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13화
신은 인간의 믿음을 먹고 산다.
특히 천계의 같은 경우는 더욱 인간에게 의지했다.
천계의 힘이 완벽하지 않아도.
다른 신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이유가 바로 인간 때문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천계는 강해졌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힘이 약해진다.
천계의 최대 약점.
물론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 하더라도 천계가 모든 힘을 잃지는 않았다.
요즘 말로 저점이 다른 신계보다 높달까.
천계가 아직도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믿음이 박살 나고 있었다.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신전이 무너진 것.
그것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철을 숭배하는 신전이 거의 무너졌다.
이로 인해 레미엘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그의 사도들이 대부분이 사라지기까지 한 게 아닌가.
“아버지 왜 그러세요!”
레미엘의 아들인 네일이 당황해했다.
네일은 아버지를 보러 가문으로 왔다.
한데 아버지는 가주실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다.
그토록 정정하던 아버지의 상태에 네일은 패닉에 빠졌다.
“크윽!”
레미엘이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철의 신전이 전부 무너져서 이제는 데미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힘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다.
“으으… 파천제가… 철의 신전을 공격… 했다…!”
레미엘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빙룡족 때문인가요?”
“큭… 그렇다고 볼 수 있어.”
그가 쇼파에 몸을 누이며 숨을 골랐다.
피로가 가득한 얼굴.
몇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싸움이 일어났으면 한국에서 일어났을 텐데… 그쪽에도 철의 신전이 있어요?”
“파천제가 그리스로 직접 와서 모든 신전을 파괴했다.”
“그게 무슨!?”
네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의 신전을 공격했단다.
그 어떤 인간이 성스러운 건물을 파괴할까.
철의 신전은 인계의 문화 유산.
세계의 유산이기도 해서 각성자들도 신전은 건드리지 않았다.
한데 파천제가 유산을 파괴했단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대사건이었다.
“신선제가… 가르쳐줬겠지.”
레미엘이 이를 뿌득 갈았다.
신선제 설극.
이름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계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드래곤의 호흡법을 강탈해 갔다.
물론 흑룡왕의 호흡법은 천계로서 골칫덩이.
신선제가 처리하게 놔두는 게 옳았으나.
레미엘만은 반대했다.
흑룡왕은 용족왕조차 두려워하는 대군주.
그런 호흡법을 신선제에게 준다는 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신선제가 흑룡왕의 호흡법을 익히진 않겠으나.
그 안의 내용을 분해해 자기 것으로 만들 거라 생각했다.
그는 천재를 뛰어넘어 괴물 그 자체였으니까.
이때 그와 부딪혔다.
결과는 패배.
압도적이라는 말도 민망할 정도였다.
천계의 최고위 신 중 한 명인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하고 졌다.
아니, 졌다는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최고위 신인 자신이 겁을 먹었다.
머릿속에 공포가 떠나가지 않았다.
고작 눈빛만으로 제압당한 것.
인정하기 싫어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 공격했지만 기절.
그 후의 기억은 없었다.
천계의 최고위 신으로서 위신이 땅에 처박힌 계기였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7천사의 자리도 위태로워. 아들아. 레미엘 도서관으로 날 데려가다오.”
“그쪽엔 무슨 일로요?”
“레미엘 도서관 지하에 철룡왕이 있다. 다른 가주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처, 철룡왕이 어떻게 도서관 지하에?”
“신계대전을 틈타 이 아비가 확보해놨다. 용계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더는 힘들겠어. 어서 나를 레미엘 도서관 지하로 데려가다오.”
“알겠어요.”
“은밀히 가야할 게야.”
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버지인 레미엘을 데리고 몰래 저택을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호위장의 눈을 피해 레미엘 도서관으로 향했다.
“날 내려다오.”
레미엘이 힘겹게 팔을 뻗었다.
그의 손 앞에 마법진이 나오자 손목을 돌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책장이 움직였다.
“가자.”
네일은 레미엘을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전부 내려오니.
거대한 철창이 눈앞에 보였다.
“철의 드래곤!?”
네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철창 안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 있었다.
“천계에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엉망이 되어서 돌아왔군.”
네아크가 레미엘을 비웃으며 말했다.
“네 힘을 취해야겠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 아니었나? 네게는 안타깝게 됐어. 완전한 힘을 얻고 싶었을 텐데.”
그가 레미엘을 긁었다.
바로 철의 속성을 취하지 않은 것도 힘을 완전히 얻고 싶어서였다.
“곧 죽을 녀석이 입만 살았구나.”
“어차피 죽을 목숨. 두렵지 않다. 오히려 네가 완전한 힘을 얻지 못하게 되어 통쾌하다.”
레미엘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 상황.
네아크가 속을 긁어대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넌 내게 속성을 바치고 소멸이나 하거라!”
레미엘의 팔을 뻗자.
네아크에게서 흘러나온 철의 기운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네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닥쳐라!”
네아크는 끝까지 레미엘을 저주하며 죽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레미엘이 철의 속성을 전부 흡수했다.
창백하던 얼굴로 제 색을 되찾았다.
잃었던 신성력 또한 충분히 찼다.
“아버지….”
네일이 레미엘을 보고 감탄했다.
오히려 이전보다 강해진 힘.
현재 최강의 가주로 평가받는 미카엘보다 더 강한 느낌이었다.
하나 레미엘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했다.
“아쉽구나. 용계만 알아냈다면 이보다 더한 힘을 손에 넣었을 터인데.”
하지만 어쩌랴.
이미 힘을 취했는데 말이다.
“네일.”
“네, 네!?”
네일이 넋을 잃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했다.
“이제 이 증표의 주인은 너다.”
“이건!”
레미엘이 네일에게 하나의 증표를 넘겼다.
그의 손 위에 나타난 철의 문장이 허공을 날아 네일의 손에 안착했다.
“내가 없을시 레미엘의 이름은 네가 이을 것이다.”
“아버지가 계시는데 제가 어찌.”
“나는 현 가주들과 용계를 찾아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미래를 미리 대비하려는 것뿐이다.”
파천제 이준이 철의 신전을 파괴하리라 생각했던가.
아예 간과했다.
인계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도 신전은 매번 중립지역이었다.
각성자가 생겨서도 교회나 성당, 절 같은 곳은 공격하지 않았다.
신성시되는 건물이었으니까.
그래도 간과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철의 신전이 전부 파괴된 상태.
더는 타격을 받을 건더기가 없었다.
“그러니 철의 증표는 네가 지니고 있어라.”
“소중히 간직할게요.”
네일이 철의 증표를 가슴에 새겼다.
왼쪽 목에 회색의 문신이 자리 잡았다.
“그 전에 나에게 모욕을 준 녀석부터 혼을 내줘야겠지.”
레미엘은 이준에게 신의 무서움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이전에는 이준을 업신여겼다.
고작 인간 따위가 신의 뜻을 무시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하나 이제는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너를 벌하겠다.”
파천제의 강함을 인정했다.
* * *
지잉-
이준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왔다.
“와.”
그리에스가 금역을 보고 감탄했다.
그 어떤 곳보다 공기가 좋았다.
대기 중에 떠도는 건 분명 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계나 자신이 살던 용계보다 공기가 산뜻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요!”
여김 없이 테구르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인사했다.
“잘 있었어?”
“물론입니다요. 주인님이 보살펴준 덕분에 아주 편히 있습니다요.”
테구르가 말을 하다말고 이준의 뒤를 보았다.
녀석이 그리에스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헉!”
“왜 그래?”
“저, 저분은 누구십니까요?”
그리에스의 마력을 느꼈는지.
테구르가 벌벌 떨었다.
‘파랑이도 그리에스를 보고 쫄았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네.’
마력을 가진 몬스터라면 그리에스를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그리에스는 드래곤.
그것도 용신족의 드래곤이었다.
마력에 있어서 태초의 존재들.
몬스터가 드래곤을 보고 공포에 떠는 건 당연했다.
“용신족. 다른 건 물어보지 마. 매번 말하는 것도 귀찮다.”
“하, 하이 드래곤 히에엑!”
테구르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너무 놀라 기겁한 모양.
이준은 녀석을 놔두고 현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 기운은?”
그리에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독한 극음의 기운.
그녀의 아버지인 빙룡왕의 기운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사신수 중 북쪽을 다스리는 현무의 기운이야.”
빙하지대로 온 두 사람 앞에 현무가 나타났다.
[여긴 어쩐 일이지?]
“부탁할 게 있어.”
[네가 말이냐?]
“너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서 말이야.”
[난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용계에 관한 거야. 그쪽은 타계층이라 괜찮지 않아?”
[들어는 보지.]
“용군주 중 빙룡왕을 찾아줘.”
이준의 말에 옆에 있던 그리에스가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현무를 만나러 온 거야?”
사신수는 인계의 신수였지만 중간계의 존재이기도 했다.
그것도 최상위층에 있는 존재들.
신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용신족인 그리에스 또한 이 사실을 안다.
[나보고 중간계의 일에 끼어들라는 소리냐.]
“찾아만 달라는 거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불가하다.]
“이러면 곤란해. 너 누구 집에서 사는지 인지 좀 할래?”
[네가 원해서 이곳에 있는…]
“백호가 금역에서 나간 후 어떻게 됐지?”
백호는 서쪽을 제대로 수호하지 못했다.
구천옥의 죄인들에게 사로잡혀 정수까지 뽑혔다.
거의 소멸되기 직전까지 갔다.
현재는 다시 태어났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약한 상태.
신수의 거대화는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게 이준의 보호 아래에 있지 않았기 때문.
다른 신수들은 이준의 밑에 있어서 아주 멀쩡했다.
[날 협박하는 거냐.]
“잘 생각해보라는 거지. 그냥 월세 좀 낸다고 생각해.”
[끄응.]
현무가 앓은 소리를 내었다.
거절하면 보복하려 할 터다.
그렇다고 부탁을 수락하자니.
인간사에 간섭하는 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찾기만 하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조한테도 세상의 틈을 알아봐달라고 할 거니까 너만 인간사에 간섭하는 게 아니야.”
[찾아주기만 하면 되나? 혹, 다른 걸 더 시키지는 않는 거지?]
“네 성격을 잘 아는데 뭘 더 시켜.”
[알겠다. 빙룡왕을 찾아주지.]
“그걸로 월세 퉁치자.”
[평생 월세로.]
“심보가 고약하긴 하지만 오케. 그렇게 해.”
[최대한 빨리 알아봐 주지.]
현무가 얼음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흑염마조에게 할 부탁만이 남았다.
“현무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현무가 못 찾으면 빙룡왕은 완전히 소멸 됐다고 보면 돼. 그러니까 찾길 빌어.”
“…고마워.”
“너 좋으라고 한 거 아니야. 귀찮은 일을 빨리 끝내려는 거지.”
“그래도 고마워.”
그리에스가 진심을 담아 인사를 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이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됐어. 조야.”
그녀를 보지 않고 흑염마조를 크게 불렀다.
[듣고 있었다.]
“인계에서 가장 큰 틈을 찾아줘.”
[용계의 입구를 찾으려는 모양이군.]
“용신족이 튀어나오면 큰일이잖아. 틈을 찾으면 그 앞을 단단히 방비해야지.”
[작은 주인의 부탁이니 찾아보겠다.]
흑염마조의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기운도 금역에서 사라졌다.
즉시 움직인 것이다.
언제 용신족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터.
사신수들이라면 빠른 시일내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