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무공 천재-547화 (547/705)

제530화

“바로 시작할까요?”

“그 전에 말입니다.”

“내공 제한은 S급 완숙으로 할게요.”

홍엽상의 말에 이준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충분해요.”

이준의 자신감 찬 목소리에 검제를 비롯한 가주들이 기분 나빠 할 법도 했다.

그들은 한 가문을 이끄는 가주.

이준의 말은 명백한 무시였다.

하나 그들의 표정엔 놀라움만 묻어날 뿐.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상대는 이준이다.

세계 랭킹 1위.

인간의 범위를 뛰어넘은 존재.

각성자 위에서 군림하는 게 바로 그였다.

자신감이 있으니 내공 제한을 S급 완숙으로 한다고 한 것일 터다.

“저희는 열세 명입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S급 초입이니 내공 제한을 조금 더 올리셔도 될 듯합니다.”

류한길은 사선을 넘나드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다.

제아무리 이준이 강하다곤 하나.

무려 열세 명을 상대로 S급 완숙의 경지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무공 등급이 세, 네 단계가 차이난다 한들 불가능했다.

가주들 또한 S급의 무공을 지녔고 싸움 경험도 풍부했으니까.

이준이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에요. 이대로 갈게요.”

“저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S급 완숙으로 내공 제한을 한다 해서 얕보시면 큰일 날 겁니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미소에 류한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미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다니.

그렇다고 이준이 기운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다.

‘그래 상대는 파천자 님이다. 방법이 있으시겠지.’

언제나 상식을 파괴하는 게 이준이었다.

이번에도 모두를 놀래킬 무언가가 있을 터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류한길이 고개를 숙이곤 뒤로 빠졌다.

검제와 괴개는 여전히 의문을 가졌으나.

내공 제한 등급을 더 높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하시죠.”

이준이 가주들이 있는 반대편에 섰다.

특별 거점 점령전이 시작되려 하니 안내 방송이 나왔다.

[특별 경기가 시작됩니다. 내외빈과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웅성거리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경기장에 집중됐다.

* * *

이준은 감았던 눈을 뜨자 새하얀 설원이 보였다.

“무사고 입학식 때가 생각나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캡슐 방에서 했던 등급 측정.

그때도 설원 필드였다.

상대는 빙악.

무극자 사부한테 혼원신공을 계승받고 기초 체력 훈련을 받았을 때였다.

환영이긴 하나 아쉽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예전 기억이 떠오르니 새삼 새로웠다.

이젠 약자의 입장이 아닌 그 반대의 입장.

강자로서 필드에 서게 됐다.

걸음을 한 발 옮기자 사박 소리가 났다.

정말 눈을 밟고 있는 느낌.

가상 현실을 현실처럼 잘 구현해 놓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어떤가.

눈의 결정까지 섬세했다.

이게 바로 현대의 최첨단 기술력과 진법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거점은 여기가 좋겠어.”

이준은 망설이지 않고 깃발을 땅에 꽂았다.

그가 처음 눈을 뜬 자리에 거점을 설치한 것이다.

주변은 온통 눈밭.

장애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나무라도 있으면 다행.

사방이 뻥 뚫린 눈밭이었다.

이준의 선택에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와, 강심장.”

“미쳤네.”

“자신감 쩐다.”

“상대는 검제 님과 괴개 님이 포함된 가주들인데….”

“대체 어떻게 상대하려고 저렇게 사방이 뚫린 공간에 거점을 설치하는 거야?”

학생들만이 놀란 게 아니었다.

그들의 학부모조차도 이준의 결정에 의아해했다.

“내공 제한, S급 완숙이라 하지 않았었나?”

“그러게 말이오. 검제 님과 괴개 님, 혈마는 SS급에 있고, 나머지도 그에 못지않다고 하던데….”

“오만인지 아니면 자신감인지.”

“예측이 어렵군.”

사람은 누구나 예측이란 걸 하기 마련이다.

그의 행동, 말투, 습관, 생활 패턴 등을 파악하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했는데.

이준은 또렷한 습관을 가지고 있으나 추측하기 힘든 미지의 인물이었다.

전 세계가 그에 대해서 알기 위해 정보를 모았으나.

그 결과물은 일치하지 않았다.

단 하나, 파천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만 일치했다.

그 외 나머지는 불일치였다.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겠어.”

“자네도 가문에서 분석관들 데려왔나?”

“하던 일 멈추게 하고 싹 다 데려왔네.”

“나도 마찬가지네. 가문의 일보다 파천자의 무공에 대해서 아는 게 더 중요하지.”

“맞는 말이야.”

학부모들이 이준에 대해서 말을 나누는 사이.

검제 측 진영도 거점을 정했다.

이준은 허리춤에 차여진 하나의 봉을 꺼냈다.

봉인된 파멸겁이었다.

그가 내공을 불어넣자 파멸겁이 1단계 형태로 바뀌었다.

적색 창.

단순하게 보이나 저 안에 담긴 힘은 파멸적이었다.

아티팩트 정보 잡지에 올라온 장비 순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파멸겁.

이준이 파멸겁을 꺼내는 순간, 학부모들은 이를 눈에 최대한 담아 넣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파멸겁.”

“엄청난 마병이군.”

“내 파슬리는 상대도 안 되겠어.”

학부모들이 감탄했다.

파천자만큼 유명한 게 바로 그의 아티팩트였다.

세계 랭킹 1위는 과연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울까.

각성자에게 아티팩트는 단순한 장비가 아닌, 목숨이었다.

전 재산을 털어서 좋은 등급의 아티팩트를 사는 이유였다.

이준이 파멸겁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저 무기를 놓아 둔 모습.

하나 파멸겁이 깃발 주위에 결계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파멸겁을 바닥에 꽂은 그가 이번엔 겉옷을 벗었다.

“응?”

“뭐 하려고 옷을?”

“신발까지?”

학부모들은 또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이 장포 안의 옷을 하나씩 벗고 있는 게 아닌가.

그가 파천자가 아니었다면 경기가 중단될 사고였다.

다행인 건 무복 안에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

깔끔한 무복 차림이던 이준이 동네 백수의 모습을 했다.

추리닝에 장포를 걸친 그는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다.

그때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새로운 운동화를 꺼내 신은 이준.

그의 모습은 거의 테러리스트 수준이었다.

트레이닝 복장에 장포는 웬 말인가.

사람들은 이준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벗은 무복은 청룡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인 청룡 무의였고.

신발은 백호의 힘이 담긴 호왕신이었으니까.

무려 사신수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만 세 개를 몸에서 분리시킨 것이다.

하나 남은 건 현무의 힘이 담긴 혼원반지.

이준은 혼원반지까지는 빼지 않았다.

오히려 차고 있어야 했다.

혼원반지는 그의 힘을 억제시켜 주는 역할을 했으니까.

이 반지를 빼면 그조차도 어떤 상황이 불어 닥칠지 몰랐다.

“대체 뭐 하는 거지?”

“싸우기 전 의식인가?”

“가주님. 저 행동도 분석지에 적어야 합니까?”

“… 다 적게.”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까?”

“그렇게 하게.”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력분석관은 분석지에 이준의 행동을 적었다.

[파천자는 싸우기 전 옷을 벗는 의식을 진행함.]

* * *

[끌끌끌.]

‘웃지 마세요.’

[그 꼴을 보고도 안 웃을 수 있더냐.]

‘아공간 주머니에 옷을 넣어 놓는다는 걸 깜빡했어요.’

[끌끌끌.]

무극자 사부의 비웃음이 귀에 맴돌았다.

고개를 내려 자신의 꼴을 봤다.

트레이닝복에 장포를 덮고 있었다.

어릴 적 무협 소설을 읽을 때부터 꿈꿔 왔던 장포.

패션테러리스트라 한들 장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만큼 간지 나는 건 없었으니까.

“저 경기 시작하니까 웃음소리 좀 자제 부탁 드릴게요.”

옛날이었다면 버릇없이 말했을 테지만 무극자 사부에게 교육을 당한 직후라 많이 순화된 어투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극자 사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은 사부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내공 제한이 걸린 상태에서 무극기를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진천무도 간당간당하고…. 결국 무극장법이나 무극군림보밖에 없네.’

무극 3종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내공 소모도 적은 무공.

혼원신공과 가장 잘 어울리기도 했으며 파괴적이기도 했다.

사용할 무공을 정하자 기감을 넓혔다.

‘괴개 님과 철왕, 살마가 같이 있네. 독인가?’

공기를 타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독향.

무취에 가까웠으나 이준의 후각을 피할 순 없었다.

특히 그의 마안은 세상의 결을 보여 줬다.

공기 중의 수많은 선 중에 옅은 초록색의 선이 눈에 들어온 것.

주변에 독이 있으면 이처럼 색으로 나타났다.

‘산공독까지 섞여 있는 걸 보면 음설독이네.’

상대가 준비를 꽤 많이 한 것 같았다.

독뿐만이 아니라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까지 보였다.

진법에 결계까지.

이 전장에 많은 함정이 깔려 있었다.

‘내가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일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이곳에 들어오기 전 어떻게 싸울지 미리 정했다.

내공 제한에 가장 어울리는 싸움 방법은 하나뿐.

‘이번엔 정면이 아닌 사냥을 할 거야.’

중국에서 천외천을 암살했을 때의 일은 한국이나 중국 측에서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이준이 천외천을 지웠다는 사실만 알 뿐.

어떤 식으로 상대했는지는 모른다.

검제를 비롯한 가주들은 이준이 무지막지한 무력으로 적을 들이받았을 때의 모습을 가장 잘 기억했다.

하지만 이준이 적에게 가장 무서웠을 때는 바로 천외천을 상대로 암살했을 때였다.

‘잘됐네. 살수인 괴개 님과 철왕, 살마를 가장 먼저 탈락시키면 상대의 대응이 늦어질 거야.’

이준의 목표가 정해졌다.

독과 함정 설치로 인해 몸이 앞으로 쏠려 있는 괴개와 철왕, 살마의 제거였다.

이준이 땅을 박찼다.

이전과 달리 바닥이 거미줄로 쩍 갈리거나.

땅이 움푹 패이지 않았다.

눈이 바람에 조금 흩날릴 뿐이었다.

이준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폭설을 뚫고 가자 금방 사방이 트인 설원에서 빽빽한 나무가 있는 곳에 들어섰다.

‘철왕인가?’

살수 셋 중 가장 약한 각성자였다.

암왕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인 괴개의 그늘에 가려진 자.

그가 첫 번째 타깃이었다.

‘소리부터 차단한다.’

이준은 달리는 그 상태로 발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리고 허공을 강하게 때렸다.

발에 든 내공으로 인해 굉음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대신.

“응?”

철왕이 굽혔던 허리를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림과 동시에 한쪽 손으로 귀를 막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귀에 이상이 있는 얼굴.

이준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철왕에게 접근해 갔다.

이준은 무극군림보를 이용해 철왕의 소리를 막은 것.

진동의 파장을 이용한 묘리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이준이나 되니까 아무 무공을 가지고 상대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시도조차 못 했을 거다.

철왕의 귀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준이 그의 뒤를 점했을 때였다.

철왕은 뒷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뒤에 있었다.

“누….”

철왕이 말하려는 찰나.

이준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그의 혈도를 제압했다.

“우선 한 명.”

이준의 신형이 바람같이 사라졌다.

혈도를 제압당한 철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게 아니었어?’

파천자라면 자신 있게 공격해 올 거라 믿었다.

그가 살수처럼 조심히 숨통을 조여 올 거리 누가 생각했겠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거다.

‘위험하다! 파천자가 사냥을 하려 해. 당장 아군에 알려야 할 텐데.’

철왕은 이 사실을 자신의 진영에 알려야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암담해 하는 사이.

이준은 벌써 살마를 발견했다.

살마는 괴개와 교신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교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이준은 상관치 않아 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튕겨져 나간 다섯 개의 기운이 정확하게 살마의 혈도를 두드렸다.

퍼버버벅!

“억.”

살마의 몸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면서 쓰러졌다.

마혈과 아혈을 제압하니 몸이 마비가 되어 말할 수 없게 됐다.

괴개가 무어라 말했지만 살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괴개 님만 남았네.”

괴개도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들을 전부 제압하면 가주들을 한결 수월하게 사냥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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