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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573화 (573/705)

제556화

신계의 율법은 지엄했다.

신계의 왕도 이를 어기면 안 됐다.

만약 율법을 어길 시 크나큰 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벌인지는 알지 못했다.

여태껏 신계의 율법을 어긴 왕은 없었으니까.

“당신은 신선제이며 저희는 신선제를 섬기는 신하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인계로의 강림만은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신선들이 극구 반대하며 나섰다.

고위 신선부터 하위 신선까지.

줄을 이어서 읍소했다.

“신계의 율법을 어기시면 크나큰 벌을 받으실 겁니다.”

“신선제가 율법을 어겨 벌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신선계의 체면을 살려 주십시오, 신선제여.”

그러나 신선들의 조아림은 설극에게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애초에 신선제라는 것도 사부인 천극자로 인해 앉은 것.

신선계를 아끼거나 하는 소중한 마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놈이 본좌에게 벌을 내린단 말이냐. 나 설극에게 말이다.”

설극의 낮은 음성이 신선경에 울려 퍼졌다.

화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나 신선경의 잔잔한 호수가 파도치며 해일을 만드는 게 아닌가.

그 무거운 호숫물이.

설극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자연경 끝자락에 오른 신선도 저 호숫물을 일렁이게 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말해 보라. 본좌에게 누가 벌을 내린단 말이냐. 천계왕? 아니면 염왕? 그도 아니면 마계왕이냐.”

“그것이….”

“똑바로 말해야 할 것이다.”

신선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상대는 파천혈신.

신선계의 폭군이자 왕이었다.

심기를 거스르는 말은 삼가야 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 본좌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굉장히 광오한 말이었다.

누구도 머리 위에 올려 두지 않는 다는 걸 뜻했다.

자신이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본좌가 인계로 강림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모든 건 본좌의 뜻에 달렸다. 알겠느냐.”

“하오나…!”

최상위 신선은 말을 하다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설극의 눈을 마주하자 머리가 하얘졌다.

백지가 된 듯.

말하려던 내용이 지워졌다.

그리고 그 백지를 검은 색감이 가득 채웠다.

검은 색감은 바로 두려움.

공포였다.

그냥 보아도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

한데 마주 보니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감히 고개를 쳐들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는 이곳에 모인 모든 신선이 느낀 바였다.

신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파천혈신의 앞을 가로막은 것도 큰 용기.

신선들은 할 만큼 했다.

“잘 생각했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그 주둥이를 뭉개 버릴 것이다.”

설극은 이준이 위험해 보이자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강림을 못 하게 계속 막는다면 눈앞의 신선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서라도 강림할 인물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이준은 소중한 제자였다.

사부가 신선제인데 죽을 위기에 처한 제자도 못 구하나. 라는 게 설극의 생각이었다.

“비켜라.”

그가 걸음을 옮겼다.

신선경 중앙 호수.

신선제의 자리만큼 큰 연꽃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설극이 무리 없이 중앙 연꽃으로 가는데.

“죽어도 못 보냅니다.”

그의 앞을 뇌문이 여신선, 연아린이 막아섰다.

“네 언니와 동생도 죽을 수 있다.”

“그 또한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본좌라면 살릴 수 있다.”

“저 또한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신계의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신계의 율법을 어기고 살아남은 이들은 없었다.

그 누가 벌을 내리는지는 모르나.

율법을 어기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대왕의 직속이 움직였다.

왕이 어겨도 똑같을 것이다.

다른 왕의 직속 부대가 움직일 터.

그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거다.

신계 대전이 말이다.

“상관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을 죽이면 그만이다.”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설극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찍어 누르면 되니까.

“신선제의 지위가 박탈될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바이다.”

“어쩌면 저희가 당신을 공격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 또한 상관없다.”

거의 벽창호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설극이었다.

연아린은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당신이 신선제에 앉은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

그제야 설극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신선제에 앉은 이유는 오직 주경아 때문이었다.

구천옥을 탈출한 마주.

그녀로 인해 지옥계가 혼란에 빠졌다.

재위 동안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왕의 권한을 써서 그녀를 구해 줄 생각으로 신선제에 앉은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신선제 자리에서 박탈당하시면 그녀를 구하지 못할 겁니다.”

연아린이 주경아를 강조하며 말했다.

그러자 설극도 더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아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

4대 성지의 금역.

청룡이 제 영역으로 돌아오자 흑염마조와 현무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게이트에 놔두고 왔다.]

[뭐라고!?]

흑염마조의 눈이 동그래졌다.

[미친놈 아니냐! 보호하라고 보내 놨더니 아이들을 놓고 와?]

[나보다 더한 녀석이 저기에 있었어.]

현무까지 청룡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본좌라도 가 봐야겠다. 네놈은 나중에 작은 주인한테 뒤질 준비나 하거라.]

흑염마조가 성화를 보이며 거대화하려 하는데 청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 필요 없다. 이준이 나타났어.]

[작은 주인이?]

[기운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나타났다. 마치 폭주하고 간신히 제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더욱 위험한 게 아니냐.]

[청룡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조차도 짐작이 안 가.]

흑염마조는 펄쩍 뛰었고, 현무는 지그시 청룡을 보았다.

아이들을 선유도 게이트에 버리고 올 거면 굳이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강제로 이동시키면 됐으니까.

사신수라 그 정도 능력은 되었다.

한데 청룡은 아이들과 같이 게이트로 갔다.

그것도 꽤 시간을 보낸 후 돌아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복귀를 한 걸까.

현무가 고심한 끝에 입을 열었다.

[아이들을 그쪽에 놔두고 온 이유가 있지?]

[마계의 문이 열릴 듯싶다.]

청룡의 말에 흑염마조가 화들짝 놀랐다.

[뭐!? 마계의 문이 열릴 거란 징후는 없었다.]

[우리의 영역이 아니니까 못 느꼈겠지.]

[어느 나라냐.]

흑염마조가 다급하게 물었다.

현무도 옆에서 조용히 청룡의 입을 바라봤다.

[게이트다.]

[응?]

[게이트라니?]

흑염마조와 현무가 동시에 물었다.

청룡이 애매하게 말했다고 여겨 다시 물어보려 했다.

[게이트가 바로 마계의 문이다.]

[설마… 우리가 가진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냐.]

[우리의 영역을 뺀 나머지라 할 수 있다.]

[그럼 더욱 아이들을 놔두고 오면 안 되지!]

흑염마조의 버럭에 현무가 말했다.

[아이들을 그곳에 놔두고 온 이유가 있구나?]

청룡이 순순히 대답했다.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 선유도 게이트에서 천기를 읽었다.]

[말도 안 돼. 천기는 오행이 무너질 때나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았냐!]

[이미 오행은 무너졌다. 서쪽 지역을 봐라. 백호의 부재로 인해 얼음 지역이 됐다.]

[주작! 중간에 끊어 먹지 마. 청룡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현무가 흑염마조를 나무랐다.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었다.

청룡이 어떤 천기를 보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악마의 출연. 세상이 암흑으로 물들 것이다. 악마를 막을 방법은….]

[방법은?]

[그 대악마를 출현시키는 것밖에 없다.]

[악마와 대악마는 동일 인물인가?]

현무의 질문에 청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른 자다.]

[악마를 막기 위해 대악마를 출현시킨다… 미친 짓이군. 하나만 묻자. 어느 쪽이 더 위험하지? 악마냐 대악마냐.]

[악마가 더 위험하다. 놈은 인계와 신계를 통합하려 할 것이다.]

[웃기는군. 대악마보다 악마가 위험하다니.]

현무가 코웃음을 치고 있을 때 흑염마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대악마가 내 큰 주인을 말하는 거냐? 아이들과 작은 주인은 대악마를 불러올 수단이고?]

흑염마조가 성화를 태웠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청룡은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헛짚었다. 대악마는 파천혈신이 아니다. 다만 파천혈신과 연관은 있다. 어쩌면… 이준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군. 나도 그 부분은 염라대왕한테 물어볼 생각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이들 역시 악마와의 싸움에서 꼭 필요해. 지금 이 위기에서 전생을 각성하지 않으면 악마와의 싸움에서 필패할 거라 보고 있다.]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서 각성시킬 생각이었군.]

[처절한 싸움 속에서 피는 꽃이야말로 끈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지.]

[꽃이 피어나기도 전에 질 수도 있다.]

현무의 가시 돋친 말에도 청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본 천기에선 꽃은 지지 않았다. 만개해서 세상에 존재를 알렸어.]

청룡은 굳게 믿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은 끈질기게 버틸 거라는 걸.

그리고 완전한 개화를 이룰 거라고 여겼다.

걱정은 딱 하나.

변수라는 존재였다.

바로 무극자.

이 존재는 변수 그 자체였다.

그는 천기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청룡조차 보지 못한 무극자의 미래.

무극자 자체가 변수라 청룡은 자신의 천기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 * *

거대한 성은 어둡고 침침했다.

사람의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곳.

비어 있는 마계왕이 사는 성이었다.

그곳에 오랜만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

“마계왕이 되신 걸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권좌에 앉은 여자를 향해 마족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원래부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계 관문을 깨느라 피곤하군요.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 오도록 하세요.”

권좌에 기대 한 손으로 턱을 괸 여자, 마주가 모두를 내보냈다.

“그럼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중년의 남자로 보이는 마족이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따라 다른 마족들도 나왔다.

“정말로 관문을 통과할 줄이야.”

“졸지에 왕이 생겨버렸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마족 출신도 아닌 자를 왕으로 섬기게 됐으니 참.”

“어쩌겠나.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중년 남자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알제스 님은 젠틀하셔서 탈입니다. 저 권좌에 거의 앉을 수 있었던 분이시면서 안타깝지 않습니까?”

중년 남자의 이름은 알제스 루퍼.

마계 일 가문의 가주로 오만의 주인이었다.

“자리에는 다 주인이 있는 법이오.”

“저라면 도전을 했을 겁니다.”

“됐소. 마계의 분란만 생길 뿐. 내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오. 그보다 우리의 구심점이 생겨서 다행이지 않소?”

마계는 언제나 전쟁이었다.

마계왕이 죽고 나서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평생 전쟁했다.

행여 가문끼리 싸우지 않으면 천계와 싸웠고.

최근까지도 천계와 전쟁을 치른 마계였다.

“그건 그렇지만….”

“다들 새로운 마계왕을 잘 도와주도록 하시오. 그럼 본인은 일이 있어 먼저 가겠소.”

중년 남자 알제스가 가솔들을 이끌고 먼저 떠났다.

나머지 가문도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가솔들만 있자 알제스가 비틀린 미소를 보였다.

“큭큭.”

“무슨 일이라도?”

“너무 멍청하지 않나? 마계왕의 권좌를 잠시 맡아 줄 꼭두각시를 구한 것도 모르잖아.”

“저들이 알제스 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뇌에 근육만 찬 놈들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지옥계의 죄수가 제 발로 찾아올 때부터 계획했지. 대리인을 세워 신계대전을 일으키는 걸 말이야.”

“좋으신 생각입니다. 전쟁에서 지면 마계왕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하면 되니까 저희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주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하거라.”

“마계왕이 된 여자와 아시는 사이입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지?”

“가주께서 그 여자를 반갑게 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역시 데르고. 내 충복답군. 날 잘 알고 있어.”

“과찬이십니다.”

“옛날 옛적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지.”

“무슨 인연입니까?”

“내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알제스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떴다.

그는 옛날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파천혈신이 먼저 차지해서 안타까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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