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22화.
주경아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마기?”
레미엘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신선이 마기라니.
신기한 건 흘러나온 마기가 어느 선기 못지 않게 깨끗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 마기에 흑마력의 냄새까지 났다.
그제야 그녀가 누군지 눈치챈 레미엘이었다.
“마주? 당신이 왜 저놈을 돕는 겁니까.”
그가 질문했지만 주경아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쿠웅.
땅이 들썩였다.
돌이 부서지면서 흙과 함께 허공으로 올라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
뽑히고 쓰러진 나무.
심지어 강의 물까지.
죄다 중력을 거부하고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회오리치는 바람.
회오리가 점점 거세지더니.
종래엔 앞으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동하는 속도가 올라가자.
주위를 삼키는 것도 빨라졌다.
겉보기에는 그저 강한 회오리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레미엘의 뒤에 있던 수하들이 나섰다.
“가주님. 저 회오리는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열 명의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들의 손에서 철의 가시가 뿜어져 나왔다.
수십 가닥의 철가시가 회오리에 폭사했다.
쩌어억!
철가시가 서로 달라붙으면서 응집했다.
회오리의 하단부터 시작된 철이 상당까지 빠르게 확장해갔다.
끼이이익-
무언가가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회오리를 뒤덮은 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마주도 별거 아닙니다.”
“소문이 많이 부풀려진 듯합니다.”
“신계의 왕을 넘본다더니, 전부 과장되었어.”
“그래도 방심은 금물. 가주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
“예!”
레미엘이 총애하는 철의 군단장이 경각심을 주었다.
상대는 마주.
그 지독한 지옥계의 구천옥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그들은 철이 된 회오리를 향해 다시 한번 철가시를 날렸다.
퍽-
퍼퍼버벅!
철가시가 철판을 관통했다.
촘촘하게 박힌 철가시.
“하아압!”
철의 군단장이 기합을 내면서 손을 아래로 눌렀다.
그러자 회오리를 가둔 철이 위에서부터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안에 있는 주경아의 숨통을 아예 끊어놓으려는 듯.
반격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레미엘이 턱을 쓰다듬었다.
‘너무 쉬워. 마주는 저 정도의 공격으로 죽을 여자가 아니야.’
그랬다면 그녀가 구천옥을 탈출했을 때 신계가 떠들썩했을까.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계에는 경계령이 내려졌다.
초특급 죄인의 탈출로 친해 천계도 잔뜩 긴장하질 않나.
‘무슨 속셈이지?’
레미엘이 앞을 유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콰앙!
뇌성벽력이라도 치듯.
굉음과 함께 회오리를 감싸던 철이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 있던 회오리는 여전한 위세를 자랑했다.
지금까지 앞으로 전진을 못 해서 그런지.
엄청난 속도로 레미엘의 수하를 덮쳤다.
“우아악!”
“컥!”
“아, 안 돼애애애!”
몇몇 천사들이 회오리에 휩쓸려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보다 못한 레미엘이 나섰다.
그가 허리춤에 차여진 검을 꺼내 회오리를 갈랐다.
작은 바람이 불더니 회오리를 향해 날아가자.
그토록 강한 회오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두둑-
분리된 팔과 다리, 육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난은 여기서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레미엘은 여전히 주경아에게 존대를 했다.
하나 음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다.
경고였다.
봐주는 건 여기서 끝이라는 경고 말이다.
“마침 너희 실력도 다 확인했으니 그럴까?”
주경아가 몸을 뒤로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박정연과 한지유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너희들 검 빌려주렴.”
박정연과 한지유의 검이 허공을 날아 주경아의 손에 들어갔다.
“손 조심하세요!”
한지유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나 주경아는 아무렇지 않게 검을 잡았다.
“둘 다 신검류네.”
박정연의 커다란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검을 잡으면 거부할 텐데….”
신검은 주인을 가린다.
만약 타인이 강제로 신검을 취하려 한다면 강한 반발력을 일으킨다.
말이 강한 반발력이지.
주화입마에 빠트리거나 광인으로 만드는 게 대다수.
주인이 있는 신검을 함부로 만지려 하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한데 주경아는 신검을.
그것도 두 개나 아무렇지 않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박정연과 한지유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이에 걸맞은 무공을 사용해야겠는걸?”
주경아는 며느리 후보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설극이 걸어 다니는 무공 보고였던 것처럼.
그녀 또한 신교에 있는 무공을 전부 외우고 다닐 만큼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하나는 뇌기를 지닌 검.
다른 하나는 한기를 지닌 검.
그녀의 머릿속에 가장 강한 검법들이 떠올랐다.
두 무공 다 해동에서 온 무공.
천마검법과 쌍벽을 이루는 검법이기도 했다.
그녀가 천월과 복마참백연을 늘어트렸다.
쿠웅-
그녀의 몸에서 뇌기와 한기가 동시에 흘렀다.
어정쩡한 기운이 아닌.
모두 극성으로 연마한 기운이었다.
“오랜만에 사용해서 잘 되려는지 모르겠구나.”
오른손에 벽운을, 왼손에는 복마참백연을 들곤 앞으로 쇄도했다.
* * *
“저분이 검법도 다루셨나?”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과 싸울 때는 오로지 기공만 썼다.
흑마력을 사용할 때나 검을 들었지만 기공보다는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어정쩡한 실력이 아닌, 완벽한 숙련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심지어 서로 다른 성질의 기운을 함께 사용하기까지.
자신과 싸울 때와는 전혀 다른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이준이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천룡천상검과 은하월강검이구나.]
‘사부님, 요새 너무 안 나타나신 거 아니에요?’
[크흠. 일이 바빴느니라.]
‘똥 쌀 시간도 없으세요?’
[신선계를 다스리는 일이다. 어딜 추잡스러운 말에 비유하는 것이냐.]
‘쳇. 바쁘시면서 왜 나타나신 거예요?’
[홀홀홀. 이 사부가 보고싶었느냐.]
‘아니요.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냥 물어봤어요.’
[네 마음 다 안다 이 녀석아.]
‘전혀 아닌데요. 그보다 저 무공은 뭐예요?’
이준은 쑥스러운지 화제를 빠르게 전환했다.
[두 무공 다 해동의 실전된 검법이니라. 사신문만큼 오래된 무공이지.]
‘강하겠네요?’
[강하다. 둘 다 강함에 중점을 둔 검법이라 정면으로 부딪쳤다가는 개망신을….]
무극자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으악!”
“억.”
“마, 말도 안 돼. 무슨 강기의 위력이….”
강기가 레미엘의 부하들을 휩쓸었다.
그들은 모두가 정예였다.
철의 군단.
레미엘의 최측근으로 이루어진 정예였다.
[…당할 수 있느니라.]
“이미 당했네요. 계속 당할 예정이고요.”
콰드드득!
땅을 가르며 날아가는 월광.
그 속에 한 마리의 용이 함께 했다.
“이익!”
레미엘이 이를 악물고 신성력을 사용했다.
그의 앞에 펼쳐진 철의 장벽이 용과 월광을 막았다.
“큭.”
커다란 충격이 레미엘을 덮쳤다.
발이 땅속으로 들어가며 뒤로 밀렸다.
그는 그나마 다행.
간신히 막기라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떤가.
“버텨!”
“더는 힘듭… 니 컥.”
“아….”
월광과 용이 철의 군단을 가르고 지나갔다.
날개가 잘린 이들.
팔과 다리가 잘린 이들.
심장이 함몰되어 숨이 끊긴 이들까지.
처참하기 그지없는 참상이었다.
저벅저벅.
레미엘의 귀로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경아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주가… 이렇게 강했나?’
일대일도 아니었다.
철의 군단이 함께 했다.
그럼에도 밀렸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미카엘 님이 힘을 되찾을 때의 무력이야.’
미카엘은 천계의 왕이었다.
왕의 경지는 대부분 탈신경에 해당했다.
그렇다면 마주의 현재 경지가 탈신경에 있다는 소리였다.
‘믿을 수 없어. 신계의 왕이 한 명 더 있는 게 아닌가!’
레미엘은 주경아가 한때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의 힘은 무시했다.
그래봤자 마계.
마왕의 힘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천계는 이기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의 우월주의로 인해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대로 내가 질 것 같아?’
그가 돌파구를 찾았다.
그의 눈동자에 백룡왕이 들어왔다.
숨이 가늘었다.
‘저놈의 힘이라도 흡수해야겠어.’
백룡왕은 미카엘의 것.
그가 흡수한다고 제대로 된 힘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주경아에게 당할지 몰랐다.
백룡왕의 힘을 흡수하고 천계에 올라가서 미카엘에게 돌려주면 그만.
우선 살고 볼 일이었다.
레미엘이 백룡왕에게 팔을 뻗는 순간.
푸확-
왼팔이 잘리며 피를 뿌렸다.
“으헉!”
“날 얼마나 얕보았으면 대놓고 눈알을 굴리는 것이냐.”
레미엘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가 잘린 팔에 신성력을 불어 넣자.
팔이 금세 재생되었다.
“난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저 인간들만 죽이면 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이다. 네가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주경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선언.
목소리에는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젠장, 제대로 된 힘만 있었다면 너 같은 건!”
“이 녀석이 필요한가?”
그녀가 백룡왕을 가리켰다.
허공에 붕 뜨며 그녀의 손에 잡힌 백룡왕.
그를 레미엘에게 던졌다.
“어디 그 잘난 힘을 보여 보거라. 대신 나도 최선을 다해 널 죽여주마.”
레미엘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
오만함이 아니었다.
“후회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후회는 네가 할 테지. 어디 절망을 맞이해 보거라.”
* * *
푸확-
레미엘의 어깨가 잘렸다.
역시나 재생을 하는 그.
하나 그 재생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금세 재생됐던 신체는 이제 5초는 지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 어째서냐!”
레미엘이 당황해했다.
백룡왕의 힘을 흡수해 더 강해졌다.
처음 강림했던 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경아의 검에 몸이 여기저기 잘리고 있었다.
쩌억!
그의 어깨에 얼음이 내려앉았다.
더 이상 재생은 불가.
신성력을 불어넣어도 그대로였다.
서걱-
반대편 어깨가 잘렸다.
얼음이 내려앉기 전에 팔을 재생하려 했으나.
방금 전 당했던 뇌기로 인해 신성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재생이 되냔 말이다!”
레미엘이 버럭 소리쳤다.
모든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신의 재생력이 막혔다.
그렇다고 주경아를 향해 한 공격 먹힌 것도 아니었다.
너무 쉽게 막힌 공격.
이후로는 제대로 된 반격도 가하지 못했다.
참패.
아니, 압도적인 패배였다.
7대 천사의 위치에 있는 자신이.
철의 신인 레미엘이 구천옥의 죄인에게 패배한 것이다.
그가 절망하고 있는 사이.
박정연과 한지유는 주경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를 보고 반한 건 처음이야.”
“멋져….”
그녀들이 꿈꾸는 이상형.
철혈뇌후나 빙검후?
주경아를 보자 자신들에게 붙여진 이명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여제나 후의 이명은 저 여자에게나 어울렸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걸까.”
박정연은 주경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 것도 잊었다.
강렬한 몸짓.
주경아의 움직임은 하나, 하나가 우아하면서도 파괴적이었다.
전혀 맞지 않은 두 단어를 조화롭게 이루는 사람.
그녀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앞으로 내 롤모델은 저분이야. 준아.”
“응?”
“저분 이명이 어떻게 돼?”
“이명?”
마주, 마왕, 마선, 마중화.
여러 가지 수식으로 불리었다.
“그게….”
[마중화라 하여라. 다른 이명은 원치 않을 것이다.]
박정연은 예비 며느리 후보 중 한 명.
이명 때문에 주경아를 어려워하는 걸 원치 않았다.
“마중화라고 불리셨어.”
“마중화… 이명도 멋져!”
박정연이 환하게 웃었다.
롤모델의 이명이 마음에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