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8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해외 유학생의 학부모들이 이준에게 강의 체험을 받고 간 지 두 달.
유학생들은 불만 하나 없이 강의를 받았다.
그 결과.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가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가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가 지급됩니다.]
……
……
……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p가 지급됩니다.]
테크트리 포인트가 계속 쌓이고 있었다.
유학생들과 그의 부모들.
그리고 특별 1반 출신들이 학생들을 가르친 포인트까지.
전부 들어오자 드디어 테크트리 포인트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준은 가문의 낙성각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고심에 잠겼다.
-신살의 운명을 받은 파천의 길 루트(EX)
무공 - 패천기공 사공 파천멸진(0/999,999,999)
마법 - 검은 군주 파르가의 심장(0/999,999,999)
능력치 - 마나+15(200,000,000)
‘패천기공의 사공 파천멸진을 배워야 할까요? 아니면 검은 군주 파르가의 심장을 얻어야 할까요?’
[네 뜻은 어떠하더냐.]
‘저야 당연히 패천사공이죠.’
[그러면 패천사공을 배우거라.]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에는 성의가 없었다.
귀찮아하는 음성이랄까.
아니, 그보다 놀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패천사공을 배우면 제가 쓸 수 있긴 해요? 한 번 쓰고 탈진 오는 거 아니에요?’
[직접 확인해 보거라.]
‘절 골탕 먹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 선하네요.’
[어찌 알았느냐?]
‘사부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어요.’
[제자 놈의 안목이 날로 좋아지고 있구나.]
‘저 심각해요. 이젠 포인트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잘못 쓰면 몇 달간 테크트리도 못 찍어요.’
[그건 네 사정이니라.]
‘악덕 사부.’
[뭬야?]
‘아 들으셨어요? 혼잣말이었는데 죄송요.’
약이 오른 이준도 반격에 나섰다.
무극자 사부는 꼰대 중에 꼰대.
예의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제자가 버릇이 없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사람.
이를 잘 아는 이준은 일부러 싸가지 없이 행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빌어먹을 제자 놈이! 어디 하늘 같은 사부에게 막말을 하는 것이냐! 오냐, 내 오늘 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느니라.]
무극자 사부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하얀 백발과 장포를 펄럭이며 이준에게 기운을 쏘아 보냈다.
이럴 줄 알고 이준도 방어를 단단히 했다.
‘저도 이제 안 봐줍니다.’
[흥. 네가 날 따라오려면 1000년은 이르다.]
일촉즉발의 상황.
무극자 사부가 진짜로 기운을 뿌려대자 이준이 꼬리를 말았다.
‘제자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노여움을 푸세요. 사부님.’
이준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무극자 사부가 이마를 찌푸렸다.
‘대해같은 마음을 가지신 사부님께서 설마 제자를 겁박하시는 건 아니죠?’
[네놈…]
‘봐주시는 걸로 알아듣겠습니다.’
이준이 속사포로 말하자 무극자 사부도 기운을 풀었다.
도중에 일갈을 날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운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고.
어정쩡한 상황에 기운을 갈무리 한 것이다.
[요즘 머리를 꽤나 쓰는구나.]
‘사부님께 제대로 배운 덕분이죠.’
이준은 방긋 웃고는 테크트리 포인트로 마법 항목을 눌렀다.
[‘검은 군주 파르가의 심장’을 얻었습니다.]
[혼원의 혼돈의 기운이 ‘파르가의 심장’에 녹아내립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심장에 자리한 사대 원소들이 검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심장에는 커다란 검은 표식과 회색 표식밖에 남지 않았다.
‘다 된 건가?’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가주 오빠.”
“어, 지안아. 어쩐 일이야?”
이지안이 이준이 있는 곳으로 왔다.
표정에 변화가 없는 녀석.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모습은 오빠인 이준이 봐도 무척 신비롭고 청순해 보였다.
누가 데려갈지.
훗날 이지안의 남편이 될 사람은 그녀를 모시고 살 게 분명했다.
‘아니면 죽여 버릴, 이상한 생각 하지 말자.’
누가 오빠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여동생을 걱정하는 이준이었다.
“거점 방어전 구경 오실 거죠?”
“언제 하는데?”
“삼 일 뒤에 있어요.”
“벌써?”
“이것도 많이 늦게 시작한 거예요.”
“흠.”
“이번에도 교수들이 지휘자로 참여한다고 해요.”
“교수들도? 밸런스 붕괴일 텐데.”
“이사장한테 검제 님과 괴개 님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고 들었어요.”
“학생들은 핑계고 너희들의 실력을 보고 싶은 건가?”
“그분들이야 워낙 즉흥적이라….”
“네가 가르친 반은 언제 하는데?”
“삼일 뒤에 해요.”
“빨리하네. 상대 교수는 누구야?”
“나 교수님이요.”
“옥심난검 나혜원?”
“네.”
나혜원은 대정 그룹 소속 각성자였다.
아미파의 무공을 계승한 단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을 계승한 이들은 패닉에 빠졌으나.
각성자 시스템이 원래대로 돌아와 무공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등급이 AA급이었나?”
“가주 오빠한테 도움받아서 AA급 완숙이 되셨죠.”
“너랑 등급이 같네. 자신 있어?”
“구경 오면 직접 보여 드릴게요.”
이지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오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
계승받은 무공에 대한 확신이었다.
“좋아. 보러 갈게.”
“정연 언니랑 지유 언니도 가주 오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나 안 봤다고.”
[허허, 이 눈치 없는 제자가 또.]
‘왜요.’
[넌 고자가 분명하니라.]
‘절 모욕하지 말아 주실래요?’
[고자란 욕을 들어도 싼 녀석이다, 이눔아.]
‘제가 뭘 했다고요.’
[말을 말자꾸나. 너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니라.]
무극자 사부가 상종 못 할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준은 억울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더 했다간 한 바가지 욕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지안도 무극자 사부와 똑같은 반응을 했다.
“언니들한테 신경 좀 쓰세요. 그러다 죽을 거예요.”
“내가? 설마. 두 사람이 덤빈다 해도 날 못 이길 텐데.”
“하아아.”
[후우. 어찌 이런 놈이 내 제자일꼬.]
이지안과 무극자 사부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말이 아닌데…. 정말 이해 못 하는 거예요?”
“뭐를?”
이준이 똘망똘망한 표정으로 이지안을 바라보았다.
이지안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주 오빠는 무공을 잘해서 천만다행인 것 같아요.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무슨 말인데.”
“그런 게 있어요. 전 이만 가 볼게요.”
“제대로 말해 주고 가.”
이준이 이지안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낙성각을 떠난 뒤였다.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만만해서 이런가? 다시 무게 잡아야 하나.”
[허, 허허허.]
그의 이상한 해석에 무극자는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 * *
각사학의 중간고사.
거점 방어전 당일이 되었다.
전 학생이 여태까지 배운 강의를 토대로 실력을 보이는 장.
한국의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모두 구경하러 왔다.
검제와 괴개, 혈마와 살마 등.
보기 힘든 이들이 죄다 각사학으로 모였다.
“저분이 마벽의 총련주이신 혈마 류한길 님이야?”
“무, 무섭게 생겼다.”
“어떻게 저런 분 밑에 혈희, 혈화 같은 아리따운 분이 태어나신 걸까.”
“미스터리긴 합니다. 달라도 너무나 달라요.”
류한길은 야수같이 생겼다.
게다가 얼굴에 칼자국까지 있어서 험상궂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딸인 류가을은 어떤가.
빨간 머리를 한 정열적인 여자였다.
박정연과 한지유와 쌍벽을 이룰 만큼 매력적이었다.
류한길의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외모가 닮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들었다.
입양아라고.
하나 그녀는 류한길의 친딸이었다.
외모는 닮지 않았지만, 성격이 정말 똑같았다.
그의 자비 없는 손속.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성격까지 빼다 박았다.
이준의 인성 교육으로 인해 많이 온순해지긴 했지만.
눈이 회까닥 돌면 예전의 버릇이 나왔다.
그만큼 유전자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도… 존나 간지 난다.”
“왜 한국인들이 저분 앞에선 조심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해외 유학생들은 검제와 괴개보다 류한길을 더 동경했다.
류한길의 험악한 분위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기를 팍 죽여 놓았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학생들의 흠모를 이끌어 냈다.
학생들의 속삭임을 들은 류한길이 흐뭇해했다.
옆에 있던 뇌마 홍엽상이 그를 치켜세웠다.
“총련주께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듯합니다.”
“나도 듣고 있다. 짜식들. 보는 눈은 있군.”
“가을이는 여전히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정연 양, 지유 양과 함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홍엽상은 주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한민국 가주들을 보며 감탄하는 학생들의 말.
육룡팔화에 대한 찬양.
마지막으로 파천자가 왔는지 찾는 말 등이 들렸다.
“누구 딸인데 당연하지. 하지만 내 딸의 남편이 될 만한 놈은 한 명도 없다. 파천자 님이라면 모를까….”
류한길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총련주도 안 되는 건 알고 계신 듯합니다?”
“가을이가 말이냐.”
“예. 파천자의 아내감으로 말입니다.”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그러면 자신 있게 말씀하십시오. 가을이가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그리 자신감이 부족하십니까.”
“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무언가 찔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살마?”
“나도 뇌마와 똑같은 생각을 했소.”
“그렇다 합니다.”
“이것들이 누굴 골로 보내려고!”
마벽의 가주들이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데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계셨을까요?”
“파, 파천자 님?!”
“파천자 님을 뵙습니다!”
살마 조민석이 큰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이준에게로 향했다.
“파천자 님이 오셨어?”
“대박!”
“언제 오신 거지?”
모든 이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이준에게 집중했다.
그가 해외 가주에게 강의 체험을 시킨 일은 전설이 됐다.
수련을 받은 해외 가주들의 행동이 180도 변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
마법 각성자였지만 그들은 무공 각성자를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이준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말이다.
단 삼 일 만에 해외 가주의 행동을 개조했을뿐더러 실력 향상까지 시켰으니.
파천자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가 왜 세계 최고 각성자인지 증명을 한 것이다.
“과한 예는 됐어요.”
“과한 예가 아닙니다. 당연한 예입니다.”
조민석도 수많은 이준의 추종자 중 하나였다.
아들인 조용석에게 살예란 SS-급 무공을 개화시켜 준 게 이준이었다.
조민석에는 은인.
지금의 예의도 이준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러면 다니기 불편한데.”
“헉, 시정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됐어요. 그보다 재밌는 이야기 중이었어요?”
“아, 혈마가 가을이의 신랑 읍!”
류한길이 조민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하, 하. 살마가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려나 봅니다.”
“아닌 것 같은데.”
“파천자께선 지안 양을 보러 오신 게 아닙니까?”
“맞아요.”
“곧 경기가 시작할 듯합니다. 여, 여기로 와서 앉으십시오.”
“그러죠.”
이준은 류한길의 옆에 가서 착석했다.
이곳은 각사학이 자랑하는 실내 경기장 안.
엄청난 넓이의 규모를 자랑했다.
건물 전체에는 최상급 마정석이 들어갔다.
거기에 신기지가와 뇌전홍가의 지식이 집약되어 있었다.
옛날처럼 룸에 들어가지 않아도.
경기장 안에만 있다면 날씨 변화는 물론 실제로 통각을 느낄 수 있었다.
가상 현실을 진법으로 구현한 공간.
통각 수치도 100%로 해서 실제로 다치게끔 만들었다.
“확실히 돈 투자를 많이 했네요.”
이준의 눈에는 경기장 안, 기의 흐름이 보였다.
생과 사문이 존재했으며.
불과 물, 나무와 대지.
사대 속성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기의 흐름이 정확하기까지 하니.
“꽤 재밌는 경기를 볼 것만 같네요.”
이준이 기대하자 가주들도 덩달아 들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