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57화.
이준은 천계와 용계에 전쟁을 선포했다.
파격적인 발언.
아니, 그가 아니라면 절대 내뱉을 수조차도 없는 말이었다.
인간이 신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
신에 대한 모독이다.
“저희 사신가도 가주와 함께….”
“금역에 가 있으세요.”
이준이 이의태의 말을 끊었다.
단호한 명령.
항명은 허용하지 않겠단 눈빛을 보냈다.
“가주의 명을 받듭니다.”
“지안이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이곳에 안 다친 사람이 없었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
자존심이 강한 아이가 또 적에게 패배를 했으니 상심이 꽤 클 것이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이의태가 오대가문과 마벽에 연락을 취하는 사이.
이준은 미카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계가 과연 널 구하러 올까?”
“신에게 도전한… 죄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라고 널 살려둔 채 기다리고 있잖아. 네 모습을 위에서도 보고 있겠지. 널 구하러 오면 하나하나 전부 죽일 생각이야. 네가 보는 앞에서 말이지. 네가 얼마나 무력한지 느껴봐.”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악마의 미소를 본 미카엘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 * *
천계는 현재 난리가 난 상태였다.
천계의 7대 가주를 대신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가문의 후계자들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우릴 우롱하고 있어.”
“당장 인계로 내려가 미카엘님을 구해야 해.”
“맞아. 이대로 있다간 천계가 신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할지 몰라.”
“그리고 미카엘 님도 구해야지!”
저마다 인계로 내려가자는 의견을 냈다.
하나 대도서관을 책임지는 네일 레미엘만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네일. 네 생각은 어때?”
지엘라크 미카엘이 네일에게 물었다.
네일은 깊은 고민 끝에 입술을 뗐다.
“어른들의 말을 어길 순 없어.”
쾅!
지엘라크 미카엘이 원형의 탁자를 손으로 내려쳤다.
“네 아버지가 아니라고 반대하는 거냐.”
“지엘라크! 무슨 말이 그래. 네일은 천계를 생각해서 신중히 말한 것뿐이야.”
“제넷. 너는 싸우자는 입장 아닌가?”
“나야 싸우기만 하면 언제든 환영이긴한데….”
“그럼 입 다물고 싸우는 것에 찬성이나 해.”
미카엘 가문의 후계자 지엘라크가 강압적으로 말했다.
미카엘 가는 천계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
천계에서 입김도 막강하기도 해서 많은 이들이 따랐다.
“네일만 빼고 인계로의 강림을 찬성한 거냐.”
7대 가문 후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계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천계로 가자.”
“지엘라크. 우리가 간다고 변한 건 없어.”
네일이 다시 반대 의견을 펼쳤다.
“넌 미카엘님이 우스워 보여?”
“무슨 말이냐.”
“천계가 전부 덤비면 미카엘 님을 이길 수 있냐고 묻는 거야.”
“그건.”
“아무리 힘을 잃으셨다 해도 미카엘님은 천계왕이셔. 그런 분을 파천제는 가볍게 제압했어. 천계를 다 끌고 가서 전멸이라도 시키자는 소리야? 천계의 미래도 없이?”
“네일의 말이 맞긴 해.”
“어른들도 우리에게 미래를 맡기신다고 했어.”
네일의 말에 생각이 급변했다.
“지엘라크. 네가 끝까지 인계로 강림한다면 말리지 않을게. 다만 우리에게 인계로의 강림을 강요하진 마. 적어도 천계를 이어갈 명맥은 남아야지.”
“에잇. 나도 네일의 의견에 따를래.”
제넷 사리엘이 팔짱을 끼며 네일의 편으로 돌아섰다.
싸움광인 제넷이 돌아서자.
다른 후계자들도 생각을 바꾸었다.
“미카엘 님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어머니가 없는 지금 가문을 돌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서 난 빠질게.”
모두가 네일의 편에 섰다.
천계의 미래.
후계자인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언젠가는 부모를 대신해서 가문을 이끌어야 했다.
그때 세력이 약하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가문에 밟힐지 모른다.
잘못하다간 명예와 권력을 전부 잃을 수도 있는 상황.
그것만은 꼭 피하고 싶었다.
“겁쟁이들! 너희들이 그러고도 천계인이라 할 수 있어?”
“지엘라크.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너 못지않게 파천제에게 원한이 있는 나야.”
네일이 흥분한 지엘라크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지엘라크 또한 네일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냉정함 속에 들끓고 있는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네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7대 가문은 움직이지 못 하지만 하위 가문은 움직일 수 있어.”
“그게 어쨌다는 거야. 하위 가문이 내려가봤자 아버지를 구하지 못해.”
“우리가 내려가도 똑같아. 차라리 우리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중하위 가문의 세력을 줄이는 게 나아.”
“지금 아버지의 목숨으로 정치질을 하겠다는 거냐. 네가 나한테 죽고 싶구나.”
“우린 미래를 대비하자는 거지. 미카엘 님을 이용하자는 게 아니야.”
“네일의 말도 일리가 있어. 흥분을 가라앉히고 들어보자.”
제넷의 말에 지엘라크가 자리에 앉았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네일을 보고 있지만 그도 호기심은 있었다.
아버지가 인계에서 인간에게 치욕을 당하고 있어서 내색하지 못할 뿐.
네일의 이야기에 관심이 절로 갔다.
“이상한 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꽤 솔깃할 거야. 난 네가 가주 위에 빨리 오르고 싶다는 걸 알거든.”
지엘라크가 뜨끔했다.
천계왕인 아버지가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있으니 그는 만년 후계자 신세였다.
세대 교체를 이뤄야 했으나 불가.
그의 아버지가 죽어야지만 미카엘 가주 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고결한 영면에 들던지, 아니면 소멸을 해야 했지만.
전자와 후자, 그 어떤 것도 천계왕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개소리하지 마.”
“아무튼 지금 천계는 주인이 없는 상태야. 만약 중하위 가문이 반란을 일으키면 우리도 힘들어져.”
“머저리한테 질 정도로 난 약하지 않아.”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나 빼고 가주 위에 오른 사람은 없잖아. 가주에 올라야지만 진정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너희들은 반쪽짜리에 불과해.”
물론 가주 위에 올라서 권능을 지니게 된다 해도 반쪽이긴 마찬가지였다.
용신족에게 속성을 회수하지 못했으니까.
“중소 가주들은 하찮은 권능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우릴 공격해온다면 피해가 상당할 거야. 어쩌면 죽는 후계자까지 생길지 몰라.”
“으음…”
“가문의 정예는 전부 아버지를 따라 인계에 강림한 게 문제가 되네.”
“맞아. 가문에 정예가 없다는 것도 걸려.”
“그래서 그들을 미리 제거하자는 거냐. 내 아버지를 이용해?”
“이용이 아니라 미래를 도모하자는 거라니까.”
지엘라크가 고민에 빠졌다.
그가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권능이었다.
신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힘.
한데 7대 가문은 오직 가주직에 올라야만 권능을 얻게 된다.
너무도 강력한 힘이 한쪽으로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천계의 규칙이었다.
이 때문에 중하위 가문도 7대 가문을 잘 따른 것.
그러나 주인이 없는 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하위 가문은 호시탐탐 7대 가문의 자리를 탐냈다.
7대 가문을 따르는 것과는 별개.
인간이나 신이나 욕망은 똑같았다.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게 꿈이었다.
“우린 중하위 가문을 인계로 파견하고 이미 내려간 분들께 미카엘 님이 위험하다고 알리는 게 최선이야.”
“네일의 말대로 하자.”
“그게 좋은 것 같아 지엘라크.”
“언제까지 후계자에만 있을 거야?”
“너…!”
“이번에는 내 의견에 따라줘. 대신 레미엘 가문은 너희 미카엘 가를 지지할게.”
“그게 정말이냐!?”
지엘라크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두가 놀라 했다.
레미엘 가는 항상 중립을 고수했던 곳.
미카엘 가문을 지지하고 나선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조건이 있어.”
“뭐냐. 천계가 안정되고 강한 힘을 갖게 된다면 파천제의 처리는 우리 레미엘 가문에 맡겨줘.”
“좋다. 네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
지엘라크는 그제야 네일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로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잃게 될 수도 있었으나.
언제까지 후계자로 남을 수 없는 노릇.
이참에 세대 교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현 가주는 인계의 고인 물을 넘어 썩은 물에 가까웠으니까.
“우리와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만 남기고 전 병력을 인계로 강림시키자.”
지엘라크가 품에서 문장이 새겨진 도장을 꺼냈다.
허공에 그 도장을 찍으니.
천상계 하늘에 천계왕을 상징하는 문장이 나타났다.
천계에 속한 이들을 전부 소집하는 신호였다.
하늘에 나타난 문장을 본 천계인들이 천상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그란투스 대륙의 크세레나 신성의 인근 마을.
균열로 뒤덮여 있는 곳이라 마기가 지독했지만.
어쩐 일인지 마을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마기에 침식당하지도 않았다.
마치 균열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듯.
평소와 같이 생활을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게 크세레나 신성 덕분이라 여겼다.
성스러운 성전의 땅이라 불온한 기운이 먹혀들지 않은 것.
크세레나 신성에 감사했다.
하나 균열에 영향을 받지 않은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빛의 돌이 마을에 숨겨져 있기 때문.
숨겨진 장소는 바로 석상의 눈이었다.
퍽-
미카엘의 석상이 부서졌다.
우리엘이 허리를 굽혀 빛의 돌을 주었다.
“정말 내가 이걸 흡수해도 됩니까? 빛의 돌은 천계왕의 것인데…”
욕심이 났으나 꾹 참고 있었다.
“미카엘 님은 빛의 돌보다 강력한 번개의 돌을 흡수하러 가셨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난 빛보다 불이 더 좋은데.”
“불의 돌을 찾을 수 없는 지금 빛의 돌보다 좋은 원신의 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의 군단장의 말에 우리엘이 바로 수긍했다.
“네 말이 맞다. 이걸 안 먹으면 나만 손해야.”
우리엘이 빛의 돌을 꿀꺽 삼켰다.
원신의 힘이 순식간에 몸 전체를 감쌌다.
거대한 기운이었다.
“가브리엘의 말이 정말이네. 원신의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
설마 이런 돌멩이가 자신들의 힘을 얼마나 채워주겠나 싶었다.
하나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원신의 돌은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났다.
용신족에게 빌려줬던 힘을 전부 찾은 느낌.
그것도 원신의 힘을 흡수한 지 1분도 안 됐는데 예전 전성기 시절로 돌아왔다.
“이 힘을 지닌 채 오랜 세월을 보내면… 파천혈신도 문제가 되지 않겠어.”
용신족이 기를 쓰고 찾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엘이 흐뭇해하고 있을 때였다.
“가주님. 천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고해라.”
“천계왕께서… 위험하시답니다.”
“미카엘 님이? 어쩌다? 아니, 누가 천계왕을 위협할 수 있단 말이냐. 혹, 마계가 다시 준동한 거냐.”
“그것이….”
“빨리 말해봐.”
“신선제의 제자인 파천제에게 당했다 합니다.”
“헉!”
우리엘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레미엘에 이어 미카엘이 당했다니.
심지어 미카엘은 천계의 왕이었다.
반쪽짜리 힘밖에 없다고 해도 4대 신계의 왕.
인간에게 당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천계에서 미카엘 님을 구하라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네가 말하는 걸 보면… 미카엘 가의 문장이 천상계에 떴겠군.”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연락을 해왔다 해도 천계왕의 문장이 천상계에 뜬 이상 지원을 가야겠구만.”
“저희가 미카엘 님을 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파천제가 불의 돌을 지니고 있다합니다.”
“불의 돌을 그놈이 가지고 있었어? 어쩐지. 대륙을 샅샅이 뒤져도 안 보인 게 그놈 때문인가.”
“지구로 가시겠습니까?”
“가야지. 불의 주인은 나 우리엘이다. 인간 놈에게 넘길 순 없다.”
미카엘이 파천제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우리엘은 자신만만했다.
처음 경악을 한 건 천계왕이 인간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하지만 미카엘의 힘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
자신은 빛의 돌을 먹고 예전 전성기 시절로 돌아왔다.
미카엘을 이긴 파천제와 싸운다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신의 위엄을 세울 자신감이 충분했다.
“천계에 전해. 내가 직접 움직여 미카엘 님을 구하겠다고.”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놈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확인해 주겠어.”
우리엘은 유흥거리가 생겨 싱글벙글했다.
파천제를 이겨 미카엘을 구하기만 한다면 천계의 서열이 바뀔 터.
이번 기회에 점수를 따서 서열을 재확립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미카엘을 이긴 이준이 어느 경지에 있는지를.
탈신경에 도달한 채 천계의 병력이 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