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633화 (633/705)

외전 제3부 27화

지옥계 염라전.

염라대왕은 자리에 앉아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음.”

그가 책을 들여다보며 고심을 거듭했다.

대전 아래에선 사자서각의 각주가 염라대왕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탁탁.

다른 쪽 손가락으로는 책상을 두드렸다.

깊어지는 고민.

시간은 점점 흘러만 갔다.

염라대왕이 답이 없자.

사자서각의 각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을각의 전생서도 결계를 푸심이 어떠한지….”

“네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병각의 전생서와 을각의 전생서는 격이 다르다.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게 앞당겨질 수 있다.”

을각의 전생서는 전설로 분류됐다.

뇌봉과 뇌전검왕, 검후의 전생서가 바로 이에 해당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결국 풀릴 전생서가 아닙니까. 억지로 붙잡고 있다고 해서 세상의 균형이 바로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염라대왕도 인지하고 있었다.

을각의 전생서를 붙잡고 있는 건 다른 이유 때문.

홀로 풀리려는 을각의 전생서가 바로 고려 선문의 무예라는 것이다.

하필 대상이 파천제 이준의 지인들.

거기에는 이지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사의 일입니다. 소인은 대왕께서 한낱 인간인 이준을 너무 신경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염라대왕이 전생서가 펼쳐지지 않게 붙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

그건 바로 이 전생서가 이준의 원수들이라는 거다.

정확히는 파천혈신의 원수.

그나마 뇌전검문과 장백검문은 설극과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나 다른 선문은 달랐다.

설극과 문제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선문은 설극을 보며 이를 갈았다.

꼭 그를 죽여 선문의 명예를 지키고 말겠다고.

하지만 상대는 파천혈신이었다.

신선조차도 우화등선을 거부한 존재.

그들이 떼로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설극은 이길 수 없었다.

아니, 그로 인해 자멸했다.

피해를 덜 받는 곳은 봉문으로 끝났으나.

피해가 큰 곳은 문파의 최고수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무공 또한 절전됐다.

이후는 안 봐도 뻔했다.

문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런 사연 때문에 염라대왕은 을각의 전생서가 풀리지 않게 막고 있는 거다.

하필 이준이 가장 아끼는 이들이 4차 각성을 했더니.

전생의 원수.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그렇다고 염라대왕은 욕을 할 수 없었다.

이 또한 인간의 업보였다.

가족은 전생에 원수였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준과 이지안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원수지간이 된다.

그녀의 가문을 몰락시킨 게 바로 이준의 사부이자, 아버지인 설극이었으니까.

“지옥계의 왕으로서 중립을 지키소서!”

“중립을 지키소서 대왕이시어!”

지옥계의 신하들이 읍소를 했다.

그럼에도 염라대왕은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설극과 관련된 일이면 항상 일이 꼬였다.

일이 꼬인다는 건 인과율이 어긋난다는 뜻.

염라대왕으로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왕의 권한을 사용한 여파로 인해 벌어진 현상.

인계에 전생 각성이 일어나는 것도 설극의 아들을 두 번이나 살려서 그런 게 아닌가.

만약 두 번을 살리지 않았다면…

‘그놈이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그나마 잠잠한 건 설극에게 빚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었다면 신계는 이미 쑥대밭이 됐으리라.

‘주경아와 이곳에 왔을 때 보니 신선제가 되고 더욱 강해져 있었다.’

마치 제 사부인 천극자의 뒤를 따라가려 하는 듯.

더한 괴물이 되고 있었다.

그런 놈을 자극할 바에야 비위를 맞추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지옥계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과율이었다.

그가 지옥계의 위엄이 땅에 떨어졌다며 입에 달고 살지만.

인과율에 비하면 체면은 언제나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놈은 주경아가 있어서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지만 아들의 일이라면 또 모른다. 언제 미쳐 날뛸지 몰라.’

“대왕 결단을 내리소서!”

사자서각의 가주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염라대왕도 마음이 흔들렸다.

양쪽의 생각이 모두 맞았으니까.

“언젠가는 전생서가 풀려날 것이옵니다.”

“음….”

염라대왕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생각이 깊어져만 갔다.

* * *

“백호?”

이지안이 하얀 아기 호랑이를 품에 안았다.

4대 성지의 금역에 있어야 할 신수가 각사학에 출몰했다.

“크릉.”

성체가 아니라 그런지.

백호는 으르렁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이지안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

배를 까뒤집었다.

기분이 안 좋은 이지안을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등을 뒤집으며 땅으로 뛰어내렸다.

“캬앙!”

백호가 이지안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쪽으로 가?”

“앙.”

이지안이 백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던 진경수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사신수가 사람을 가린다고 하더니. 우린 접근도 못 하게 하면서 지안이랑은 잘만 논다 그치?”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지안이가 사람은 어려워해도 신수하고는 잘 지내니 말입니다.”

“사람하고 친해지는 게 그렇게 어렵나?”

“형님같은 극E는 극I의 심정을 모르십니다.”

“또 MBIT냐. 그리고 허수 너도 극E잖아. 넌 지안이가 이해가 돼?”

“시골에서 신의 님과만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또래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요. 극I가 될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지안에게 쏠렸다.

그나마 특별 1반 출신한테는 얼추 말을 한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이외의 사람과는 말을 잘 섞지 못했다.

특히 가르치는 학생들.

그들의 질문에는 곧잘 대답하지만 강의가 끝난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는 패닉에 빠졌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진 않으나.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했다.

“선생님이 없을 때는 우리가 지안이를 챙겨야 해.”

“물론입니다, 형님.”

“제게 맡겨….”

“용석이 넌 안 돼. 지안이한테 사심 넣다간 선생님한테 죽을지 몰라.”

“그전에 혁진 형님한테 몸이 두 동강 날 수도 있습니다.”

진경수와 허수는 조용석의 접근을 차단했다.

세 사람은 이준의 추종자로서 같은 편이긴 하나.

이지안만큼은 따로 분리했다.

이준과 박혁진이 무서웠으니까.

이준도 이준이지만…

박혁진도 꼭지가 돌면 미친놈이었다.

검귀라는 이명이 괜히 나왔을까.

조용석이 두 사람에게 다급히 변명했다.

“그건 옛날의 감정이라 이젠 괜찮은데….”

“우리가 안 돼.”

“믿음직스럽지 못해. 차라리 내가 지안이의 곁을 지키고 말지.”

진경수의 말에 조용석이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하십니다.”

“그냥 멀찍이 지켜보기나 하자.”

“예 형님.”

세 사람이 이지안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아야!”

이지안이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지안이 손에 피가 납니다.”

“가지고 있는 치료제 다 꺼내 봐.”

“여, 여기 있습니다.”

“전 괜찮아요. 피가 살짝 날 뿐인데….”

백호가 이지안의 손을 깨물어 피가 났다.

어리긴 하나 신수.

날카롭고 강철같은 이빨을 지녔다.

세 사람의 호들갑에 서혜지가 그들을 비집고 나왔다.

“비켜봐요. 제가 치료할게요.”

“아, 혜지가 있었구나.”

“손에 상처 안 나게 최선을 다 해줘.”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정신 사나워.”

서혜지가 이지안의 손을 잡고 치료하려는 순간.

“크앙!”

백호가 방해했다.

“앗!”

오히려 이지안의 손에 상처를 더 냈다.

“백호 님 왜 그러십니까. 같은 편이에요.”

진경수의 만류에도 백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지안의 손을 타고 흐른 피가 바닥을 적시자.

그제야 달려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진경수와 허수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한 채 백호를 보고 있을 때였다.

이지안의 발밑에 붉은 진이 새겨졌다.

“지안아 밑을 봐!”

“뭐, 뭐야?”

“위험한 거 아닙니까?”

“갑자기 진법이라니!”

모두가 당황했다.

이지안도 마찬가지.

그래도 가장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의 시선에 보이는 붉은 진법.

‘이건 내 피야.’

그녀가 고개를 들어 아기 백호를 보았다.

아기 백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몸이 황금색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발아래에 있던 붉은 진도 빛났다.

“억.”

“기파입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내공으로 몸을 보호했다.

그르륵-

철컹!

이지안을 덮은 붉은 빛이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족쇄가 감았다.

아니, 원래 감겨 있는 족쇄처럼 보였다.

“캬앙!”

아기 백호가 울음을 터트리자.

이지안의 몸에 감겨 있던 족쇄가 풀렸다.

* * *

“허, 허허.”

염라대왕은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앞에 두고 고심하게 만들었던 전생서가 펼쳐진 게 아닌가.

[북두군 서초연.]

이준의 여동생, 이지안이 전생 각성을 했다.

그토록 결계로 막았건만 풀려버렸다.

허탈하게 웃던 염라대왕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손으로 책상을 강하게 때렸다.

“저 빌어먹을 호랑이 새끼를 보았나!”

염라대왕의 눈은 지옥안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들어온 아기 호랑이.

녀석이 말괄량이처럼 웃고 있었다.

전생서의 결계를 푼 게 바로 백호였다.

“신수씩이 되어가지고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있다니!”

“대왕, 고정하시옵소서!”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사신수가 인계의 일도 모자라 저승의 일까지 간섭하고 있지 않나.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성체가 되지 못해 멋대로였다.

어떤 게 옳고 그른 건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

그저 이지안이 좋아 불편해 보이는 걸 제거해준 것이다.

“다른 신수들에게 백호를 잘 돌보라고 경고를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소서.”

신하들이 염라대왕을 진정시켰다.

그가 이토록 화난 건 여태까지 고민했던 시간이 쓸모없어진 것 때문이다.

망자의 일도 제쳐둔 채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옳은 일인지를.

한데 그 고심을 비웃기라도 한 듯.

백호가 족쇄를 풀어준 게 아닌가.

그동안 생각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후우우.”

염라대왕이 숨을 고르며 화를 가라앉혔다.

“저 빌어먹을 호랑이. 또 일을 벌이기만 해봐라.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백호를 노려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 무렵.

아기 백호는 뒷발로 귀를 긁고 있었다.

‘어디 개가 짖나’하는 느낌이랄까.

한편 이지안은 메시지 창을 보고 있었다.

[‘전생 각성’을 하였습니다.]

[특성 사대선문의 후계자(SSS)을 개화했습니다.]

[특성 우성군의 전생(SSS)을 개화했습니다.]

[잠재 등급이 SSS로 상승했습니다.]

[사대선문의 사대지문을 선택하십시오.]

그토록 원하던 전생 각성을 했다.

몸에 힘이 넘쳐났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랄까.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메시지 창을 아래로 내렸다.

‘이게 끝?’

그 어디에도 무공이 지워졌다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사대지문을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끝.

다른 무공을 익힌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무공은 초기화되어야 정상이었다.

‘메시지를 선택해야지만 무공이 삭제되는 건가?’

그녀가 손가락을 들었다.

홀로그램 앞에 멈춘 손가락.

[일성지문]

[북두지문]

[남벽지문]

[동방지문]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선택했다.

[사대지문 중 일성지문을 선택했습니다.]

[전생과는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마무리하자 그제야 전생의 기억이 이지안에게로 들어왔다.

엄청난 양의 기억들.

그녀가 손을 부르르 떨며 얼굴을 감쌌다.

증오, 회한이 가득한 눈.

슬픔 또한 간간이 비추었다.

그러다 이내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지금의 난 서초연이 아니라 이지안이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