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1화
지옥계 사자서각.
관리자들은 굉장히 분주해 보였다.
“각주님, 사일검군 위지형의 전생서가 빛났습니다.”
“무영존 신소임의 전생서도 빛나고 있습니다.”
“빨간색 전생서에 당문의 12대 가주 당민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하. 또냐?”
사자서각의 관리자, 사자각주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사자서각에 보관된 전생서가 하나, 둘씩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인계의 각성자가 큰 깨달음을 얻어 전생 각성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데 그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사자서각에 보관된 전생서만 해도 수십억종.
굉장히 방대한 양이 보관되어 있었다.
저중에 끝까지 빛나지 않은 전생서가 수두룩 했다.
각주가 되고나서도 전생서가 빛난 걸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하루에 수십 종의 전생서가 빛나고 있었다.
일반 이나 희귀 등급이면 차라리 낫다.
하필 특급으로 분류된 전생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주니이이임! 큰일 났습니다!”
“뭐냐!”
“저, 전생서가 펼쳐졌습니다!”
사자각주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해? 고작 그딴 걸로 호들갑을 떤단 말이냐!”
그가 신입으로 보이는 관리자에게 버럭 소리쳤다.
안 그래도 특급 전생서가 빛을 보이는 바람에 머리가 지근거리는데 신입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딴 게 아닙니다! 검은 전생서예요!”
“뭐어어!?”
신입 관리자의 말에 사자각주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보고를 하러 오는 각원도.
자리로 돌아가는 각원도.
분주히 바쁘게 움직이는 모든 각원들도 하는 행동을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모두 신입 각원을 보았다.
“어, 어디 서각이냐.”
“무…각입니다.”
“무각이면 일반 전생서가 있는 곳 아니냐! 거기서 갑각에 있어야 할 검은 전생서가 나오다니!”
“저, 저도 왜 무각에서 갑각의 전생서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자서각은 방대한 전생서가 있는 만큼 구역도 확실하게 나눴다.
일반 전생서는 무각.
희귀 전생서는 정각.
특급 전생서는 병각.
전설 전생서는 을각.
봉인 전생서는 갑각이었다.
검은 전생서는 각주가 관리해야 할 책.
무각에 있으면 안 됐다.
“안내해라!”
“예!”
사자각주는 신입 각원과 함께 무각으로 향했다.
깔끔히 정리된 책 중 하나가 꽂혀 있었다.
“정말… 봉인 전생서구나!”
그 책은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사악한 기운.
계속 보고 있자니 정신을 뺏길 것만 같았다.
사자각주가 신입 각원에게 물었다.
“전생서에 적힌 글귀를 보았더냐.”
“예.”
“뭐라고 쓰여 있었지?”
현재는 검은 기운으로 인해 전생서의 글귀가 보이지 않았다.
안력을 최대한 높여 보았으나 어림없었다.
“암흑대공이라 쓰였습니다.”
“다른 말은?”
“그게 끝입니다.”
사자각주가 인상을 피지 못한 채 봉인 전생서를 보고 있었는데.
툭-
검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던 책이 아래로 떨어졌다.
언제 빛을 내보냈냐는 듯.
지금은 잠잠했다.
사자각주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책을 주웠다.
“네 말대로야.”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도 모른다.”
그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봉인 전생서는 딱 한 번 펼쳐진 걸 봤다.
신살룡 왕휘가 깨어났을 때 이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내가 갑각으로 가져가겠다. 너흰 일반 전생서 속에 섞여 있는 다른 분류의 전생서가 있는지 다시 찾아봐라.”
“헉! 이 많은 걸 말입니까?”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잔말 말고 해.”
“네!”
신입 각원은 죽었다는 표정과 함께 일반 전생서를 다시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 * *
갑각으로 돌아온 각주가 검은 전생서를 펼쳐 보았다.
[암흑대공.]
신입 각원 말대로 이명밖에 쓰여 있지 않았다.
이름도 없었다.
“이건 천계나 마계에서나 쓰는 이명인데 왜 이게 우리 쪽에 있는 거지?”
그는 의아해했다.
사자서각에 보관된 건 모두 동양의 이명이었다.
무림이나 동영, 해동쪽이 전부.
서양, 즉 그란투스 대륙의 이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각주가 의구심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번쩍!
그가 있는 주변이 빛으로 감싸였다.
그리고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뭐냐.”
그가 두리번거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한 권의 책이 나타났다.
“헉!”
갑각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생서.
파천제 이준의 전생서가 다시 나타났다.
“저, 저게 왜!?”
그가 놀라는 사이.
손에 들려 있던 전생서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억!”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검은 전생서를 놓쳤다.
검은 연기는 파천제 이준의 전생서로 빨려 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각주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검은 전생서가 이준의 전생서로 흡수되는 걸 지켜보아야만 했다.
“검은 전생서가 사라졌어?”
봉인급 전생서가 이준의 전생서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고려-
[파천혈신의 태어나지 못한 아들 설진.]
-그란투스 대륙-
[암흑대공]
“어떻게 된 거지?”
사자각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용이 바뀌었다.
짧게 한 줄밖에 쓰여있지 않았던 전생서에 새로운 내용이 쓰였다.
봉인급 전생서에 있던 내용이 옮겨진 것.
이제야 심각함을 느낀 그였다.
“대왕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는 사자서각을 나오자마자 염라전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대왕! 큰일 났사옵니다!”
사자서각의 각주를 본 염라대왕이 새로 맞춘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렸다.
“한창 바쁜 사자서각주 아니냐.”
염라대왕은 요즘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었다.
각성자의 전생 각성.
인과율은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그동안 깨져 있던 인과율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각성자의 전생 각성이 끝나면 무너진 균형이 정상으로 돌아올 터.
그때까지만 참으면 됐다.
“그래 무슨 큰일이기에 바쁜 사자서각주께서 이리 급히 본왕을 찾았는고?”
“이준의 전생서로 봉인급 전생서가 흡수되었습니다.”
“…잘못 들은 것 같다. 다시 말해보겠느냐.”
“이준의 전생서로 봉인급 전생서가 흡수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염라대왕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렇사옵니다. 혹, 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사자서각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염라대왕의 표정을 살펴볼 때 무언가 아는 표정이랄까.
“사자서각으로 가자.”
그는 각주를 데리고 사자서각으로 왔다.
감쪽같이 변한 공간이었다.
염라대왕은 여전히 허공에서 빛나는 전생서를 보았다.
“으음….”
그리고 침음을 삼켰다.
이준의 전생서에 쓰여 있는 ‘암흑대공’이라는 네 글자를 본 것이다.
“이건 예상 못 했구나.”
“혹시 이준의 빈 시간인지…?”
“용케도 알아냈군.”
“대왕께서 설명해주신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무언가 구멍이 난 듯했습니다.”
인과율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사자서각의 각주에게 이준에 대해 이야기 했다.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그에게 회귀의 기회를 준 것.
그 때문에 왕의 권한을 사용했다는 것도 말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왕의 권한을 정확히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말이다.
‘천극자가 여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안 했지.’
천극자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이준으로 태어나기 전,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능구렁이 같지만 그래도 경우를 아는 놈이었긴 해.’
이 사실을 제자인 설극에게 알렸다면 지옥계는 쑥대밭이 되고도 남았을 터다.
“암흑대공은… 이준 전생의 이명이다.”
태어나지 못한 자식을 환생시켜준 건 고맙겠지만 어느 누가 자식이 고생했으면 하나.
현재의 이준도 개고생했지만.
이번 생 말고 다른 이름으로 태어난 생도 어지간히 고생했다.
결국 얻은 이명이 암흑대공.
설극 못지않게 피의 길을 걸었다.
“역시! 구멍 난 부분이 바로 다른 전생이었군요.”
사자각주가 이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대왕께서 왕의 권한을 사용한 시기가 이때였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왕의 권한.
4대 신계의 왕이 되면 즉위 동안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다.
염라대왕은 이준을 회귀시키는 데 왕의 권한을 사용했다.
‘내가 왕의 권한을 사용한 정확한 내용은 인생의 한 번. 다시 살 기회를 준 것이다.’
어떤 이름으로 태어나든.
죽기 직전.
의지에 따라 회귀할 수도.
환생할 수도.
빙의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정말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어야 했다.
이게 염라대왕이 사용한 왕의 권한이었다.
이준에게는 엄청난 특권.
지옥계의 인과율에도 속하지 않은 혜택이었다.
오히려 설극은 염라대왕에게 고마워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나게 파격적으로 왕의 권한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 내가 사용한 권능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자각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왕의 권한을 사용한 부작용.
처음 듣는 소리였다.
“권능이 발현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긴다. 오히려 인과율이 어그러지지.”
“왕의 권능은 인과율에서 완전히 제외되지 않은 겁니까?”
“제외되진 않는다. 다만 눈에 안 보일 뿐이지. 부작용을 해소시키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과연 그럴까?”
“예?”
“이 또한 이준이 겪어야 할 시련일 터. 천계에 대한 감시를 늘려야 하겠구나.”
“천계는 왜?”
“천계 쪽에서 이명을 돌려받으려 할 것이다. 암흑대공이 가진 무게는 지금 이준의 무게와 비슷해.”
“헉! 그 정도입니까.”
“용계와도 연관이 있으니 그럴 게다. 암흑대공의 기운만이 사라진 용계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용계.
죽은 용족의 낙원.
4대 신계에는 못 들지만,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층계였다.
천계가 꼭 찾아야 하는 종족.
용계가 있어야지만 천계는 잃어버린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 * *
푸확-
허공에 피가 비산 했다.
몬스터가 이준에게 달려들었으나.
닿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는 부산에 있는 암상의 경매장을 찾았다.
그때 게이트가 열린 것.
다른 각성자에게 맡기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머저리 같은 몬스터가 이준을 공격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인과율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몬스터도 그만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안 그래 삼두야?”
[인과율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지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복잡하네. 근데 쟤들은 왜 자꾸 덤비는 거야.”
[공포에 질린 모습이군.]
“그렇다고 날 공격해? 열받네. 파랑아. 우리 얕보인 것 같아.”
이준의 어깨에 앉아 있는 파랑이가 작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주인 걱정하지 마. 내가 기강을 세게 잡을게.]
[몬스터가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
[주인한테.]
[이상한 말 좀 배우지 마!]
이준과 붙어 다니더니.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파랑이였다.
작고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말은 꼰대.
특히 자기보다 약한 몬스터에게는 자비가 없을 정도로 권위를 세웠다.
[주인 말이 편한데 왜 그래.]
[너랑 어울리지 않아.]
[아니야!]
파랑이가 빽 소리 지르곤 이준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여전히 공포에 질려 달려오는 몬스터가 보였다.
파랑이를 녀석들을 향해 작은 입을 벌렸다.
[모두 얼어붙어!]
파랑이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지독한 냉기.
주변을 겨울왕국으로 만들어버릴 기세였다.
“응?”
그러던 그때였다.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거대한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드래곤?”
청룡과는 다른 생김새를 가진 몬스터.
위엄 가득하게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이 이준과 눈이 마주치자.
쿠웅!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준이 손을 휘젓자 먼지가 사라졌다.
“얘는 또 뭐냐.”
그런데 먼지와 함께 드래곤도 없어졌다.
대신 그 자리에 여자아이가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