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이지안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입장했다.
반대편에는 옥심난검 나혜원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잘해 보자.”
“네.”
나혜원이 방긋 웃으며 말하자 이지안이 짧게 대답했다.
이 짧은 인사 속.
서로에 대한 경계가 가득했다.
이지안은 학생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잔뜩 긴장한 학생들.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길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사마고 출신 구찬기가 큰 목소리를 내었다.
“제가 있는 한! 절대 지지 않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교수님.”
스무 살인 구찬기가 두 살이나 어린 이지안에게 교수라고 하자 뭔가 우스꽝스러웠다.
옛날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무리 영재라도 18살의 나이에 교수가 되는 일은 없었다.
하나 지금은 대각성자 시대.
등급만 높으면 나이가 어려도 대접을 받았다.
이지안의 등급은 AA급 완숙.
A급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자격이 충분했다.
“선배. 장난칠 때가 아닙니다. 나 교수님의 학생들은 저희보다 강해요.”
“강해도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인마. 쫄면 아무것도 못 해.”
“그건 구찬기 학생의 말이 맞아요.”
“들었지? 설화 교수님도 내 말이 맞다고 하시잖아,”
“그래도 저쪽 학생들과 우리의 차이가 좀 많이 나요.”
구찬기의 후배인 최한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지안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평균 등급은 B급 끝자락.
한데 나혜원의 학생들 평균은 A급 초입이었다.
상당한 차이의 전력.
승패 예측도 나혜원 쪽이 우세였다.
이지안의 학생들이 잔뜩 긴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냥 무력만으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전략을 짜면 달라. 안 그렇습니까, 교수님.”
“네. 훌륭한 전략은 강한 적도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선배가 전략이라도 짰다는 말로 들립니다.”
“당연히 생각해 왔지. 교수님은 움직임에 제한이 있고, 의견을 낼 수 없으니 내가 하는 수밖에.”
“선배 말고도 다른 학생들도 있는데요?”
“여기서 내가 제일 강하면서 똑똑한 것 같아.”
“에엑?”
“그건 아닌데….”
“인정할 수 없어.”
“수치스럽구만.”
구찬기의 말에 학생들이 저마다 반응했다.
“뭐야, 그 반응들은?”
“인정 못 하겠다는 겁니다.”
“우씨. 그러면 너희들은 전략이라는 걸 생각해 왔어?”
“선배 전략부터 말해 보세요.”
“나? 내 전략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학생들의 시선이 구찬기의 입으로 집중됐다.
“나랑 한결이가 선발대로 가서 적의 진영을 흩트리는 거야.”
“그리고요?”
“나머진 거점을 지키고 있다가 적 진영이 망가지면 세 개의 조를 투입해서 상대방의 거점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나머진 저희 거점을 방어하고요?”
“그렇지.”
“가능하겠어요?”
“너랑 나랑 죽어라 휘저으면 가능성은 있지?”
“반반일 것 같은데. 안 되면 망하는 거고.”
최한결의 등급은 A급 초입.
거의 벽을 깨기 일보 직전이었다.
A급 초입 중에선 가장 강한 각성자였다.
나혜원의 학생 중에서도 구찬기와 최한결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다만 나혜원의 학생들은 등급이 고루 분포되어 있을 뿐.
그들이 뭉친다면 구찬기와 최한결도 고전할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을 둘러싸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터다.
“교수님은 이 작전 어때 보여요?”
이지안은 그저 최한결의 눈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교수가 의견을 제시하는 건 반칙.
중간고사 시험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만히 듣고만 있는 그녀였다.
“아.”
최한결이 짧게 신음을 냈다.
이지안과의 눈 맞춤.
그로선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그가 각사학에 들어왔을 때 예쁘다고 생각했던 여자는 한빙장, 수화란 이명을 얻은 박은비였다.
한데 그녀보다 더 신비롭게 생긴 이지안과 눈을 마주치자 넋을 잃은 것이다.
퍽-
“억.”
“새꺄. 정신 차려라.”
구찬기가 최한결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선배!”
“뭐.”
구찬기가 눈알을 부라리자 최한결이 한발 물러섰다.
“아팠다고요.”
“아프라고 때렸다. 한눈팔지 말자. 지금은 거점 점령전에 집중할 때야.”
“예.”
“너희들의 의견은 어때?”
구찬기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있었지만.
입학 동기라는 학교의 규칙에 따라 반말을 했다.
물론 아직까지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존댓말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구찬기는 예외였다.
원래 알던 최한결에게는 선배 대접을 받으면서.
자기는 나이 많은 이들에게 동기라는 이유로 반말을 했다.
그는 오직 능력주의로 사람을 판단했다.
자신보다 강하면 나이가 많든 어리든 다 대접을 해 줬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반말했다.
“딱히….”
“네 전략이 좋은 것 같기도.”
“그대로 가자.”
학생들은 구찬기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전략을 짜든 안 짜든 결과는 똑같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는데 한결아?”
“선배 말대로 해요.”
학생들이 말하고 있는 그때, 방송 소리가 실내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1분 후 거점 방어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준비를 마쳐 주십시오.]
구찬기는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최선을 다해 보자.”
“응.”
“그래.”
그들의 자신감 없는 목소리에 이지안이 입을 열었다.
“포기하는 순간 거점 방어전은 끝이에요. 수련은 헛되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하세요.”
이지안치고 굉장히 길게 말했다.
그녀의 독려에 학생들도 죽은 눈빛을 버렸다.
“네 교수님!”
그렇게 첫 거점 방어전이 시작되었다.
* * *
첫 거점 방어전의 필드는 산악.
사방이 산으로 가득했다.
이지안의 학생들과 나혜원의 학생들은 거점으로 삼을 위치를 찾아다녔다.
“여기 어때?”
“위에서 다 내려다보여.”
“여긴?”
“사면이 뚫려 있어.”
“이곳이 딱 이다.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위쪽에서도 거점이 안 보여. 매복하기도 좋고.”
하나 구찬기는 고개를 저었다.
“나무가 너무 많아. 양강의 무공이나 불 속성 마법을 사용하면 불바다가 될 거야. 다른 곳을 찾아보자.”
구찬기는 더 좋은 거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홀로그램의 지도를 켜고 고민에 잠겼다.
‘매복도 할 수 있고, 불 속성 마법에 안전한 곳이어야 해.’
“선배 여기는 어떻습니까?”
최한결이 가리킨 곳은 산의 중턱이었다.
“회색으로 작게 색칠되어 있는데 동굴이겠죠?”
“가 보자.”
구찬기와 최한결을 따라 학생들이 움직였다.
그 뒤를 이지안이 졸졸 따라다녔다.
회색 지점에 도착했다.
“역시. 동굴이었어.”
“거점은 여기가 좋겠다.”
“여기는 더 뻥 뚫려 있는데 괜찮겠어?”
“산 위에서 기습해 오면 더 곤란할 거야.”
학생들이 우려를 표했다.
산 중턱이라 공격해 올 루트가 많은 탓이다.
“그만큼 우리도 적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보인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곳에 환영진이나 결계를 깔아 놓고 1차 방어를 하면 돼. 적어도 화공에는 당하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거점에는 교수님이 있을 거니 화공에는 끄떡없어.”
“특수 권한을 거점 방어하는데 사용하실 겁니까?”
“만에 하나라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잖아. 교수님만큼 거점 방어를 잘하는 각성자가 있어?”
그들이 거점으로 삼은 곳은 산의 중턱.
산은 나무로 가득했다.
화공을 펼치면 동굴 안은 찜통이 될 터다.
하나 이지안이 방어를 한다면 찜통이 될 걱정은 없었다.
그녀는 강한 음기를 가진 각성자였으니까.
그녀의 빙공이면 그 어떤 양기의 무공이 와도 산을 불태우지 못할 것이다.
“없습니다.”
“특수 권한으로 거점을 방어하고 우린 그사이 적의 깃발을 뺏는 거야. 오케이?”
“네.”
최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마음 놓고 적진으로 달려들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찬성했다.
“거점 설정 완료.”
구찬기는 동굴 안에 깃발을 꽂아 넣고는 명령어를 사용했다.
[이지안 교수 팀은 거점 지정 완료했습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나혜원 교수 팀도 거점 지정을 완료했다.
[모두 무운을 빕니다.]
거점 방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구찬기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나랑 한결이가 신호 주면 저쪽 애들 무시하고 거점으로 돌격해.”
“알겠어.”
“이따 보자.”
구찬기와 최한결은 경공을 펼쳐 앞으로 나아갔다.
지도에 찍힌 빨간 점.
나혜원 교수 쪽 거점이었다.
상대 팀은 분지를 선택했다.
가파른 능선을 넘어야지만 거점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형.
대신 깃발 주위는 허허벌판이었다.
“능선이 고비겠는데?”
“능선 밖으로는 안 나올 작정으로 그쪽에 거점을 잡은 것 같아요.”
“죽어라 공격하면 지들이 안 나오고 배기겠냐.”
“생각대로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우린 최대한 깽판 쳐야 해. 명심해라.”
“예예.”
구찬기와 최한결이 능선 앞에 도착했다.
나혜원의 학생들이 능선 위에 도열해 있었다.
침입을 아예 허용하지 않을 심산.
두 사람은 이미 예상했었다.
“가자.”
“네.”
그들은 동시에 반대편으로 경공을 펼치며 흩어졌다.
반대쪽에서 부딪혀 적을 분산시키려는 모양.
구찬기와 최한결의 검에서 검기가 뿌려지는 순간!
“지금이다.”
상대 학생의 외침이 들렸다.
능선에 도열해 있던 최전방 학생들이 구찬기와 최한결을 무시하고 스쳐 지나갔다.
“너희들 어디 가는 거야!”
“우리랑 싸워!”
구찬기가 지나간 이들을 향해 경공을 펼치려는데.
“너는 우리가 상대해 줄게.”
2선을 지키고 있던 학생들이 구찬기와 최한결을 막아섰다.
“X발. 작전 실패다.”
[오히려 좋습니다.]
구찬기가 욕을 내뱉자 최한결이 전음을 날려 왔다.
[무슨 개소리야?]
[특수 권한을 거점 방어에 사용할 거잖아요.]
[그런데.]
[이지안 교수님이 있는 곳으로 가장 강한 이들이 갔습니다. 그렇다는 건 여긴 저희끼리 해 볼 만하다 이 말이죠.]
[아.]
[차라리 나혜원 교수님도 공격에 특수 권한이 사용됐으면 좋겠습니다.]
[밀리는 척 연기해야 하나.]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나혜원 교수님도 방어전을 빨리 끝내려고 공격 쪽으로 붙을 수도 있어요.]
[좋아.]
두 사람은 상대 학생들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검기가 번쩍였다.
나무를 베고 날아간 검기.
강맹함에 상대 학생들이 힘겹게 막았다.
“상대는 단 두 명이야! 무력화시켜.”
두 사람을 향해 상대가 한꺼번에 덮쳐 왔다.
* * *
이준은 거점 방어전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두 팀의 특수 권한은 정반대로 사용됐다.
이지안 팀은 거점 방어.
나혜원 팀은 거점을 공격.
과연 어떤 팀이 이기게 될까.
굉장히 흥미로웠다.
“파천자.”
“네.”
“어떤 팀이 이길 것 같은가.”
“춘식아. 물어볼 걸 물어보거라. 답은 이미 나왔지 않느냐. 나 교수 측이 이긴다.”
괴개가 검제에게 핀잔을 줬다.
“그래도 설화가 있는데 쉽게 질 것 같으냐.”
“설화가 옥심난검에게 조금이라도 잡히면 깃발은 순식간에 뺏기고 만다. 교수들이 의견을 낼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지 모르지만 저 작전은 학생들이 냈을 거다. 결과는 나와 있어.”
“조용히 좀 해라. 네 의견을 묻는 게 아니야. 파천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지.”
이준의 곁에 있는 가주들도 귀를 활짝 열었다.
이지안이 특별 1반 출신이긴 하나.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사신가의 무공을 가졌으나.
상대도 아미파의 무공을 계승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또한 학생들이란 변수가 있었다.
특수 권한의 제한 시간은 단 10분.
이게 끝나면 교수들은 움직일 수 없다.
그렇기에 공격하는 쪽이 굉장히 유리했다.
뿐인가.
구찬기와 최한결을 제외하면 이지안 팀의 전력은 평균적으로 낮았다.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하다는 이야기.
특수 권한이 끝나는 순간 이지안 팀의 패배가 자명했다.
“전 지안이 쪽이 이길 것 같아요.”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더니. 설화를 택했군.”
“같은 가문이라서 선택한 게 아니라 결과가 그렇게 나올 거예요. 한번 보세요.”
이지안은 구음절맥을 앓았었다.
그 말은 즉.
머리가 비상하다는 이야기.
여태까지는 머리를 굴릴 일도 없었을뿐더러 이준의 강론으로 인해 힘으로만 해결했다.
하나 거점 방어전은 다를 것이다.
이지안이 의견은 내지 못하지만 특수 권한을 사용하게 되면 이길 방법을 찾을 터.
이준은 그녀가 어떻게 상대를 이길지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