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제3부 6화
“꺄아아아!”
“드, 드래곤이야….”
“도망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빌딩 위에 있는 드래곤이 포효하고 있었다.
쿠오오오!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렬한 위압감을 뽐냈다.
근처에 각성자들이 있었지만.
“우, 우리가 상대할 몬스터가 아니야.”
“저게 드래곤… 저런 몬스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각성자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넋을 잃고 멍하니 보는 각성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때 무복에 신이란 글자가 쓰여 있는 이들이 나타났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피하세요!”
신기지가의 소천대이었다.
A급 각성자로 이루어진 부대.
100여 명의 소천대가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대주. 인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원군이 올 것이다.”
“대천단이나 현원단이 와도 드래곤은 무리로 보입니다. 어서 다른 가문에 도움을 청하심이….”
부대주로 보이는 남자가 소천대주에게 말했다.
“그분이 오시는 중이다.”
“아.”
부대주가 짧게 신음을 했다.
누가 이곳으로 오는지 대충 짐작한 눈빛이었다.
“그분이 도착하시기 전에 우리는 사람들을 최대한 대피시킨다.”
“예, 대주!”
소천대가 분주히 움직였다.
포효하던 드래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킁킁거리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자신이 찾는 게 없는지.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
쿠오오오!
날개를 활짝 편 드래곤.
동시에 녀석의 몸통이 초록색으로 빛났다.
그러더니 아가리를 통해 하나의 구체를 토해냈다.
초록색의 구체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고층빌딩에 닿았다.
푸쉬이이-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빌딩이 너무도 쉽게 녹아내렸다.
초록색 액체가 옆 건물에도 튀었는지.
근처의 빌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남은 액체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땅이며, 사람이며 건물이며.
닿는 건 뭐든지 녹였다.
“으아악!”
“내 손이!”
“처, 철기가….”
“조장님! 철기가 당했습니다.”
“경호도 응답이 없습니다.”
소천대가 패닉에 빠졌다.
옆에 있던 동료가 사라졌다.
저 초록색 액체에 닿은 순간.
뼈도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을 쓰는 드래곤이다! 모두 조심해라.”
소천대주가 급히 소리쳤다.
곧이어 두 번째 구체가 날아왔다.
“대주님 피하십시오!”
소천대주의 위로 떨어지는 액체들.
그가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늦었다.
‘뒤로 빼는 건 무리다. 내가 저 액체를 가를 수 있을까?’
그는 많은 의문을 떠올렸다.
드래곤이 뿜어낸 독액.
과연 자신이 독액을 베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검으로 앞을 가르려는 찰나.
긴 머리를 한 여자가 나타났다.
“생각이 너무 길어요.”
그녀가 대뜸 말하더니 냉기가 가득한 검을 내리그었다.
그녀의 검에 독액이 닿자.
쩌어억!
두 갈래로 갈라진 독액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얼음 덩어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아가씨!”
한지유의 등장에 소천대주가 반갑게 불렀다.
“대주님은 소천대를 정비하세요.”
그녀가 땅을 박찼다.
하늘로 뛰어오른 그녀의 검에 지독한 냉기가 맺혔다.
“빙백검.”
새하얀 검기가 허공에 뿌려졌다.
강렬한 예기가 날아오는 느낀 건지.
드래곤이 한지유를 향해 구체를 토해냈다.
하얀 검기와 초록색 구체가 닿았다.
거대한 폭음이 들려올 줄 알았건만.
예상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푸확-
하얀 검기가 초록 구체를 뚫고 드래곤을 스쳐 지나갔다.
검기가 스친 부위가 얼어붙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드래곤이 분노했다.
꼬리를 휘둘러 쇄도하는 한지유를 향해 휘둘렀다.
드래곤 테일.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꼬리에 마력이 담긴 공격.
가볍게 생각하고 막았다간 뼈란 뼈는 모조리 박살 날 수도 있었다.
한지유는 허공을 밟아 한 번 더 도약했다.
드래곤 테일이 그녀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세 번은 없다!”
화가 잔뜩 난 드래곤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앞서 펼친 공격보다 더 큰 공격을 준비하는 것.
드래곤의 몸이 초록빛으로 감싸였다.
몸을 뒤로 한껏 젖힌 녀석이 브레스를 뿜으려는 순간!
녀석의 가슴에 난 비닐 앞에서 수십 갈래의 빛이 반짝였다.
척-
어느새 뒤편 건물에 내려앉은 한지유.
검을 검집에 넣고 있었다.
“복마제령삼초식. 빙류천검.”
그녀의 짧은 음성이 끝나자.
드래곤의 역린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얼마나 단단하게 얼었는지.
쾅!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얼음조각 하나 깨지지 않았다.
* * *
“내가 안 나서도 됐네.”
이준이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지유가 먼저 나서서 드래곤을 처치했다.
4차 전생 각성을 한 덕분에 보일 수 있는 무력이었다.
그가 흐뭇해하는데 옆에선 경악했다.
“어, 어떻게!?”
그리에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광경.
인간이 용신족을 이겼다.
인간화인 폴리모프는 안 했으나.
압도적인 강함을 뽐내며 인간 여자가 이겼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독룡족은 꽤 강한 용신족인데….”
녹룡족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전혀 다른 드래곤.
독룡족은 흑룡족과 같이 소수였다.
그만큼 강한 힘을 가졌다.
한데 그 독룡종이 인간 여자에게 죽은 것이다.
“구천옥의 죄인도 상대해본 애야. 용신족이라도 지유를 이기는 건 이제 힘들겠네.”
구주가 아니라도 구천옥의 죄인들은 현경에서 생사경에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단련이 된 한지유였다.
용신족은 지옥계의 아래에 있는 계층.
용신족이 강하다 하더라도 지금의 한지유를 상대하기에는 힘들었다.
물론 일대일로 상대할 때의 이야기.
물량으로 덤비면 한지유도 용신족을 상대로 이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할 터다.
“좋으시죠?”
이준이 뒤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얼굴이 미소가 활짝 핀 신기학사 한지웅이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게 파천제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아시면 사신가에서 만든 활력탕 많이 이용해주세요.”
“안 그래도 민성이한테 이야기했습니다.”
“뭐를요?”
“각사학에도 활력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말입니다. 사신가에서 계약만 해주면 당장이라도 각사학에서 활력탕을 전량 매입할 겁니다.”
“거래 감사합니다, 고객님.”
이준의 행동에 삼두가 고개를 저었다.
[저 돈벌레.]
[주인님 욕하지 마.]
[돈이라면 적과도 손을 잡을 녀석이다.]
[주인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삼두의 욕에 파랑이가 소리쳤다.
한데 파랑이의 목소리가 상당히 흔들렸다.
이에 삼두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크크. 너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군.]
[아, 아닌데?]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해.]
[아니라고 멍청아!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파랑이가 이준의 주머니로 몸을 숨겼다.
삼두는 계속해서 파랑이를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녀석들의 대화를 무시했다.
활력탕이 각사학에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엄청난 돈이 사신가로 들어올 예정.
돈은 많을수록 좋았다.
“늦었어. 이준.”
그가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사이.
한지유가 다가왔다.
“많이 강해졌다?”
“널 따라가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건 무리야.”
“주둥이 얼어붙게 해줄까?”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겠네.”
이준의 농담에도 한지유는 웃지 않았다.
찬바람만 쌩쌩.
전생각성으로 인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복마심법때문에 그런 건지.
예전의 한지유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그 전보다 더욱 감정이 무뎌진 게 보였다.
[지유다!]
물론 안 변한 건 있었다.
이준의 주머니에서 나온 파랑이가 지유의 품에 쏙 들어갔다.
“잘 있었어?”
[응. 오랜만이지?]
“그러네.”
동물, 그것도 파랑이를 좋아하는 건 안 변했다.
그녀가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뒤편에 있는 어른들에게 가서 인사했다.
“검제 님과 괴개 님 그리고 가주님을 뵈어요.”
“허허.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졌구나. 이젠 나도 상대가 안 되겠어.”
박춘식이 극찬을 했다.
이준이 가주 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 드래곤.
그런 용신족을 가볍게 처치한 한지유였다.
이건 칭찬으로도 모자랐다.
“과찬이세요.”
“겸손까지. 신기가주는 아주 든든하겠어.”
한지웅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이준이 경고한 용신족을 딸이 잡았다.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젠 신기지가가 식객들에게 휘둘릴 일도 없을 터.
제대로 된 가주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게 됐다.
검제를 비롯한 가주들이 한지웅을 부러워하는 사이.
한지유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리에스를 보며 말했다.
“네 뒤에 있는 여자는 누구야?”
그녀의 목소리는 유독 차가웠다.
* * *
그리에스가 한지유를 유심히 살폈다.
‘강… 해.’
가까이서 보니 강렬했다.
단순히 강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빙속성 계열이야.’
빙속성 계열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깨끗하고 맑았다.
기운에 불순물이 하나도 없었다.
‘이준을 뺀 인간들은 나약하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예상외의 강자가 존재했다.
눈앞에 있는 여자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 힘을 지녔다.
혼란스러운 상황.
‘어쩌면 용신족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서도 희망이 떠올랐다.
용신족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그리에스라고 용신족이야. 어떠한 사정으로 인계에 떨어졌어.”
이준이 한지유에게 그리에스를 소개하려는데.
“아!”
그리에스가 무언가 잇고 있었다는 듯 화들짝 놀라 했다.
“이준, 어서 독룡족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
“응?”
“저기 얼어붙은 녀석 말이야. 기운을 소멸시켜야 해. 안 그러면 용신족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네가 나타나서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나 혼자랑 다른 용신족이 또 인계에 나타났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어서 소멸시켜!”
그리에스의 반응에 이준이 얼어붙은 독룡족 드래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으로 기운이 빨려 들어왔다.
얼음이 녹으며 그 안에 있던 드래곤이 뼈만 남은 채 사라졌다.
“휴. 다행이다.”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숨을 돌린 그리에스에게 물었다.
“독룡족이 인계에 나타났다는 걸 이미 천계가 알지 않을까?”
“모를 거야. 그란투스 대륙이나 네 군주가 있는 용신족의 힘은 몰라도 독룡족같은 군주가 없는 용신족의 힘은 천계가 느끼는 데 한계가 있어.”
“하긴. 여기는 신선계나 지옥계가 담당하지?”
천계의 힘이 미치지 못한 곳.
만약 천계가 한국을 엿보려 한다면 신선계와 지옥계에 대한 월권이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을 엿보는 건 큰일.
전쟁의 명분이 된다.
그 때문에 천계는 사도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었다.
그리에스가 한국에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모두 사도로 인해서였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천계는 자신들의 힘을 되찾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려 할 거야.”
“불가능할걸?”
“네가 강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천계야.”
“내가 강해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닌데.”
“그럼?”
“내 사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자기 영역 침범하는 걸 가장 싫어하시는 분이거든. 천계가 이곳을 침공한다? 그때는 천계가 끝장나는 날이야.”
용신족이 쳐들어오는 것만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용계는 중간계이면서도 아닌, 그 위 층계에 있는 곳.
신계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계와 천계는 명백히 신계에 속했다.
두 층계가 신선계의 영역을 넘본다면 깽판 칠 명분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부의 성질이라면 천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터.
이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천계가 사도를 이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우린 용신족이랑 천계의 사도들만 막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