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화
[현무가 당신에게 귀속을 청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Y/N)]
“응.”
[현무가 당신에게 귀속되었습니다.]
[‘빙하의 북쪽’ 게이트를 얻었습니다.]
[‘빙하지대’에 속한 몬스터들이 귀속해 옵니다.]
[블랙급 몬스터 설웅이 귀속되었습니다.]
[블랙급 몬스터 정령 프네가 귀속되었습니다.]
[블랙급 몬스터 발루다가 귀속되었습니다.]
……
……
……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00p가 지급됩니다.]
현무를 따라 각종 몬스터들이 귀속해 왔다.
드드드드-
게이트가 진동했다.
지진이 일어나면서 크게 출렁였다.
지진의 진원지는 북쪽 지역이었다.
크게 당황하는 샤크로아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계를 갖춘 녀석들이었으나.
지형이 변하기만 할 뿐.
몬스터의 침입이 없어 긴장을 풀었다.
샤크로아의 거처인 천중호수가 변했다.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호수.
북쪽 게이트 전체가 얼음의 땅이 되었다.
공중에는 눈발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안개로 인해 시야도 보이지 않았다.
“현무는 끝났고, 이제 백호랑 청룡만 남았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을 때.
허공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서 흑염마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무 네 짓이냐?]
흑염마조가 게이트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게 됐다.]
[큭. 인간에게 의지한다고 본좌에게 지랄할 땐 언제고 네 꼴이 우습군.]
흑염마조는 현무를 비웃었다.
현무에게 항상 들었던 무시.
사신수가 되어 인간과 친하게 지낸다고 갖은 핀잔을 들어야 했었다.
사신수로서 위엄을 버리는 행동을 좌시할 수 없다며 으름장까지 놓지 않았던가.
한데 입장이 바뀌었다.
현무가 인간에게 의지한 것.
그것도 큰 주인이 아닌 작은 주인에게.
어찌 보면 큰 주인에게 의탁한 자신의 승리였다.
큰 주인은 신선제지만 작은 주인은 아직 인간이었으니까.
[민망한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쫄면 어떡하지? 크크.]
흑염마조가 날개를 파닥였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닌, 독수리의 모습.
이게 더 얄미웠다.
[닥쳐라! 난 너처럼 평생을 인간 곁에 머무는 게 아니다. 잠시 의탁한 것뿐. 오해하지 마.]
[그냥 편하게 인정해. 죽기 싫어서 작은 주인의 뒤에 숨었다고.]
[큭.]
현무의 분한 음성이 들렸다.
비꼬는 흑염마조에게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작은 주인에게 의탁했으면 얼마나 좋아. 사신수가 미래도 읽을 줄 모르는 건가. 현무의 예지력 다 죽었군.]
흑염마조는 끝장을 보았다.
얼마나 오랜 세월 현무에게 조롱을 당했나.
이참에 모든 울분과 한을 돌려주려는 듯했다.
그래서 현무의 예지력을 들먹인 것이다.
[예지력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을 세우는 건 시야가 좁은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사신수가 크게 볼 줄도 알아야지.]
현무의 예지력은 사신수 중 가장 뛰어났다.
그런데 파천혈신 때부터 현무의 예지력은 계속해서 벗어났다.
심지어 망자에게 위협까지 받았으니.
사신수 중 한 마리로서 체면이 바닥쳤다.
[…죽고 싶나?]
[민망하니까 이젠 힘으로 해결하려는 건가? 지식을 상징하는 현무가 맞는지 의문이군.]
0:3.
흑염마조가 현무를 상대로 입을 턴 스코어였다.
현무의 참패였다.
녀석이 부들부들거리고 있자 이준이 중재했다.
화를 참지 못한 현무가 귀속을 철회하면 큰일이니까.
“조야. 그만하면 됐어.”
[흥. 내가 그동안 받은 대우를 생각하면 이것도 부족하다! 작은 주인.]
흑염마조는 현무가 자리를 피하더라도 하루 종일 옆에서 갈굴 기세였다.
“조야.”
[말리지 마.]
“그게 아니라 너도 당분간은 여기에 머물러. 너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
[본좌를 저딴 얼음 거북이와 비교하는 건가?]
“네 영역도 이곳에 있고 하니까 굳이 다른 곳에서 힘을 회복할 필요 없다는 말이지.”
[흠.]
“너한테는 좋을 텐데? 현무가 북쪽에 있으니까 매일 찾아가서….”
이준은 뒷말을 흐렸다.
흑염마조는 그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좋은 생각이군. 작은 주인 똑똑한데? 크크.]
흑염마조가 음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현무를 바라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독수리와 같달까.
[본좌도 이곳에 머물도록 하지.]
졸지에 주작과 현무가 동시에 눌러앉게 됐다.
게이트가 상당히 시끄러울 테지만 상관없었다.
이준은 이곳을 나가면 그만.
피를 보는 건 금역의 몬스터였다.
“친하게 지내 봐.”
그 말을 하고 이준은 게이트를 나갔다.
사신수가 이곳에 있으면 안심할 수 있었다.
여긴 자신의 영역.
누군가가 쳐들어오면 바로 경고음이 울렸다.
게다가 경고 메시지도 동시에 와서 곧바로 침입자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룡과 백호만 찾으면 마음의 평화가 생길 터다.
‘백호부터 만나 봐야겠어.’
* * *
북경.
마헝 그룹의 본사.
마헝의 회장이 젊은 남자를 보며 흡족해 했다.
“네 형들이 다 죽어서 실의에 빠졌는데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려 이 애비가 얼마나 마음이 놓인 줄 아느냐.”
“죄송합니다.”
“하, 하하.”
마헝 회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비서실장을 보며 말했다.
“자네 들었는가? 내게 존댓말을 했네.”
“들었습니다.”
“그때의 일이 너를 변하게 만들었나 보구나.”
“형들이 죄다 죽었습니다. 병신이 아닌 이상 정신을 차려야지요.”
마헝 회장은 막내아들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술이나 약에 취해 있는 모습이 아닌 정기가 가득했다.
자신의 앞에만 서면 항상 주눅들어 있던 녀석.
그런데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니면 발톱을 감추고 있었을 수도 있겠어.”
일부러 망나니 짓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정신을 차렸는지.
마헝 회장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편하실 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래. 네가 어떻든 뭐가 중요하겠느냐. 달라진 게 중요하지. 비서실장.”
“예 회장님.”
“마헝의 후계자로 어떤가.”
“죽은 첫째 도련님과 둘째 도련님의 금융, 유통을 단숨에 수습했습니다. 후계자 자격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마헝 회장은 비서실장에게 답을 원한 게 아니다.
그저 막내아들의 칭찬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죽은 첫째와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망나니짓을 청산한 막내아들이 더 뛰어났다.
그는 돈과 조직을 굴릴 줄 알았다.
그뿐인가.
각성자 등급도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다.
마헝의 후계자로서 가장 적합한 아들이었다.
“당장 그룹 임원진을 소집하게.”
“예. 회장님.”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회장실을 나가려는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버지.”
마헝의 막내아들이 된 살주가 회장을 불렀다.
“왜 그러느냐.”
“후계자는 공표하되 제가 정신을 차렸다고 말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응?”
“제 사람을 가려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네 사람이 될 임원을 솎아 내고 싶다는 말이냐?”
“네.”
“하, 하하하하.”
마헝 회장이 방 안을 떠나가라 웃었다.
아들이 두 명이나 죽어서 울적했는데 막내아들이 기쁨을 줬다.
첫째도 하지 않았던 행동.
저 말은 자신의 편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으나.
단점이 더 컸다.
회사의 임원들을 전부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것.
마헝 그룹은 재벌가이기 전에 그룹.
혈족 계승이 희미한 단체였다.
그랬기에 피로 엮인 가문과는 달리 힘으로 찍어 누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후계자였던 마헝의 첫째가 임원을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막내가 임원을 건드린단다.
어찌 즐겁지 않을까.
“알았다. 네 뜻대로 해 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가 보거라.”
“네.”
살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마헝 회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그룹으로선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회장님.”
“말하게.”
“막내 도련님의 성격이 고쳐진 건 아닙니다.”
“무슨 소린가?”
“술이나 도박, 마약은 꾸준히 하고 있답니다.”
“뭐야!?”
“하지만 그뿐입니다. 일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자네가 마약과 도박은 끊었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뒤늦게 보고가 올라와서 막내 도련님이 돌아가시면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망나니짓은 그대로 한다라….”
마헝 회장이 생각에 잠겼다.
막내아들의 눈빛은 결코 마약을 한 눈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기가 가득하지 않았나.
“직원들을 패는 것도 똑같은가?”
“예.”
“일부러 자신을 숨기려는 거군. 사람이 너무 바뀌면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니.”
“아까 도련님의 말을 듣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 건가.”
“예. 우선 회장님께서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룹이 재미있어지겠어.”
“그리고 첫째 도련님과 둘째 도련님을 죽인 흉수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CCTV가 전부 고장나고 범인의 흔적도 깨끗하다 하지 않았나?”
“이 또한 막내 도련님이 찾아냈습니다.”
“막내가? 그래서 누군가?”
“텐바이 그룹의 각성자였습니다.”
쾅-
마헝 회장이 손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그도 각성자였기에 탁자가 산산조각 났다.
텐바이 그룹은 마헝 그룹과 같은 유통 재벌이었다.
중국의 아티팩트 시장을 독점하는 두 그룹.
라이벌 관계인 마헝과 텐바이는 항상 싸웠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서로 물어뜯기 바빴다.
마헝 회장은 텐바이 그룹이 궁지에 몰리자 선수를 쳤다고 생각했다.
“무리한 투자로 자본이 잠겼다고 하더니 개자식이 감히 내 아들들을 건드려? 당장 각성자를 소집해.”
“차라리 막내 도련님께 텐바이 그룹을 맡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녀석은 후계자야. 내 하나뿐인 핏줄. 위험한 곳에 가게 할 순 없네.”
“이 사실도 막내 도련님은 알고 있습니다. 먼저 움직인다고 합니다.”
“언제?”
“오늘 밤입니다.”
“얼마 안 남았지 않나.”
마헝 회장의 눈이 커졌다.
좋았던 기분이 싹 날아가 있었다.
* * *
북경 시내에 화마가 찾아왔다.
마헝 그룹의 높은 빌딩과 쌍벽을 이루는 건물.
텐바이 그룹의 본사가 불에 타고 있었다.
화마를 보는 살주가 중얼거렸다.
“이로써 모든 의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살주. 질문이 있습니다.”
“말하라.”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마헝의 후계자를 죽인 증거를 깨끗하게 지웠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각성자가 나타나도 자신들이 범인이라는 걸 알아내지 못한다.
한데 살주는 일을 복잡하게 했다.
“우리의 흔적을 텐바이 그룹에 덮어씌움으로써 모든 의문을 해소한다. 복수를 끝낸 마헝 회장은 앞으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한 게 아니라 마헝 회장이 텐바이 그룹을 없앤 거다. 난 사람들한테 여전히 망나니지.”
마헝 회장을 닮아 사업은 잘하나,
여전히 개망나니.
절대 버릇이 안 고쳐질 종자로 여겨질 터.
마헝의 후계자가 됐지만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될 거다.
살주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일.
구천옥에서의 힘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는 잠자코 있는 게 좋았다.
“내가 헛짓거리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내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말이야.”
“소인이 어찌 살주의 큰 뜻을 알겠습니까.”
“후후.”
살주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웃었다.
그러다 수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혼에게는 연락이 없나?”
“이제 올 때가 됐습니다.”
“생사경씩이나 돼서 현무를 못 잡은 건 아니겠지?”
“그러면 혼의 칭호를 떼야 합니다.”
살주는 현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지만, 일부러 가지 않았다.
살주는 굉장히 신중한 인물.
모습을 드러내서 염라대왕에게 걸리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현무를 죽이는 일은 그에게 중요했으나 목숨보다는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는 생각으로 수하들만 현무에게 보냈다.
수하들만으로도 현무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했으니.
굳이 자신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빨리 소식이 왔으면 좋겠군.”
“사혼도 백호를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 혈루곡이 일은 정말 잘한단 말이야.”
“전부 살주께서 키운 아이들입니다.”
“그렇지. 내가 키운 아이들이지.”
살주가 만족스러운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
이준은 각사학으로 돌아왔다.
그의 말대로 거점 점령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