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 3부 28화
서초연은 과거 북두지문을 선택했다.
북두는 북쪽을 상징하는 동물.
현무를 뜻하기도 했다.
사대선문 또한 사신문처럼 사신수를 섬기는 문파.
사신문과 같이 고려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었다.
라이벌 관계라 해도 무방할 정도.
정확히는 같으면서도 다른 뿌리를 뒀다.
그 때문에 이지안의 천무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이지안이 전생 각성을 한 서초연은 사대선문.
즉 북두지문의 주인이었다.
하나 전생과는 달리 그녀는 북두가 아닌 일성을 선택했다.
일성은 서쪽을 상징하는 백호를 가리켰다.
서초연 아니, 이지안이 일성지문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
오빠인 이준 때문이었다.
일성지문을 뺀 나머지는 사신문을 극도로 혐오했다.
사대선문의 무공은 마공에 가까웠다.
무공을 익히는 순간.
질투의 악마가 찾아온다.
사대선문의 무공보다 강한 무공을 쳐부수라는 유혹이.
전생에는 유혹에 졌다.
그 결과는 뻔했다.
사신문은 천외천의 존재.
모든 선문이 다 합쳐도 사신문을 이길 수 없었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파천혈신이 있었으니까.
사대선문의 무공은 타인에게 져서는 안 됐다.
무적의 무공이어야만 했다.
만약 적에게 진다면 강한 힘을 줬던 무공은 주인의 살을 갉아먹는다.
다른 주인을 찾는 것.
사대선문의 무공이 마공에 가까운 이유였다.
‘이 생은 내 뜻에 따라 행동할 거야.’
전생에는 무공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사대선문이 사신문과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지라도.
현재 자신은 이준의 동생이었다.
전생에 원수라도 현재는 가족.
오빠를 향해 칼을 들이밀 수 없었다.
그녀가 일성지문을 선택한 것도 전생과 다르게 살기 위한 것이다.
적어도 일성지문의 무공은 사신문에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백호가 내 전생을 알고 나를 깨운 걸 수도…….”
이지안이 백호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이내 화답하는 듯.
“크릉.”
낮고 작게 울었다.
그때였다.
[옛 북두의 주인이 날 선택하다니. 의외야.]
‘일성, 네가 가장 현명하니까.’
[북두의 힘은 나보다 강해. 아쉽지 않아?]
‘내게는 전생보다 현재의 가족이 더 중요해.’
[네 가족이라면……]
‘사신의 주인.’
[사신문? 날 선택한 이유가 있었어.]
‘옛날의 일은 잊을 거야.’
[음……]
‘너도 북두와 똑같다면……무공을 폐하겠어.’
[네 몸에 사신의 힘이 있는 것도 가족 때문이야?]
‘오빠가 전수해줬어.’
[오빠란 작자가 사신의 주인이라는 소리군.]
일성지문의 다음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
시간이 흘렀다.
이지안은 일성지문의 음성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일성지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선택을 존중해.]
이지안의 선택이 맞았다.
일성지문의 사고방식은 유연했다.
다른 지문과는 달리 강요하지 않았다.
[사신문의 무공과 우리 사대선문의 무공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
같은 뿌리를 둔 두 문파의 무공.
일성지문은 사신문의 무공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째서 사대선문의 무공이 사신문의 무공에 밀리는지 알고 싶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난 그저 일성 님의 선택을 믿는 것뿐이야.]
염라대왕이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생 각성으로 인해 이지안이 등을 돌릴 거라는 생각.
다행히도 이지안은 이준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오빠이며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
그런 사람을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이유로 배신을 할 순 없었다.
“크앙!”
아기 백호가 짖었다.
옷자락을 이빨로 물며 이지안을 운동장으로 잡아끌었다.
[일성께서 너를 가르치려는 것 같다.]
“앙!”
그녀가 가만히 있자.
아기 백호가 다짜고짜 공격했다.
성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수.
웬만한 각성자는 찜 쪄먹고도 남았다.
그녀는 천무가 아닌, 전생의 힘인 일성지문의 무공을 꺼내 들었다.
* * *
그 무렵.
박정연과 박혁진, 이지안이 사신가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았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검제 박춘식이 박정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할아버지 저는요?”
“혁진이 넌 생명줄이 질겨서 걱정할 것 없다.”
“제가 누나보다 약해요. 이 사람 완전 괴물이라고요.”
“그래도 넌 남자라 걱정이 안 된다.”
두 사람의 아버지인 검왕 박영섭 또한 박정연만 챙겼다.
“밥 잘 챙겨 먹고. 파천제 님 옆에 꼭 붙어 있어. 그러면 위험하진 않을 테니까.”
“그럴게요.”
“잘도 가르치는구나.”
“이게 아닙니까?”
“이참에 여행을 다니면서 네 남자로 만들라는 말을 해야지 어째 넌 점점 답답해지는지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 할아버지도 참!”
박정연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이 할애비의 나이가 몇이냐. 곧 죽을 날이 머지않았어. 빨리 증손자를 보고 싶구나.”
“할아버지. 제가 먼저 결혼할까요?”
박혁진이 슬쩍 끼어 들었지만.
“넌 알아서 하거라.”
찬밥신세였다.
박춘식과 박영섭은 박정연이 파천제와 잘 되기만을 바랐다.
하나 여기서도 반전이 있었다.
박혁진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에휴. 지안이도 마음에 안 드신다니. 눈이 너무 높으셔서 제 결혼은 힘들 것 같아요. 이번 생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야겠어요.”
“지금 뭐라고 했느냐.”
“지안이라면 설화를 말한 건 아니겠지?”
“맞는데요?”
박춘식의 눈이 커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란 표정이었다.
그가 아들인 박영섭을 보았다.
박영섭이 고개를 저었다.
“아들아. 넌 아는 게 무엇인고?”
“제가 훈련에 빠져 살아서……죄송합니다.”
“오늘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박춘식이 진지한 얼굴로 박혁진에게 물었다.
“설화와 사귀는 것이냐.”
“아니요.”
박춘식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럼?”
“제가 좋아합니다.”
너무도 당당한 말이었다.
그래서 말이 막혔다.
아직 사귀지도 않으면서 결혼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설화는 널 좋게 생각하고?”
“음……그걸 모르겠단 말이에요.”
“에라이.”
박춘식은 김이 확 빠진 얼굴이었다.
그래도 박영섭은 좋게 생각했다.
“잘 해봐. 아빠는 널 응원하마.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지원해주겠다.”
무려 설화였다.
파천제 이준이 아끼는 동생.
심지어 신의 이의태의 손녀이기도 했다.
박혁진의 배필로 아주 좋았다.
한편.
철혈검가의 이야기를 신기지가도 엿듣고 있었다.
신기학사 한지웅이 딸인 한지유에게 슬쩍 말했다.
“딸.”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지 알고 있어요.”
“난 우리 딸이 철혈뇌후에게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지웅은 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철혈뇌후 박정연은 언제나 빙검후 한지유보다 앞줄에 있었다.
그게 못마땅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야.”
“알아서 할게요.”
한지유가 냉랭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차가웠는데 4차 각성을 하고 나니.
아버지인 한지웅조차 대하는 게 어려웠다.
“철혈뇌후에게만은 지지 않았으면 해.”
“알겠어요.”
“널 믿는다.”
한지웅의 뒤에 있는 현원단도 주먹을 앞으로 내밀면서 파이팅을 했다.
모두의 응원.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한지유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아 민트초콜릿 우유를 흡입했다.
“현원단주. 지유에게 그걸 건네주게.”
“예 가주님.”
현원단주가 한지유에게 머리통만 한 주머니를 넘겨줬다.
아공간 주머니였다.
“이건 왜요?”
“네가 좋아하는 먹을 것을 잔뜩 넣었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나씩 꺼내 먹어.”
그녀가 아공간 주머니를 들여다보았다.
민트 초콜릿 우유와 사탕, 초콜릿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란투스 대륙은 민트가 들어간 간식이 없을 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 게 없었다.
이게 가장 걱정된 한지유였는데 가족이라 그런가.
필요한 걸 귀신같이 알았다.
“감사합니다.”
“몸 조심히 다녀와.”
“네.”
때마침 사신가의 정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이준이 나왔다.
박춘식과 한지웅을 그를 향해 정중히 말했다.
“잘 부탁하오.”
“잘 부탁드립니다. 파천제.”
“옆에서 지켜주려고 데려가는 거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인사를 마치고.
이준과 함께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자식이 위험한 여행을 떠나니.
부모들은 한동안 사신가 정문을 떠나지 못했다.
* * *
이준과 아이들은 4대 성지의 금역으로 들어왔다.
[주인님. 나도 가?]
금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파랑이가 반짝이는 눈빛을 했다.
“파랑이는 지안이 옆에 있어 줘.”
[힝. 나도 가고 싶은데……]
파랑이의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열 개의 꼬리 또한 아래로 내려갔다.
기대했던 말과는 다르자 시무룩해졌다.
“내가 없으면 파랑이가 지안이와 애들을 지켜줘야지.”
[알겠어……주인님이랑 같이 못 가는 건 아쉽지만 참아볼게.]
[큭큭. 불쌍한 녀석. 너 대신 내가 그란투스 대륙을 경험해보고 오마.]
삼두가 파랑이를 놀렸다.
그런데 삼두에게도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너 데려간다고 했어?”
[날 안 데려갈 생각이냐!]
“파랑이도 놔두고 가는데 너도 여기에 있어야지.”
[아, 안 돼! 나는 데려가라!]
“지옥계의 2인자가 그란투스 대륙은 뭐하러 가. 그냥 여기에 있어.”
[지, 지옥계의 소속으로서 그란투스 대륙이 어떤지 탐색할 생각이다. 그러니 날 빼놓고 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응. 안 데려가.”
[왜, 오랜만의 여행인데!]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야. 용신족과 싸우러 가는 거지.”
[그러니 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란투스 대륙에선 네 힘이 닿지 않아 짐만 될 거야. 그러니 포기해.”
[아악!]
삼두가 비명을 질렀다.
잔뜩 기대했는데 안 데려간다 하니.
섭섭하고 원망스러웠다.
이준은 삼두의 표정을 무시한 채 테구르를 불렀다.
“테구르 문 열어.”
“벌써 열어났습죠.”
“참 일 잘해.”
“헤헤. 주인님의 기쁨은 종의 기쁨입니다요.”
테구르가 두 손을 비비며 웃었다.
이준이 그란투스 대륙으로 가는 포탈 앞에 섰다.
“준비됐지?”
“응.”
“떠, 떨린다. 포탈로 들어가다가 미아 되진 않겠지?”
박혁진이 우려의 말을 했다.
“여기도 똑같은 게이트라잖아. 겁쟁이 녀석.”
“미지의 세계라 떨려서 그래.”
“그리에스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만 믿어.”
그리에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에게 그란투스 대륙은 제집 앞마당이었다.
오히려 용신족이 있는 용계가 훨씬 넓고 광활했다.
그에 비하면 그란투스 대륙은 작은 편.
미아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곁에 있는 이상은 말이다.
“들어가자.”
“내가 먼저 들어갈게.”
이준의 말에 그리에스가 포탈로 몸을 던졌다.
이준을 필두로 박정연, 한지유 마지막으로 박혁진이 들어갔다.
여느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됐다.
지잉-
포탈에서 나온 네 사람.
그들이 처음으로 본 것은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균열 덩어리인데?”
박혁진의 말이 딱 맞았다.
땅 전체가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 초원, 바다 심지어 하늘까지.
온통 검보라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에 사람이 살 수 있어?”
“못 살 것 같다. 살아도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에 미칠 거야.”
이준은 몬스터들이 미쳐서 게이트 밖으로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로에니아 제국.
황도였다.
황제가 있는 도시조차 균열로 뒤덮였는데.
다른 곳이라고 다를까.
도시에 생기라곤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
즉 균열이 로에니아 황도를 뒤덮고 있었다.
균열은 전염성이 짙은 기운.
평범한 몬스터조차 미치게 했다.
아마도 몬스터는 이 균열을 피해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피신하려 한 것일 터다.
“다른 게이트보다 마기가 강해. 조심해야겠다.”
파직-
박혁진과 박정연의 주변에서 뇌기가 터졌다.
침입해오려는 마기를 두 사람의 뇌기가 막아선 것.
그만큼 마기가 짙다는 뜻이었다.
“여기선 먹을 것도 구하기 힘들겠어.”
박혁진은 생존부터 생각했다.
생존을 하려면 최우선으로 해야할 게 바로 의식주였으니까.
“이곳 전체가 균열로 뒤덮일 줄은 몰랐는데……아무래도 계획을 좀 변경해야겠어.”
“어떻게?”
박혁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준은 조금 전 떠올랐던 계획을 말했다.
“여기도 테구르를 이용해 게이트 통로를 뚫어놔야겠어.”
“식량 보급이 막히면 여기를 통해서 금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응.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놓은 식량이 있다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그란투스 대륙을 돌아다닐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