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0화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였어.”
진경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유도 게이트 입구를 비집고 들어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목소리에 내공을 가득 실어서 말하지 않았다면 각성자들이 비켜서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존 게이트인데 저러는 걸 보면….”
“보물급 아티팩트가 그만큼 탐이 난 거지.”
“저라도 한 번 목숨은 걸어볼만 할 것 같아요.”
홍엽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에게 아티팩트는 생명과도 같았으니까.
“쉿. 잠깐만 조용해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박정연이 걸음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옆에 있던 박혁진 또한 마찬가지.
딱딱히 굳어진 얼굴을 한 채 천월을 뽑은 그가 입을 열었다.
“적이야.”
“적?”
“마인들?”
“어.”
진경수와 허수는 기감을 퍼트려 적의 기척을 찾았다.
하지만 마인의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끄응.”
“안 느껴지는데.”
“저도요.”
[멀리 떨어져 있다. 엄청난 속도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군.]
청룡의 말에 아이들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넓혔다.
그제야 여러 기척이 잡히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며 오네?”
“이러는데도 우리의 이목을 피했다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
박혁진을 비롯한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며 전투 준비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무리들.
금룡황가의 은룡대였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바짝 긴장해야할 것이다.]
청룡이 경고했다.
온전한 힘을 가진 청룡에게는 하찮은 마인이었다.
하나 특별 1반 출신들에게는 하나, 하나가 강력한 적이었다.
“대주. 저놈들 우릴 기다린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 보여 그런데 가주들이 아니지 않냐?”
은룡대의 대주가 이마를 찌푸렸다.
오대 가문과 마벽의 가주인줄 알았다.
한데 가주들이 아닌 웬 꼬맹이들이었다.
“가주들보다 강해 보이지?”
“그렇습니다.”
“무극단 정도는 되나?”
“비슷해 보입니다. 어쭈? 칼을 꺼내? 우릴 상대로?”
은룡대가 도를 뽑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한 무기 중 도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검은 도의 상대가 안 된다고 여겼다.
만병지왕은 도.
도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였다.
그 때문인지.
아이들의 검을 보고 비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쟤들 어디서 보지 않았냐?”
“그러게 말입니다. 분명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은룡대주와 그의 수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아!”
“떠올랐냐?”
“파천자가 가르친 애들입니다.”
“특별 1반 출신!?”
“예.”
도주는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력을 높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야 했다.
빙의한 몸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시간에 방대한 정보를 모으기란 불가능했다.
파천자와 오대가문, 마벽에 대한 정보는 모았지만 겉핥기.
정작 중요한 특별 1반 출신에 대한 건 없었다.
만약 저 아이들이 파천자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이렇게 미적대지 않았으리라.
무극단을 잡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었을 테니까.
그래서 뒤늦게 아이들의 정체를 안 것이다.
“꿩 대신 닭인가?”
“죽일까요?”
“쟤들도 그냥 잡아. 더 젊은 몸으로 빙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제 부모보다 재능도 있어 보이니 좋을 듯합니다.”
“난 어릴수록 좋아.”
“이번에는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 볼까? 흐흐.”
은룡대가 히죽거리면서 아이들을 향해 쇄도했다.
* * *
이준은 운기하면서도 귀는 열고 있었다.
가주들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안 돼. 애들이 가면 목숨을 잃을 거야.’
급했다.
파랑이가 박정연의 곁에 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집중하라 하지 않았더냐.]
무극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준이 걱정됐는지 호통은 치지 않았다.
자칫 기혈이 꼬일 수 있었으니까.
‘죄송해요. 이것만 말하고 집중할게요. 삼두야.’
이준은 지옥의 문지기 삼두를 불렀다.
[응?]
‘네가 움직여줘야겠어.’
[무슨 말이냐?]
‘선유도 게이트로 가서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끔 시간을 끌어줘.’
[네 호법은 누가 서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서 가 시간이 없어.’
지옥의 문지기 삼두라면 구천옥의 죄인들을 막을 수 있었다.
죄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 중 한 명.
염라대왕의 오른팔이 일사자라면 삼두는 왼팔에 해당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게 바로 삼두였다.
[음…]
[네가 가서 지켜주거라. 준이한테는 소중한 아이들이니라.]
무극자는 이준이 운공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아니면 영영 상처가 더디게 나을 거다.
[알겠습니다.]
무극자가 나서자 삼두가 금방 수락했다.
신선제의 말이었다.
누가 싫다고 하겠나.
오히려 무극자에게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네 화기를 먹은 밥값은 하지.]
삼두가 땅을 박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제대로 집중하거라.]
이준은 무극자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혼원신공에 집중했다.
내부를 관조하면서 내공을 돌렸다.
엉망이된 기혈이 조금씩 풀리니.
혈맥을 통해 이동하는 내공이 빠르게 치달렸다.
‘자연경 완숙의 경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살성의 힘을 쓰니까 몸이 버티지를 못하네.’
자신은 마신지체였다.
태양지체와 더불어서 가장 강인한 신체.
천살성의 힘이 이정도로 강할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
옛날에 천살성이 튀어나와 보인 힘은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은 것이었다.
혼원반지를 빼며 나온 힘이 바로 천살성의 진정한 힘.
그 뛰어난 마신지체도 견디기 힘든 강력함이었다.
‘회복이 너무 더뎌’
혼원신공은 그 어떤 상처도 단번에 치료하는 복원력을 지녔다.
하나 이번만큼은 혼원신공도 어쩌지 못했다.
‘급한 불만 꺼야겠어.’
내상이 완벽히 나으려면 족히 3개월 이상은 요양해야 했다.
시간만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신수들과 수련을 받고 있었으나.
가문에서 부르면 나와야 했다.
폐관수련을 하는 게 아니었기에 금역에서 수련받은 후 선유도 게이트로 가지 않을까.
아이들이라면 분명 그곳으로 향했을 거다.
‘이번에도 움직여줘라.’
이준은 자연의 힘을 이용해 심장을 자극했다.
혼돈의 기운.
혼원신공과 마력이 합쳐진 심장의 문을 두드렸다.
열쇠로 걸어 잠근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쿵-
쿵쿵-
혼원신공의 내공이 심장을 두드렸다.
사방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
목구멍에서 울혈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침을 삼키면서 기침을 간신히 참았다.
[그만하거라.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더욱 무리하다니! 그러다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무극자 사부가 뜯어말렸다.
자신도 안다.
상처 난 부위를 치료하는 게 아닌.
더욱 상처 내는 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설마 몸의 생기가 빠져나가는데 심장에 자리한 힘이 가만히 있을까.
생기가 다 빠져나가면 심장의 힘도 소멸할 터.
자기가 살려면 몸의 주인을 구해야 했다.
혼원신공의 자가 복원력을 믿듯.
혼돈의 기운의 복원력 또한 믿었다.
“윽.”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입술 사이로 피가 맺힐 만큼 꾹 참았다.
고통이라면 충분히 겪어 봤다.
환골탈태만 여러 번.
뼈가 부서지고 생기길 반복했었다.
그에 반해 지금의 고통은 어떤가.
참을 만 했다.
아니, 참을만하다고 느낀 순간!
“크윽!”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시로 전신을 찔러오는 고통이 느껴졌다.
한기로 인해 몸이 절단 난 느낌도 들었다.
뿐인가.
용암 한가운데 들어간 느낌이기도 했다.
아픔이 지속되면 적응도 할 법하지만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혼원신공의 운용을 멈추거라!]
무극자 사부의 호통이 들려왔다.
내상을 주고서라도 운기를 멈추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심장에 자극을 주는 건 멈추지 않았다.
“으읍….”
오히려 더욱 심장을 자극했다.
누가 이기나 오기를 부렸다.
내상이 심해졌다.
회복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오자.
드디어 심장에 웅크리고 있던 혼돈의 기운이 움직였다.
마치 왜 깨웠냐고 성질을 내며 말이다.
심장에 자리한 폭룡이 전신을 누볐다.
폭룡은 혼원신공의 내공과 자연의 기운까지 전부 먹어 치웠다.
‘끄… 조그만 더…’
[바보 같은 놈! 이건 치료가 아닌 주화입마의 초기증상이다! 경지가 상승하고 치료가 되는 느낌 말이다.]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덩치가 산만해진 녀석이 먹은 힘을 전부 토해냈으니까.
그리곤 함부로 자신을 깨우지 말라고 경고했다.
폭룡의 경고와는 달리.
녀석이 토해낸 힘이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공을 사용하다가 가슴을 부여잡지 않을 정도랄까.
[이, 이게 어떻게 된!?]
무극자 사부도 자신의 상태를 보고 놀라 했다.
사부가 볼 땐 주화입마에 발을 들이댔으니까.
한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내상이 조금은 치료된 건 물론 자연경 완숙이던 경지가 끝자락으로 오른 것이다.
[혼돈의 기운이 상처난 부위를 봉합했습니다.]
[혼돈의 기운 중 하나인 혼원(폭룡:[잠듬])을 끄집어 내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000p가 지급됩니다.]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자연경 끝자락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000p가 지급됩니다.]
[경고!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휴식을 취하십시오.]
보상과 함께 경고의 메시지도 왔다.
휴식을 취하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리.
그런데도 눈을 떠야만 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억.”
“주군!”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주저 앉고 말았다.
“괜찮아.”
“각주님, 주군을 좀 봐주십시오!”
사형준은 황급히 이의태를 불렀다.
“괜찮다니까.”
“전혀 안 괜찮습니다. 보십시오. 손을 떠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준은 손을 내려다봤다.
사형준이 말한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수전증이 있는 사람같이 말이다.
“문제… 없어.”
이준은 힘을 주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주님. 제가 상태를 봐보겠습니다.”
이의태가 다가와 진맥하려 했지만 이준이 거절했다.
“그럴 시간 없어요. 선유도 게이트에 가봐야 해요.”
[고집불통이!]
무극자가 화를 버럭 냈다.
경지가 상승하면 뭐 하나.
거의 지옥에 한쪽 발을 담궜었는데.
바보같은 짓이었다.
도박.
만약 심장의 힘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이준은 죽었으리라.
“사 단주. 날 선유도 게이트로 데려가.”
“하지만!”
“명령이야.”
이준이 사형준을 뚫어지게 보자 그가 마지 못해 대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사형준은 이준을 등에 업고는 경공을 펼쳤다.
“우리도 따라가자.”
“그럴 참이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걱정하던 류한길과 진병철 또한 그들을 따랐다.
* * *
[천상의 동쪽의 주인 청룡이 결계를 펼쳤습니다.]
[사신수의 힘이 게이트에 내려졌습니다.]
[청룡의 가호 – 뇌속성 공격력 +500%, 뇌속성 저항력 +500%, 마기 저항력 +500%]
*청룡의 가호를 받는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뇌속성 사용 가능.
*청룡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의 효과 두 배 상승.
은룡대가 박혁진 등에게 쇄도하자 청룡이 힘을 드러냈다.
구천옥의 죄인들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끔 결계를 쳤다.
쾅-
은룡대의 도강이 결계를 강타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청룡은 다른 신수와는 달리 온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은룡대 힘 정도로 결계가 깨진다면 청룡으로서 체면이 살까.
차라리 신수의 명함을 반납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도와주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진 너희의 힘으로 해결해라.]
“감사합니다.”
박혁진이 청룡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뇌신공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파랑아 부탁해.”
[응. 나만 믿어. 너희 다치면 주인이 슬퍼할 거야.]
아이들이 믿는 구석은 바로 파랑이었다.
블랙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
절대종 중 하나인 파랑이가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