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678화 (678/705)

외전 제3부 72화

[너희도 봤겠지?]

지저갱 속에서 올라온 끈적한 목소리.

뇌를 통째로 흔드는 음성이었다.

“신왕이시어.”

사절이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신왕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보았습니다.”

[본왕의 말은 안중에도 없더구나.]

사절이 있는 장소가 흔들렸다.

무너질듯한 진동.

바람을 타고 살의가 몰아쳤다.

“저희가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이길 수 있겠느냐.]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북명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신왕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그들이 신왕의 음성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북명이 재차 말했다.

“믿어 주십시오 신왕.”

[북명 널 못 믿어서가 아니다. 파천혈신을 가장 괴롭게 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절은 신왕이 생각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 그 방법뿐인가. 북명.]

생각을 마친 신왕이 북명을 불렀다.

“예 신왕.”

[신선계의 마선과 파천혈신의 제자를 신왕성으로 데려오라.]

“명을 받듭니다.”

북명이 대답하자.

어느새 나타난 전륜이 피식 웃었다.

“너답다. 흑암. 여전히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어.”

[네가 마선을 처리했다면 일은 더욱 쉬워졌을 것이다.]

“네가 호출해서 난 바로 올라온 거거든?”

[본왕의 신경을 긁으려고 일부로 마선을 살려준 게냐.]

“그럴 리가.”

[네 마음을 본왕이 못 느낄 것 같으냐.]

“역겨우니까 제발 나와 같다고 하지 마. 흑암 새끼야.”

전륜이 신왕에게 쌍욕을 퍼붓자 북명이 소리쳤다.

“전륜! 신왕께 무슨 무례요. 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시오!”

북명의 호통에도 전륜은 귀를 후벼파기만 할 뿐이었다.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흑암 저 새끼한테도 소리 좀 쳐봐. 대놓고 사람 차별해.”

“이 작자가 그래도!”

“나한테 호통칠 시간에 빨리 움직여. 파천혈신이 곧 이곳으로 올라올 걸?”

“흥. 여긴 승인이 없으면 올라오지 못하는 곳이오.”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아수라의 말이었다.

“흑암. 너도 아수라의 말에 동의하는 거냐?”

신왕의 그림자라 그런가.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느낀 전륜이었다.

[전륜의 말이 옳다. 빨리 움직여라. 파천혈신에게는 염왕이 있어 2층의 문을 열 수 있다.]

아수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신왕의 증표인 신왕기가 있어야만 차원을 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염라대왕이 차원을 연다는 말씀이십니까.”

“멍청한 놈. 그딴 머리로 오절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흑암이 전부 엎으려고 하는 거지.”

“전륜, 난 북명처럼 참고만 있지 않소이다!”

아수라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전륜이 서열에서 아수라보다 낮으니.

아수라가 전륜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륜은 제 할 말만 했다.

“염왕은 현 지옥계의 왕이다. 즉, 죽은 자를 관장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 말은 아직 소멸하지 않은 전대왕의 기운을 붙잡아 일시적으로 소생시키면 2층으로 올라오는 문을 열 수 있다는 거다 병신아. 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었기에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거지?”

아수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북명을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

얼굴이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안 움직이고 뭐 해? 흑암이 차원을 잠시 봉인할 동안 인계로 갔다 와.”

“당신도 따라나서시오!”

“더러운 짓은 한 번으로 족해. 뒤에서 구경할 거니까 난 없는 사람 취급해.”

북명이 신왕의 명령을 기다렸다.

전륜이 빠지겠다 하더라도 신왕의 명령이면 움직여야 했다.

한데 신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전륜의 행동을 눈감아 준다는 뜻.

북명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명을 수행하고 오겠습니다.”

사절이 모두 사라졌다.

* * *

그 무렵.

로에니아 제국 대신전.

그란투스 대륙으로 도망친 가브리엘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 허억…”

모두가 죽었다.

라파엘도.

라구엘도.

심지어 천계왕인 미카엘까지.

인간의 손에 죽었다.

“더 강한 힘이 허억… 필요해….”

원신의 힘은 어둠의 돌을 흡수했으나 당했다.

하마터면 자신도 우리엘처럼 모든 힘을 빼앗기고 죽을 수도 있었다.

우리엘의 얼굴을 보자.

녀석이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지 알 수가 있었다.

“허억… 나라고 우리엘처럼 안 허억… 되라는 보장은 없어… 빨리 다른 힘을 찾아야… 해!”

가브리엘의 머릿속은 온통 새로운 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사는 방법.

신의 권위를 되찾는 방법이었으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가브리엘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대신전 문이 열렸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신전에 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

석상 뒤로 가서 숨었다.

발소리와 함께 갑주를 입은 소리도 들렸다.

“가브리엘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왔어.”

“숨어 있지 말고 나오시오.”

가브리엘은 석상 뒤에 숨어서 나타난 이들을 보았다.

‘적룡왕과 무룡왕!? 영웅왕과 신성왕으로 변해 있었어.’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장해 있었다.

황금색 갑주를 입은 영웅왕은 적룡왕 카르디.

사제 복장을 입은 신성왕은 무룡왕 자라프였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천계가 나눠준 힘을 회수하기 위해 그토록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녀석들.

제 발로 나타나 준 건 고마우나.

시기가 좋지 못했다.

하필 파천제에게 당한 상처가 쑤셔 왔다.

외상도 컸지만 내부가 엉망이었다.

현재 저 둘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거점으로 옮겨야 해.’

가브리엘이 포탈을 열려는 순간.

“찾았다.”

적룡왕이 석상 옆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포식자라도 된 것마냥.

가브리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르….”

가브리엘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콰직!

적룡왕 카르디의 얼굴이 드래곤으로 변하면서 가브리엘을 한입에 씹어먹었으니까.

뼈가 씹히는 소리가 났다.

무룡왕은 옆에서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브리엘은 미카엘과 더불어 천계에서 가장 강한 신 중 하나.

심지어 어둠을 집어삼켰으니.

적룡왕은 지금보다 세 배 이상은 강해질 것이다.

카르디가 가브리엘을 전부 씹어 먹었다.

“꺼억!”

트림까지 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무룡왕이 물었다.

“어떠한가?”

“아직 모르겠어.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 윽.”

카르디가 신음했다.

그의 몸이 화염으로 타올랐다.

인간으로 변해 있는 육체가 비늘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크흑!”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부에서 강력한 힘이 치솟았다.

어둠.

가브리엘의 기운이었다.

그가 가진 불과 어둠이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현상.

단단하고 매끈한 비늘이 갈라지고 찢어졌다.

“이, 이럴 수가!”

곁에 있던 무룡왕이 멀찍이 떨어졌다.

카르디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감당하지 못한 것.

곁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대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

노란 불꽃에서 붉은 불꽃으로.

붉은 불꽃에서 검은 불꽃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아름답군.”

무룡왕은 화염으로 뒤덮인 주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성스러운 모든 걸 전부 태우는 화염.

검은 불꽃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쓰으으읍!”

카르디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코로 바람이 빨려들어 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화염으로 뒤덮였던 주변이 순식간에 소화되는 게 아닌가.

마치 모든 걸 전소시키고 없어진 광경이었다.

“완전한 신이 된 느낌이야.”

카르디가 손을 쥐었다 폈다를 하며 상태를 확인했다.

몸에선 불과 어둠의 힘이 공존하고 있었다.

몸을 뒤덮은 비늘도 전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뿐인가.

“인간이라고 해도 속겠어.”

비늘을 제 뜻대로 감출 수 있었다.

새하얗게 변한 피부.

칼로 그어도 상처가 나지 않았다.

그가 만족하고 있는 사이.

무룡왕이 곁으로 다가왔다.

“축하하네. 뜻대로 되었어.”

“네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이다. 이래서 많은 눈이 필요해.”

인계로 내려온 신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신성왕을 떠받드는 신도 때문.

가브리엘의 신도보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했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그란투스 대륙으로 도망쳐 올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네.”

“파천제 그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 암흑대공의 힘을 가졌다면 가브리엘도 상대가 되지 못하지. 그 옛날 전대 가브리엘도 암흑대공에게 죽었잖아.”

“너무 옛날 일이라 잊고 있었네.”

“도망쳐 올 곳은 여기밖에 없으니 기다리다 보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줄 알았어. 예상과 다른 게 있다면 가브리엘 혼자 도망쳐왔다는 거지.”

가브리엘과 함께 움직이는 신은 라파엘과 라구엘이 있었다.

이 중 하나는 같이 도망쳐 올 줄 알았건만.

혼자 나타난 것이다.

“파천제를 얕보다간 우리도 가브리엘처럼 당할지 몰라.”

“명심하고 있겠네.”

“아쉬워하지 마. 다른 힘을 찾아서 네게 줄 테니까.”

카르디는 무룡왕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면서 이준을 떠올렸다.

‘반드시 너를 씹어먹어 줄 테다 이준!’

* * *

4대 성지의 금역.

이준은 주경아를 게이트로 데려왔다.

혼원문에는 금역의 수뇌부 몬스터가 죄다 모여있었다.

[억지로 수명을 늘려놓으면 염라대왕이 크게 노할 것이다.]

청룡의 목소리에 흑염마조가 받아쳤다.

[그게 중요하냐. 큰 주인이 화나면 지옥계고 뭐고 다 뒤엎어 버릴 거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현무 네가 치료를 도와주던지.]

흑염마조의 제안에 현무가 머뭇거렸다.

현무는 세상사에 무심한 존재.

청룡은 중재자라면 현무는 방관자였다.

세상사에 끼어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현무가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

세상이 무너지면 사신수의 존재유무도 사라진다는 것.

지금의 신선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터다.

[우유부단한 놈.]

흑염마조의 도발에 현무가 발끈했다.

[나처럼 신념이 확고한 신수한테 우유부단하다니! 날 잘못봐도 한참이나 잘못 보았다!]

현무가 결정을 내렸다.

주경아의 몸에 현무의 기를 주입했다.

[많이 아플 것이다. 대신 죽는 건 늦춰질 거야.]

현무의 기가 신왕기와 충돌했다.

사신기에 현무의 기가 더해지니.

신왕기가 주춤했다.

불리한 걸 느낀 신왕기가 몸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푸우웁!”

주경아의 입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죽은 피속에서도 신왕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괜찮으세요?”

이준이 주경아를 안고는 등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에는 따스한 사신기가 담겨 있었다.

현재 주경아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운 상태였다.

“아이고 큰 사모님. 아프시면 안 됩니다요.”

테구르가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주경아의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피를 전부 닦아낸 녀석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화로를 꺼내 불을 피웠다.

“어떠십니까요. 조금 괜찮지 않습니까요?”

테구르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서 주경아를 보필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인의 사모님.

그러니까 주인의 사부이신 무극자 어른의 부인이었다.

서열로 따지면 가장 높은 사람.

주인보다 더 극진히 모셔야 했다.

“아이고 주인님. 더 정성껏 쓰다듬으십시오. 큰 사모님께서 주인님의 손길에 화색이 피지 않습니까요.”

“이, 이렇게?”

이준은 테구르의 핀잔에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녀석의 말에 따라야 했다.

녀석의 주문대로 내공을 세밀하게 조절하니.

주경아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부족합니다요! 기운을 더 정교하게 포근함과 안정을 줄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요.”

테구르는 이때다 싶어서 이준을 갈궜다.

그러면서도 희열이 느껴졌다.

큰 사모님만 곁에 있으면 주인님도 무서운 인간이 아니었다.

“어허! 또또! 이러다 큰 사모님이 불편을 느끼시겠습니다요.”

“난… 괜찮다….”

“아닙니다요. 큰 어르신이 사모님의 다친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요. 주인님의 오른팔이자 충직한 종으로서 집안을 안정하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요.”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이준도 테구르의 말에 동의하니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님도 못 하시는 게 있었습니까요, 큭큭큭. 이 테구르가 보필이 뭔지 가르쳐, 억!?”

더는 녀석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너 상당히 오버한다?”

“서, 설마요. 전 오직 주, 주인님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뿐입니다요.”

테구르가 눈동자를 슬며시 내리깔았다.

그와 동시에 식은땀이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