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6화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아 왔다.
운동장에서 시계를 보고 있는 이준.
시계는 정확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많이 늦네.”
[어린 것들이 늙은 이보다 늦게 일어나는구나.]
“사부님보다 늦게 일어나는 건 예의가 아닌데 말이죠.”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놔야 할 듯싶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저한테도 이러는데 은비네 한테는 어떻게 굴겠어요.”
[안 봐도 뻔하니라.]
각사학 강의 시작은 9시.
이준은 3시간이나 일찍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제는 강의를 듣게 된 학생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6시 1분이 되자.
“서, 선생님 늦었습니다.”
“하악… 죄송합니다.”
“전 나무 위에서 은신을 하고….”
진경수와 허수 그리고 조용석이 부리나케 달려와 고개를 박았다.
세 사람은 이미 예상했었다.
이준이라면 이 시간대에 나와 기다릴 거라고.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이준은 6시보다 더 일찍 나온 듯싶었다.
“흠.”
이준은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해했다.
“여러분들이 게으르니까 학생들도 게으른 겁니다.”
어떤 교수가 학생보다 빨리 학교에 오겠나.
교수하면 떠오르는 게 권위였다.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그 다음에 교수가 들어온다.
이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나 이곳은 각사학.
일반 대학교가 아닌 각성자 사관 학교.
각성자를 육성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교수의 권위를 세우되 학생들과 진한 유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게 이준의 생각이다.
“변명 따위는 집어치우세요.”
“시정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을 실망 시켰습니다.”
세 사람은 괜히 이준의 강의에 참관한다고 하여 아침부터 까였다.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나자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가 왔다.
그들은 이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준… 선생님!?”
“망했어.”
“설마 했는데….”
박은비네는 이준이 무사고 때처럼 나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준은 진경수네에게 했던 잔소리를 박은비네에게 퍼부었다.
“S급이 됐다고 마음을 놓은 거야? 일반 각성자라지만 남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지. 교수 됐다고 군기가 빠졌네.”
[둔재들은 백 배 더 노력해야 하거늘. 쯧쯧.]
그의 폭격에 박은비네의 몸이 잔뜩 굳었다.
그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다는 게 느껴졌다.
위험했다.
바짝 엎드리지 않으면 지옥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상황.
박은비네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너희가 이러니까 귀족 자제들께서 기고만장한 거 아니야.”
[암. 그렇고말고.]
이준의 잔소리는 끝도 없었다.
끝난다 싶으면 새로운 잔소리가 나왔다.
거기다가 무극자는 옆에서 이준을 거들고 나섰다.
물론 저들에게 무극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이준의 잔소리가 끝나지 않은 이유는 무극자의 거드름도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똑바로 해.”
“네….”
드디어 길고 길었던 훈계가 끝이 났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1시간 반.
아직까지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심심하구나.]
무극자는 누운 자세 그대로 이준의 주위를 부유하며 빙빙 돌았다.
‘어지러워요.’
[가만히 기다릴 생각이냐.]
‘그러면요?’
[뭐라도 해 보거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저 아이들 있지 않느냐.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무극자의 말에 이준이 눈을 빛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실력 점검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좋은 생각이세요.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흐흐.’
[끌끌끌. 심심할 땐 이만한 것이 없느니라.]
이준과 무극자가 동시에 음흉하게 웃었다.
이준의 입꼬리가 말아 올려지자 불안감을 느낀 진경수였다.
“서, 선생님?”
진경수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의 육감이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늦어 버렸다.
“시간도 남았겠다, 여러분의 실력을 점검해 볼까요?”
“네에에!?”
“갑자기 복통이!”
“전 오늘 휴강….”
“여기서 빠지면 다음번엔 국물도 없습니다.”
이준의 초롱초롱한 눈에 그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맑은 눈의 광인.
이준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 * *
이준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다인 진법으로 개량된 전륜마멸진을 펼치고 있는 여섯 명.
그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이준에게 겨누고 있었다.
“공격 안 할 건가요.”
“준비… 중입니다.”
진경수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진경수는 진법의 조장.
그가 흔들리면 전륜마멸진이 쉽게 무너진다.
“주 속성 대지, 부 속성 빛.”
전륜마멸진의 설정이 끝나자 진법의 방어력이 상승했다.
주변에는 마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빛의 장막까지 생성됐다.
“다시 설정할 기회를 줄게요.”
“괜찮습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똑같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맞다가 쓰러지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수야.”
“예!”
허수가 앞으로 짓쳐왔다.
참마도의 도신이 강기로 길어져 있었다.
그가 익힌 도법은 광룡도법.
광룡도문의 SS급 무공인 패력심법을 기반으로 펼치는 도법이었다.
허수의 참마도에서 황금 용이 아가리를 벌렸다.
이준의 상체를 물어뜯어 버리려는 듯.
흉포한 기세로 다가왔다.
이준도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 내공을 끌어 올리려 했다.
[자제하거라.]
무극자의 조언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룡벽을 사용하려 했지만 내공을 거뒀다.
대신 팔을 앞으로 뻗어 허수의 참마도를 막았다.
콰아아앙!
굉음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먼지 속에 있는 허수가 당혹스러워했다.
“아뿔싸!”
일도양단하던 참마도가 무언가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빠져야 합니다!”
허수의 외침에 남은 5인이 지체 없이 뒤로 빠지려고 했다.
“어림없지.”
이준이 참마도의 도신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쩡!
도신에서 퍼진 청량한 소리가 진동했다.
“윽.”
“억, 내공이!”
퇴보를 밟던 진경수와 조용석, 박은비와 서혜지 그리고 남선호가 동시에 경악했다.
내공이 중간에 끊기자 발이 꼬였다.
예상치 못한 음공에 당황했다.
하나 이들은 특별 1반 출신.
이준이 경험으로 무장시킨 이들이었다.
당황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며 뒤로 빠졌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만.”
이준은 그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경공이 제일 뛰어난 조용석부터 무너트렸다.
허수를 지나친 그가 조용석의 어깨 위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했다.
쿵!
“컥.”
조용석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준의 다음 타깃은 박은비와 서혜지였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두 사람.
한 명은 장법을 한 명은 암기를 날렸다.
귀찮은 상대부터 무력화시키는 게 승리의 요건 중 하나였다.
장력과 암기가 날아오는 걸 본 이준이 손을 휘저었다.
날아오던 암기가 반대편을 향했다.
펑-
“악!”
박은비는 자신이 날린 한빙장에 맞았다.
서혜지도 마찬가지.
그녀의 몸에 무수히 많은 침이 박혔다.
삽시간에 바닥에 쓰러진 세 사람.
남은 사람은 진경수와 허수 그리고 남선호뿐이었다.
이미 전륜마멸진은 무너진 상태였다.
세 명이서 진을 이루는 것도 쉽지 않았다.
허수는 이준의 뒤에, 그리고 진경수와 남선호의 앞에 있었다.
“애들아. 선생님 옷이라도 건드려야 해!”
진경수가 소리치며 달렸다.
덩달아 허수와 남선호 또한 이준을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공격하는 세 사람.
이준은 남선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남선호는 녹림의 무공을 사용하는 돌격형 각성자였다.
그의 약점을 잘 아는 이준은 남선호의 하단을 노렸다.
남선호도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유념하며 달렸으나.
“억!?”
이준의 발에 너무도 쉽게 걸렸다.
결국 남선호는 몸이 옆으로 쏠리며 넘어졌다.
남선호까지 쓰러지자 진경수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무작정 무공을 펼쳤다.
“제발!”
그의 발이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강기가 엄청난 속도로 이준에게 폭사했다.
투존의 무공인 유마환격이었다.
다시 한번 운동장에 핀 뭉게구름.
“수야! 쏟아부어.”
“예!”
허수도 참마도를 이용해 광룡도법을 펼쳤다.
도강과 각광이 허공에 난무했다.
두 사람은 먼지구름을 향해 무공을 쏟아부었다.
이 정도도 모자란지 진경수와 허수는 각자 최고의 무공을 사용했다.
아니, 사용하려 했지만.
먼지를 뚫고 나온 손이 진경수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진경수와 함께 사라졌다.
이준이 나타난 곳은 허수의 앞.
참마도에 가득 담은 내기를 휘두르려는 찰나.
이준은 진경수를 허수의 앞에 들이밀었다.
선배를 벨 수 없었던 허수는 무리하게 내공을 거둬들였다.
“끝.”
이준의 목소리가 허수의 귀에 들리는 순간.
특별 1반 출신의 패배가 확정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1대 6의 비무는 고작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련 좀 열심히 해야겠어.”
이준은 내공을 거의 금제하다시피 했다.
잘못 사용했다간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특별 1반 출신들은 이준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그들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이준과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애들이 올 때까지 비무는 계속할 거야.”
“크으….”
“그럴 수가.”
“빌어먹을.”
오랜만에 맛본 매콤함에 그들은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그들은 학생들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 * *
해외 유학파, 귀족 자제들이 하나둘씩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처음 본 광경은 개 패듯 맞고 있는 교수들.
그중에는 S급 끝자락에 있는 진경수와 허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S급만 다섯에 조용석이 AA급 끝자락이니.
어지간한 게이트는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만한 전력이었다.
한데 한 명을 상대로 고전도 아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이야?”
“모르겠어요. 와 보니 계속 저러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온 클로제 페니모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러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게 웃겼다.
‘기선 제압인가? 재밌군.’
교수들은 어떻게든 학생들을 휘어잡으려고 애를 썼다.
클로제는 그 모습이 같잖았다.
자신의 등급은 AA급 끝자락.
같은 등급에 있는 자가.
그것도 자기보다 어린 각성자가 교수라고 하니 얼마나 웃기겠나.
‘파천자가 우릴 부른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교수도 아닌 파천자가 자신을 불렀다.
한국에 온 목적은 파천자의 밑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버지의 생각.
클로제는 달랐다.
제아무리 세계 랭킹 1위라고는 하나.
무공이나 익힌 각성자 따위가 어떻게 마법을 가르치겠나.
쓸모없는 잡기나 경험 말고는 그에게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 촌구석 나라에 남은 건 어디까지나 페니모어 가주인 아버지 때문.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날 가르칠 거냐, 파천자.’
클로제 페니모어까지 다 모이자 이준의 훈련은 마무리가 되었다.
“정돈하세요.”
이준은 진경수 무리에게 말한 후 유학파들 앞에 섰다.
교수의 말을 안 듣는 이들만 무려 50명.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는 건 꽤 능력 있는 해외 각성자라는 뜻.
뒷배경도 든든하겠다.
이준은 더 없이 만족했다.
그는 기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환영한다. 내 포인트들아.”
“네?”
“아니야.”
이준은 빙그레 웃으면서 반말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에 반말하니 사뭇 예의가 없어 보였다.
몇몇은 파천자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계 1위 각성자.
그 말은 위에 누구도 없다는 소리였다.
누가 파천자에게 반말한다고 딴지를 걸겠나.
물론 이곳에 있는 몇몇의 생각일 뿐.
클로제 페니모어를 비롯한 모두가 이준의 언행에 기분 나빠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각 나라의 내로라하는 가문의 후계자.
아무리 파천자라고 함부로 말할 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클로제 페니모어가 이준의 말투를 꼬집었다.
“파천자님.”
“누구지?”
명백한 하대에 클로제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화를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페니모어의 후계자 클로제 페니모어입니다.”
“파스콜 가문의 라이벌? 그런데 왜?”
“말씀이 좀 짧은 것 같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이준이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말했다.
“파천자님에게 말하는 겁니다. 당신이 유명하고 강한 것은 아나, 그렇다고 저희를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습니다.”
클로제 페니모의 말에 진경수가 뜨악해 했다.
“저 미친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병신이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있어.”
너무도 당황했는지 욕이 육성으로 나온 진경수였다.
페니모어의 짓거리에 이준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네가 뭐라고 대접을 해야하지? 너 이 학교 학생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예의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저희는 명망 높은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고작 그딴 이유 때문이라고? 네 아비가 와도 내 앞에선 허리도 펴지 못한다.”
이준의 말은 명백한 모독이었다.
이에 클로제가 분노했다.
“감히 페니모어 가주를 모욕하는 겁니까?”
“감히? 너 따위가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지. 감히란 단어는!”
이준이 회안을 빛냈다.
대기가 살기에 의해 요동쳤다.
내공을 금제한 상태긴 하나.
감정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대기가 아우성쳤다.
“상대보다 강할 때나 사용할 수 있다.”
클로제와 귀족 자제들은 숨이 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오한이 들기도 했다.
이준이 말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언행을 꼬집을 수 있는 존재는 내 사부 이외에는 없다. 너 따위 하찮은 각성자가 주제넘게 짚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네 아비가 와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