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45화.
“…괜찮으세요?”
“당연…하지. 내 특성이 뭐야. 무적 아니겠어? 슬픈 눈으로 보지 마.”
김봉팔이 피를 게워낸 후 소매로 입을 닦았다.
전신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아픔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파하면 이지안이 미안해할 게 뻔했으니까.
그는 이지안의 표정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했다.
“그보다 어때? 사 단주가 철룡을 구한 것보다 멋있었지?”
그가 능글맞게 웃었다.
하나 이지안은 뚫어지게 김봉팔을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농담하던 그가 슬슬 이지안의 눈치를 봤다.
“재미없었지? 하, 하하.”
김봉팔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지안의 눈동자가 굉장히 차가웠다.
안 그래도 쌀쌀맞은 녀석.
분위기를 환기시키자고 한 농담인데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는 시선.
뒤통수가 따끔했다.
이지안의 시야에서 사라져야겠단 생각에.
“이놈들! 무극단의 부단주가 나가신다!”
저 멀리 있는 적을 향해 굳이 쇄도했다.
이젠 불굴의 의지 특성도 쿨타임이었으니.
이지안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
적을 한 명이라도 쓰러트리는 게 그녀를 돕는 일이었다.
한편.
베람마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전력을 당한 일격을 막아? 그것도 몸으로?’
그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강철도 두부처럼 가르는 검격.
하늘에서 내리쬐는 달빛마저도 가르지 않았나.
한낱 인간의 몸을 가르지 못할 거라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력이 딸려 전력을 다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가진 힘을 전부 발휘해 검을 휘둘렀는데 고작 상처를 내는 게 다였다.
‘눈앞에 있는 년보다 강한 놈이 숨어 있었구나!’
베람마는 큰 착각에 빠졌다.
이지안보다 강한 인간이 김봉팔이라고 생각했다.
염월마력참을 맞고도 버젓이 살아서 움직인 인간.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목까지 속였다.
‘기운을 감추고 있었어. 위험하다.’
저 봐라.
자신의 수하를 상대로도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시야에 안 보이는 순간에도 연기를 했다.
굉장히 음흉한 인간.
조심하는 게 좋았다.
‘내 이목까지 속인 걸 보면 곳곳에 강한 놈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베람마가 경계심을 보였다.
행동하는데 더욱 신중해지기도 했다.
그가 검을 세우며 이지안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지안은 백설을 쥔 채 가만히 있었다.
“타핫!”
베람마가 기회를 포착했는지.
이지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깡!
한 번의 격돌.
하지만 베람마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다시 이지안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짓이지?’
베람마가 다시 부딪혀 왔다.
까강깡!
세 번의 충돌음이 들린 후.
전과 같이 퇴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잔뜩 경계하고 있어….’
이지안은 베람마의 경계심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빠르게 찾았다.
그의 눈동자가 자꾸 어딘가로 향했다.
곁눈질의 방향을 보니 김봉팔이 보였다.
‘봉팔 아저씨를? 설마 아까 공격을 막아서 그런 건가?’
이지안도 흠칫한 검격이었다.
김봉팔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목숨.
그 정도로 강력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방금 사용했던 힘이 전력이었다면 봉팔 아저씨를 오해할 만해.’
무려 무적 특성이다.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절대 방어 특성의 소유자.
과장을 보탠다면 신의 공격도 막을 수 있었다.
김봉팔의 특성을 아는 자들만이 가지는 생각.
모르는 자들이라면 김봉팔이 괴물이라고 오해할 것이다.
‘기회야.’
상대의 심리가 많이 위축된 상태.
몰아붙일 기회였다.
이지안이 베람마에게 쇄도했다.
쾅!
강력한 충돌음.
둘에게서 나온 기파가 주위를 휩쓸 정도였다.
이지안의 백설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찌르기이나.
하나, 하나가 모두 급소만을 노렸다.
뿐인가.
사신의 기운이 백설을 통해서 나왔다.
바람, 불, 얼음, 대지.
그녀는 점점 네 가지 기운에 녹아들고 있었다.
* * *
쿵!
4대 성지의 금역이 작게 흔들렸다.
이내 진동이 멈췄으나.
금역에 있는 몬스터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경계했다.
요정의 꽃밭에 있던 로티틸이 페어리를 불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세요.”
“네!”
페어리가 날개를 펴서 하늘로 날아갔다.
잠시 후.
페어리는 샥쿠와 함께 요정의 꽃밭으로 왔다.
“샥쿠 님.”
로티틸이 날개를 접었다.
푸른 등불 꽃을 키우고 있던 그가 샥쿠에게 인사를 했다.
“밖에 일이 생긴 듯싶다.”
“주인님께서 위험하신가요?”
“주인님이 사는 세계가 위험해. 드래곤이 나타났어.”
“드, 드래곤이요?”
드래곤은 몬스터 중에 최상위 포식자.
1티어라 볼 수 있었다.
“정찰병에 의하면 그래.”
“큰일… 헉! 주인님 동생분은요?”
“싸우고 계신 듯하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도와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난 게이트를 나가려 한다. 로티틸 넌 어쩔 테냐.”
“당연히 저도 나갈 거예요.”
“좋다. 수하들을 이끌고 가자. 전투 준비를 해라.”
샤크로아 종족은 이미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다.
“펠리아스 님 들으셨죠? 전쟁이에요.”
“테구르 님이 만들어주신 장비로 무장하고 오겠습니다.”
페어리가 테구르의 창고로 이동했다.
불의 신봉자가 만든 아티팩트로 완전무장한 몬스터들.
준비 태세를 금세 마쳤다.
샤크로아와 페어리가 게이트를 나가려 하자.
웨어파트를 포함한 금역의 모든 몬스터가 뒤늦게 나타났다.
“늦었습니다.”
파들락이 건틀렛을 끼며 말했다.
“너희들도 나갈 테냐.”
샥쿠의 물음에 모든 몬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인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 합니다.”
“금역을 지켜야 할 몬스터도 있어야 한다.”
“맞아요. 텅 빈 게이트를 보고 다른 몬스터가 공격해오면 어떡해요.”
“최소한의 병력만 놔둬도 침입자를 막기에 충분합니다.”
플레임 오크의 말에 샥쿠가 고개를 저었다.
“충분한 것만으로는 부족해. 피해가 전혀 없이 막아야 한다. 건물이 한 채라도 부서지면 주인님의 명성에 누가 가니 말이야.”
“저분들도 있….”
“혹여라도 절대종께서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저분들은 주인님의 명만 받을 뿐. 먼저 움직이지 않으신다.”
절대종은 사신수를 말했다.
주작만 자유롭게 행동하지 나머진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주인과 관련된 사람이 위험에 빠져도 말이다.
그게 사신수의 규칙.
물론 예외도 있지만 사신수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드물었다.
“웨어파드와 테노용만 따라와라. 나머진 이곳을 지켜. 만든 이곳에 이상이 생기는 날엔 살아 있을 생각은 하지 마라.”
샥쿠의 냉정한 음성에 몬스터들이 바짝 긴장했다.
사신수를 제외한.
이곳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는 샥쿠였다.
현무의 수호성 중 하나.
전투력으로 치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덤벼도 샥쿠를 이기진 못한다.
현재 샥쿠는 그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학교로 통하는 문을 열어라.”
“예이 찍찍!”
스케먼이 학교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샥쿠가 게이트를 나가기 전에 남아있는 몬스터를 향해 말했다.
“주인님께 학교의 상황을 알려.”
“옙! 찍!”
스케먼이 손을 올려 눈썹에 붙였다.
녀석이 충성을 하자.
샥쿠를 비롯한 페어리와 웨어파드가 게이트를 통해 나갔다.
각사학 뒷산.
이준이 무공을 수련했던 장소에 게이트가 열렸다.
몬스터들이 속속 포탈에서 나왔다.
샥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선회하며 포효하는 드래곤.
화염을 뿜어대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피그한.”
“하명하십시오.”
피그한은 흑염마조가 둘로 나뉘었던 시절.
성화를 따르다가 죽임을 당한 익룡 몬스터 테노용 종족이었다.
성화와 흑염이 하나로 합쳐지자.
다시 살아난 몬스터 종족 중 한 마리였다.
“저놈들을 하늘에서 떨어트려야겠다.”
“서포트하겠습니다.”
피그한이 허리를 숙이자 샥쿠가 등에 올라탔다.
테노용들의 등에 올라탄 샥크로아들.
창을 든 채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로티틸. 우리가 드래곤을 추락시키면 그때 전원 공격을 해.”
“맡겨주세요.”
샥쿠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그한이 날갯짓을 하자.
나머지 테노용도 하늘을 날았다.
샥쿠의 창에 마력이 깃들었다.
쩌억!
강력한 한기가 창날에서 흩날렸다.
“거의 다 도달했습니다.”
“조금만 더.”
“드래곤이 저희를 봤습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기운 때문인지.
하늘을 나는 드래곤이 샤크로아와 테노용을 바로 알아차렸다.
“샥쿠 님!”
피그한이 소리치자.
샥쿠가 그제야 마력이 담긴 창을 휘둘렀다.
“모두 얼음마력참을 펼쳐라!”
샥쿠의 외침에 테노용을 탄 샤크로아가 일제히 창을 휘둘렀다.
쌔애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가는 반월 모양의 강기.
지근거리에서 날아간 강기는 드래곤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쾅-
콰과과광!
수백 마리의 블랙급 몬스터가 사용한 마력의 강기.
드래곤이 황급히 베리어로 막았으나.
샤크로아의 공격은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평범한 몬스터라면 몰라도.
금역의 샤크로아는 특별했다.
계승의 꽃과 푸른 등불 꽃을 먹어 강해졌다.
무엇보다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했다.
시간이 날 때는 이준이 직접 굴렸으니.
같은 종의 샤크로아도 큰 차이가 났다.
심지어 블랙급 몬스터.
각성자 등급으로 S급은 혼자서 찜쩌 먹을 수준이었다.
샥쿠는 SS급이 여러 명 붙어야지만 상대가 가능했다.
그만큼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력을 지닌 존재였다.
상대가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기세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펄럭!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먼지를 날렸다.
“감히, 몬스터 따위가 이 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보느냐!”
몸 곳곳에는 물기가 뭍어 있었다.
하필 드래곤은 불의 드래곤.
적룡이었던 것.
다른 드래곤이었다면 큰 상처를 입했을 테지만 적룡은 얼음에 큰 저항력을 가졌다.
허나 샥쿠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샥쿠의 창이 빛났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하늘.
종래에는 바람이 눈보라로 바뀌었다.
창에서 무지막지한 얼음 마력이 분출됐다.
그가 가진 무기는 테구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창.
현무의 기운이 깃든 아티팩트였다.
“절대영도.”
적룡의 몸에 묻은 물이 얼기 시작하더니.
점점 주위로 퍼져나갔다.
“크크. 우리에게 얼음 속성이 통할 성싶으냐.”
드래곤이 불의 마력을 사용해 얼음을 녹이려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얼음은 더욱 세를 불려만 갔다.
“어억!?”
드래곤이 당황해했다.
펄럭이는 날개가 느려지더니.
이내 얼음으로 뒤덮이며 멈췄다.
샥쿠의 절대영도.
상대가 강할수록 빛을 발하는 스킬이었다.
대상의 최대 마력치의 데미지를 주는 공격이었다.
절대영도가 성공하기만 하면 지금처럼 강한 상대도 한 번에 잡는 게 가능했다.
몸이 꽁꽁 얼어버린 드래곤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주인님의 영역을 침범한 놈들에게 응징을 가하라!”
샥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페어리와 웨어파드가 드래곤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댔다.
* * *
이준 일행은 여전히 말파르 광산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빈둥거리고 있을 때.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현무 각주님에게서 연락이 왔네?”
메시지를 누르자 내용이 바로 떴다.
[각사학에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무극단이 지원 갔지만 사신가의 나머지 전력은 대기중인 상태입니다. 다른 가문에도 집을 비워놓지 말라고 전했습니다. 각사학에는 지안이와 가문의 후계자들이 전부 모여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적룡왕 짓인가보네.”
이준이 중얼거리자 박혁진이 물었다.
“현무 각주님이 뭐라셔?”
“각사학에 드래곤이 나타났대.”
“지안이 지금 어딨어?”
“학교에.”
“준아. 게이트를 열어줘.”
이준이 박혁진을 보고 있을 때 테구르가 허둥지둥거리며 입을 열었다.
“큰일났습니다요. 주인님 세계에 드래곤이 나타나 학교를 공격했다지 뭡니까요.”
“준아, 빨리!”
“끝내고 바로 돌아올 수 있지?”
“나 뇌제야. 누구보다 빠르게 드래곤을 죽일 수 있어.”
“다 처리하면 바로 연락해.”
이준이 금역의 문을 열었다.
그는 지금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때마침 목표로 하던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
저들을 통해 드워프의 환심을 사서 강철의 돌을 얻어야 했다.
“무슨 일 있으면 시스템으로 연락 남겨.”
“적룡왕도 아니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너한테 당해서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할 건데 걱정 마.”
“하긴 널 다치게 할 수 있는 게 몇이나 있겠냐.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이준이 방긋 웃었다.
박혁진이라면 각사학의 일을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