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50화
이준이 4대 성지의 금역을 열었다.
게이트로 들어가려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포탈이 닫혔다.
“어떻게 된 거야?”
이준이 당황해했다.
금역의 문이 저절로 닫혔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닫은 듯했다.
“테구르, 당장 원인을 찾아.”
이준의 강렬한 눈빛에 테구르가 움찔했다.
“아, 알겠습니다요.”
테구르가 다시 금역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돋보기를 꺼내보려하는데 문이 금세 닫혔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1초만에 포탈이 사라졌다.
“이, 이러면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는데.”
테구르가 고개를 돌려 이준의 안색을 살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
안 그래도 냉막한 인상인데 지금은 그냥 얼음 자체였다.
“안 돼?”
“그,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요.”
테구르가 어물쩡거렸다.
어떻게든 다시 금역의 문을 소환했지만 똑같이 1초만에 사라졌다.
“금역의 문이 사라지기 전에 들어가야겠어.”
“안 됩니다요!”
이준의 말에 테구르가 말렸다.
“왜?”
“그러다가 다른 공간으로 전이될 수 있습니다요. 운이 나쁘면 통로에서 길을 잃어 영영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요.”
“X발.”
이준이 욕을 내뱉었다.
한시가 급하다.
박혁진이 위험에 처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냉정해지지 못했다.
“준아. 너 답지 않아.”
오히려 박정연이 이준을 진정시켰다.
‘그래 나답게 행동하자.’
이준이 눈을 감고 사신기를 돌렸다.
혈맥을 타고 거침없이 달리는 내공.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금역이 열리는 걸 방해한 기운부터 찾아야 해.’
이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 내리깔린 수상한 기운.
끈적하고 어두었다.
기운을 자세하게 느끼기 위해 말파르 광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준이 눈을 감았다.
온 신경을 기감에 집중했다.
‘드래곤은 아니야. 그렇다면 천계?’
레미엘은 마력과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계인의 기운을 느껴봤기에 그와 비슷한 기운이 있으면 금방 찾는게 가능했다.
하지만.
‘천계의 힘과 비슷하면서도 달라.’
다른 기운이었다.
금역의 문을 열지 못하게 방해한 힘은 마치 레미엘이 사용했던 천벌과 같았다.
‘사부님과 연락이 되면 좋았을텐데.’
무극자 사부는 모르는 게 없었다.
이 기운 또한 바로 알아차렸을 터.
너무 아쉬웠다.
[고민이 있어보이구나.]
마선 주경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극자 사부가 아니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 * *
신선계 신선경.
요즘 설극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괜히 신선제에 앉았어. 저것들을 내 손으로 전부 죽이고 지옥에 갔어야 했는데.”
그는 신선경의 호수를 통해 인계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쉽사리 못 움직였다.
“어르신 결제 서류예요.”
“뭐가 이리 많느냐.”
“그동안 밀린 일이에요. 인계를 본다고 일을 전부 미루셨잖아요.”
뇌문의 여신선 연아린이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가져왔다.
아직도 한트럭이나 남았다.
“네가 대신 결제하거라.”
“불가합니다.”
“신선제의 직인이 찍힌 인장을 주겠다.”
“신선제의 인장은 제가 함부로 만질 수 없어요.”
“뭐가 그리 걸리는 게 많아.”
“신계 왕의 자리란 게 원래부터 무겁습니다.”
“내 이것들을 할 시간이 없다. 준이의 친구가 위험에 처했어. 이러다 혁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 제자가 슬퍼할 것이다.”
설극이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연아린의 말에 그대로 멈춰섰다.
“마선께서 어르신을 잘 감시하라고 했어요.”
“경아가?”
“네. 경거망동하지 말라셔요.”
“크흠. 준이의 일이라면 예외로 쳐줄 것이다.”
“이준의 일이라면 더욱더 어르신을 말리라고 하셨습니다.”
설극이 자리에 앉았다.
체념을 한 것이다.
마선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는 게 그였다.
애처가가 따로 없었다.
“근데 경아는 어디 갔지?”
“잠깐 들리실 곳이.”
연아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경아가 나타났다.
“사고 치지 않고 있었네요.”
“다녀오셨어요, 마선 어르신.”
“오냐. 덕분에 잘 다녀왔다.”
신선경에 마선이 모습을 보이자 신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인사했다.
“마선을 뵙습니다.”
모두 최상위 신선들.
무당이나 소림, 화산의 어른이었다.
그들이 주경아를 예로 맞이했다.
그녀가 인사를 받아줄때까지 앉지 않은 신선들.
“하던 일 마저하세요.”
“예 마선.”
주경아가 입을 열자 그제서야 서류더미에 파묻혀 일했다.
설극보다 그녀가 더 신선제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다듬었다.
“큼큼. 경아 어디를 다녀왔어?”
“지옥계에 갔다왔어.”
“지옥계는 무슨 일로?”
“제 무공을 넘겨줄 아이를 찾으면 계승을 시키려 한다고 말하고 왔어요.”
“그 양반이 뭐래?”
“신중히 생각하라고 하더군요.”
주경아는 신선계의 소속이지만 지옥계에 속하기도 했다.
설극이 왕의 권한으로 주경아의 죄를 사하긴 했으나.
그녀는 구천옥에 억겁의 세월동안 있었다.
언제 다시 광기가 터질지 모르는 상태.
주경아가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고 해도 구천옥의 광기는 지독했다.
염라대왕이 괜히 구천옥에 죄인을 집어넣어 서로 죽고 죽이게 했을까.
또한 마왕이 됐던 전적도 있어서 감시 대상.
이때문에 그녀가 무언갈 하려면 염라대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천마신공이 의외로 위험한 구석이 있긴하지.”
무림의 무공 중 가장 강한 게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무공 자체가 패도적이라 잘못 익히면 살성이 탄생한다.
천마신공은 지극히 순수한 마기만을 모은다.
불순물이 섞이는 순간 뇌가 마성에 휩싸이게 되는 무공.
천마신공을 각성자에게 계승시키는 건 위험했다.
“누구에게 계승시킬지는 정했어?”
“후보는 정해놨어요.”
“누구?”
설극이 눈을 반짝였다.
이준의 짝 중 주경아의 원픽은 누굴까.
굉장히 궁금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연아린도 귀를 쫑긋 세웠다.
‘언니면 좋겠는데.’
박정연이란 이름으로 환생한 연아린의 언니.
속으로 응원을 했다.
언니가 천마신공까지 배운다면 전무후무한 여제가 탄생하리라 믿었다.
주경아가 입을 열려는 그때.
그녀의 귀로 이준의 답답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에게 무슨 일 생겼어요?”
“아참. 준이 말고 혁진이가 위험에 빠졌어.”
“준이를 가장 많이 챙겨준 아이 말이죠?”
“어. 천계가 신계의 규칙을 어기고 인계에 강림했는데 혁진이의 뇌령석을 뺏으려 해.”
“이런.”
주경아가 신선경의 호수를 보았다.
호수 거울에는 박혁진과 천계에서 강림한 미카엘이 보였다.
“저것 때문에 준이가 답답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저것들을 모두 쓸어버릴 생각이야. 천계에서 먼저 강림했으니 우리가 나서도 되잖아?”
“원래라면 그렇죠. 하지만 가가는 왕의 권한도 없어요. 그동안 신계의 규칙을 많이 어기기도 했고요. 저도 마찬가지죠.”
“끄응.”
설극이 대꾸를 하지 못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천극자 사부가 소멸하면서 말했다.
더는 사고치지 말라고.
이젠 너를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자중하라고.
“저라도 강림하고 싶지만 염라대왕이 경고했어요. 더는 눈감아줄 수 없대요.”
“빌어먹을 영감탱이.”
“저희가 자초한 일이에요. 가가.”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보고만 있는 건 내 성격이랑 안 맞아.”
“인계로 내려가지 못하면 여기에서라도 도와줘야죠.”
“준이는 그란투스 대륙에 있어서 그런지 심어가 불안정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야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요즘 통 들리지 않아.”
“제가 들려요.”
주경아가 천마신공을 운용했다.
정신을 집중해 이준의 목소리를 찾았다.
[사부님과 연락이 되면 좋았을텐데.]
이준의 음성이 들렸다.
주경아는 곧바로 심어를 사용했다.
“고민이 있어보이는구나.”
[사모님!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반가울수가.]
이준의 목소리가 희망이 깃들었다.
“답답한 마음을 내게 말해보렴.”
주경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태어나지 못했던 아들과의 대화.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금역을 열면 문이 바로 닫혀요. 주변에 느껴지는 이 진득한 기운 때문인 듯한데….]
주경아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설극이 호수에 손을 담구며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호수의 거울이 두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박혁진이 있는 지구.
하나는 이준이 있는 말파르 광산 일대였다.
그녀가 이준의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신성력이 깃든 신앙심이구나.”
[신앙심이요?]
“이렇게 넓게 퍼져 있는 걸 보면 깊은 신앙심이야. 신앙심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찾아보고 원인을 없애면 게이트를 열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한번 찾아볼게요.]
이준이 빠르게 움직였다.
아들이 연락을 끊어도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에 주경아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 * *
말파르 광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쪽.
홀롬 마을은 저녁임에도 불이 가득 켜져 있었다.
“신이시어 저를 구원해주소서.”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멋들어진 동상 앞에서 마을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닌 마을 사람 전부.
광장이 가득찼다.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가브리엘께 비나이다.”
“어둠에서 광명을.”
“광명의 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홀롬 마을 뿐만이 아니었다.
인근의 라드볼 마을과 도니미스 영지 모두가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풀썩.
기도하던 한 여자가 쓰러졌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했다.
“저희를 믿어주시는….”
“숭고한 희생으로 어리석은 신도를….”
더욱 크게 기도문을 외웠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주변으로 퍼지는 어둠.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이나 끈적한 기운이었다.
인간들의 몸에서 나온 기운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주변 일대로 퍼졌고 하나는 어디론가를 향했다.
사방에서 흐르는 검은 아지랑이가 한 곳으로 몰렸다.
“아직 멀었다. 나에 대한 믿음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로에니아 제국의 황도.
대신전에서 가브리엘이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종이 못나여 신께 불충하였습니다.”
피게로 영주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가브리엘의 사도가 되어 있었다.
교단을 만들어 포교.
신을 모시면 균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설파했다.
처음에는 피게로 영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인생이 팍팍하면 언제나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기 마련.
피게로 영주를 사이비 교주라 생각했다.
한데 사람들의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이비 교주라 생각한 그가 균열을 정화한 것.
신의 대리인은 균열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니.
그때부터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균열에 의해 죽을바에는 신을 믿어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이는 게 나았으니까.
“포교의 속도를 더욱 높여라. 내 이름이 대륙 전체에 퍼질 수 있게 해라.”
“신의 계시를 속히 이행하겠습니다.”
피게로 영주가 대신전에서 사라졌다.
그의 자리를 다른 이가 대신했다.
남자 또한 가브리엘의 사도였다.
피게로가 포교를 맡았다면 남자는 원신의 돌을 찾는 일을 맡았다.
“고하거라.”
“바람의 돌을 찾았습니다.”
“어느 지역이지?”
“포르말리 왕국에 있습니다.”
남자의 대답에 가브리엘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라구엘. 들었나?”
“들었습니다.”
“가서 바람의 돌을 취해.”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는데.”
“신도를 이용하면 쉽다.”
“그래도 너무 쉬운 것 아닙니까? 누가 가지라고 던져 주는 느낌인데.”
라구엘이 의심을 했다.
하나 가브리엘은 상관없었다.
누가 의도했든 안 했든 힘만 얻으면 됐다.
원신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으니까.
“우린 힘만 취하면 돼.”
“맞는 말입니다.”
“너도 신도를 모아라. 우리의 힘은 인간의 믿음에서 나온다.”
“그럴 생각입니다.”
“빨리 움직여.”
라구엘이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사라졌다.
가브리엘이 남자를 향해 말했다.
“석상은 어떻게 되가지?”
“석공을 불러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신전과 석상을 최대한 많이 만들거라.”
“신의 계시를 받듭니다.”
남자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전을 나갔다.
혼자 남은 가브리엘.
그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힘을 보며 흐뭇해했다.
“지금은 내가 미카엘보다 강해.”
천계왕보다 강하나 아직 만족스럽지 않았다.
신도를 더 늘린다면 지금보다 강해질 터.
그때가 되면 그동안 천계가 받았던 수모를 돌려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