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6화
“크크.”
서른 살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점점 커졌다.
“크하하하.”
한참 광소를 터트린 남자가 어느새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곤 제 몸을 살폈다.
“이만한 쓰레기도 찾기 힘들겠군.”
말과는 달리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빙의한 몸의 자질은 최악.
절정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로 몸에 탁기가 가득했다.
뿐인가.
다리를 절뚝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무공을 배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체였다.
“하지만 몸을 숨기기에 이만한 건 없지. 근골은 도마선공으로 바꾸면 될 터이고 세력은.”
젊은 남자가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곁에 맴도는 수많은 검은 연기들.
“도풍의 아이들로 채우면 되겠어.”
검은 연기들은 그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동시에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퍽-
해골이 땅을 뚫고 나왔다.
삐걱대던 해골들이 수백.
해골은 젊은 남자의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골이던 이들의 살이 차올랐다.
점점 인간의 형태를 갖누는 해골들.
종래에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했다.
그들은 젊은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풍선문 문주의 환생을 앙축드립니다.!”
“앙축드립니다!”
그들의 외침에 젊은 남자.
도풍선문의 문주가 미소를 지었다.
“환생이라. 새로운 육체를 얻었으니 환생이 맞으려나.”
그는 구천옥을 탈출한 구주 중 한 명.
도주 이의경이었다.
구주 중 유일하게 제 나라의 인간에게 빙의한 것이다.
도풍선문은 고려의 많은 유파 중 하나였다.
선문이라 불리지만 이름과는 달리 악행을 일삼은 문파.
고려의 무선들은 이들을 오악선문이라 칭했다.
“큭큭. 좋아. 앞으로는 황바울로 살아가주지.”
그가 빙의한 인물은 황룡금가 황종묵의 아들.
황바울의 몸에 들어왔다.
“네 아비가 이준이라는 놈에게 죽었구나.”
황룡금가의 가주는 이준에게 반기를 들다가 허무하게 죽었다.
산에만 처박혀 있었으면 될 터인데.
하필 세상에 나왔을 때 이준이라는 괴물 앞에서 객기를 부린 거다.
“능력 없으면 죽어야지. 여기도 내가 살던 곳과 다름없군.”
황바울의 등급은 높게 쳐줘도 C급.
어중이떠중이 각성자 중 하나였다.
도주가 빙의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황바울의 기억으로 세상 구경을 하니 재밌어. 좋다. 내게 몸을 바친 대가로 이준을 찢어주겠다. 큭큭.”
분노에 가득 찼지만 능력이 없어 복수조차 못하는 멍청한 놈.
존재감도 없어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도주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따로 있었다.
“이 각성자 시스템이라는 게 있는 이상 나도 탈신경에 들 수 있다.”
각성자 시스템은 천계의 힘.
구천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자연경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물론 구천옥의 특수성 때문에 이 각성자 시스템을 전부 활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약이 가해진 상태에서도 각성자 시스템을 활용한 효과는 엄청났다.
생사경을 넘어 자연경에 들지 않았던가.
제약된 시스템으로 말이다.
만약 제약이 해제된 상태라면 어찌 될까.
사대 신계의 왕만이 오른 경지.
탈신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역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사대 신계의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
“탈신경에만 오른다면 제일 먼저 파천혈신부터 죽이고 말겠다. 문제는…”
문득 구천옥의 금지에 있던 괴물이 떠올랐다.
파천혈신의 사부라는 자.
마주와는 연이 있는 듯 보이는 괴물이 신경 쓰였다.
“내가 파천혈신을 죽여도 그 괴물이 안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지옥계의 주인인 염라대왕도 괴물 앞에서는 한발 물러섰지 않았나.
그만큼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자였다.
그런 이가 파천혈신의 사부란다.
괴물이 괴물을 키워낸 것이다.
“저희가 문주를 돕겠습니다.”
도주의 수하들이었다.
저들은 도풍선문의 문인들.
죽어서도 따른 이들이었다.
“내게는 너희들이 있었구나.”
지옥계에서 도주만 강해진 게 아니었다.
그의 문인들도 강해졌다.
가장 약한 문인이 현경.
각성자 등급으로는 SS급이었다.
가장 강한 문인이 생사경.
제약이 풀린 각성자 시스템이 있다면 생사경을 넘어 자연경에 들지 모른다.
“그래. 너희들을 믿어보마.”
아니, 자연경에 들어설 것이다.
저들이 겪었던 고난과 경험, 자질이 있다면 아무리 병신 같은 몸에 빙의했더라도 근골을 고쳐 높은 곳에 오를 터.
각성자 시스템이 보조해준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우리의 힘부터 회복한다. 그리고 동시에 정보력부터 갖춰라.”
“예. 문주.”
도풍선문의 문인들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조금만 기다려라 파천혈신.”
도주도 묘비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갔다.
* * *
“돼, 됐다!”
페니모어 가주가 환호성을 낸 것도 잠시.
펑!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두 개의 풍선이 동시에 터졌다.
“이, 이런.”
페니모어 가주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벌써 새벽 1시.
이준의 힌트로 인해 드디어 풍선을 머리통만 하게 불었는데 터지고 만 것이다.
강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페니모어 가주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훈련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준과 교수가 퇴근을 안 하는데 훈련을 멈출 수 있나.
눈치를 보며 훈련을 계속했다.
“다시 하세요.”
박스에 쌓였던 풍선이 거의 다 떨어졌다.
페니모어 가주는 마음이 급해졌다.
현재 마력은 바닥.
박은비 교수가 일부 마력을 금제하긴 했지만, 고작 풍선을 부는 데 나머지 마력조차 고갈된 거다.
마력 풍선은 세세한 기의 컨트롤과 집중력, 인내심이 필요했다.
마력이 금제 당했다 하더라도.
세밀한 기를 컨트롤하느라 사용한 심력과 마력 풍선이 빨아들이는 기운.
그리고 새벽까지 쉬지 않고 불어넣은 마력 때문에 페니모어 가주는 한계에 봉착했다.
S급 각성자도 하루 훈련을 버티는 게 고작.
이 훈련이 준비 운동이라 하니.
대체 본격적인 훈련은 얼마나 고강도일까.
‘이러니 교수들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 훈련을 버티고도 강해지지 못하는 건 병신.
아니, 일반인이라는 게 옳았다.
각성자라면 분명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게 될 훈련이었다.
“하악… 하아악…”
“더는 못… 해…”
“죽여줘…”
땀에 절어 있는 학부모들의 포기 선언이 줄을 이었다.
이준의 눈치를 보느라 꾹 참고 한계까지 수련했지만 더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자기 부모들이 강의 체험을 하는데 기숙사로 편히 들어가서 잠을 청할 수 있을까.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강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 우리가 받아야 하는 강의가 저렇게 어려운 훈련이었어?”
“일부러 겁을 주려는 건 아닐까?”
“아, 아니야. 박은비 교수가 첫 강의 때 우리에게도 풍선을 나눠줬잖아.”
“그러…네?”
“X된 것 같은데.”
“저걸 우리보고 하라는 거 아니야.”
“S급인 아버지도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
“교수들이 나누는 말을 살짝 들었는데 파천자께서 강의 난이도를 더 올리라고 하셨다는데?”
“정말? 언제?”
“부모님이 강의 체험하기 전에.”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기서 난이도를 더 올리는 건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체험 강의를 보고 학생들의 머릿속에 든 하나의 생각.
훈련사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저런 훈련이라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열심히 했을 텐데.”
“후회해도 늦은 것 같아요.”
“망했다.”
“교수들한테 찍혔을 거야.”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까?”
“되겠냐. 그냥 다음 강의 때부터 죽었다고 생각해.”
학생들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괜히 객기를 부려서 이런 사단이 일어났다.
검술 강의1을 받는 학생들처럼 그냥 눈 딱 감고 들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터.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일반 각성자라고.
무시해서 이런 참사가 벌어진 거다.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없을 테지만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있는 사이.
이준이 학부모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제 귀에 죽여줘, 란 단어가 들렸네요. 그런 썩어빠진 정신을 가진 분이 있었네요?”
그가 한 학부모를 보았다.
맥코이 가주였다.
페니모어 가주 다음으로 강한 그였지만 마력 풍선은 제일 못 불었다.
그의 속성 때문.
마기, 흑마력은 어둠 속성.
사대 원소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사대 원소 중 하나만 다뤄도 다른 속성과 감응하는 게 쉬웠다.
마력 풍선을 불려면 얼음 속성이 필요했다.
물과 감응을 해야지만 마력 풍선이 불어날 터.
하지만 맥코이 가주는 물 속성과 감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달리 진전이 없었다.
성과가 보여야 할 마음이 생길 텐데 초반에만 반짝했다.
얼음 필드가 사라졌다지만 한기가 남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필드에 화기가 가득했을 때부터는 지옥이었다.
물과는 전혀 감응이 안 됐으니 죽을 맛.
포기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으으… 그게…”
맥코이 가주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다.
턱을 타고 흐르는 땀.
침을 꿀꺽 삼키자 물이 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시시-
바닥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이준이 가까이 오자 운동장의 온도가 더욱 상승했다.
그저 지그시 바라볼 뿐인데 맥코이 가주는 온몸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음 강의는 받을 수 없어요. 체험 강의가 끝나면 큰 경험을 얻으실 건데 포기하시겠어요?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압박을 받는 것과는 달리 이준은 평온하게 말했다.
맥코이 가주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만 받고 싶은 훈련.
평생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힘든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쉬웠다.
그토록 그만하고 싶었지만.
‘…포기하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느낌이 쎄했다.
맥코이 가주로서 자존심이 아니었다.
파천자 말대로 체험 강의를 포기한다면 굉장히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음 같아선 그만두고 싶었지만 머리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하고 있었다.
“포기하실래요?”
이준이 재차 물었다.
“아닙, 니다…”
“앞으로 중간에 포기는 없을 거예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에요. 포기하려면 지금 하세요.”
그가 몸을 돌려 학부모들을 향해 말했다.
맥코이 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페니모어와 맥코이 가주를 비롯한 인내심이 강한 학부모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뒤늦게 온 학부모들은 달랐다.
“전 여기서 그만…”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더 했다간 마력이 폭주할까봐.”
“제가 지병이 있어서 그만할까 합니다.”
갖은 변명을 하며 포기했다.
이준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포기하면 자기들만 손해.
남은 학부모들은 30명.
이들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다 자기 팔자죠. 포기하신 분은 들어가서 쉬세요.”
이준은 포기한 학부모들의 편의를 봐주었다.
“수고하십시오.”
“다음 강의도 참관하겠습니다.”
“그럼.”
포기한 학부모들은 자식들과 함께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준은 그들을 보며 피식했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줘도 먹지 못한 이들.
저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 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곳에 남은 약한 가주보다 훨씬 더 떨어질 터.
뒤늦게서야 후회하겠지.
“낙오자는 빼고 다시 시작해보죠.”
이준의 말에 학부모들은 마음을 다잡고 한계에 부딪혔다.
남은 이들은 체험 강의가 끝나고 확연히 느낄 것이다.
체험 강의 3일 동안.
자신들이 굉장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악마교관이라는 희대의 사기 특성이 자신들의 발전을 도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