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71화
전륜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졌다.
그는 염라대왕을 뒤로하고 설극을 향해 쇄도했다.
손에 든 검에 지옥기가 회오리치며 모여들었다.
화염으로 타오르는 검이 설극을 갈랐다.
쾅!
설극은 전륜의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이상해. 여기서 너보다 강한 놈이 꽤 있는데 왜 네게 쩔쩔매는 거지?”
설극의 손에 잡힌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륜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재밌다는 표정.
설극이 미간을 찌푸리며 발로 전륜의 복부를 찼다.
퍽!
전륜이 검을 놓은 채 양팔로 설극의 발차기를 막았다.
무지막지한 내공이 발에 실렸는지.
전륜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그가 양팔을 내린 순간!
“너, 정체가 뭐냐.”
설극이 눈앞에 있었다.
전륜은 생각할 겨를 없이 허리를 뒤로 꺾어야 했다.
설극의 우악스러운 손이 앞으로 뻗어졌으니까.
저 손에 잡히면 뼈도 못 추린다.
하나 그가 생각한 것보다 설극은 싸움에 능했다.
허공에 헛손질을 하니.
대신 진각을 밟았다.
쿵-
지축이 울리자 전륜의 균형이 무너졌다.
거센 충격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전신을 강타했다.
내공이 흩어진 찰나.
설극이 전륜을 허공섭물로 낚아챘다.
전륜이 허공에 붕 떠서 설극에게로 끌려왔다.
하나 전륜도 만만치 않았다.
흩어진 내공을 빠르게 수습한 후.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옥기가 담긴 검이 설극에게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설극과 전륜의 중앙을 향해 날았다.
검이 두 사람을 갈라놓자.
설극의 내공이 중간에 끊겼다.
“후우.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너 싸움 꽤 한다?”
전륜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에 설극도 공격을 멈췄다.
그리곤 신기한 눈으로 전륜을 보았다.
‘내공은 다른 놈들보다 약하지만 싸움에 능하다. 경험이 풍부한 느낌이군.’
전투 감각만으로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경지의 격차를 메꿀 정도.
그래서 더욱 전륜의 정체가 궁금했다.
‘전륜이란 이름은 지옥의 시왕 중 끝판왕에 해당한다. 염라대왕도 저 자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한데…,’
“내 정체를 알고 싶은 모양이야?”
전륜이 어깨에 검을 걸친 채 물었다.
설극은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말해 줄게.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난 신왕성의….”
그때였다.
“전륜! 함부로 그분의 이름을 담지 마시오.”
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소리쳤다.
그를 보더니 전륜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왜?”
“당신은 그분의 명을 수행하는 그림자일 뿐이요.”
“하아아. 분명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전륜이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바로 도포를 입은 남자.
자하의 앞이었다.
전륜의 손에 들린 검이 화염에 감싸였다.
그 속에서 무기가 변했다.
검신이 넓적하게 늘어지면서 도의 형태로.
도가 허공을 가르며 자하의 앞에 떨어지고 있으나.
자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척-
전륜의 도가 멈춰 섰다.
“…이라고 지껄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자하의 목에 실선이 그어졌다.
그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말든 상관없소. 하지만 그분을 입에 담는 건 두고 볼 수 없소.”
자하의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신왕에 대한 믿음.
신뢰가 가득했다.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쪽짜리 주제에.”
“전륜!”
자하가 크게 소리쳤다.
전륜을 죽일 듯한 기세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난 선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놈은 악이잖아.”
“그 입. 더는 놀리지 마시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소.”
자하의 눈이 이글거렸다.
하지만 막상 공격은 하지 않았다.
충분히 전륜을 죽일 수 있으나.
꾹 참았다.
전륜은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분신이었으니까.
“그래. 이만할게.”
전륜이 자하의 목에 겨눴던 도를 내려놓았다.
분노한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대신 자하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마치 짓궂은 장난을 치듯 말이다.
“근데 그거 알아?”
“무엇을 말이오.”
“내가 마음대로 하고 다녀도 그 녀석이 날 못 죽이는 이유.”
“그림자이니 살려두는 게 아니오.”
“틀렸어. 난 녀석의 그림자가 아니라 떨어져 나온 선의 자아다.”
“그게 어쨌다는 말이오.”
“내가 놈을 차지하면 너부터 죽여버리겠다는 말이지.”
전륜의 말에 자하는 오싹함을 느껴야만 했다.
“난 빠질 테니 알아서 해.”
“그분의 말을 어기겠다는 말이외까.”
“쟤들을 여기서 죽일까 했는데 김샜어. 다음에 싸울래.”
전륜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자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분의 그림자만 아니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터인데 칫.”
* * *
설극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검이 도로 변하자 기운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압도할 만큼.
거대한 힘을 뿜어냈다.
‘사부님을 제외하면… 염라대왕급인가?’
만났던 이들 중 가장 전율스러운 힘을 지닌 존재는 천극자 사부였다.
단 한 번도 사부를 넘는 자를 만나지 못했다.
염라대왕도 사부에 비하면 한 수가 부족한 정도.
하지만 사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했다.
전륜도 마찬가지.
섬뜩하리만치 음유한 힘을 지녔다.
‘만만치 않아.’
그렇다고 못 이길 것도 아니다.
천극자 사부급이 아니면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불안한 점은 딱 하나.
신왕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신경 쓰이는군.’
새로 나타난 남자와 대화를 나눈 걸 들어본 결과.
전륜은 결코 평범한 전대 왕이 아니었다.
‘선과 악이 나뉘었다고 하니 어쩌면 신왕의 다른 자아일 수도 있어.’
자신과 역천의 관계라고나 할까.
역천은 선이 아예 없는 악이었다.
오로지 살육만을 갈구하는 또 다른 자신.
전륜도 이와 비슷할 거라 여겼다.
다른 거라면 상대는 자아를 완전히 분리한 상태라는 거다.
‘만나보면 확실해지겠지.’
설극이 생각을 다 정리해갈 때.
자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천혈신. 신왕의 전언이다.”
전언이라는 소리에 염라대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신왕과 전륜의 자아는 다르더라도 생각하는 건 비슷했다.
“네가 신왕성에 쳐들어온 이유를 안다. 여기서 멈추고 나를 따르면 모든 죄를 덮어주지. 라고 말씀하셨다.”
“싫다면?”
“주경아의 죽음. 신계에 속한 신은 신왕기를 거부할 수 없다.”
자하의 말에 설극의 분노가 폭발했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설극의 눈이 붉은색으로 번쩍이며 신형이 사라졌다.
“!?”
순간 자하는 설극의 신형을 놓치고 말았다.
‘오른쪽이?’
자하가 몸을 옆으로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한데 검을 벤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왼쪽?’
자하가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그의 검에서 자줏빛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쾅!
하지만 모두 틀렸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니었다.
“사술이냐!”
설극은 분신이라도 한 듯.
사방에서 방위를 점하며 공격을 하는 게 아닌가.
한쪽은 장력을.
한쪽은 창을.
한쪽은 진각을.
나머지 한쪽은 파천멸기를 펼쳤다.
자하의 검에서 다시 매화가 나타났다.
이번엔 한 송이가 아닌 수백 송이.
공간을 전부 채우려는 듯.
수백, 수천 송이의 매화가 회오리치며 날았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자하가 피를 뿜어냈다.
한 번의 충돌로 내상을 입고 말았다.
다행히 큰 내상은 아닌지.
금세 혈색을 회복했다.
자하가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전부 막은 게 아니었나?’
그는 무극장을 막았을 뿐.
무극창법이나 진천보도 막지 않았다.
심지어 파천멸기의 결은 느끼지도 못했다.
파천멸기는 자하의 주위에 보이는 결을 전부 끊어놓은 상태였다.
“컥!”
자하가 뒤로 날아갔다.
허공에 무수히 많은 실선이 교차하자.
그의 피부가 갈라졌다.
전신이 피로 물들었다.
이걸로 끝나면 다행.
마지막 남은 게 있었다.
자하의 몸을 검붉은 불꽃이 감쌌다.
“크흐으윽!”
화산의 무공인 자하신공으로 몸을 보호했으나.
그럴수록 검붉은 화염은 커져만 갔다.
“자, 자하를 지켜라!”
초강이 소리쳤다.
남아 있는 전대 왕들이 자하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내공을 사용해 몸에 붙은 화염을 끄려 했지만.
“어억?”
“부, 불이 번지고 있어!”
“아악 파, 팔에…”
전대왕들이 당황해했다.
화염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활활 타올랐다.
자하의 고통은 극심했다.
“크으으… 내가 이걸로… 쓰러질 것 같으냐.”
피부가 녹아내리고 뼈가 타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을 휘둘러 설극을 공격했다.
“내가 분명 경고했을 텐데. 내 하늘을 무너트리면 너희의 하늘도 똑같이 해주겠다고.”
“고작 하급 신 하나 때문에 신왕을 향해 칼을 들이밀겠다는 소리냐!”
“나한테는 고작이 아니고….”
쿵.
설극이 발을 굴렸다.
사방으로 파천멸기가 퍼져갔다.
자하를 비롯한 전대왕들을 뒤덮었다.
“…전부다.”
설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몸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패천기공의 네 번째.
파천멸진이었다.
신선제에 오르고 자동으로 완성된 무공 중 하나였다.
그의 의지에 따라 기운을 유형화할 수도.
무형화할 수도 있었다.
“으아악!”
“사, 살려!”
모두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뿐인가.
그들이 쌓은 내공과 마력, 신성력.
심지어 신왕기까지.
모두 사라져만 갔다.
고통은 덤이었다.
* * *
“아…”
“신선제의 끝을 알 수 없군요.”
“서, 설마 신왕성 오절 중 한 명인 자하까지 가지고 놀 줄이야.”
염라대왕의 곁에 있는 나찰과 야차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극의 힘에 압도된 상태였다.
“대왕! 대체 신선제의 끝은 어디까지입니까?”
“전에 했던 말이 맞다니….”
“대왕께서 농담하신 게 아니었어.”
“몇백 년만 더 지나면 대왕의 경지를 뛰어넘을지도.”
금제한 염라대왕의 경지는 탈신경 완숙.
4대 신계 왕의 경지였다.
금제를 푼 염라대왕의 경지는 탈신경을 뛰어넘었다.
미지의 경지.
대왕도 이 경지의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임의로 붙여진 이름.
무경.
오로지 신계에서 세 명만 존재했던 경지.
한 사람은 소멸해서 이제는 두 명뿐이 없었다.
이런 초극의 경지에 설극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근데 걱정이기도 합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신왕성의 대부분을 죽였으니…”
“이제 남은 건 오절 중 넷뿐입니다.”
자하를 제외한 나머지.
그들은 굉장히 강했다.
지옥계의 초강대왕을 제치고 오절에 들어간 실력자들.
모두 신선계 출신이었다.
신왕성에 가장 오래 몸을 담은 이들이기도 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불에 타고 있는 자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오절에 있는 놈이군. 오래도 버티고 있어.”
모두가 소멸했다.
지옥계의 전대 왕인 초강마저 죽었다.
한데 자하가 끝까지 안 죽고 버티는 게 아닌가.
설극은 녀석을 죽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고통을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용케 파천멸기를 없앴구먼.”
염라대왕의 중얼거림이었다.
그의 말대로 자하는 파천멸기를 버텨냈다.
몸에 붙은 화염이 사라지니.
처참한 몰골이 보였다.
피부가 전부 녹아내린 모습.
눈과 코가 어디에 있는지 분간이 안 갔다.
가슴은 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엉망인 내장이 다 보일 정도였다.
“…후욱… 어… 떠하… 냐….”
자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에 설극이 대답했다.
“정신력은 인정해주지. 그게 끝이다.”
“…무….”
자하는 어떤 말을 하려다가 이내 쓰러졌다.
파천멸기는 버텼으나.
내공과 생기 심장을 잃었다.
말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인간이라면 숨이 끊어지고 남을 상황.
신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염라대왕. 이제 어디로 가야 하오?”
설극이 염라대왕에게 물었다.
그가 있는 곳은 신왕성 1층.
위에는 높은 천장뿐.
아무것도 없었다.
“신왕성은 층계마다 차원이 다르다. 2층 포탈을 열어야지만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열어주시오.”
설극은 얼굴에 철판을 깔며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한편.
신왕오절은 말이 없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그들의 귀에 음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