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베이징시.
중국의 대표인 주석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웅성웅성.
“주석께서 무슨 일로 저흴 불렀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뜬금없이 부를 때는 꼭 피바람이 불었는데.”
“불길하긴 합니다.”
기자회견장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머리는 발랑 까져 있고 얼굴에는 아집이 가득한 남자, 중국의 주석이었다.
그의 등장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모였나?”
그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석이 마이크를 잡았다.
회견장 중앙에 설치된 화면을 응시한 주석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시간부로 한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웅성웅성.
회견장이 시끄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상황.
인민 기자들조차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 전쟁?”
“전쟁이라니.”
“예고도 없었는데.”
“자네는 전쟁한다는 정보를 들었나?”
“금시초문이야.”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지?”
기자들이 멍을 때리든 말든 주석은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중국은 막강한 전력을 이용해 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예정이다. 목숨이 아깝다면 한국의 검제가 손수 무릎을 꿇고 중국의 대각성자를 맞이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한국의 정부는 거의 유명무실했다.
대표 역할을 하는 건 15가문 연맹회.
그중에 철혈검가의 태상가주인 검제는 한국의 자존심이었다.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맞이하라는 건 속국을 자처하라는 말과 똑같았다.
“주석께서 말씀하시는 거니, 혼란스러워도 기사를 씁시다.”
“우리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지.”
“언젠가는 한국에 전쟁을 선포할 줄 알았지만 그게 오늘일 줄이야.”
“돈을 많이 벌 기회가 왔어.”
전쟁은 수많은 희생을 나았지만 더불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간에서 정보를 팔든지, 전쟁 물자를 팔든지.
이 이외에도 많은 장단점이 존재했다.
기자들은 노트북을 켠 채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주석은 화면을 응시한 채 마지막 말을 했다.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그 즉시 응답하길 바란다.”
주석이 비열한 웃음을 지은 후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그가 복도를 지나 어느 방으로 향했다.
철컥-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한 청년.
인주가 주석을 향해 웃었다.
“잘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군.”
한 나라의 주석이 인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숙였던 얼굴을 들자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남자는 얼굴과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역용화신술이란 무공을 사용한 것이었다.
“전 각성자는 소집했나?”
“물론입니다. 모두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소모품인 놈들 뿐이지만 상대의 힘을 빼놓기엔 충분하지. 크크. 놈들의 반응이 어떤지 기다려 볼까?”
인주가 섬뜩한 눈빛을 발하며 웃었다.
장난감을 찾아 헤매는 어린아이 같아 더 소름이 돋는 미소였다.
* * *
무사고 직원 회의실에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들이 모두 모였다.
“중국이 이젠 대놓고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당연히 전쟁을 해야지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검제 님과 괴개께서 이번 일로 인해 부상을 당했소. 휴식을 취해도 모자랄 판국에 또 앞으로 나서야 한다는 건 그분들을 죽으라고 떠미는 꼴이오.”
“천외천에 이어 중국이라니… 모두 한 패 아닙니까?”
가주들이 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 냈다.
한국이 동네북도 아니고, 쉴 틈이 없었다.
그때 신기지가의 가주인 한지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외천의 근거지는 중국입니다. 그들의 무력으로 보아 중국을 먹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중국 주석의 전쟁 선포도 분명 천외천 짓일 게 분명합니다.”
“1차 침공에는 천외천만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천외천의 숫자가 그리 많은데 중국의 각성자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가 엄청나지 않을까요?”
“돌아 버리겠군.”
답이 안 나왔다.
현세대는 게이트에서 몬스터 사냥은 해 봤을지언정 전쟁은 해 보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큰 사상자가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드르륵-
직원 회의실로 검제와 괴개, 이준이 들어왔다.
“하던 회의 계속하게.”
세 사람은 회의실 뒤쪽에 가서 앉았다.
“저희만으로는 결론이 안 나올 것 같습니다. 아버, 아니 검제께서는 의견이 있으십니까?”
검왕이 검제에게 물었다.
“방법이라….”
“있긴 있지.”
검제와 괴개의 말에 가주들의 눈이 커졌다.
몇 시간을 회의해도 생각나지 않았던 해결 방안을 검제와 괴개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뭡니까?”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 대장전뿐이야.”
“아.”
“그게 있었지!”
“오로지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가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제가 말한 대장전이라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됐다.
그럼에도 리스크는 존재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방식이었으니.
패자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해 보지도 못하고 모든 걸 내어 줘야 했다.
국가의 명운을 대장전의 출전자에게 거는 거라 도박에 가까웠다.
“창제의 생각이었네.”
검제가 이준을 가리켰다.
세 사람은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에서 선전포고를 응수하는 방법을.
그들이 거부하지 못할 제안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게 바로 대장전이다.
비무는 무공을 서로 겨누고 누가 더 뛰어난지 알아보는 대련과 같은 거지만.
대장전은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중국이 선전포고했는데 한국이 대장전을 제안하면 거절은 절대 못 할 터.
그 콧대 높은 중국이 대장전을 거절하는 건 제 얼굴에 먹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대장전을 거절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최고이며, 중국은 모든 나라의 중심이다 라고 외친 게 허풍이라고 비웃음 살 게 명백했다.
“대장전이 열린다면 몇 명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우리 세 명이 나설 것이네.”
“아직 부상의 여파가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다.”
“무리하시지 않아도….”
가주들이 걱정하는 듯 말리자 괴개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괜히 걱정하는 척하지 말아라 쯧. 우리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놈들이 입만 살아 가지고는.”
괴개가 가주들을 향해 핀잔을 줬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알기에 가주들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아들인 철왕이 주변의 가주들에게 눈으로 사과했다.
“부상은 우리가 알아서 관리할 터이니 중국에 대장전을 제안해 주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신기가주 한지웅이 대답에 이준이 말을 보탰다.
“아, 그리고 꼭 전해야 될 말이 있어요.”
“무언가?”
철왕이 되물었는데, 괴개가 버럭 했다.
“빌어먹을 아들놈아. 넌 예의를 밥 말아 처먹었느냐?”
“아, 아버지. 여긴 가문이 아니라 학교입니다만…?”
철왕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데 괴개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체면을 차리고 싶으면 너부터 예의를 차려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망할 놈이 아비 얼굴에 흙을 뿌리고 앉아 있구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창제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지만 여기 내 불알친구도 그에게 말을 높이고 있다.”
“크흠. 심호야. 불알친구는 좀, 아이들이 듣지 않느냐.”
“춘식이 넌 가만히 있어라. 나 또한 창제에게 예의를 다하는데 너희가 무슨 자신감으로 반말을 지껄인단 말이냐!”
괴개가 가주들을 향해 호통을 치자.
가주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괴개의 또 다른 별명은 암독.
그가 내뱉는 숨, 하나하나가 독기였다.
그가 내공을 컨트롤해서 그렇지, 마음먹는다면 숨 하나만으로 회의실의 공기를 독기로 바꿀 수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흐흡!”
“아, 아버지. 이 독기 좀 치워 주십시오….”
“쿨럭쿨럭!”
가주들이 숨을 참다가 하나둘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상태는 더 악화가 됐다.
“그만해라. 그러다 아이들 잡겠다.”
검제가 막지 않았다면 큰 사달이 났을 거다.
괴개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렸다.
“써글 놈들. 지들이 뭐라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어. 에잉 쯧.”
“이제 제가 말해도 될까요?”
“말하시오.”
괴개가 이준에게 말을 높이자 기침하던 가주들이 뜨악했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굽히지 않기로 유명한 괴개라 더 놀란 가주들이었다.
눈이 커진 가주들을 보며 이준이 말했다.
“검제 님과 괴개 님 부상이 심각하지만 그래도 중국을 상대로 대장전은 충분하다고 전해주세요.”
그의 말을 알아들은 한지웅이 대답했다.
“도발해서 시간을 벌 생각이군요.”
원래는 한지웅도 이준에게 반말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예전과 다른 명성을 가진 이준.
몇 달 전처럼 편하게 대할 순 없었다.
“맞아요. 며칠이라도 시간을 버는 게 저희 쪽에는 유리하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 두 분의 상태가 안 좋은가 봅니다.”
“부상은 대장전 전에 말끔히 치료할 수 있어요. 시간을 번 동안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이준의 말에 검제와 괴개의 눈은 의욕으로 가득했다.
“그대로 중국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분들 치료부터 해야 하니 저희는 일어날게요.”
세 사람이 회의장을 나갔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느낌.
가주들은 이준의 위치를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 * *
이준은 두 사람을 데리고 신력권가로 왔다.
“가주를 뵈옵니다.”
동의각주인 이의태가 이준에게 인사를 했다.
“으잉? 형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또 보네. 동생.”
“가주께서 타 가문 사람을 쉬이 집으로 불러들이실 분이 아니신데….”
“하하. 오늘부터 잠시 신력에 머물 생각이니 많이 보세나.”
“이게 무슨 말입니까, 가주님?”
“들은 그대로예요. 며칠 정도 이곳에서 수련하기로 했어요.”
“이 두 분이 말입니까?”
“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준비를 해야겠군요.”
“근육통이랑 피로에 좋은 약으로 준비해 주세요.”
“분부 받들겠습니다.”
이준과 이의태의 알 수 없는 대화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검제와 괴개였다.
이의태는 두 사람을 향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늙은 나이에 고생을 사서 하다니, 무운을 빌겠소.”
그가 이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가다가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젓기까지 했다.
“동생이 저런 반응을 할 사람이 아닌데….”
“언제 나 말고 친구를 만들어 놨냐.”
“심호야. 난 너처럼 외톨이가 아니란다.”
“친구가 나밖에 없는 놈이 아니긴. 흥.”
검제의 말에 괴개가 코웃음을 쳤다.
이준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이끌고 자신의 거처인 낙성각으로 갔다.
낙성각 앞 연무장에는 무극대가 각자 수련을 하고 있었다.
짝!
이준이 손뼉을 마주치며 무극대를 불러 모았다.
“집합.”
그의 부름에 무극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너희들이 도와줘야 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50명씩 두 조로 나눠서 두 분을 공격할 거야.”
이준은 검제와 괴개를 가리켰다.
“잠깐! 치료부터 한다고 하지 않았소?”
“네. 치료할 거예요. 검제 님과 괴개 님 힘을 최대한 뺀 다음에요. 금방 힘드시다고 하실 거예요.”
이준이 빙그레 웃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벌이길래 저러는 건지.
검제와 괴개는 그의 생각을 도무지 알아챌 수 없었다.
“두 분은 마음껏 무공을 사용해도 되세요. 연무장에는 튼튼한 방벽이 설치되어 있어서 맘 편히 하셔도 됩니다.”
“흠, 창제의 말대로 하리다.”
검제와 괴개가 연무장으로 갔다.
자연스레 무극대가 반으로 나뉘었다.
“모두 전륜마멸진을 펼쳐서 공격해.”
“최선을 다합니까?”
“실전처럼 해. 안 그러면 너희들이 다친다? 두 분도 봐주시지 말고 하세요.”
“알겠네.”
“시작해.”
“전륜마멸진을 전개한다.”
사형준과 김봉팔의 외침에 두 곳으로 나뉜 무극대가 전륜마멸진을 형성했다.
그들의 발밑에 새겨진 진법.
전륜마멸진이 펼쳐지자 무극대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막상 상대가 되어 보니 적들의 심정을 알 것 같구나.”
“헉! 이 진법은 뭐냐!?”
검제는 무극대가 사용하는 진법을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괴개는 달랐다.
이준과 무극대를 처음으로 본 게 불과 일주일 전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살짝 기분이 나빴다.
창제를 상대하는 게 아닌 고작 무극대를 상대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무극대의 압박감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