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4화
미국 하늘을 덮은 검은 안개에 정부가 놀랐다.
미국 최강의 가문이 무너졌다.
마계수로 인해.
미국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권력자들은 국민들도 버린 채 제 살길을 찾았다.
미국 상공을 덮은 마기로 인해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
권력자들은 인맥을 이용해 미국을 빠져나갔다.
권력자들의 부재로 인해 공백이 생긴 미국.
국민들은 이에 분노를 터트렸다.
제스퍼 가문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도망치는 건 제일 빠르다며 말이다.
각 나라의 커뮤니티가 떠들썩했다.
최강국이라 여긴 미국의 붕괴.
이로 인해 전세계인이 불안해 떨었다.
도망치지 못한 채 자기 집에서 불안감에 떨던 미국인들이 세계 각성자 커뮤니티에 상황을 알렸다.
[곧 종말이 올 듯. 모두 수고. 먼저 간다.]
[장난하지 마.]
[진짜임. 제스퍼 가문 근처가 우리 집인데 지금 세계수가에서 열매가 터지고 있음.]
[나도 봄. 근데 그건 일부에 불과함. 게이트에서 머리에 뿔 달린 악마가 나옴. 인간 같아 보이긴 한데 분명 악마가 확실함.]
[게라간 아니야?]
[ㄴㄴ. 게라간과는 아예 다름.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임.]
[누가 찍은 영상 없냐. 말로만 들으니까 도통 감이 안 오네.]
모두가 동의했다.
미국인들만 불안에 떨 뿐.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는 아직까지 감흥이 없었다.
그들의 나라는 아직까지 평화로웠으니까.
[있어 봐. 내가 정부에서 해킹한 자료 푼다. 모두 겁먹지 말고 이 동영상 뿌려서 도움 좀 줘.]
[제스퍼 가문 위성 사진.jpg]
[미국 탈출 계획서.pdf]
[마계수.avi]
세 개의 자료가 업로드됐다.
사람들은 제스퍼 가문의 위성 사진부터 클릭했다.
대각성자 전용으로 만들어진 위성이라 그런지.
검은 연기에 가려진 제스퍼 가문이 훤히 보였다.
[뭐냐. 이건?]
[왜 제스퍼 가주가 게이트에서 나온 놈과 인사를 하고 있어?]
[뭔 상황이지?]
이 자료를 해킹한 사람이 대신 답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봤는데 정황상 제스퍼 가주가 저 악마들과 손을 잡은 것 같아. 마계수를 피운 사람도 제스퍼 가주고.]
제스퍼 가주가 미국을 배신했다는 말을 하자.
미국 국민들이 화를 내며 믿지 않았다.
[ㅈㄹ. 제스퍼 가주가 왜 그런 짓거리를 해.]
[그는 미국의 영웅이야. 우리의 영웅을 모욕하지마.]
[제스퍼 가주님은 우릴 버릴 분이 아님.]
[그럼 두 번째 자료는 건너 뛰고 동영상부터 봐.]
미국인들은 이 자료를 믿지 않은 채 세 번째 동영상을 열었다.
동영상은 멀리서 찍었는지 흐릿했다.
하나 그 영상에 나온 노인이 제스퍼 가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마계수에서 나온 세 남자와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이후로 마계수의 열매가 바닥으로 떨어져 대지를 오염을 시켰다.
[지, 진짜 배신을 한 거야?]
[제스퍼 가주가 왜?]
[그럴 리 없어….]
영상을 본 미국인들이 더욱 패닉에 빠졌다.
믿었던 이의 배신은 큰 충격이었다.
[악마한테 홀렸을 수도.]
[ㅇㅈ. 그거 때문에 한국도 난리 났잖아.]
[다행히 초기 대응으로 피해는 적었지만 각사학 학생들하고 교수들 꽤 죽었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ㅇㅇ. 이제는 일반 몬스터가 문제가 아니야. 카오스, 악마들이 문제지.]
한국인들의 말에 모두가 심란해졌다.
[점점 어려워지네.]
[정말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
[정신 차려. 충격에 빠져 있을 시간 없음. 이대로 다 죽을 거야? 너희 권력자들은 이미 유럽으로 도망쳤잖아. 너희도 살길을 알아봐야지.]
[맞아. 아직 희망은 있어. 유럽 마법사 협회에 메일을 보내 볼게.]
유럽의 대형 커뮤니티 운영자가 대답했다.
그는 각성자.
강하진 않았으나 영향력이 꽤 있었다.
그의 건의라면 유럽 마법사 협회도 생각을 해 볼 것이다.
한국인 또한 나섰다.
그들은 유럽 커뮤니티 운영자처럼 영향력은 없으나 일단 나섰다.
그 옛날 15가문 연맹회처럼 오대가문과 마벽은 말이 통했다.
미국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적어도 지원병은 파견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파천자는 유럽도 구원한 일도 있었다.
파천자라면 적어도 미국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 한국의 오대가문과 마벽에 찾아가서 도와주라고 요청함. 같이 갈 사람?]
[나.]
[각사학 앞에서 보자고.]
그러던 그때.
희망 같은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파천자님 이미 미국으로 감.]
[응?]
[뭐?]
[벌써?]
[우리가 아는 사실을 파천자님이 모를 것 같음? 스페인처럼 진작 도우러 가신 듯.]
[와…]
[역시 세계 랭킹 1위의 각성자.]
[그런데 혼자 간 건 아니지?]
[그것까진 모름. 아무튼 미국인들은 희망을 버리지 마셈. 파천자님만 믿으면 적어도 미국이 망하는 일은 없음.]
[킹정.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지. 일처리는 존나 깔끔해.]
파천자가 미국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미국인들은 불안했다.
아직 미국은 이준을 직접 만나보지 못해서 그가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강해봤자 제스퍼 가주와 얼마 차이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나 이준을 제스퍼 가주와 비교하는 건 그를 업신여기는 일.
의주가 빙의하지 않은 제스퍼 가주는 한지유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 * *
“이상한데…”
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뒤에서 싸움을 지켜봤는데 마왕은 마치 신선과 야차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마계 군단을 내보냈다.
신선과 야차, 나찰이 마계 군단보다 강하긴 하지만 마계 입장에선 허무한 전력 낭비였다.
“삼두야!”
이준은 오랜만에 나타난 삼두를 불렀다.
삼두는 입에서 지옥의 화염을 뿜어내며 몬스터를 녹이고 있었다.
[싸움 중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이냐.]
“너무 쉽게 몬스터랑 하급 마족을 내어주고 있잖아.”
[우리가 강한 것이다.]
“내가 봤을 땐 저쪽에서 숨기는 게 있을 것 같아.”
이준의 말에 삼두가 거대한 발톱으로 마족을 할퀴면서 마주 쪽을 눈여겨봤다.
“존나 찜찜해.”
마족의 곁엔 마왕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과 야차가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마왕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정도의 전력으로 마족이 밀린다면 애초에 마계는 천계나 인계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을 터다.
신선과 야차가 강하더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알아봐야겠어. 지금이 기회기도 하고.”
이준은 이 찜찜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마주가 멍청이었다면 몰라도 그녀는 구천옥에서 억겁의 세월을 견딘 강자.
그녀가 애꿎게 마계 군단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선들과 야차, 나찰이 한창 싸움에 집중하고 있을 때가 자신이 나설 기회였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준도 전장에 들어섰다.
그의 눈은 주경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부님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 사부님이 아닌 내가 쓰러트려야만 해.’
다시 한번 무극자 사부가 슬픔에 잠기게 할 순 없었다.
제 손으로 연인을 죽인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녀를 보기 위해 목숨을 끊어줄 제자를 키운 사부였다.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또다시 옛 비극이 재연될지 모른다.
그것만은 꼭 막고 싶었다.
‘사부님이 없을 때가 기회겠지?’
이준이 쓰게 웃었다.
예전부터 꾸준히 생각했다.
마왕이 된 주경아를 만나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필패.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자연경과 탈신경의 차이였다.
괜히 신들의 왕이란 위치에 있을까.
주경아는 마계의 왕인 마왕이 됐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딱 하나의 방법.
이 방법이라면 주경아를 이길 수 있었다.
아니, 확실했다.
대신…
‘사부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사라진다 해도.’
자신을 잃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강자로 산 2년가량 무지 행복했다.
약자로 살았던 때보다 말이다.
이 모든 게 사부가 베풀어 준 은혜 때문.
무극자 사부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회귀를 했어도 똑같이 어정쩡한 각성자로 살았을 터다.
각성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혈족 계승이었으니까.
무극자 사부가 내공심법을 초기화시켜주고 혼원신공이라는 희대의 무공을 준 덕분에 강해진 거다.
이걸 알기에 무극자 사부께 은혜를 갚고 싶었다.
‘사부님. 이제 제 차례예요.’
이준은 처음부터 심장의 마력.
혼돈의 기운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들썩였다.
혼돈의 기운을 이용해 잠들어 있던 자를 건드렸다.
‘일어나.’
이준에게 신뢰를 잃었던 천살성이 서서히 눈을 떴다.
[나를 스스로 깨워? 네게 분명 경고 했을 텐데.]
'그래서 깨운 거야. 넌 내가 항상 위에 있길 원했잖아.’
[그랬지. 하지만 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건 미안해. 변명하지 않을게. 대신 네가 항상 위에 있게 해줘.’
[너와의 거래는 끝났다. 내가 다시 눈을 뜬 순간 나 대신 네가 심연으로 가라앉을 거라 했다.]
‘그래서 나도 고민 많이 했어. 그런데 도저히 이 방법밖에 없단 말이야.’
이준은 눈앞의 여자를 보며 말했다.
천살성도 주경아를 보았다.
[저 여자…]
‘무극자 사부님이 죽으면서까지 보고 싶고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사부를 위해서 네 자아도 포기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그러려고.”
[아쉽지 않겠나? 시간은 네 편이다. 힘을 키운다면 저 여자는 네 손으로 죽일 수 있어. 네게는 각성자 시스템이 있지 않느냐.]
이준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사부님한테 은혜를 갚을 기회가 없어.’
[다시 한번 말하겠다. 네게는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검은 군주 파르가의 숨결이 있다. 고작 1성이지. 혼원신공과 매우 흡사한. 아니지. 결이 같은 호흡법이라 금방 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선택할 것이냐.]
'말했잖아. 지금 아니면 널 부르지 못할 거야.’
[정말 멍청한 놈이군.]
‘나도 시간만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
시간이 충분했다면 천살성을 부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에게 시간이 없었다.
언제나 사부가 지켜봤으니까.
지금은 잠시 연락이 안 닿은 상태라 지금이 적기였다.
[너를 보고 있자면 왜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는지 모르겠다.]
천살성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기이한 감정이었다.
예전에도 이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달까.
누군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태산 같은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졌다.
그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연기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울컥했다.
천살성으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무슨 감정인데?’
[알 것 없다.]
천살성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다.
‘네가 말하기 싫다면 그만 물어볼게. 이제 이야기를 끝내자. 시간이 없어. 사부님이 눈치챌지도 몰라.’
[그렇게 사부가 좋으냐.]
‘응. 내게는 부모 같은 분이니까.’
이준의 음성에는 믿음이 가득했다.
그 어떤 부모와 자식 간도 이렇듯 유대감이 깊진 못할 것이다.
사제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이준과 무극자는 서로를 생각하는 게 너무도 깊었다.
서로 목숨을 버릴 만큼 말이다.
‘내 부탁을 들어줘. 네가 저분을 이겨줬으면 해.’
이준이 천살성을 재촉했다.
천살성은 대답이 없었다.
점점 흐르는 시간.
이준이 다시 입을 열려는 그때.
천살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란 놈은 정말 싫다.]
‘왜?’
[나 같아서.]
‘나는 너고, 너는 나야.’
이준과 천살성이 말한 뜻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 차이를 두 사람은 모를 뿐이었다.
[저 여자를 이기고 싶다면 네가 직접 해라. 마지막으로 힘을 빌려 주마. 두 번은 없으니 잘해라.]
천살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시지가 떴다.
[천살성과 동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