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40화
“네가?”
“그렇습니다요.”
드워프 왕 말론 툰두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어느 날 왕국으로 날아온 하나의 소식.
4대 대장장이 중 한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바로 불의 신봉자.
불의 대장장이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하지만 정기 만남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불의 신봉자 자리만 비어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리도 건방진지.
말론 툰두는 불의 신봉자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네가 불의 신봉자 테구르라고?”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요. 이… 도끼가 제 목 앞에 있는데 말입니다요.”
“스케먼이 불의 신봉자에 올랐다. 기겁할 노릇이군.”
쿵.
말론 툰두가 도끼를 거둬들였다.
바닥에 놓인 도끼가 육중한 소리를 내었다.
“이제 믿어주시는 겁니까요?”
“네 안에 불의 신봉자가 가진 마력이 있어서 믿어보려는 것뿐이다.”
테구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했다.
괜히 드워프에게 깝쳤다가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다.
그는 말론 툰두를 유심히 보았다.
‘나쁜 드워프는 아니라 다행이다. 휴우우.’
안심하면서도 의아함이 들었다.
자신의 명성이 이렇게 높았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은 드워프의 광산을 공격하지 않았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워프 왕은 도끼를 거뒀다.
“전 당신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왜 절 살려주시는 겁니까요?”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와 같은 4대 대장장이라서 그런다.”
“그러니까 그게 왜…?”
“너만 나와 대장장이 기술을 겨뤄보지 않았다.”
“헉, 대장장이 기술을 겨뤄본 후 죽이신다 이 말씀이십니까요?”
테구르가 화들짝 놀라 했다.
뒤로 슬금슬금 빠졌다.
영락없는 겁쟁이.
4대 대장장이치고 너무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스케먼이라 그런가. 겁이 많아.”
“목숨이 걸려있는 일 아닙니까요. 그리고 전 모시는 주인님이 계셔서 죽으면 아니됩니다요.”
“4대 대장장이는 누구의 밑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사연이 아주 많습니다요. 그러니 절 살려주셔야 합니다요.”
“흠.”
말론 툰두는 테구르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녀석과 대장장이 기술을 겨루고 싶은 생각뿐.
하나 지금은 녀석의 위에 있는 자가 궁금했다.
대체 누구기에 4대 대장장이 중 하나인 불의 신봉자를 수하로 둘까.
맛있는 에일과 함께 호기심이 피어났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널 죽일지 살려줄지 결정하겠다.”
“허억!”
“벌써부터 겁먹지 마. 누가 스케먼 아니랄까 봐 쯧.”
말론 툰두가 몸을 돌렸다.
“말론 그냥 돌아가?”
“저 녀석들 안 죽여?”
“이러다 우리 뒤통수치면 어떡해.”
“죽이고 편하게 발 뻗고 자자.”
“우리가 누굴 살려주고 할 입장은 아니잖아?”
드워프들이 스케먼을 죽이자고 주장했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말파르 광산의 주변은 균열로 뒤덮인 지 오래.
심지어 말파르 광산까지 전부 균열로 변했다.
마기가 가득한 균열에 드워프가 살 수 있는 건 보구 때문.
말파르 광산 주변 곳곳에 설치된 정화구와 무기고에 있는 보구에서 나온 힘 덕분이었다.
만약 이마저도 없었다면 이곳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저 녀석 불의 신봉자다.”
“설마.”
“말론, 드디어 정신 놨구나.”
“정기 만남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불의 신봉자가 갑자기 왜 나타나냐.”
“저 말을 믿는 건 아니지? 스케먼이라고.”
“나와 대장장이 기술을 겨뤄보고 거짓말을 쳤다면 그때 죽이면 돼.”
“저 미친놈.”
“말론을 누가 말려.”
투덜거리는 것과는 달리.
드워프 모두가 몸을 돌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말론은 그들의 왕.
그의 뜻을 따라야만 했다.
“뭘 멀뚱멀뚱 서 있어? 안 따라와?”
“그게 저….”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게 아니라… 여길 정화하면 안 될까요?”
“아서라. 균열은 아무나 정화할 수 없어. 등불꽃이 있으면 몰라도.”
“여기 있습니다요?”
테구르의 손에 푸른 등불 꽃이 들려 있었다.
뿐인가.
다른 스케먼들의 손에도 테구르와 같은 꽃을 꺼내 들었다.
* * *
말론 툰두의 허락에 스케먼들은 말파르 광산을 정화해 갔다.
“벌써 정화 반응이 일어나는 거야?”
“등불꽃은 사라졌는데 어디서 난 거지?”
“저 정도면 최상급에 해당할 텐데.”
말파르 광산이 정화되는 속도는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드워프가 만든 보구로도 균열의 마기를 막는 게 다였다.
정화는 불가능.
균열은 오직 등불꽃으로만 정화가 가능했다.
“어쩌면 쓸모 있는 녀석일지도.”
“스케먼이 전투는 형편없지만 일 하나는 기똥차다더니 맞는 말이야.”
“벌써 말파르 광산의 삼 분의 이가 정화됐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겠다.”
스케먼의 평판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원수였다가 이제는 쓸모 있는 녀석들.
정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친구들 힘내!”
“다 끝나면 술이나 먹자고.”
“내가 술창고에서 에일을 잔뜩 가지고 왔어.”
“빨리 끝내고 와서 한잔하자.”
친구로 호칭이 변해 있었다.
“후우. 주인님이 말씀하신 정화 작업은 모두 끝났네.”
테구르가 팔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말파르 광산 꼭대기까지 정화를 마친 그가 아래로 내려왔다.
“도움을 받았다.”
“전 주인님이 시키신 일을 했습니다요.”
“네 주인이 누군데?”
“아주 위대하신 분 있습니다요.”
“등불꽃도 네 주인의 물건이지?”
“물론있습죠. 소인은 그저 한낱 종일 뿐입니다요.”
“네 주인이 이곳으로 온다고 했지?”
“이곳에서 기다리다 보면 오실 겁니다요.”
“그때 주인을 보면 되겠군. 그 전에 술부터 마시자.”
드워프가 가장 좋아하는 건 철과 술이었다.
술이 없으면 작업이 안 될 만큼.
그들은 술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손님에게 술을 내주는 건 우정의 표시였다.
“그래도 됩니까요?”
“내 근심을 덜어줬으니 대접은 해줘야지.”
“헤헤. 감사합니다요.”
테구르가 이준에게 했던 것처럼.
말론 툰두에게로 파리처럼 두 손을 비볐다.
정말 하찮은 모습.
블랙급 보스 몬스터로 보기 힘든 태도였다.
드워프와 스케먼이 함께 술을 마셨다.
단순한 성격을 지닌 드워프라 그런지.
스케먼에 대한 편견이 빠르게 사라졌다.
술이 들어갈수록 스케먼들을 친근하게 대했다.
철을 다루는 이야기.
건축의 구조물.
포탈의 통로 연결 등.
스케먼이 의외로 아는 게 많자.
오히려 드워프들이 질문을 먼저 했다.
말론 툰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많이 취했는지.
양 볼이 붉어진 상태로 테구르를 불렀다.
“테구르 동생 꺼어억!”
“도, 동생?”
“왜 동생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아, 아닙니다요.”
“동생은 참 유능한 것 같아. 우린 철밖에 모르는데 동생은 여러 가지를 알잖아.”
“과찬이십니다요. 헤헤.”
말론의 칭찬에 테구르가 몸둘 바를 몰랐다.
하나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테구르의 입이 양쪽 귀에 걸린 상태였다.
“그래서 동생은 불의 마력을 사신수에게서 얻었다는 거야?”
“그럽습죠. 이 모든 게 주인님 덕분입니다요.”
그란투스 대륙에 균열이 생기고 나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균열 밖 이방인의 존재.
몬스터만 죽이고 사라지나.
언제든 그란투스 대륙을 위협할 수 있는 이들이라 여겼다.
그때부터 이방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
사신수의 존재도 이렇게 알게 됐다.
“그 불의 마력 좀 꺽, 볼 수 없을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요.”
테구르가 불의 마력을 꺼냈다.
그의 손에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마기의 성질과 비슷하면서도 깨끗한 불이라니.”
말론은 테구르의 흑염을 보자.
술기운이 어느새 날아가 버렸다.
저 불의 마력으로 가공하는 철은 얼마나 강도가 강할까.
구미가 당겼다.
말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다. 지금 당장 대장간으로 가자.”
“예?”
“대장간으로 가서 동생이 만드는 무기를 보고 싶어.”
말론의 목소리가 드워프들 귀에 들어갔다.
“또 시작이다.”
“철에 미친놈.”
“난 말론의 심정을 이해해.”
“불의 신봉자는 어떤 무기를 만들지 안 궁금하냐?”
“솔직히 호기심이 들어.”
“우리도 구경 가자.”
드워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말론의 뒤에 서니.
테구르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동생.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테구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됐다.
부담스러운 눈빛.
기대에 가득한 눈동자였다.
실수로 이상한 무기라도 만들었다간.
‘난 여기서 죽을지 몰라.’
매장당할 판국이었다.
무엇보다 부담이 되는 건 다른 이유 때문.
‘주인님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순 없어.’
혹여라도 주인인 이준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 앞섰다.
하나 테구르가 우려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준이 인정한 천재 대장장이였으니까.
이지안의 창인 백설이 그 증거였다.
* * *
그 무렵.
이준은 무극자를 불렀다.
‘사부님.’
하지만 무극자의 음성을 들려오지 않았다.
‘사부님 안 계세요?’
다시 한번 불러보았지만 무극자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봤던 장면이 내 전생의 일부….’
그래서 암흑대공의 파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던가.
왜 익숙한 느낌이 났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암흑대공의 파편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암흑대공은 모든 속성을 지녔다.
물, 불, 나무, 바람, 어둠, 빛, 강철.
물의 상위 속성인 얼음과 바람의 상위 속성인 번개 속성까지.
총 아홉 개의 속성을 지녔다.
자잘한 속성은 더 있었으나.
대표적인 게 바로 이 아홉 속성이었다.
자신이 원신의 돌을 손에 넣는 게 과연 우연일까.
이젠 이마저도 의심스러웠다.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아야지만 모든 수수께끼가 풀릴 듯해.’
마음을 수습하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자신이 암흑대공이란 사실은 알아냈지 않았나.
‘좋게 생각하자.’
이준이 호흡을 고르고 있자 박정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준아. 괜찮은 거지?”
“좀 당황스럽네.”
“그럴 만도 해.”
박정연이 이준의 등을 토닥였다.
반면에 박혁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준을 응시했다.
“4차 각성을 안 한 상태에서 자기 전생을 보면 어떤 느낌이려나. 딱 준이가 보인 반응하고 똑같으려나?”
전생을 각성하면 이준처럼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기억이 들어와 자리 잡으면 끝.
잠깐의 혼란은 있을 뿐.
모두 환생을 했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였다.
“준이는 4차 각성을 안 해서 충격이 큰 걸지도.”
한지유 또한 이준을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림도 아닌 그란투스 대륙의 전생.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놀랐을 것이다.
보라.
그리에스도 입을 떡 벌리고 있지 않나.
“네가 진짜로 암흑대공이었어!?”
“그렇게 놀라니까 더 실감 나네.”
이준이 쓰게 웃는데 사티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은인을 오랜만에 뵈어요.”
“지금은 전생만 알았지 아무 기억도 없어요. 암흑대공에 대해서는 그만 말해주세요.”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기억을 되찾지 않은 상태에서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정보의 오류가 있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는 그란투스 대륙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기도 했다.
여기에서 인연을 쌓을 생각 따윈 없었다.
대한민국에도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았으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이 아이의 인사는 받아주세요. 엘루르. 숨어 있지 말고 이리 오려무나.”
사티아가 숲에 숨어 있는 엘루르를 불렀다.
엘루르가 쭈뼛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엘루르는 은인께서 살려주신 아이랍니다. 제대로 인사드리렴.”
“고마웠… 습니다.”
“그란투스 최후의 전쟁에서 구해준 아이에요.”
“기억이 안 나는데….”
“은인께서 이방인이 되셨으니 미리 인사드리는 거예요.”
이준이 엘루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엘루르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준이 팔을 올리자 엘루르가 움찔했다.
“또 보자.”
이준은 왠지 이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이준은 목적을 달성하자 그 즉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대장로가 떠나는 이준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방인이 되셨어도 옛날에 했던 말은 영혼에 새겨졌나 봅니다.”
아이덴 루블리스가 지혜의 숲을 떠날 때 엘루르에게 했던 말.
-또 보자.
무뚝뚝한 음성이지만 그 안에는 따스함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