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4화
일반 각성자들이 합류하자 팽팽하던 균형이 서서히 무너졌다.
각성자들의 무력과 기세에 의해서가 아닌.
청룡이 공격에서 방어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청룡이 방어로 돌아서자 금룡황가는 총공세를 펼쳤다.
“죽여!”
“우리 것을 지키자!”
“너희들한테는 아티팩트를 죽어도 안 뺏길 거야.”
“우와아아.”
일반 각성자의 기세가 올랐다.
탐욕에 눈이 멀어 목숨을 내던졌다.
“저 병신들이!”
진경수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그와는 달리 홍엽상과 남선호는 일반 각성자들을 설득했다.
“오해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가진 아티팩트를 뺏을 생각이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당신들은 금룡황가에게 속고 있어요. 저들은 천외천의 마인과 연관된 자들입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두 사람의 말 따위가 각성자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금룡황가는 S급 아티팩트까지 양보해 주는 배포를 가진 이들이고.
오대 가문과 마벽은 S급 아티팩트를 뺏으러 온 약탈자들이었으니까.
“거짓말하지 마!”
“금룡황가가 그럴 리 없잖아.”
“우릴 혼란스럽게 할 모양이오. 저들의 말을 듣지 마시오.”
“더러운 위선자들!”
일반 각성자들은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은 채 청룡에게 달려들었다.
[이래서 이준이 나에게 먼저 가 보라고 부탁한 거군.]
청룡이 계속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그때 삼두가 나타나서 가차 없이 달려든 이들을 날려 버렸다.
퍽-
땅에 처박힌 각성자들의 머리가 깨졌다.
뇌수가 바닥을 적셨다.
즉사.
삼두는 상대를 죽이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삼두의 등장에 청룡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옥의 수문장?]
[오랜만이다.]
[네가 인계에는 왜?][염왕께서 잠시 인계로 내려보내셨다.]
[저들 때문인가?]
[그래. 저 개잡종들 때문에 내가 인계로 내려왔다.]
삼두의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
인계로 오지만 않았어도 지옥계에서 고고하게 살 수 있었을 터.
하필 신선제의 제자 옆으로 보내져서 갖은 수모를 겪고 있었다.
염왕의 오른팔인 그가 말이다.
삼두가 고개를 치켜세우며 울었다.
아우우우.
새끼 강아지의 울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삼두의 몸이 점점 커졌다.
감춰 놨던 힘을 개방한 것.
귀엽게 생긴 강아지였던 삼두가 성견이 되었다.
녀석의 몸에서 지옥의 기운이 강렬히 흘러나왔다.
삼두의 등장에 황바울이 멈칫했다.
구천옥의 죄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가 바로 지옥의 수문장.
삼두였다.
구천옥 죄인들의 영혼에 새겨진 표식.
이 표식이 지워지지 않는 한 죄인들은 삼두를 두려워해야 했다.
“우릴 잡으러 지옥의 개새끼까지 내려보내다니. 염라대왕이 많이 급했나 보구나.”
“도주. 뒤로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자들은 모르나 지옥의 수문장만은 피하셔야 합니다.”
“괜찮다. 이곳은 인계. 지옥이 아니야. 저 개새끼도 인계에선 온전한 힘을 사용하지 못해. 그렇다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도주가 이기어도를 펼쳤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무형도가 삼두에게 내리꽂혔다.
무형도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걸 알아차린 삼두가 주둥이를 활짝 벌리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콰직-
이빨로 무형도를 잡아 단숨에 부순 삼두였다.
[새로운 몸에 잘도 적응했군.]
삼두의 눈이 번쩍이면서 공격하려는 그때였다.
[벌써 왔단 말이냐?]
삼두가 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들어온 한 사람.
아직 기운을 갈무리 못 하는지.
이준이 마기를 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 * *
“준이!?”
“선생님이야!”
“선생님이 오셨어.”
“살았다….”
박정연을 비롯한 아이들은 이준을 보자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가 있으면 지는 싸움도 이기게 될 테니까.
그만큼 이준은 강했다.
“파천자, 여긴 어떻게 온 것이오?”
박춘식의 물음에도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적을 보자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안 그래도 일시적으로 회복한 몸.
내공을 사용하다가 언제 탈이 날지 몰랐다.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가장 좋았다.
이준은 다짜고짜 황바울을 향해 말했다.
“네가 도주냐.”
어린놈의 질문에 버럭 할 법도 하나.
황바울도 이준의 기를 느꼈는지 화를 참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너는 누구…!?”
황바울이 도주라고 인정하는 순간 이준의 신형이 움직였다.
기습 공격이었다.
“읏!”
“백호의 힘을 일부 먹은 것 같은데.”
“네가 그걸 어떻게!?”
황바울의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청룡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약관(20살)이나 됐을 법한 애송이가 어떻게 아는지 놀라웠다.
“그 몸으로는 백호의 힘을 전부 흡수하긴 무리겠지. 네가 환골탈태한다 해도 천부적인 신체를 타고나지 않아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어느새 이준의 손에는 파멸겁이 들려 있었다.
쿵-
파멸겁과 무형도가 충돌했다.
“그러니까 청룡과 싸울 생각을 했겠지.”
청룡은 자연경 끝자락.
구천옥의 주인 중 3강에 속한 마주, 검주, 혈주만이 상대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도주는 자연경 완숙.
원래 자신의 육체도 아닌 빙의한 몸으로 청룡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백호의 힘 일부를 흡수했기에 그나마 싸우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네 병신 같은 짓거리는 여기서 끝내 주도록 하지.”
이준은 곧바로 무극창법 후반부 2초식인 진환을 사용했다.
그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파멸겁이 도주의 무형도를 스치고 지나가면 그림자의 창은 무형도를 지나 도주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해괴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구나!”
황바울은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몸이 망가지면 미리 구해 놓은 인간에게로 들어가면 그만.
이준의 파멸겁이 몸을 뚫고 들어가든 말든.
황바울도 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큭. 인정하마. 각성자치고는 강해. 하지만 거기까지다.”
황바울은 드디어 자신의 무공을 펼쳤다.
도풍선문의 진산절기.
천풍무형도법이었다.
그가 뒤로 쭉 빠지며 무형도를 휘둘렀다.
허공에 휘둘러진 무형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던 고요한 그때.
이준의 팔 부분에서 피가 튀었다.
황바울이 다시 한번 무형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다시 한번 이준의 허벅지에 상처가 났다.
그가 반응하지 못하자 황바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이게 바로 무형도기라는 것이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무공.
오직 감으로만 막아야 하는 절기였다.
“지금까지는 잘 버텼다만 그만 죽어 줘야겠다.”
황바울이 수십 가닥의 무형도기를 날렸다.
“확실히 혈주보다 약해.”
혈주가 백호의 힘을 흡수했다면 꽤 고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호의 힘을 일부 흡수한 자는 도주였다.
머리가 좋은 듯 보이나 멍청했다.
차라리 백호의 힘을 전부 흡수할 몸으로 영혼을 이관시킨 다음 그때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았을 터.
“뭐 나사 하나 빠진 놈들이기도 하고.”
무언가 하나씩 부족했다.
지옥에 오래 썩어 있어서 그런가.
강하긴 하나 옛 영광에 사로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모자란 놈 때문에 일이 수월하게 풀리긴 하지만 말이다.
“입만 살았군. 즐길 여흥도 되지 않는다.”
황바울이 무형도를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그보다 이준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쾅-
그의 진각으로 인해 하늘 위로 솟은 황바울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기 때문.
가만히 있었다면 내장과 뼈가 모조리 가루가 됐을 것이다.
간발의 차로 위험을 피했다고 여긴 황바울이었지만 오산이었다.
어느새 이준이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봐봐. 전부 예상되는 움직임이잖아.”
이준은 황바울의 머리통을 잡고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앙-
“커헉!”
“도주!”
“도주를 지켜라!”
구천옥의 죄인, 금룡황가의 금룡대가 이준을 향해 쇄도했다.
몸을 일으킨 이준이 허공에 손을 저으며 무극기를 일으켰다.
무극기는 칼날이 되어 쇄도하는 금룡대를 일제히 휩쓸었다.
“아악!”
“내, 내 팔이!”
“쿨럭쿨럭!”
피투성이가 된 금룡대였다.
이를 본 각성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맙소사. 그 강한 금룡대를 일수에….”
“여, 역시 파천자인가.”
“말도 안 되는… 강함이야.”
“황 가주는 무형도를 이용해 이기어도를 사용하는 각성자라고!”
각성자들이 본 이준은 파멸자.
그 어떤 것도 단숨에 부숴 버리는 악마였다.
박혁진도 저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쟤는 뭘 먹고 저렇게 강한 거야?”
“그, 그러게 말이에요.”
홍엽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청룡까지 밀어붙이던 이들을 단숨에 격퇴시킨 이준을 보자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아이들이 놀라는 사이.
류한길과 진병철, 조민석이 도착했다.
“벌써 시작하셨나?”
“아빠!”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류한길은 딸인 류가을의 상태를 살폈다.
격전을 치른 흔적은 있었으나 큰 부상은 없었다.
“네. 전 괜찮아요.”
진병철은 진경수의 어깨를 툭 치며 격려했다.
“잘 버텼다.”
“아닙니다. 아버지.”
“그런데 저 거대한 몬스터 청룡인게냐?”
“엄청나지 않습니까?”
“실로 압도적이다. 사신수인 청룡을 실제로 보니,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저도 그렇습니다.”
진병철과 진경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편.
박정연은 이준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청룡님. 준이 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을 말이냐.]
“기가 매우 불안정해요.”
[잘 보았다. 아주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서 빨리 해치우려 하는 모양이다.]
이준의 행동은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적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지만 박정연의 눈에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이준 같지 않달까.
언제나 여유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예전에도 기운이 불안정하긴 했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괜찮을까요?”
[음….]
청룡도 짧게 신음만 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박정연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고 있을 때였다.
“윽.”
이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빌어먹을 봉합했던 상처가 벌어지고 있어.’
[무리하면 안 된다고 이 사부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제가 빨리 온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잖아요.’
[여전히 그 버러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냐!]
무극자 사부의 호통이 들려왔다.
골이 울렸다.
전이었다면 그냥 넘겼을 말투.
일갈이 아니었다.
그저 큰 목소리일 뿐.
한데 이마저도 버티는 게 힘들었다.
‘사부님. 목소리 좀 줄여 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내 목소리도 듣는 게 버거우면서 누굴 지키겠다고 하는 건지 쯧. 삼두야. 나머진 네가 처리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삼두가 움직이려 할 때였다.
이준에 의해 땅에 처박혔던 황바울이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초점을 잡아 가는 그였다.
“감히 네깟 놈이 내게 이런 수모를 준다는 말이냐.”
황바울이 전력을 다해 내공을 운용했다.
그의 몸을 휘감은 검은 안개.
지옥의 기운이 주변에 맴돌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이 게이트에 몰아쳤다.
“젠장. 빨리 목숨을 끊어 놨어야 했는데.”
이준의 일그러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 * *
그 시각.
“도주 그놈이 백호를 사냥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우리 애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죄송합니다.”
“죄송? 내가 또 도주에게 밀리게 생겼는데도 그딴 말이 나오느냐.”
“아무래도 일이 생긴 듯합니다.”
“설마 임무에 실패했다는 그런 잡소리면 집어치워라.”
“죄송합니다.”
“어떻게 일을 똑바로 해내는 놈이 너 말고는 하나도 없단 말인지. 머리 좋은 놈들로 다시 키워야겠어.”
“아이들을 다시 보내겠습니다.”
“됐다. 도주 그놈이 내게 연락을 했다. 백호를 이용해 함정을 만들었다고. 나보고 구경 오라더군.”
“선유도 게이트로 가시는 겁니까?”
“오라는데 가 줘야지.”
“준비하겠습니다.”
“혼들 전원 집합시켜. 안 되면 백호라도 뺏어야겠다.”
“도주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가 같은 편은 아니잖아. 기회를 엿봐 뺏든지 아니면 손가락만 빨고 오든지 해야지.”
“준비를 단단히 하겠습니다.”
“백호의 힘이면 나도 마계에서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을 거야.”
“최선을 다해 백호 확보에 노력을 기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너희의 쓸모는 나를 위해서 있는 거니까.”
살주가 음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