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49화
‘내 검을 맨손으로!?’
베람마의 눈이 커졌다.
제3의 형태로 변했다.
검 또한 마찬가지.
섬뜩하리만치 예기가 날카로웠다.
맨손으로 잡았다간 손이 날아갈 정도였다.
한데 남자는 마력이 가득 담긴 검을 맨손으로 잡고 있었다.
상당히 놀라고 있을 때.
파직-
뇌기가 번쩍였다.
베람마는 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자 몸을 뒤로 꺾었다.
쾅!
검기가 얼굴을 스치며 뒷공간을 파괴했다.
베람마가 가슴을 쓸어냈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허리를 세우려는 찰나.
남자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게 아닌가.
“헉!”
베람마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도 모자라 날개를 펴서 하늘로 피했다.
“무슨!?”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검이 방향을 꺾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비행을 하는 듯했다.
공중에서 몸을 여러 번 꺾었으나.
검 또한 무서운 속도로 따라왔다.
“이익!”
베람마가 이를 악물었다.
‘저놈이 검을 조종하고 있다.’
인간의 기술을 처음 접하지만 금세 파악했다.
검에 강력한 기운이 담겨있지만 시전자와 떨어져 있는 상태.
검과 시전자의 이어진 기운만 끊으면 문제가 없었다.
하늘을 날던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곤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검에 충격을 가한 후 시전자와 이어진 기운을 끊으려 했다.
하나 그 방법은 패착.
이기어검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모를 때의 생각이었다.
베람마의 검과 천월이 부딪혔다.
충격음이 들리는 게 정상.
끼이이익!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소리에 그는 다음 동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검을 고쳐잡았다.
회전하는 천월을 막아야 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베람마의 팔이 부풀어 올랐다.
손아귀에 얼마가 강한 힘을 줬는지.
힘줄이 붉은 비늘을 타고 뚝뚝 솟아났다.
이게 끝이라면 다행.
박혁진은 힘을 전부 보이지 않았다.
“절삭.”
그가 짧게 말하면서 손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 순간.
맹렬히 회전하던 천월이 푸른 뇌전을 뿜었다.
그리고 빛이 되어 사라졌다.
서걱-
“컥!”
베람마의 가슴이 일자로 잘렸다.
단단한 비늘로 덮여 있었지만 상당히 깊은 상처였다.
서걱서걱!
베람마의 주위에 푸른 선이 그려졌다.
그것과 함께 피부가 무수히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주위를 가득 푸른 선.
사라졌던 천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마법이… 냐….”
“네게 가르쳐줄 만큼 내 무공은 가볍지 않아.”
“그런…가.”
베람마의 시야는 온통 붉었다.
그가 잡은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수 조각으로 잘린 검.
그의 몸 또한 검과 같은 신세였다.
후두둑.
처참한 베람마의 시신.
아니, 시신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조각나 있었다.
우두머리의 죽음에 적룡족이 경악했다.
“베람마 님이 죽으셨어!?”
“헛것을 봤을 리가 없는데.”
“고작 인간에게?”
적룡족이 동요했다.
폴리모프의 제1 형태도 아니고 드래곤 형태도 아니었다.
제3의 형태.
가장 강한 상태에서 싸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우두머리를 잃으니 적룡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편.
베람마를 죽인 박혁진이 천월을 거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이것 좀 놔주세요.”
이지안의 시선이 아래로 갔다.
박혁진이 어찌나 그녀의 허리를 꽉 안고 있었는지.
그녀가 힘을 써서 벗어나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박혁진은 자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우와씨! 미안.”
평소 여자들에게 친근히 다가가 말을 잘하는 그였다.
행동도 마찬가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하나 이지안의 앞에만 서면 뚝딱거린다.
마치 모태솔로였던 것처럼.
“고마워요.”
“아, 아니야. 몸에 상처가 심해. 상처약부터 먹어.”
박혁진은 품에서 갖은 치료제를 꺼냈다.
화상을 다스리는 한령초부터 뱀파이어 로드의 피로 만든 포션까지.
각종 약이 한가득했다.
“풉!”
그의 모습에 이지안이 작게 웃었다.
“뭐가 웃겨?”
“그냥요.”
어리바리한 모습.
누가 박혁진을 뇌제라고 말하겠나.
자신의 앞에서만 이런다.
“한령초만 주세요. 다른 건 할아버지가 만든 약으로 대체하면 돼요.”
“그럴래?”
박혁진은 이지안이 약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상처약을 복용한 후 백설을 들었다.
“왜… 뭐 하려고?”
“전부 정리해야죠.”
“아니야 가만히 있어. 내가 할게.”
그는 오직 이지안만을 생각했다.
사형준과 김봉팔도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그녀만 눈에 들어왔다.
박혁진의 신형이 다시 움직였다.
* * *
[늦은 줄 알았더니 저놈이 와 있었군.]
[삼두는 왜 늦었어?]
[지옥에 일이 있었다. 그러는 넌 지금 나타난 이유가 뭐냐.]
[무기력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주인님 보고 싶어.]
파랑이는 바닥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본분 망각이다.]
[힘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지안이가 잘못됐다면 이준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주인이 없어서 무기력한걸.]
[또 이러면 곤란해.]
[힝.]
파랑이가 시무룩했다.
게이트 안에선 괜찮으나.
주인과 떨어지니 밖에선 힘이 현저하게 줄어든 건 사실이다.
더불어 의욕까지 밑바닥이니 도움을 주지 못했다.
[너까지 말썽이면 곤란하다. 천계가 움직였어.]
[왜?]
[원신의 돌이란 힘을 얻으려 하는 모양이다.]
[그게 뭐야?]
[인계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하더군.]
[천계가 그 힘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데?]
[이준이 위험해지겠지.]
[주인님이!?]
웅크리고 있던 파랑이가 귀를 쫑긋했다.
이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반응을 한 것이다.
[이준은 이미 한차례 천계와 부딪혔다. 이를 앙갚음하려 할 거야.]
[그럼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한가로이 있을 게 아니다. 가서 드래곤 한 마리라도 더 먹고 힘을 키워라.]
[알았어! 갔다 올게.]
파랑이가 일어나서 앞으로 달렸다.
주인이라면 환장하는 녀석.
충성도가 참 높았다.
삼두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 박혁진이 닿았다.
[빨리 이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삼두가 지옥에 갔다 온 이유는 천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염라대왕의 말에 따르면 천계가 원신의 돌을 얻기 위해 움직였다 한다.
박혁진에게도 원신의 힘이 반쪽이나 있었다.
그것도 뇌기.
청룡의 정수인 뇌령석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미카엘이 빛의 돌을 찾지 못했다면 이 번개의 힘이라도 흡수하려 할 터.
박혁진이 위험했다.
그나마 이준의 옆이라면 안심하겠지만 지금은 떨어져 있었다.
과연 미카엘이 가만히 있을까.
우려돼서 지옥계에서 급히 돌아온 거다.
[천계가 움직인 것보다 빠르게 원신의 돌을 흡수하고 있어. 이미 어둠의 돌은 가브리엘에게 넘어갔고 독의 돌 또한 라파엘이 얻었다. 누군가가 천계에 가져다가 바치는 느낌이야.]
너무도 쉽게 원신의 힘을 얻고 있었다.
염라대왕이 급히 자신을 부른 것도 이 때문.
누가 천계를 도와주고 있는 걸까.
[이 사실을 이준에게도 알려줘야겠어.]
이준이라면 금방 범인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에게는 모투술이란 특별한 힘이 있었으니까.
자신도 죽은 자의 기억을 읽을 수 있으나.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천계와 마계가 관리한 곳은 손을 댈 수 없었다.
영역침범.
자칫하다간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인간인 이준이 알아내 줘야 했다.
삼두가 박혁진을 보고 있는데.
[빌어먹을!]
박혁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동시에 하늘에서 성스러운 빛줄기가 내렸다.
안 좋은 예감.
상대가 누구인지 예상이 갔다.
이리 성스러운 빛을 보이는 건 단 한 명.
미카엘밖에 없었으니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눈을 감아야만 했다.
멍하니 빛을 보고 있다가는 실명될 수도 있었다.
“반쪽짜리 힘이지만 다른 원신의 돌보다 훨씬 강력해.”
[미카엘!]
“지옥의 2인자께서 인계에 계셨던가.”
[천계왕이 어째서 인계에 강림한 것이냐.]
“허허. 지옥계는 여전히 싸가지 없는 인사로 가득하구려. 본 천계왕은 그대보다 서열이 높은데 반말이라니.”
[괜히 말 돌리지 마!]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네.”
[신계의 규칙을 어길 셈이냐.]
“규칙을 어긴 건 신선계와 지옥계로 알고 있는데?”
[윽.]
삼두가 반박하지 못했다.
지옥계와 신선계는 서로 눈을 감아줘서 그렇지.
율법을 꽤 많이 어겼다.
그렇다고 전대 신선제가 모든 걸 껴안고 소멸 됐다고 말하자니.
지옥계와 신선계로선 손해였다.
전대 신선제는 신계를 통틀어 가장 강했다.
적어도 아직까진 전대 신선제의 이름만 꺼내도 모든 신계가 벌벌 떨었다.
그만큼 억제력이 있었으나.
쉽게 꺼내서 사용할 이름이 아니었다.
“그대들도 규칙을 어겼었으니 이번에는 눈을 감아주게.”
[안 돼.]
“이러면 서로에게 좋지 않아.”
[다른 녀석은 몰라도 네가 노리는 아이는 안 돼.]
“이 인간이 그렇게 중요한가?”
미카엘이 박혁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삼두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계가 무너지는 꼴 보기 싫으면 그 아이는 포기해.]
* * *
말파르 광산 무기고 내부.
이준은 성검을 요리조리 훑어보다가 이내 기운을 뽑아냈다.
“흠.”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성검 안에 깃든 철의 힘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네.”
“당신이 얻고 싶은 힘은 강제로 얻는 게 불가능하오.”
“그럼요?”
“내 도움이 필요할게요.”
“곤란한데.”
이준이 난감해하고 있는데 무기고로 드워프들이 왔다.
“말론 무사해서 다행이야.”
“저년이 안 괴롭혔어?”
“낯짝을 도끼로 찍어버리지 그래.”
“참. 우린 이 녀석들이 구해줬어.”
“내가 도움을 청했어. 잘했지?”
드워프는 여전히 말이 많고 시끄러웠다.
동족이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자 말론이 이마를 짚었다.
“도와줘서 고맙소.”
“도움을 받아들이는 건가요?”
“이미 우릴 구해주지 않았소? 어쩔 수 없지.”
말론이 항복을 선언했다.
이준 일행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근데 저 녀석은 왜 저러고 있어?”
“유령이라도 봤나?”
“괴질이라도 걸렸어?”
“왜 저런다냐.”
“아, 그보다 말론 우리가 아주 기막힌 생각을 해냈어. 들어볼래?”
“안 들어.”
말론이 고개를 젓자 드워프들이 팔짝 뛰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이러기야?”
“안 들으면 후회해.”
“우리들 이야기 안 들어주면 다신 대화 안 한다?”
아이들 같은 순수함을 지닌 드워프들이었다.
말론은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아직 안 끝났어, 조용해!”
그가 버럭 소리쳤다.
드워프들은 그제야 소리를 죽였다.
“마지막까지 수고해주겠소? 그러면 내가 성검에 있는 힘을 뽑아주겠소.”
“물론이죠.”
이준이 샤샤드에게 손을 뻗었다.
몸에서 흘러나온 사신기가 샤샤드를 감싸더니.
우두둑!
목과 몸을 비정상적으로 꺾어버렸다.
너무나 쉽게 죽였다.
말론을 포함한 드워프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토록 강한 드래곤을 손도 안 대고 죽인 것.
공포스러운 힘이었다.
“딸꾹!”
풀무질 담당인 드워프가 딸꾹질했다.
너무 놀란 거다.
그토록 시끄럽던 드워프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드워프가 겁을 먹거나 말거나.
이준은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특성 무공천재(EX)가 발동했습니다.]
[모투술(S)을 사용합니다.]
[상단전의 힘이 모투술(S)을 제어합니다.]
[지나갔던 과거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샤샤드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적룡왕.
녀석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적룡왕이 영웅왕의 행세를 한 건가? 아니면 적룡왕이 영웅왕이었던 거야?’
명확한 건 없지만 딱 하나.
현재 적룡왕은 영웅왕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무룡왕이란 드래곤이 오바디아 반스, 신성왕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았으….’
“혁진이!”
이준이 대뜸 박혁진의 이름을 부르자 박정연이 되물었다.
“갑자기 혁진이는 왜?”
“혁진이가 위험해.”
샤샤드의 기억 속에서 적룡왕은 이렇게 말했다.
-원신의 돌을 구해 천계에 바쳐라. 천계를 이용할 것이다.
천계도 원신의 돌을 노린다면 분명 박혁진이 가진 번개의 힘을 가지려 할 터.
그런 이유 때문에 그란투스 대륙에 같이 왔건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젠장. 당장 돌아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