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2화
[새로운 루트 창이 생성되었습니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가 ‘신살의 운명을 받은 파천의 길’ 루트로 변경되었습니다.]
-신살의 운명을 받은 파천의 길 루트(EX)
무공 - 패천기공 사공 파천멸진(0/999,999,999)
마법(봉인) - 용의 고서(4가지 중 선택)(0/999,999,999)
능력치 - 마나+15(200,000,000)
“와….”
[홀홀. 그리 감탄할 게 무에 있을꼬.]
말은 태연하게 하나 무극자의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간 건 막을 수 없었다.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준을 곁눈질로 봤다.
이준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부님….”
[오냐. 내가 네 사부이니라.]
“여기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 사부님이시죠?”
[으잉? 동영상?]
무극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설명란만 있는 게 아니고?
상태창은 천계와 신선계의 작품.
인간일 때도 상태창을 신계의 그 누구보다 잘 이용했던 무극자였다.
신선제에 오른 그가 상태창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여기요. 보세요.”
이준이 홀로그램을 가리키자 무극자도 화면을 보았다.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무극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동영상은 바로 구천옥에서 구주를 골로 보낼 때의 영상이었다.
[염라대왕, 그 작자 짓이 분명해!]
그저 글로만 된 설명보다.
영상으로 직접 접하면 그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준에게는 오히려 더 좋았다.
무극자 사부가 어떤 식으로 내공을 사용하는지는 모르나.
파천멸진의 위력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노인네가….]
무극자가 분노했다.
이건 신계를 어지럽혀 염라대왕의 골치를 썩게 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지옥계에서 있었던 장면이 눈앞에 보일까.
“반응을 보니 사부님이 맞으시네.”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무극자 사부가 제 손에 죽은 건 제자에 대한 애정에서였다.
애정이 없었다면 사부의 손에 죽은 건 자신이었을 터.
이 영상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무극자 사부를 뛰어넘는 건 아직도 먼 이야기라는 걸.
‘내가 사부보다 강해질 수 있을까?’
사실 엄두도 나지 않았다.
파천멸진의 무공은 신의 영역.
저기에 다른 이름 모를 무공도 가미가 된 듯싶다.
무극자 사부를 거의 알았다 자부했으나.
여전히 사부는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까도 까도 양파 같은 사부.
최고에 최강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그러니 신선제가 됐겠지.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깽판을 치니까 구주가 다 도망가죠. 사람이 어? 적당히를 몰라요.”
[그것이 말이다, 제자야.]
“아, 됐어요. 수습은 제가 해야 하니까 이제 그만 말하세요.”
이준의 잔소리에 무극자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건수를 잡았다.
이참에 사부의 기를 꺾으려는 심산이었다.
“사부님이 이런 줄도 모르고 전 게이트에서 밥도 못 먹고 목 놓아 울었는데!”
[내 말 좀 들어 보거라. 저건 말이다.]
“제가 사부님을 그리워한 값을 물어내세요. 아우, 억울해.”
이준은 계속 투덜거리면서 무극자의 얼굴을 살폈다.
더 해도 되나.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하나.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부가 제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영혼을 보냈지 않느냐.]
“제 손으로 사부님을 죽게 해 놓고 그게 말이에요, 방구예요.”
[미안하게 되었다.]
“됐어요. 실망이에요.”
이준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렇게 보면 애였다.
누가 이를 파천혈신에게서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고 생각할까.
[큼큼. 제자야. 파천멸진이나 마법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느냐.]
무극자는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 보려고 무공에 대해 말했다.
고개를 돌렸던 이준의 귀가 쫑긋해졌다.
파천멸진.
동영상에서 보았던 패천기공의 사공.
삼공인 천살보다 윗줄에 서 있는 무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무공과는 전혀 다른 결인 마법도 말하려는 게 아닌가.
귀가 쫑긋해지는 게 당연했다.
“궁금하죠.”
[다 오해에서 일어난 일이니 화를 가라앉히거라. 이 사부가 파천멸진에 대해서 친절히 이야기해 주마.]
“그 전에 물어볼 게 있어요.”
[오냐. 무엇이 궁금한고?]
“사부님 마법도 아세요?”
[모른다.]
“그럼 루트 창에 있는 마법은 뭐예요?”
[이 사부가 구해다 줄 수 있는 걸 말하느니라.]
“원하는 걸 말하면 가능해요?”
[이 사부가 아는 선에선 구해 줄 수 있지.]
“대박!”
[홀홀. 이 사부가 누구냐. 인간계에선 고금제일인을 찍고 천상계로 올라 신선제에 오른 무극자이니라. 제자를 위해서 그깟 마법쯤은 쉽게 구할 수 있느니라.]
무극자의 말에 이준이 물개 박수를 쳤다.
삐진 척 한 건 어디에 가고.
무극자의 수작에 쉽게 넘어간 이준이었다.
“역시 사부님은 쩔어.”
그가 엄지를 들며 무극자를 치켜세웠다.
[홀홀 더 추켜세워도 봐주겠노라.]
무극자는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그에 이준의 칭찬은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학교 구경이나 가 볼까?’
메시지 창을 보니 뿌려 놓았던 씨앗들이 싹을 뜨기 시작했다.
특별 1반을 비롯한 무사고 학생들.
그들이 성장할 때마다 포인트가 들어오고 있었다.
사부의 무공을 전부 계승하고 나서부터는 들어오지 않았던 포인트였다.
루트 창이 생기니.
다시 테크트리 포인트가 쌓이기 시작한 것.
이전보다 훨씬 작은 포인트였으나 계속 메시지 창의 알람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내가 각성자를 가르칠 필요가 없지.’
박혁진이나 박정연이 각성자를 가르쳐도 이준에게 포인트가 들어왔다.
이게 한 두 명이 아니었으니.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포인트가 쌓여 있을 거다.
문제는 이 포인트가 전보다 훨씬 적게 들어오는 게 문제였다.
‘지나가다가 자세 교정만 해 줘야지. 무사고 학생들을 제외한 인원수가 이만 오천 명은 넘으니. 씨앗을 더 뿌리기도 해야 해.’
새로운 각성자들에게 전부 씨앗을 뿌려야 했다.
동시에 카오스 몬스터 토벌로 테크트리 포인트를 벌어야 했고.
새로운 게이트의 영역 확장, 사신수의 생사 확인 등.
할 게 많았다.
‘구주를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겠지.’
물론 그 전에 흑염마조와 파랑이를 이용해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을 생각이었다.
먼저 알아내면 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말이다.
* * *
박정연의 검법 강의1이 시작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그야말로 지옥의 강의.
절반이 수련용 철검을 뽑는 데 성공했으나.
그다음이 본격적인 수업이었다.
“으윽!”
쿵.
수업받는 학생이 수련용 철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가 자신의 오른팔을 늘어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더는 못 하겠…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련용 철검을 뽑은 대부분의 학생이 허공에 몇 번 휘두르다 말고 무기를 놓쳤다.
“악!”
“철검이 내공을 빨아들이는데 초식을 어떻게 펼치라는 말이야.”
“이건 사람이 할 하악… 수련이 아니야, 하악!”
박정연의 검법 강의를 듣는 학생 중.
딱 한 사람만 빼고 전부 운동장에 드러누웠다.
남은 한 사람은 탈리아 파스콜.
파스콜 가의 장녀이자 AA급 완숙의 각성자인 그녀는 수련용 철검이 마력을 빨아들여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박정연은 그녀를 보며 이채를 빛냈다.
‘AA급 각성자라 그런지 잘 버티고 있어.’
수련용 철검으로 인해 검술을 펼칠 때 제약을 받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리아 파스콜은 허공에 억지로 검술을 펼쳤다.
‘자세가 많이 무너졌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치고는 잘해.’
박정연도 서양의 검술.
그것도 파스콜 가의 검술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가 검의 경지에 있어 높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파스콜 가의 검술을 꿰뚫어 보지 못했을 터다.
무엇보다 이준이 가르친 기초 초식 훈련은 무공을 보는 눈까지 높여 줬다.
처음 보는 파스콜 검술의 요체를 꿰뚫은 것도 이 때문.
탈리아 파스콜이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정확히 짚을 수 있었다.
쿵-
박정연이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탈리아 파스콜 또한 힘겨운지.
휘두르는 걸 멈추고 검을 내려놓았다.
“하악! 하아악!”
탈리아 파스콜의 거친 숨소리.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제약을 견디며 철검을 휘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박정연은 그녀에게로 다가가 생수를 건넸다.
“잘하셨어요.”
“이게요?”
“네. 다른 사람은 탈리아 학생들의 발끝도 못 쫓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전 명색에 AA급 완숙에 있는 각성자인데….”
“제가 하는 수련은 S급 각성자도 힘들어했어요. 이준, 아니. 파천자가 무사고 특별 1반 학생들을 훈련시킨 방법이거든요.”
“네에에?”
탈리아 파스콜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파천자란 이명이 들리면 언제나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쓰러져 있던 이들, 모두의 귀에 들렸다.
파천자의 수련법.
이건 귀했다.
어쩐지 기초 검법 강의부터 너무도 어려웠다.
파천자의 수련법이니 안 힘들 수가 있나.
당연히 어렵고 힘들어야 했다.
“탈리아 학생이 잘 버티고 있지만 검술 자세가 너무 많이 무너졌어요. 억지로 검을 휘두르는 건 검을 안 쓰느니만 못해요.”
탈리아의 검술은 강검을 기반으로 했다.
그녀의 성격답게 아주 화끈한 검술을 지녔다.
공격 일변도.
방어는 도외시하고 오로지 공격만이 존재하는 검술이었다.
이 검술이 훈련에 들어가자.
탈리아를 엄청 괴롭혔다.
공격밖에 지니지 않은 검술을 굉장히 천천히.
느리게 검을 움직였다.
그러니 마력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을 안 치겠나.
철검은 마력을 빼앗지.
마력은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쓰지.
덩달아 심장의 마력은 점점 줄어들지.
동시에 체력도 두 배 가까이 떨어졌으니.
전부를 생각하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위의 걸 전부 챙기다가는 다른 학생들처럼 일찌감치 쓰러지고 말 테니까.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체력 소모가 너무 많아서….”
“검술을 전부 펼쳐 보이는 것보다 하나하나 똑바로 펼치는 게 탈리아 학생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힘들면 차라리 지금처럼 중간에 끊고 쉬세요. 그리고 다시 이어서 검술을 펼치면 돼요.”
“그러면 훈련이 될까요?”
“훨씬 잘 될 거예요.”
박정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그녀의 말대로 따라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탈리아가 다시 철검을 올려 검술을 천천히 펼쳤다.
그녀의 숨은 얼마 가지 않아 거칠어졌다.
박정연의 조언을 귀에 새기며 검술을 펼치니.
훨씬 집중이 잘되긴 했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니.
검술이 무너지지 않았다.
“하악… 하악…!”
탈리아는 검술이 무너지기 직전.
철검을 내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때요?”
“하악 아직… 모르겠 하악…어요.”
“차차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박정연이 미소를 보인 후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그때였다.
“누나.”
박혁진이 그녀를 불렀다.
“강의 중이야.”
“나도 알아.”
“무슨 일이길래 내 강의 시간을 방해해?”
“그게 누나의 도움이 필요해.”
“어떤 도움?”
“내 수업에 관련된 내용이야.”
박혁진은 박정연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의 수업 내용을 알고 있는 박정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 검법 강의1과 완전히 다른 수업 방식인데?”
“내가 가르친 방식도 누나 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히려 방해야.”
“미리 학생들의 실력을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해.”
박혁진의 강의 내용은 실전 훈련.
실전 비무나, 게이트 토벌이 핵심 강의였다.
실전 비무는 상대방이 있어야 할 터.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보다.
다른 강의를 들으면서 결이 비슷한 수업의 학생과 실전 비무를 하는 게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그 때문에 박혁진이 박정연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무작정 준이가 시켰던 훈련을 한다 해서 실력이 늘진 않아. 각성자의 실력을 파악해놓고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게 도움이 되지. 각성자의 문제점을 찾는 건 비무만한 게 없어.”
일리 있는 말이었다.
박정연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혁진이 말대로 해봐. 학생들 수준 좀 보자.”
그녀와 박혁진의 귀에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