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5화
“뭐야!?”
“어떻게 된 일이지?”
“토비 파스콜이 무언가에 튕겨났어.”
이준의 무극기는 일반적인 각성자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무형의 기.
회색 아지랑이의 윤곽이라도 보이면 이준의 무공이라고 추측이라고 할 텐데.
그들이 이준의 무극기를 알아보기에는 경지가 너무 낮았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쓰러진 토비가 벌떡 일어났다.
버서커가 되니 별다른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크으….”
토비가 거친 입김을 뿜어냈다.
그의 몸에서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어디론가 고개를 돌렸다.
“날 찾았네? 파스콜 가문의 버서커 가 생각보다 뛰어나구만.”
토비는 살기를 보낸 이준을 정확히 찾아냈다.
파스콜의 광기가 이준을 위험 대상으로 분류했다.
쾅-
토비가 땅을 박찼다.
그가 밟은 바닥이 거미줄처럼 부서졌다.
파스콜의 버서커가 무서운 점은 광분으로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거다.
거기다가 신체 능력 향상에 공격력까지 늘어나니.
버서커 모드가 발동되는 시간에는 자신보다 두 단계 위의 각성자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할 대상을 잘못 골랐어.”
토비가 공격해 오는데도 이준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앞만 보았다.
토비의 화염검이 맹렬히 불타며 허공을 갈랐다.
일도양단의 기세.
그 어떤 것이라도 날릴 듯 예리하고 강력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준.
대상을 찍어도 한참 잘못 찍었다.
이준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힘 조절이 안 되는데 쯧.”
회색 아지랑이가 이준의 앞을 막으려는 그때였다.
그림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그 그림자의 손에 붉은 장력이 뭉쳐 있었다.
토비의 화염검과 붉은 장력이 부딪혔다.
콰앙!
커다란 폭음이 일어났다.
먼지를 뚫고 나온 토비가 운동장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얼마나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의 충돌로 기절한 것이다.
“안 나서도 됐는데.”
“단주께서 가주의 수고로움을 덜어 주라고 해서요.”
그림자는 굉장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준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이.
그림자의 정체는 무극단의 막내 현이였다.
“그리고 제가 안 막았으면 저 아이 죽었습니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아요.”
“내가 그 정도야?”
“네. 조금 전 살기는 저 아이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최대한 자제했는데.”
이준이 머쓱했다.
힘 조절은 상당히 어려웠다.
최소한의 힘만 사용한다고 해도 상대에게는 치명적.
이젠 손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됐다.
사형준이 무극단의 막내, 아니 이제는 막내에서 벗어난 현이를 자신에게 붙인 이유기도 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자신 대신 나서라고 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처럼.
“그보다 쟤 어쩔 거야. 수습 좀 해 봐.”
“제 임무는 가주님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수습은 가주께서 알아서 하시길.”
현이는 그 말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네가 무서워서 도망쳤구나.]
‘제가요? 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넌 네 힘을 모르니 그럴 만하니라.]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이의 행동을 보면 가주의 위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주의 위엄이 없는 게 아니었다.
현이가 당황해서 빨리 사라지려다가 저지른 언행일 뿐.
하극상을 벌이려는 게 결단코 아니었다.
자연경에 오른 이준의 기척을 알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가 의도적으로 기척을 내야 각성자들이 알 정도.
SS급에 있는 박정연과 박혁진도 이준의 기척을 알아내기란 어려웠다.
그만큼 평소의 이준은 무 그 자체.
하지만 ‘무’라는 존재가 조금만 기운을 드러내도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현재 이준이 그랬다.
토비에게 살기를 조금만 흘려 보낸다 하더라도 토비에게는 강한 위협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그런 위험.
그러니 토비의 버서커 모드가 쉽게 발동한 게 아닐까.
이준은 자신의 거대한 힘을 간과했다.
예전 현경이나 생사경의 경지가 아니었다.
신과 대적할 수 있는 경지, 자연경에 오른 상태.
현이는 이준의 경지를 어느 정도 추측하기에 경외감이 들면서도 두려웠다.
사신가의 가주여서 다행이지.
적이었다면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준은 현이에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힘을 사용하려면 앞으로 전력을 다해 쥐꼬리만큼 내공을 내보내거라.]
‘그러고 있어요.’
[제자야. 넌 저 각성자들이 블랙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느냐.]
무극자는 각사학 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요.’
[그러는 넌?]
‘전 당연히 상대할 수 있죠.’
[얼마 전까지 어떻게 몬스터를 죽였느냐.]
무극자의 물음에 이준이 강원도에서 몬스터를 상대했을 때를 떠올렸다.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몬스터가 픽픽 쓰러졌죠?’
[그래. 블랙급 몬스터조차 네 걸음걸이로 모두 절명하고 말았느니라. 그때 네가 무극군림보를 사용했느냐.]
‘아니요.’
[그거 보아라. 고작 걸음걸이만으로 블랙급 몬스터가 죽었다. 그러니 그보다 약한 각성자에게 너는 파멸적 존재이니라.]
‘아.’
이준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이해했다.
예전 무사고에 있을 때처럼 행동한 것.
그때는 천살성과 마신지체도 합쳐지지 않았다.
혼원신공도 대성하지 않고 말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어떤가.
혼원신공은 물론 천살성이 마신지체와 함께했다.
청룡의 힘인 뇌령석도 심장에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
이준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그가 생각 없이 기운을 풀면 이곳에 있는 전원이 몰살.
이준의 기세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게 각사학 학생들이었다.
[힘을 쓰는 데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극자 사부의 경고에 경각심을 가졌다.
각성자의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올라갔다고 하지만 이준 앞에서 반딧불 같은 존재였다.
하늘과 땅 차이로 격이 나니 함부로 힘을 보이면 안 됐다.
“혜지야.”
“으응… 네?”
이준의 부름에 서혜지가 화들짝 놀랐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온 그녀였다.
“쟤 좀 치료해 줘.”
“아, 알겠어…요.”
서혜지는 이준에게 좀처럼 반말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목소리가 안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말로 말했는데 지금은 쉽게 말을 못 놓았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그녀.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토비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박혁진과 박정연이 나머지 수습에 나섰다.
* * *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방금 전에 나타났던 사람, 사신가의 무극단이지?”
“옷에 ‘무극’이라고 쓰여 있는 건 무극단밖에 없어.”
“우리보다 어려 보이지 않았어?”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던데.”
“장력에서 뿜어진 힘이 상상을 초월했어. 봤지?”
“똑똑히 봤어.”
그들의 관심은 온통 현이에게 쏠려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극단원이 토비 파스콜을 한 번에 제압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상상했던 일.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수하의 선에서 컷.
이 얼마나 멋지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장면인가.
너무 멋졌다.
“무극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중간 계급 정도는 되지 않을까?”
“너희 설마 저 각성자 몰라?”
현이를 알아본 학생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무극단의 막내잖아.”
“무극단 막내?”
“다들 모르구나. 사룡장은 알아?”
“사룡장!?”
“저 사람이 사룡장 심현이야?”
“그래. 미디어에 자주 비쳤잖아.”
“몰랐어….”
심현이는 꽤 유명했다.
일명 포켓남.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귀엽게 생겨서 그런지.
방송국에서는 그를 많이 찾았다.
성격도 유해서 인기가 상당했다.
사룡장 심현이의 이야기로 가득한 운동장 벤치.
한참을 심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난 사실 다른 걸 기대했어.”
“뭐?”
“파천자 님이 반격할지 안 할지.”
이준을 공격한 토비 파스콜.
이준은 어떻게 대응할까.
과연 어떤 장면이 연출될까.
이준이 토비의 공격을 어떻게 막을지.
되레 응징하는 건 아닐지 궁금했다.
미디어를 통해 봐 왔던 이준이라면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었다.
토비의 갑작스러운 공격.
이준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봤다.
사룡장이 끼어들어 이준의 반응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무극단원의 무공을 조금이라도 엿봤으니까.
한편 토비의 상태를 확인한 서혜지가 이준에게 와서 말했다.
“마력이 불안정한 것 말고는 자잘한 외상이 끝이에요.”
“병약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튼튼하네.”
토비는 툭 건드리면 뼈가 부러질 것처럼 호리호리했다.
파스콜 가문과는 정말 닮지 않은 외관.
기사라면 떡 벌어진 어깨에 피지컬도 좋아야 할 텐데 토비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파스콜의 힘은 제대로 이은 것 같았다.
“키우면 포인트가 쏠쏠하게 오르겠는데?”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토비와 탈리아 두 사람만 키워도 꽤 많은 포인트를 획득할 듯싶었다.
체력 개선, 신체 강화, 특성 개화, 등급 향상 등 수련할 건 많았으니까.
“혁진아 계속 진행해.”
이준은 비무를 속행시켰다.
토비와 탈리아 파스콜처럼 괜찮은 학생들이 있나 보려는 것이다.
대충 훑어는 봤으나 직접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판단하는 게 더 정확했다.
이준의 말에 비무는 다시 진행되었다.
토비와 탈리아처럼 격렬하지 않은 비무.
대장전이 지나가자 경기들이 한결 루즈해졌다.
모든 비무가 끝날 때는 주변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눈에 확 띄는 각성자는 몇 없네.”
오히려 구경하던 이들 중에 괜찮은 이들이 많았다.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는 외국인이었으나.
그 눈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각성자가 있으면 뭐 하게?”
무언갈 찾고 있는 이준의 행동에 박혁진이 물었다.
“그냥 조언 좀 해 주려고.”
“우리처럼 키울 생각 같은데?”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하냐.”
이미 특별 1반을 가르쳤다.
그들은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니.
앉아만 있어도 테크트리 포인트가 들어왔다.
그저 괜찮은 각성자를 골라 조언을 해 주고 특성 개화만 시켜 주면 그때부터는 포인트가 알아서 모일 것이다.
악마 교관 특성이 사기인 이유는 조언만 해도 테크트리 포인트가 모인다는 것.
얼마나 좋은 특성인가.
“너희의 짐을 조금 덜어 주려고 하지. 너희 말 안 듣는 놈들 있지 않아?”
박혁진과 박정연은 예외였다.
한지유와 정예나 등도 별 탈이 없었다.
문제는 물러 터진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 쪽.
세 사람이 아무리 등급이 높다지만 일반 각성자 출신.
뒷배경이 든든하지 않아 해외 각성자들은 세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있긴 해.”
“나도….”
“우리가 함부로 했다가 국가 간에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서혜지와 남선호, 박은비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꽤나 골치 아파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꼭 가문을 믿고 설치는 놈들이 있었다.
외국도 똑같았다.
뒷배경이 든든하니.
각성자 등급이 높아도 배경이 없는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를 무시한 거다.
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커버 쳐줄 든든한 가문이 있었으니까.
정예나나 류가을처럼 세 사람도 가문이 뒤를 받쳐줬더라면 편했을 터다.
“내가 한번 만나 봐야겠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섬뜩한 표정.
모두가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저 미소를 지을 때면 언제나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어떤 일을 벌이려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엮이고 싶지 않은 그들이었다.
물론 이준의 신봉자들은 달랐지만 말이다.
“옆에서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선생님.”
“저도 꼭 보고 싶습니다.”
“은신해서 구경하겠습니다.”
진경수와 허수 그리고 조용석은 이준이 무얼 하든 지켜보고 싶어 했다.
이준의 수업은 어떤 것이든 도움이 됐으니까.
“모두 내일까지 말 안 듣는 놈들 나한테 보내. 이야기 좀 나눠 봐야겠다.”
과연 실제로 이야기를 나눌까.
훈련한답시고 패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