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8화
게이트가 열리고 흑염마조가 모습을 보였다.
낙뢰로 인한 피해가 다른 곳에 미치지 못하게 흑염마조가 날개를 활짝 폈다.
주작이 힘을 드러내자 파멸겁의 힘도 커졌다.
파멸겁은 주작의 힘이 담긴 마병.
주작이 근처에 있으면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낙뢰는 파멸겁의 장막을 뚫고 운동장에 떨어졌다.
쾅!
수십 줄기의 벼락이 땅을 짓뭉갰다.
박혁진과 박정연의 뇌력도 강하나 이준의 낙뢰에 비하면 하자가 있었다.
한 줄기, 한 줄기가 너무 강력했다.
[작은 주인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겁주는 중이야.’
[저 인간들을?]
‘응.’
[또 이상한 짓을 하고 있군. 큰 주인은 안 말리고 뭐 해?]
[제 아비를 믿고 설치는 놈들의 다리 몽둥이를 안 부러트린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큰 주인에게 물어본 본좌가 잘못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낙뢰는 정확히 유학생들의 근처에 떨어졌다.
물론 그 충격에 휩쓸려 큰 데미지를 입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소리와 임펙트만 요란하지.
이준은 혼원신공을 살짝만 풀었다.
힘껏 개방했다면 파멸겁의 장막이 대수인가.
서울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 때문에 흑염마조를 부른 것이다.
‘되도록이면 널 안 부르려고 했는데.’
[이런 곳에 힘 낭비시키지 마.]
‘알았어.’
[제자야. 이참에 흑염마조에게 구주의 이야기를 하거라.]
‘지금 이 상황에서요?’
[긴 이야기는 아니니 상관없지 않느냐.]
하늘에선 낙뢰가 떨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낙뢰에 이어서 작은 줄기의 낙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무방할 듯싶었다.
유학생이 다치든 말든 목숨만 잃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죠. 본론부터 말할게. 지옥의 죄인이 탈출했어.’
[지옥계에서 말이냐?]
‘응. 만약 그들이 인계에 강림한 거라면 몸을 숨기려고 사신수를 먼저 노릴 것 같아.’
[지옥계의 죄인이라면… 구주인가?]
‘아네?’
[구천옥의 지배자라는 사실만 알 뿐 다른 건 모른다.]
‘하여튼 그놈들이 널 노릴 거야.’
[겁도 없는 놈들. 감히 날 노리다니.]
‘당분간은 게이트에서 힘을 비축해.’
[흥. 지금도 문제없다.]
사신수는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구주가 자기를 노린다면 맞서 싸우려 할 것이다.
흑염마조뿐만 아니라 다른 사신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녀석들을 보호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터.
한곳에 뭉쳐 있으면 얼마나 좋나.
새로운 4대 성지의 금역에 한데 모아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흥, 본좌의 걱정은 하지 마라.]
흑염마조와의 대화가 끝났다.
점차 낙뢰의 줄기가 약해졌다.
이제 뇌기의 힘이 다한 것.
상황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준이 허공에 손을 젓자 낙뢰가 멈췄다.
흑염마조도 제 할 일을 끝냈는지 게이트로 사라졌다.
굉음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 상태.
진경수를 비롯한 특별 1반 출신들이 몸을 잘게 떨었다.
“몇 번을 겪었는데도… 적응할 수 없어….”
“저도 그렇습니다….”
“과연, 서, 선생님이십니다.”
그들이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을 때 박은비는 깨닫고 말았다.
이준은 온전히 힘만으로 해결하는 듯 보이나.
유학생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저들은 이곳을 일반 학교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선생님은 그걸 파악한 거고.”
선생님이 학생을 폭력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계급을 떠나서 이 생각이 유학생들의 머릿속에 가득했을 것이다.
선생은 절대 학생을 때리지 못할 거라는 상식.
심지어 무림 사관 학교에서도 그랬다.
학생을 가르쳐야 할 선생이 폭력을 행사하는 건 크나큰 죄로 인식됐다.
서양이라고 다를까.
그쪽은 동양보다 더 심할 터다.
교양과 품위를 유독 챙기는 곳이 바로 유럽이었으니까.
남들이 봤다면 뇌가 없다고 생각할 테다.
하나, 세계 랭킹 1위한테 저지른 무례였다.
어떤 누가 그에게 사과하라고 말하겠나.
아마 여기서 능지처참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남이 클로제 페니모어를 봤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클로제 페니모어의 입장에선 이러한 행동이 맞았다.
왜?
여태까지 이래 왔으니까.
그가 다녔던 마법 학교에서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선생과 학생 간의 기 싸움.
기선을 제압한 쪽이 앞으로의 생활이 편했다.
클로제 페니모어는 언제나 이기는 쪽이었다.
그의 뒷배경인 페니모어 가문은 영국에서 최고였으니까.
선생이라도 기 싸움을 걸면 뒤늦게 사과했다.
영국 최상위 랭커여도 말이다.
그래서 여기도 똑같을 줄 알았겠지.
하지만 이번 대상은 이준이었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듣는다면 가차 없이 훈육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클로제 페니모어는 설마… 세계 랭킹 1위로 권위와 명예를 전부 쥔 각성자가 AA급을 상대로 폭력을 가할까, 란 생각을 했을 터다.
이와 함께 자기 가문을 믿었는데 보기 좋게 틀렸다.
이준은 심기가 뒤틀리면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상대의 가문이 어떻든.
가문과의 관계가 틀어지든 말든.
머리보다 행동이 우선이었다.
물론 전부 계산을 깔고 움직였다.
자기가 손해인지 아니면 이득인지를 말이다.
“난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머릿속으로 전부 계산하고 움직였다는 걸 철저히 숨기기 위해 더 막장으로 나간 것.
이러한 사실을 이제 안 박은비는 여태까지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무사고에 있을 적 많은 학부모가 이준을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
이것도 이준의 계획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실속과 이득을 동시에 챙기는 행동이었다.
물론 추후에 그가 받아 준 학생은 진경수와 조용석뿐이었다.
“저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을지 호기심이 생겨난 박은비였다.
* * *
“어… 어…?”
클로제 페니모어는 초점을 잃었다.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무공 사용자의 나라에서 뇌의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번개 마법은 바람 마법의 상위 호환이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한데 번개 마법이 펼쳐졌으니.
기겁을 안 할 수 없었다.
위력은 어떤가.
이 정도의 낙뢰를 떨어트리려면 적어도 9서클.
SS급 각성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공이 아닌 마법 각성자를 말하는 거다.
“마, 마법을 사, 사용할 수 있다니….”
클로제 페니모어는 패닉에 빠진 듯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란 얼굴인지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그는 제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도 몰랐다.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초토화된 운동장에는 거대한 웅덩이가 수십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클로제 페니모어 하나뿐이었다.
이것도 흑염마조가 뇌격을 막아 주고 흡수해서 이 정도.
아니었다면 클로제를 비롯한 모두가 죽었으리라.
“이럴 수 없어….”
클로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했다.
“혜지야.”
“네, 네!?”
“기절한 놈들 다 깨워.”
서혜지는 두말하지 않고 경공을 펼쳐 기절한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과 침이 바쁘게 움직였다.
“으으….”
“살…려 줘.”
서혜지의 침술에 의해 기절한 유학생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그사이 위험한 기운을 느낀 한민성 이사장이 부리나케 날아왔다.
“무슨 일인가요, 헉!”
한민성의 눈에 초토화된 운동장이 들어왔다.
그가 이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조카인 한지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몸을 훽 하고 뒤로 돌렸다.
“이사장님 어디 가세요?”
이준이 한민성을 부르자 그가 화들짝 놀라 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이준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하, 하. 오랜만입니다. 이 선생, 아니 파천자 님.”
이준은 이제 학교 소속이 아니었기에 한민성은 선생이란 호칭을 부를 수 없었다.
“절 피하신 것 같네요.”
“지유가 파천자 님의 눈에 띄지 말라고 당부를 해서 말이에요. 제가 잘못한 게 있지 않습니까, 하하.”
한민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화제를 재빨리 돌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도 될까요?”
“가문을 믿고 설치길래 훈계 좀 했습니다. 제가 자기들을 못 때릴 거라고 생각한 듯하네요.”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안타깝군요.”
한민성은 유학생들을 두둔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하게 보았다.
앞으로 학교생활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이준이 선생으로 있진 않았으나 잠깐씩 학생들을 봐준다고 하니.
그에게 찍힌 유학생들에게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참에 제대로 교육하심이 어떨까요?”
“교수직은 거절했습니다. 안 해요.”
“파천자 님께서 가르친다면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참 도움이 많이 될텐데 말이죠.”
한민성은 아쉬워했다.
이준만 교수직을 수락한다면 각성자 사관 학교의 명성은 세계에 퍼질 터.
각지에서 기부와 지원이 들어올 것이다.
뿐인가.
마법 학회의 학교와 교류하는 것도 한결 쉬워지고.
미국의 각성자 학교와도 끈을 이을지 모른다.
파천자의 이름은 그만큼 컸다.
그가 없으면 이러한 일들에 제약이 많이 가해질 터.
학교 입장에서는 파천자의 선택이 굉장히 아쉬웠다.
“꼭 좀 재고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간절히 빌겠습니다.”
“생각해 볼게요.”
“정말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한민성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다 깨웠어요.”
그러는 사이 유학생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낙뢰의 영향으로 마력에 문제가 생겨 버린 탓이었다.
뇌기가 자가 회복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되레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
그들이 괴로워하는 이유였다.
이준은 그들을 향해 작게 말했다.
“집합.”
그나마 이준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학생이 빠르게 움직여서 앞으로 왔다.
“눈치가 상당히 빨라. 앞으로 그렇게만 하면 학교생활에 문제없을 거다.”
“가, 감사합니다!”
그 학생은 큰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외쳤다.
이준의 인간 같지 않은 무력.
그의 앞에서 객기를 부리는 건 지능이 없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었다.
뒷배경인 가문이라고 다를까.
그에게 밉보여 멸문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학생의 태도에 눈치가 빠른 이들은 괴로움도 참은 채 이준의 앞으로 모였다.
“너희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만족하냐?”
“예! 개안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학생의 선창에 나머지가 따라서 외쳤다.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클로제 페니모어를 본 이준이 말을 이었다.
“교수들 강의를 성심성의껏 들을 마음은?”
“있습니돠아아!”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지?”
“그렇습니다아!”
군기가 바짝 든 유학생들이었다.
“좋아. 여기서 끝내기로 하지.”
이준의 말에 유학생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한결 좋아진 거다.
하나 그다음에 나온 말 때문에 유학생들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대신 내일까지 학부모님 모셔 오도록.”
“저 부모님께서….”
“그 어떤 변명도 소용없어. 연락해서 당장 오시라고 해. 아니면 너희는 지옥을 보게 될 거다.”
진경수를 비롯한 특별 1반 출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야 선생님이시지.”
“마무리까지 깔끔하십니다.”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메모.”
이준다운 끝맺음이었다.
유학생들의 교육을 이 정도로 끝낸 이유.
학부모를 불러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는 거다.
이 얼마나 참된 교육자인가.
자식이 버릇없이 큰 건 부모의 탓.
그 부모를 만나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오직 이준만이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가문의 가주를 불러 모으겠나.
그것도 수천 킬로가 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을 말이다.
“텔레포트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학부모께서 얼마나 빨리 한국에 도착하는지 보자.”
이준이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저 얼굴.
불길함의 시작이었다.
이를 눈치챈 유학생들은 너도나도 가문에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