
자라프가 신성력을 사용했다.
정확히는 인간 사제들에게 흡수한 신성력을 보였다.
거기다가 4대 원소의 힘까지 곁들어 있었다.
무룡왕의 힘.
그 어떤 속성도 지니는 게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단점이라면 무엇하나 특출나지 않다는 거다.
“죄인에게 징벌을!”
하늘에 수놓아진 빛의 검이 이준을 향해 떨어졌다.
빛의 유성과 비슷했지만 다른 힘을 지녔다.
사마의 기운을 제압하는 데 중점을 둔 공격이었다.
콰광쾅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회색 아지랑이로 뒤덮였던 주위에 구멍이 뚫렸다.
서서히 제 색을 되찾고 있는 풍경.
떠오르는 태양이 환하게 빛을 비추고 있었다.
“됐어!”
줄어들던 마력이 멈췄다.
카르디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검에 쏟아부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네놈을 꼭 죽이겠다!”
검붉은 화염의 검이 이준을 갈랐다.
화르륵!
세상의 모든 걸 불태울 화염.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이준이었다.
그것도 탈신경 초입에 오른 인간.
애초에 카르디와 자라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파괴적인 화염의 검이 이준의 손가락에 붙잡히자.
“말도 안 돼!”
카르디가 빽 하고 소리쳤다.
너무도 쉽게 검을 잡은 게 아닌가.
이준과 큰 격차가 나는 건 인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지는 걸 상상이라도 했을까.
화려하게 타오르던 검붉은 화염도 이미 사라졌다.
“흑!”
또다시 마력이 이준에게 빨려 들어갔다.
검을 뒤로 빼려 안간힘을 썼으나.
검은 이준의 손가락 사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카르디가 검을 놓고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이준은 그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애쓰지 마. 결과는 똑같으니까.”
이준이 싱긋 웃으면서 그의 마력을 흡수했다.
[특성 ‘무공천재’가 발동했습니다.]
[사신기가 흡성공을 사용했습니다.]
[적룡왕 카르디의 불꽃을 흡수합니다.]
[적룡왕 카르디의 어둠을 흡수합니다.]
“끄아아악!”
카르디가 비명을 질렀다.
지니고 있던 힘이 미친 듯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고통이 동반하는 건 덤.
생명력까지 모조리 빨아 먹혔다.
카르디의 모습을 본 자라프가 뒤로 슬금슬금 빠졌다.
하나 카르디보다 약한 자라프가 이준에게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어느새 자라프의 주위를 뒤덮은 회색의 아지랑이.
그 또한 이준에게 마력이 빨렸다.
자라프가 경련을 일으켰다.
사신기의 공포가 그를 구석으로 몰아붙였기 때문.
힘을 잃어간다는 두려움.
죽는다는 두려움.
원대한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두려움.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안… 돼애애…!”
카르디가 절규했다.
그도 자라프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용계에 오른 후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으니까.
“다신 만나지 말자.”
이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르디와 자라프의 몸이 모래 알갱이처럼 부서져만 갔다.
[적룡왕 카르디의 힘을 전부 흡수했습니다.]
[무룡왕 자라프의 힘을 전부 흡수했습니다.]
[원신의 힘을 전부 흡수했습니다.]
[원신이 하나로 합쳐집니다.]
[용계가 주인을 잃었습니다.]
[용족왕 중 빙룡왕을 죽이거나 설득하시면 용계의 주인이 될 자격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중에 원하는 메시지를 확인하자 안심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심장에서 거대한 힘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 * *
한편 신왕성에선 염라대왕이 죽은 전대 왕을 소생시켰다.
“초강. 2층의 문을 열어라.”
“염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안다. 내 죄는 나중에 달게 받겠다.”
“신왕께서 널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어라.”
염라대왕이 초강의 말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소생시킨 자의 명령을 들어야 했기에 초강은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어야만 했다.
지잉-
설극과 염라대왕이 포탈로 사라졌다.
나찰과 야차들까지 전부 2층으로 사라지자.
소생됐던 초강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2층 공간에는 한 명의 남자만 있었다.
“용케도 여기까지 올라왔군.”
검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
신왕성의 정점에 서 있는 흑암이었다.
사절을 인계에 보내고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염라대왕이 홀로 중얼거렸다.
“흑암….”
“2층까지 같이 올 줄은 몰랐다, 염왕.”
염라대왕은 입을 다물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신계 4대 왕으로 신왕과의 약속을 어긴 건 중죄.
어떠한 벌도 달게 받아야 했다.
말이 없는 염라대왕을 대신해 설극이 대신 입을 열었다.
“네가 신왕이냐.”
“입이 짧구나. 천극자도 내게 이리 무례하진 않았다.”
천극자란 이름이 나왔으나.
설극의 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적에게 존대할 만큼 성격이 좋지 않다.”
“오만하고 광오해. 그 사부에 그 제자구나.”
“칭찬으로 듣지.”
“신왕성에 온 이유는 마선 때문인가?”
“알면 그녀를 살려내라.”
흑암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탁하는 자세가 잘못됐다. 다시 정중히 하거라. 그렇담 내가 생각해보마.”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냐.”
설극이 파천멸기를 뿜어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살의가 뚝뚝 묻어나오는 눈빛.
어지간한 전대 왕은 이 눈빛만으로 오금을 저려 할 것이다.
하나 신왕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지금 네 입장을 잘 생각해. 나에게 살기를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 마선의 몸에 든 신왕기는 나 아니면 해결하지 못해. 그걸 알기에 네가 직접 신왕성으로 온 게 아니냐.”
신왕이 말할수록 설극의 살기는 지독해졌다.
‘나와 염라만큼 강하군. 신선제에 오른 지 얼마 흐르지도 않았건만 괴물이 따로 없구나.’
신왕조차도 설극의 강함을 피부로 느꼈다.
신왕오절로는 설극을 막지 못한다.
적어도 염라대왕이나 자신이 나서야지만 해결이 가능했다.
‘내 자리를 충분히 위협할만한 놈이야. 천극자 그놈은 죽어서도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어.’
골치 아픈 녀석을 남겨놓았다.
천극자는 적어도 제어라도 됐다.
신계의 율법에 묶어 놓아서 통제를 했지만.
파천혈신은 신계의 율법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본인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녀석.
심지어 능력까지 출중했으니.
가장 까다로웠다.
‘놈이 아끼는 마선이 신왕기에 당한 게 천만다행이군. 아니었다면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설극이 다짜고짜 공격하지 않은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독한 살기만 뿜어낼 뿐.
공격해오지 않았다.
설극이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말했다.
“협박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네놈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여전히 목이 뻣뻣해. 그래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느냐.”
“내가 고개를 조아린다고 한들 네놈이 경아를 살려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설극의 당당한 모습에 신왕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 행동! 비굴하게 부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해.’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신왕은 설극을 굴복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말했다.
“마선을 살릴 생각은 없구나. 그토록 그리워하더니 다시 만나보니 별거 아닌 모양이야.”
“그럴 리가. 애초에 이곳에 온 건 널 쓰러트려 경아를 살릴 생각이었다.”
쿵.
설극이 신왕을 향해 쇄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신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그는 생각할 겨를없이 설극을 향해 손을 뻗어야만 했다.
* * *
신왕성에서 인계로 내려온 신왕사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북명. 이준의 기운이 없소.”
“그란투스 대륙에 있는 듯하오만.”
“잘못 내려왔으면 다시 넘어가야지. 그란투스로 넘어가세.”
신왕사절은 곧장 게이트를 열어 그란투스 대륙으로 이동했다.
지구와는 달리 그란투스 대륙에선 이준의 기운이 너무도 선명히 느껴졌다.
“아수라. 꺼림직한 느낌 안 드시는가?”
“좋은 예감은 아니오.”
“빨리 움직입시다.”
신왕오절은 이준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로 도착했다.
“저게 무슨 힘이오?”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아수라의 표정이 꽤 많이 놀란 듯했다.
북명도 마찬가지.
신왕사절은 한 곳을 보고 있었다.
이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색찬란한 기운.
그로 인해 환골탈태를 대체 몇 번을 하는 건지.
가부좌를 튼 이준의 아래에 벗겨진 피부 껍질과 노폐물이 가득했다.
“가만히 둔다면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될지 모르오.”
“내 생각도 같소.”
모두가 북명을 쳐다보았다.
사절의 수장은 북명.
그가 명령을 내리기만 기다렸다.
“공격하게.”
북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며 출수했다.
북명의 검에선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아수라의 양손에선 강력한 붉은 기운이 모여들고.
반야의 곤에선 황금빛 서기가 맺혔다.
마지막으로 태극의 검에선 하얀색의 현묘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신왕사절의 공격은 그란투스 대륙을 통째로 날려버릴 힘이 담겨 있었다.
한 명의 인간을 상대로 과분했다.
그때!
이준의 몸에서 나온 오색찬란한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윽.”
“눈을 보호하시오.”
신왕사절도 눈을 뜨지 못한 채 이내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폭음이 들려야 정상이었으나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하기까지 했다.
강렬한 빛이 사라졌다.
신왕사절이 눈을 떴는데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이준이 일어나 있었다.
“으음.”
북명이 신음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는 이준이었다.
“헉!”
“배, 백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란 말이오?”
이준이 고개를 돌려서 신왕사절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하얀색으로 빛났다.
흑안, 적안, 청안, 녹안 등.
내공의 성질에 따라 다양한 눈동자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백안은 오직 단 한 사람.
천극자만이 가졌다.
백안은 천극자의 전유물.
신왕이 가장 두려워하는 눈이었다.
“정신… 차리시게! 완전한 백안이 아니네. 간혹 회색을 띠고 있어.”
“그, 그런가?”
“북명의 말씀이 옳은 듯하오.”
북명을 뺀 나머지는 사실 긴가민가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천극자의 백안이라니.
말이 되나.
백안은 천무, 태양, 마신지체 등.
가장 뛰어난 근골을 전부 합친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신왕기의 약점을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신왕이 말할까.
그만큼 백안은 엄청났다.
백안을 지닌 이에게 무공을 사용한다?
철저하게 파훼 당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천극자에 의해 한번 당해본 증인들.
그래서 북명의 말을 믿고 싶었다.
“겁먹지 말게. 백안은 천극자 말고 가질 수 없는 눈이네.”
북명이 아수라와 반야, 태극을 안심시키는 사이.
이준의 눈매가 좁아졌다.
‘신왕기가 너무 잘 보여.’
네 사람의 몸에 흐르는 기운의 경로가 훤히 보였다.
이전의 마안보다 더 자세히 보인달까.
심지어 숨소리를 내뱉은 직후에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로 강해질 줄은 몰랐어.’
이준은 자신을 노린 네 명을 보고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들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빨리 가늠해보고 싶달까.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사신기도 보챘다.
빨리 새로운 먹잇감을 달라고.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사신기가 눈에 집중되며 백안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