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55화
이준의 몸에서 폭발적인 살기가 튀어나왔다.
“흡!”
“억.”
말론과 길리의 눈이 부릅떠졌다.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파멸적인 기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피부에 닭살이 오르기도 했다.
말론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이상함을 감지한 그리에스가 물었다.
“너 왜 그래?”
그녀도 용기내서 한 말.
지금의 이준은 말 거는 것조차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준은 그리에스의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테구르.”
“허억! 부, 부르셨습니까요?”
테구르가 벌벌 떨었다.
이준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
녀석은 이준을 주인으로 섬기는 몬스터였다.
주인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었다.
“게이트를 강제로 열 방법은 없어?”
“그, 그게….”
테구르가 어물쩍거리자 이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테구르가 다급히 말했다.
“유, 유일한 방법은 모든 통로와 연결된 제일 큰 게이트를 강제로 여는 것입니다요.”
“우리가 넘어왔던 로에니아 황도의 게이트?”
“마, 맞습니다요. 하지만 강제로 여는 건 재고해보… 히엑!”
테구르가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이준의 살기 어린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
혼이 타들어가는 듯한 강렬함이었다.
“로에니아 황도로 가야겠어.”
“준비… 하겠습니다요.”
테구르가 스케먼을 이끌고 말파르 광산 밖으로 갔다.
이준도 움직였다.
“일이 생겨서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짤막한 인사.
말론과 드워프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인사가 그게 끝이냐는 농담도 하지 못했다.
이준이 광산 밖으로 나왔다.
스케먼이 아직도 짐을 챙기고 있자.
“짐은 버리고 전력을 다해 로에니아 황도로 뛰어.”
“아, 알겠습니다!”
테구르와 스케먼이 광산을 내려갔다.
마치 서로 경쟁을 하는 듯.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구에 일이 생긴 거야?”
한지유가 이준에게 물었다.
그가 이렇게 분노할 이유는 단 하나.
소중한 사람이 다쳤을 때나 보이는 태도였다.
“혁진이가 당했어.”
“누구한테?”
“미카엘. 천계왕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대.”
“그러면 빨리 출발하자.”
이준과 한지유가 경공을 펼쳤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그리에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신의 돌을 포기할만큼 중요하나?”
아직 회수하지 못한 원신의 돌은 네 개나 있었다.
어둠의 돌.
바람의 돌.
독의 돌.
빛의 돌.
이게 용신족의 손에 들어가면 지구와 그란투스 대륙이 위험해진다.
이준이 회수해서 지니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그런데 회수를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가겠다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에스가 날개를 펴며 이준을 따라갔다.
“이준. 잠깐 멈춰봐.”
“할 말 있으면 이대로 말해.”
세 사람은 굉장히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먼저 출발한 스케먼을 가뿐히 지나칠 정도.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원신의 돌은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포기해?”
“그래야겠지.”
“제정신이야? 용신족이나 천계가 원신의 돌을 흡수하면 그란투스 대륙뿐만 아니라 네가 사는 세상까지도 위험해.”
“알고 있어.”
이준은 말하면서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대신 목소리에서 지독한 살기가 묻어나왔다.
흠칫.
그리에스조차 가슴이 덜컥내려 앉았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살기를 지니고 있는 거야?’
강함의 최고봉인 심즉살.
마음만 먹으면 상대도 즉시 죽일 수 있다는 경지.
현재 이준의 모습만 보면 심즉살에 든 인간 같았다.
섬뜩한 건 섬뜩한 거고, 어쨌든 돌아가는 이준을 막아야했다.
“그런데도 원신의 돌을 포기할 거야? 그리고 게이트도 안 열리잖아. 헛수고하지 말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자.”
우뚝.
이준이 경공을 멈추었다.
한지유와 그리에스도 멈췄다.
“잘 생각…”
“지금 헛수고라 했어?”
화아악!
주변이 어두워졌다.
온통 회색으로 뒤덮인 공간.
그리에스의 몸이 저절로 떨렸다.
“너는 원신의 돌이 최우선이겠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들이 1순위다. 다시 한번 그따위 말을 지껄였다간.”
“…!”
“죽여버리겠어.”
그리에스는 무저갱 속의 어둠.
그곳에 숨겨진 포악하고 잔인한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으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 또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턱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만… 하자. 이준.”
한지유가 말리자 회색으로 뒤덮였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준이 몸을 돌려 다시 경공을 펼쳤다.
한지유가 그리에스를 위로했다.
“네가 이해해. 이준 쟤, 소중한 사람이 위험하면 한번씩 눈이 돌아가.”
그녀의 위로는 그리에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에스는 조금 전에 느꼈던 공포를 곱씹고 있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이준은… 원신의 돌을 흡수하지 않고도 천계를 상대할 수 있어!’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인간.
신에 필적하거나.
신도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이준이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 전에도 알았던 내용.
이준이 최상위급 신을 상대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겼건만.
아니었다.
무리가 아니라 도리어 죽일 수도 있었다.
* * *
로에니아 황도.
이준은 그란투스 대륙으로 넘어왔던 게이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헤엑… 헤엑… 죄, 죄송합니다요. 최선을 다해 달려왔는데 헤엑….”
테구르의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인의 감정은 분노로 가득했다.
최대한 주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집중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고 뒤로 빠져 있어.”
“예? 예예.”
이준은 닫힌 게이트 앞에 서서 사신기를 운용했다.
‘결을 찾아야 해. 그래야지만 금역의 문을 열 수 있어.’
그의 눈에는 수천, 수만의 선이 보였다.
생명선과 죽음의 선.
크게는 이 두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4대 성지의 금역과 연관된 생명선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지만 문을 강제로 열 수 있었다.
이준의 마안이 결을 찾고 있는 그때.
‘찾았다.’
익숙한 선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실선보다 서너 배의 굵기로 되어있는 결이었다.
그는 사신기로 손을 보호한 채 선을 잡았다.
“음.”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신기로 손을 보호했으나.
타들어갈 듯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놀고 있는 왼손도 뻗어 결을 잡으니 고통이 두 배로 몰려왔다.
손을 타고 부정적인 기운이 접근했다.
‘어둠. 가브리엘의 신성력이야.’
게이트를 열지 못하게 방해하는 원인이었다.
가브리엘 본인의 힘이 아닌, 어둠의 돌을 이용한 힘.
녀석은 이미 원신의 힘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날 너무 얕봤어.’
이준이 사신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어둠, 마기는 그에게 덧없이 좋은 기운이었다.
마기의 장점이자 단점은 보다 강한 힘에 굴복하는 것.
이 사신기는 마기의 정점에 있었다.
신의 기운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가브리엘의 신성력이라도 사신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사신기는 천극자로부터 내려온 무공.
가브리엘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이준이 금역의 결을 양쪽으로 쭉 당기자.
포탈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큭.”
이준의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늘어진 결이 팽팽해졌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금역의 문이 다시 닫힐 것같았다.
“…지유야. 안으로 들어가.”
한지유가 고개를 끄덕이곤 금역으로 들어갔다.
다음 차례는 스케먼이었다.
“주인님 힘드실 테니 빨리 금역으로 귀환해!”
테구르의 지휘를 따라 그 많던 스케먼이 금역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테구르가 들어가자 남은 사람은 두 명.
이준과 그리에스뿐이었다.
“너는 어쩔… 거냐.”
“…”
“안 들어가면 나라도 들어가지.”
“아니야 나도 가!”
그리에스가 게이트로 들어가자 이준이 잡고 있던 결을 놓았다.
사신기로 붙들고 있어 문이 빠르게 닫히지는 않았다.
그가 금역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내 섰다.
그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비친 곳은 무너진 건물뿐.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을 지체했다고 생각했는지 시선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결을 잡고 있던 사신기가 소멸 되자.
게이트가 바로 닫혔다.
이준이 시선을 던졌던 자리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기척을 읽었어? 그러고도 날 무시하고 갔다는 말인가?”
가브리엘이었다.
자신을 정확히 찾은 것도 모자라 무시했다.
신을 본 인간이 할 행동인가.
신앙이나 추앙이 아니더라도 신을 보면 당연히 자연스레 몸이 숙여져야 했다.
한데 이준은 무시했다.
마치 너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였다.
“화가 치밀지만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녀석은 이미 신에게 필적해. 제2의 파천혈신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아.”
이준을 직접 본 가브리엘의 평가였다.
자신을 쳐다볼 땐 순간 먼저 공격할뻔 했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였다.
“어쩌면… 미카엘이 당할지도 모르겠어.”
가브리엘의 얼굴에 미소가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 * *
“너는 여기 있어.”
이준은 곧장 학교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나도 갈게.”
“너랑 말싸움할 시간 없어.”
한지유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준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괜히 싸움에 휘말리면 귀찮아진다.
한지유는 이준에게 약점.
소중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전장에 없는 게 편했다.
“나는 괜찮지?”
대신 그리에스가 따라나서려 하자.
“마음대로 해.”
그녀는 말리지 않았다.
한편으로 섭섭했다.
‘치. 난 소중하지 않나 보네.’
이준이 끝까지 말렸다면 이건 이것대로 좋았을 터였다.
그가 금역 밖으로 나갔다.
그리에스도 뒤따랐다.
학교 뒤편 야산.
건물이 훤히 다 보이는 장소였다.
한데 전과는 풍경이 달랐다.
폐허로 변해버린 학교.
불이 타고 곳곳에선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이 땅을 박찼다.
그리에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로 내려갔다.
“죽… 여.”
미카엘의 손에 박정연의 목이 붙잡혀 있었다.
흑염마조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날개가 꺾인 상태였다.
삼두는 세 개의 머리 중 하나가 뜯겨 있었다.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굉장히 큰 상처를 입었다.
일 사자는 어떤가.
다친 몸으로 끈질기게 공격한 나머지.
퍽-
미카엘이 던진 성검이 복부를 관통했다.
“커헉!”
검을 빼려 안간힘을 썼다.
하나 성검은 빠지지 않고 되려 힘을 빼가고 있었다.
“이제야 방해꾼이 없어.”
미카엘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드디어 반쪽 남은 뇌령.
번개의 힘을 흡수할 수 있게 됐다.
이것만 있으면 전지전능한 힘을 다시 찾게 될 터다.
그가 박정연의 가슴으로 손을 뻗으려할 때였다.
“…!?”
미카엘에게 지독할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쏟아졌다.
신경을 거슬리는 정도가 아닌, 위험한 느낌이었다.
마치 파천혈신을 눈앞에 뒀을 때의 감정이랄까.
그는 할일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저벅저벅.
그의 귀로 걸음소리가 들렸다.
힘이 가득 담겨 있는 보폭.
미카엘의 신성력을 자극했다.
“그란투스 대륙에 있어야 할 네가 여긴 어떻게?”
“…그 여자 놓아주는 게 좋을 거다.”
“인간인 네 부탁을 왜 들어줘야 하지?”
“내가 지금 부탁을 하는 것으로 보이나.”
화아악-
이준이 눈을 번쩍임과 동시에 기세가 폭발했다.
사신기가 주위를 뒤덮었다.
그리에스에게 보였던 분노가 미카엘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저벅.
이준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미카엘을 압박하는 기운이 더욱 거세졌다.
“꼴에 신선제의 제자라 이건가?”
잠시나마 움찔했던 그가 부끄러움을 털어내기 위해 이준을 도발했다.
“널 죽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니까 그 입 닥치고 있어.”
이준이 미카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미카엘은 저도 모르게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추태에 또 다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다 분노가 일었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생각에 악수를 뒀다.
“거기까지. 한 발자국만 더 온다면 이 여자의 숨통을 끊어주마.”
신의 저급한 행동.
양아치나 하는 걸 천계왕이 하고 있었다.
“해봐. 대신 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절망을 느끼게 될 거야.”
이준의 말이 끝나자.
푸확-
미카엘의 곁에 있던 빛의 군단이 일제히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그 숫자만 족히 이 백 명은 넘었다.
오직 미카엘의 눈에만 찰나의 순간에 보였던 공격.
‘마, 말도 안 된다! 저건 전대 신선제가 사, 사용했던 무공이야!’
전대 신선제와 함께 자취를 감췄던 무공이 인계에 재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