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1화
파랑이는 거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열 개의 꼬리를 활짝 편 채 암화를 드러냈다.
꼬리 위에 생겨난 열 개의 여우불.
그 여우불이 사라지더니 은룡대의 몸에서 타올랐다.
몇몇 이들은 사라진 여우불의 기를 느끼고 도를 휘둘렀지만.
약한 이들은 반응하지 못하고 당했다.
“이따위 불 따위!”
내공을 사용해 여우불을 끄려 했으나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우불을 활활 태우는 꼴이었다.
“불이 꺼지지 않아!”
“도와줘!”
옆 사람이 도와주려 나섰다.
그런데.
“으악!”
“나도 옮겨붙었어.”
여우불은 접촉한 사람의 몸에 옮겨붙어서 활활 타올랐다.
암화.
꺼지지 않은 지옥의 불꽃.
파랑이가 사용한 여우불의 정체였다.
일반 불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담겨 있었다.
SS급, 현경의 고수라도.
SSS급 생사경의 고수라도.
파랑이의 암화에 당하면 쉽사리 끄지 못한다.
사신수와 같은 선상에 서 있는 절대종이 사용한 스킬이었으니까.
은룡대주가 이마를 찌푸렸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몬스터의 힘이 상당했다.
“조심해. 보통 몬스터가 아니야. 응?”
“으어어억…”
은룡대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우불을 자른 수하가 눈을 까집고 쓰러졌다.
발 밑에서 느껴지는 뇌기.
은밀하면서도 강력해 닿기라도 하면 저처럼 쓰러질 것이다.
은룡대주가 퇴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화기에 뇌기까지 쓰는 몬스터라.”
그의 눈이 깊어졌다.
만만하게 볼만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격은 아직 시작도 안 된 듯 보였다.
“그보다 대주님. 걸리는 게 있습니다.”
“뭐냐.”
“저기 저 몬스터 말입니다. 뭔가 꺼림직합니다.”
은룡대주는 박정연의 어깨에 앉아 있는 작은 도마뱀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우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위화감이 든달까.
처음 볼 때부터 거슬렸다.
“나도 그래. 계속 눈여겨보고는 있는데 모르겠단 말이야.”
“결계를 친 걸 보면 보통 몬스터는 아닌 듯합니다.”
“부딪혀보면 알겠지. 우선 애들을 보내.”
“예.”
은룡대에서 제일 약한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경.
각성자 등급으로는 SS급이었다.
“쳐라!”
열 명의 은룡대가 앞으로 쇄도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도강을 만든 채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번쩍-
그들 사이로 하얀 빛이 뿜어졌다 사라졌다.
쇄도하던 은룡대의 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푸확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큭!”
“어떻게!?”
열 명의 은룡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움직임도, 공격 투로도 보이지 않았었으니까.
그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온 건 박혁진이었다.
그가 긴장한 표정을 집어넣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버프 받으니까 할만한데?”
무려 청룡의 버프였다.
뇌속성 공격력 상승 500%.
뇌속성이 없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엄청난 버프였다.
뇌속성의 무공을 가진 각성자라면 족히 세, 네 배는 강해질 것이다.
그만큼 사신수의 버프는 사기적이었다.
무엇보다 박혁진이 익힌 뇌신공은 청룡의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공.
청룡의 버프를 받아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수련 효과도 미쳤어.”
그가 청룡에게 받은 수련은 뇌전을 피하는 거였다.
각성자가 아무리 초월자라지만 번개를 피할 수 있을까.
아니 피한다 치자.
일반 번개가 아닌 청룡이 작정하고 내리꽂는 벼락.
보통 번개보다 수 배는 빠른 속도를 가졌기에 피하는 게 더욱 힘들었다.
박혁진은 청룡이 내리꽂은 벼락을 피하는 수련을 했다.
벼락을 맞을 때마다 서서히 떠오르는 감각.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듯 새로운 기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기억이 누구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청룡에게 받은 수련을 받아서인지 전보다 모든 면에서 능력이 올라 있었다.
“괜히 쫄아 있었잖아?”
어느새 박혁진에게서 여유가 보였다.
청룡이 버프를 줄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나.
그의 무공과도 시너지가 좋으니.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다들 겁먹지 말고 나만 따라와.”
박혁진이 은룡대를 향해 쇄도했다.
그 뒤를 파랑이가 따라붙었다.
결계 안에 있던 박정연과 한지유도 땅을 박찼다.
허수가 결계 밖으로 나가려는데 청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는 안전하게 싸워라. 놈들을 결계 안으로 끌어들여서 죽여. 그게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다.]
청룡은 친절하게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 * *
그 시각.
금룡황가는 선유도 게이트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동안 죽인 몬스터가 수백은 됐다.
“이, 이것 좀 봐!”
“S등급의 아티팩트!?”
“여, 역시 백호가 있는 게이트야.”
금룡황가를 따라온 각성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몬스터들이 죽으면서 떨군 아티팩트가 심상치 않았다.
가장 낮은 등급이 AA.
게이트 중심부로 와서는 거의 S등급만 드랍했다.
같은 등급이라도 가치는 천차만별이긴 하나.
백호가 있는 게이트답게 모든 아티팩트가 최상급이었다.
“내 거야!”
“무슨 소리! 내가 먼저 잡았어.”
“이거 안 놔? 죽고 싶어?”
S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 아티팩트이자 각성자들의 눈이 돌아갔다.
자기가 갖겠다고 싸움이 났다.
황바울은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예상 대롭니다.”
“인간에게 탐욕이란 본능이거든. 우리도 상승 무공에 눈이 돌아가잖아?”
“맞습니다.”
“저들도 마찬가지다. 저것만 있으면 자기가 강해질 수 있다고 여기거든. 어리석게도 그게 아닌데 말이야.”
어떤 영역이든 재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재능.
특히 각성자에게 혈통이란 굉장히 중요 했다.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최적의 신체를 타고나야지만 고수가 될 수 있었으니까.
“내 거라고!”
“가만히 놔두지 않으면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겠어!”
“어디 해봐.”
각성자들은 서로의 무기를 꺼내며 견제를 했다.
그들이 충돌하려는 순간.
“다들 진정하십시오.”
황바울의 옆에 있던 남자가 어느새 각성자들의 사이에 있었다.
그들의 검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말이다.
“아직 백호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 게이트 안의 몬스터는 차고 넘칩니다.”
“그래도… 드랍하는 아티팩트는 한정적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겠지만 저흰 최대한 공평하게 나눠드릴 생각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여러분은 게이트 중심부까지 몬스터를 쓰러트리지 않고 오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지요.”
“금룡황가 때문에 안전하게 왔습니다.”
“혼자 왔다면 입구에서 당했을 겁니다.”
각성자들이 곧바로 수긍했다.
선유도 게이트의 몬스터는 거의 다 최상급에 속했다.
제일 약한 몬스터 한 마리만 나타나도 전멸.
게이트 중심부까지 온 게 정말 용했다.
“그럼 아티팩트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금룡황가에 있습니다.”
“황바울 가주님에게 있지 않겠어요?”
“네. 제게 있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고 있고요.”
각성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긴 하나 상대는 블랙급 몬스터는 단번에 죽이는 이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아티팩트를 들고 튄다해도 얼마 가지 못해 잡혀 죽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금룡황가의 말에 잘 따라 주시는 분에게 이 아티팩트를 차례대로 지급할 생각입니다.”
“헉!”
“다른 조건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어떻게 S등급의 아티팩트를….”
“저희에게 아티팩트를 주면 금룡황가에 남는 건 뭡니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한 각성자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목적이 뭔가.
가문의 발전과 명예, 즉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다.
S등급 아티팩트를 전부 남에게 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은 건 없었다.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
각성자들이 의문을 가질만 했다.
“여러분이 금룡황가에 보내는 신뢰가 남지 않겠습니까. 설마 여러분의 신뢰가 하찮다고 생각하십니까?”
황바울의 목소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음성.
믿음이 가득한 목소리에 각성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만큼 중요한 건 없지.”
“우리가 보내는 신뢰의 가치는 꽤 높을 거야.”
“하하. 황 가주님께서 우릴 높여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 가주님을 각성자 국회로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쁘지 않다, 뿐이겠소. 각성자 국회의장으로 적격이오.”
딱딱하던 분위기가 금새 풀렸다.
조금만 띄워주니 좋다고 반응하는 각성자들.
‘개, 돼지가 따로 없군. 큭.’
황바울의 속마음대로 우리에 사육하는 돼지와 같았다.
먹이만 주면 좋다고 꿀꿀 댔으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해결 됐고, 다시 가볼까요?”
“가보자고!”
“가즈아-”
금룡황가의 말을 잘 듣는 자에게 S등급의 아티팩트를 준다는 말에.
각성자들은 어떻게든 황바울의 눈에 들려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이에 황바울이 작게 미소를 보였다.
‘지옥으로 가는 줄로 모르고 쯧쯧.’
그들은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한 제물임과 동시에 만일의 사태에 대한 방패막이였다.
“그런데 은룡대는 왜 아무런 소식도 없지?”
“또 병신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나봅니다.”
“구천옥에서 억겁의 시간을 견뎌왔는데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임무를 끝내고 유희를 즐겨도 늦지 않아.”
“죄송합니다. 복귀하면 주의를 주겠습니다.”
“믿고 있겠다.”
“예 도주.”
황바울은 은룡대가 임무에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경부터 생사경에 달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임무에 성공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아 했다.
* * *
파직-
허공에는 하얀 빛줄기가 수 십번씩 번쩍였다.
그럴 때마다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
“…이렇게 속절없이 밀리는 게 말이 되냐!”
은룡대주가 버럭 소리쳤다.
그는 각성자들에게 당한다는 생각은 가져보지 않았다.
지옥의 뇌옥.
구천옥에서 악착같이 살았다.
그곳에서 현경과 생사경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대한민국의 최고 각성자도 아닌 애송이한테 은룡대가 밀려버렸다.
서걱-
지금도 은룡대가 당하고 있었다.
애송이 두 명, 아니 열 세명에게 백여 명의 은룡대가 유린당했다.
두 명은 결계 밖에서 휘젓고 나머지 놈들은 은룡대를 결계 안으로 유인.
결계 안으로 들어간 은룡대에게서 소식이 끊겼다.
결계 안에서 나온 사람은 커다란 도를 든 놈과 주먹을 사용한 놈.
그리고 살수로 보이는 애송이가 번갈아 나오기만 했다.
그건 은룡대가 안에서 죽었다는 뜻이었다.
“저희가 나서야할 것 같습니다.”
“예감이 안 좋더니 젠장, 도주를 무슨 면목으로 본단 말이냐.”
“이미 무극단은 잡아놨고 저 애송이들만 죽여놓고 복귀하면 도주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래도 임무에는 실패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임무만 실패하지 않으면 된다.”
은룡대주가 자신의 도를 꽉 잡았다.
도주는 임무에 실패한 수하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
임무만 성공한다면 목숨은 거두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빠르게 죽여주마!”
은룡대주가 도를 하늘로 띄웠다.
허공에 뜬 도가 기울더니 박혁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엄청난 속도.
빛과 같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도를 스친 하나의 기운.
마치 뇌전을 연상케 한 속도로 은룡대주에게 접근해갔다.
은룡대주는 이기어도를 시전한 상황.
퇴보를 밟으며 황급히 이기어도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하나 그에게 다가가는 기운이 더 빨랐다.
“감히!”
은룡대주가 분개했다.
속도만 빨랐지 상대의 검에는 강한 기운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 말이다.
명백한 무시 행위.
응징이 답이었다.
그것도 대가를 크게 돌려줘야 했다.
이기어도를 조종하는 걸 포기하고 바로 주먹에 강기를 맺었다.
그의 경지는 생사경 초입.
어떤 무공도 궁극에 올라 있었다.
그가 날아오는 상대를 향해 주먹을 뻗는 찰나.
갑자기 상대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한 박자 더 빠른 뇌전에 당혹해하는 사이.
서걱-
은룡대주의 옆구리가 검에 베였다.
그래도 명색에 생사경 초입이라 그런지.
당하는 와중에도 상대의 옆구리를 권강으로 가격했다.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