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7화
클로제 페니모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각 가문의 후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당한 모독.
파천자는 페니모어 가문을 대놓고 폄하하는 게 아닌가.
제아무리 세계에서 제일 강한 각성자라 할지라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선 안 됐다.
“더는 페니모어 가문을 모독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참지 않겠습니다.”
“너 따위가 참지 않으면?”
“페니모어를 대표해 항의하겠습니다.”
“고작 항의? 그걸로 족해? 개길 생각이었으면 날 죽인다는 마음을 가졌어야 할 텐데.”
이준의 입이 한껏 비틀렸다.
심기가 굉장히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의 표정을 본 진경수는 뒤로 물러나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선생님이라면 진작 페니모어를 기세로 짓누르고도 남았을 텐데 불편한 심기만 드러내시고 있어.’
마치 기운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달까.
그럼에도 대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긴 하나.
그 대상이 사람에게 닿지 않게끔 컨트롤하는 게 눈에 보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리 행동한 거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멍청한 놈인가?”
“장난 그만하십시오. 전 진심입니다.”
“내가 농담하는 걸로 보이냐.”
이준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너희도 내가 반말하는 것에 불만 있나?”
몇몇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파들이 페니모어의 의견을 거들었다.
“예.”
“파천자 님이 대단하신 건 알지만 저희도 대접받을 만한 위치에 있습니다.”
“저희를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이준이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너희는 교수들을 존중했나?”
그러면서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학파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그때 다시 클로제 페니모어가 앞으로 나섰다.
“저들은 저희를 가르칠 자격이 안 됩니다.”
“어째서?”
“무공을 익힌 각성자가 어떻게 마법을 익힌 저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저들에게 배울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곳에 있지? 가문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말이야.”
“가주의 선택에 의해 강제로 있는 겁니다.”
이준은 다시 유학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페니모어와 같은 생각이냐.”
유학파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같은 의견입니다.”
“오늘 운동장에 모인 건 그저 내가 모이라 해서 나온 거고?”
“파천자 님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왜?”
“세계 1위 각성자니까요.”
“그래서 만나 본 소감은?”
“강합니다.”
“그게 끝이냐.”
“자유로운 영혼인 듯 보이지만 사신가의 가주로선 불합격이라 봅니다.”
“이유는?”
“가주란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어야하지만 정치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본 파천자는 정치력 대신 힘으로 해결하는 각성자로 보입니다.”
클로제 페니모어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가주란 본디 강한 무력만으로 가문을 이끌 순 없었다.
국내와 해외 정세에 빠삭해야 했으며.
다른 가문과의 관계도 잘 쌓아야 했다.
정치적인 요소가 가장 많은 자리가 바로 가문의 장이었다.
한데 이준은 이런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흠.”
이준이 생각에 잠겨 있자 클로제 페니모어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세계 랭킹 1위라도 굽힐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파천자께서는 저희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언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보십시오. 이들만 수십 명이 넘습니다. 그렇다는 건 사신가에 반감을 가진 가문만 수십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클로제가 의기양양해하며 어깨에 힘을 줬다.
말로 파천자를 꺾어 버린 것.
그 누구도 꺾지 못한 이를 논리적으로 무너트렸다는 자긍심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선을 넘으면 안 될 짓까지 했다.
“저희에게 사과해 주십시오. 그러면 파천자 님의 언행을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진경수가 입을 턱 하니 벌렸다.
“저 돌아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허수와 진경수도 경악했다.
“대가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화장실에서 처맞았을 때가 생각나. 지능이 벌레 수준인데?”
클로제 페니모어는 이준의 성격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하긴 직접 겪어 봐야 알지.
이준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는지.
하나도 모르니 저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다.
옛날이었다면 팔 한 짝을 뜯어 버리고 그때부터 진한 대화를 시작했을 이준이었다.
“그게 네 생각이냐.”
“네.”
“너희도?”
이준은 자꾸 유학파들을 싸잡아서 물었다.
유학파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들을 본 이준이 한껏 밝게 웃었다.
“이제 내가 대답할 차례인가?”
이준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파멸겁을 꺼내 2단계 형태로 만들었다.
퍽-
이준은 유학파와의 거리를 벌린 채 바닥에 파멸겁을 꽂아 넣었다.
파멸겁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운동장 전체에 퍼졌다.
회색의 장막이 쳐진 운동장.
그것도 부족했는지 이준은 파랑이를 불렀다.
“결계를 쳐 줘.”
[얼마나 두껍게?]
“안 깨지게끔. 테구르를 불러와도 돼.”
[그 정도야?]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알겠어.]
파랑이의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쩌억 소리와 함께 얼음이 회색 장막을 덮었다.
게이트에서 소환한 테구르 역시 마법 공학으로 만든 기계를 이용해 방어막을 쳤다.
준비를 마친 이준이 페니모어와 유학파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교수들이 너희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것에 대한 답이다.”
이준이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시작 지점은 단전이 아닌 심장.
네 가지의 속성이 박힌 심장을 혼원신공으로 자극했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새겨진 속성이 맹렬히 돌았다.
불, 물, 바람, 대지 순서로 속성이 빛나기 시작했다.
[호오.]
무극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준이 어떤 짓을 하려는지 아는 모양이다.
마법을 배우진 않았으나 이준은 무공으로 마법과 같은 현상을 구현할 수 있었다.
심장에 청룡의 힘도 있을뿐더러 이준의 경지는 자연경.
그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있었다.
그게 마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준의 손에 붉은 구슬이 맺혔다.
“우선 하나.”
붉은 구슬은 손을 떠나 하늘로 올라갔다.
이준은 계속해서 붉은 구슬을 만들어 냈다.
잠시 후.
허공에는 수십 개의 붉은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그 장면을 본 클로제 페니모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파이어 볼…?”
이준이 만들어 낸 붉은 구슬은 불 속성 마법 중에서도 2서클.
그러니까 D급 각성자가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한 번 받아 볼 테냐?”
“무공 사용자가 어떻게 마법을!?”
“받는 걸로 알지.”
이준이 손목을 앞으로 펼치듯 내렸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붉은 구슬이 일제히 페니모어를 비롯한 유학파를 향해 날아갔다.
* * *
“실드!”
“베리어를 펼쳐!”
이준이 사용한 파이어 볼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2서클의 마법이나 그 안에 든 힘은 배 이상이었다.
잠자코 있다간 하찮은 파이어 볼에 당할지도 몰랐다.
지잉-
클로제 페니모어를 필두로 유학파들이 베리어를 전개했다.
파이어 볼은 그들이 방어막을 펼칠 수 있게 천천히 날아와 부딪혔다.
쾅-
한 번의 굉음을 시작으로.
콰광쾅쾅!
거대한 폭음이 연이어 들리기 시작했다.
“억!”
“무슨 파이어 볼의 위력이!”
“으으….”
“베리어가 깨지겠습니다.”
그들은 안간힘을 다해 베리어를 유지 시켰다.
이를 악물고 막으니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전부 막을 수 있었다.
한숨을 돌리려는 그때.
“저, 저길 봐!”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아이스 스피어?”
“저게 몇 개야?”
“설마 다 날아오는 건… 엇, 날아온다!”
파이어 볼보다 더 많은 숫자의 아이스 스피어가 유학파를 향해 떨어졌다.
아이스 스피어는 3서클의 마법.
C급 각성자나 사용하는 하급 스킬이었다.
한데 저 앞에서 날아와서 베리어에 박히는 아이스 스피어는 달랐다.
쩌어억-
아이스 스피어가 베리어에 박혔다.
“헉!”
베리어를 완전히 뚫지는 못했지만 그 주위를 얼려 버렸다.
그 결과 쩍 소리와 함께 다음 공격에 의해 베리어가 깨지고 말았다.
“피, 피해!”
비처럼 쏟아지는 아이스 스피어.
유학파들은 이동 마법인 블링크를 사용해 피했다.
그도 안 되면 공격 마법을 사용해 아이스 스피어를 파괴해 갔다.
점점 강해져 가는 이준의 마법.
유학파의 머릿속에는 이준이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까란 생각은 까맣게 잊힌 지 오래였다.
그들의 전신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작 3서클의 마법에 의해서.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땅이 진동하더니 돌이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스톤 샤워야!”
“젠장!”
3서클도 힘겨웠는데 바로 6서클의 스톤 샤워라니.
그들은 이를 악물고 각자 마법을 꺼내 들었다.
대지의 약점은 바람 속성.
6서클 이상의 바람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들이 펼친 마법은 소닉 바스터.
음속으로 바람을 날려 상대를 터트리는 스킬이었다.
소닉 바스터에 의해 바위가 깨졌지만 그로 인해 유학파들은 더 곤경에 빠졌다.
“멈춰! 바위를 깨면 작은 파편 때문에 방어가 힘들어!”
하나 늦었다.
이미 소닉 바스터로 바위가 수십, 수백 조각으로 갈라진 상황.
바위의 파편들은 유학파의 몸에 가시처럼 박혔다.
퍼벅퍽퍽-
“컥!”
“윽!”
그래도 명문가의 후계자답게 파편에 적중당하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 중에 제일 강한 클로제 페니모어도 오른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의 팔을 타고 피가 잔뜩 흘렀다.
꽤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십니까.”
“난 너희가 자격을 운운하길래 대답을 해 줄 뿐인데? 그리고 아직 안 끝났다.”
이준의 말이 끝나자 클로제 페니모어는 불길함을 느꼈다.
찝찝한 걸 떠나서 등골이 오싹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너희들은 이걸 템플리처라고 하지?”
이준이 삼중 결계를 친 이유는 다 지금을 위해서였다.
템플리처는 5서클의 마법.
기온을 조절하는 스킬이었다.
스톤 샤워보다 1서클이 낮은 마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이를 위해 삼중 결계를 친 것이다.
“어디 잘 버텨 봐라.”
이준이 혼원신공의 기운을 풀었다.
그의 심장에서 불 속성이 맹렬히 회전했다.
주변이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급격히 상승하는 기온.
뜨거워진 온도에 의해 결계가 심하게 요동쳤다.
“으으….”
“더, 더워.”
“목이 타는 것 같아.”
테구르가 펼친 방어막이 가차 없이 부서졌다.
기온은 계속해서 올랐다.
파랑이가 만든 얼음 방벽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뜨겁길래 파랑이의 얼음 방벽이 녹아내릴까.
운동장은 고열지옥이 됐다.
나무는 이미 메말라 비틀어진 상태였다.
곳곳에선 나무에 불이 붙기도 했다.
“그, 그만….”
“제발!”
“살려… 줘….”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유학파들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이준은 기운을 거둬들일 생각이 없었다.
결국 파랑이의 결계도 깨졌다.
이제 남은 건 파멸겁의 결계뿐이었다.
“무공 사용자도 사용하기에 따라 마법이란 걸 쓸 수 있다. 이래도 자격을 운운하나?”
이준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가 유독 잘 흉내낼 뿐.
특별 1반 출신도 마법을 흉내낼 수 있었다.
또한 마법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났다.
더군다나 박은비는 기공사.
마법사와 제일 비슷한 계열의 무공 각성자였다.
“멈춰 주….”
“그리고 두 번째에 대한 답도 해 주지. 사신가의 가주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지? 내가 어떻게 정상에 올랐는지 보여 주지. 네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의 활짝 펴진 손에 뇌기가 잔뜩 뭉쳤다.
하나의 무형 창이 만들어졌다.
라이트닝 스피어의 모습.
물론 그 안에 든 힘은 전혀 격이 달랐다.
‘조야 부탁한다.’
이준은 흑염마조를 부르며 뇌기의 창을 하늘로 던졌다.
검어진 하늘로 사라진 뇌기의 창.
잠시 후.
콰르릉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낙뢰가 페니모어를 비롯한 유학파들을 향해 들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