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2화
한국으로 쏟아진 전 세계의 이목.
전 각성자들에게 전달된 메시지 때문이었다.
[경고! 차원의 균열이 열렸습니다.]
[경고! 파천혈신이 지구로 넘어왔습니다.]
[경고! 각성자 등급: ???(측정 불가), 무림 경지: 자연경 이상.]
[각성자는 파천혈신을 죽여 그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십시오!]
측정 불가의 등급.
규격 외의 존재가 한국에 강림했다는 게 세계 각성자에게 알려졌다.
무림의 등급으로는 자연경 이상.
괴물 같은 존재가 차원을 넘어 지구에 강림한 것이다.
세계는 한국이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누가 규격 외의 존재를 이기겠는가.
세계 랭킹 최상위권의 파천자가 있다 하더라도 파천혈신을 이기지 못할 거라 여겼다.
상대는 자연경 이상의 무인.
파천자의 알려진 등급은 SS 끝자락.
현경 끝자락이 자연경 이상의 무인을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한데 파천자는 그 어마무시한 일을 해냈다.
규격 외의 존재와 싸워 이겼다.
세계가 아는 파천자의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것.
그들이 알던 모든 정보를 폐기해야만 했다.
규격 외의 존재를 이겼다는 건 파천자도 그와 비슷하거나 더 높다는 뜻.
국가 전력급을 아득히 초월한 각성자가 탄생한 거다.
한국에는 축복이었고 다른 나라에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압도적인 세계 1위의 무력을 보유한 미국도 가뿐히 제쳤다.
이제는 명실상부 한국이 국가 전력으로 1위.
2위로 떨어진 미국과도 전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파천자란 단 한 사람 때문에.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로 인해 세계 각성자 커뮤니티는 떠들썩했다.
[역대급 각성자를 보유했네. 한국 ㅊㅋ.]
[파천자가 두각을 드러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다니 내가 다 뿌듯하다.]
[이제 세계 맹주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뀌겠네.]
[당연하지. 미국은 SS급 각성자가 끝이잖아.]
[아메리카 레인저들이 떼로 덤벼도 파천자한테는 안 됨.]
아메리카 레인저는 미국의 최정예 각성자였다.
SS급 각성자로 구성된 조직.
이들이 움직이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아메리카 레인저 수장의 등급은 알려진 게 없으나.
대장답게 레인저 모두를 억제할 수 있는 무력을 가졌다고만 전해졌다.
[근데 존나 웃기지 않냐? 파천자가 두각을 나타내니까 미국에서 이에 질세라 아메리카 레인저의 등급을 슬쩍 흘린 거?]
[베일처럼 꽁꽁 감싸다가 세계에 알리는 건 무엇?]
[세계 맹주 자리를 뺏길까 봐 똥줄 탔나 보지 ㅋㅋㅋㅋㅋ]
[킹정 ㅋㅋㅋㅋㅋㅋㅋ]
[야야 놀리지 마. 미국 애들 발작한다.]
[서양은 걱정이 산더미일걸?]
[왜 파천자 때문에?]
[ㄴㄴ. 파천혈신이란 규격 외 등급이 나타나서 비상임.]
[한국에 나타나서 죽었는데 미국 애들이 왜 똥줄탐?]
[동양에 규격 외 존재가 나타났으니 서양에도 규격 외의 존재가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임.]
파천혈신은 무림인이었다.
이게 뭐라는 식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미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각성자들이 처음 선택한 메시지.
중원 대륙 무공.
그란투스 대륙의 오러와 마법.
이 선택 항목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해석한 건 파천혈신은 중원 대륙의 무림인.
그렇다는 건 그란투스 대륙의 인물도 차원을 넘을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파천혈신이 한국에 강림했다면.
그란투스 대륙의 존재는 미국이나 유럽에 등장할 확률이 가장 컸다.
이게 서양의 걱정거리였다.
파천혈신은 규격 외의 존재.
그란투스 대륙의 인물도 규격 외의 존재가 있지 않을까, 란 추론을 한 것이다.
[와… 규격 외 존재가 또 지구로 넘어올 수 있다고?]
[미쳤다.]
[못 막으면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님?]
[ㄴㄴ. 서양만 X됨. 우린 파천자 있음 ㅋㅋㅋㅋ.]
한국인들이 서양인들에게 염장을 질렀다.
옛날이었다면 갖은 욕설과 협박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라의 관계가 역전된 상황.
미국과 유럽이 목을 뻣뻣이 들고 다녔다면 지금은 한국이 그들을 내려다보게 됐다.
[그러게 서로 교류 좀 했으면 얼마나 좋냐.]
[지들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소통을 끊었으니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유럽은 동양 유학생들 받아줌.]
[그건 인정.]
[너희의 노고는 우리가 사신가에 잘 전달함.]
[ㄳㄳ.]
파천자로 인해 한국인의 콧대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익명의 누군가가 사진 하나를 투척했다.
[홀리 X! 왓더 X!]
[사, 사신수?]
[동양의 절대종 아님? 이 사진을 어디서 건짐?]
[블랙급 몬스터도 절대종 앞에서는 목에 힘도 못 준다는데 맞는 말 같네….]
사진에는 한국 하늘에 뜬 사신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절대종은 추측된 정보만 있을 뿐.
사신수가 실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유럽에 등장했던 칠죄종은 가짜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유럽에 나타난 칠죄종이 진짜였어?]
[동양에 사신수가 나타났으면 칠죄종도 가짜는 아니지.]
[이미 나타났었네.]
[왓더 X. 이러고 채팅할 때가 아니야.]
세계 채팅창에서 미국인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한국이나 유럽이 겪었던 일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기에 바빠진 것.
그때 사진을 투척했던 익명의 글쓴이가 한마디 했다.
[한국에 각성자 양성소가 새로 만들어졌다 함. 국적 가리지 않고 신분만 보장되면 모두 받아준다던데.]
[헉!]
[그게 사실임?]
[교수 중 한 명이 파천자라는 썰이 있긴 해.]
그 말은 굉장히 파급력이 강했다.
규격 외의 존재를 이긴 파천자.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했다.
그에게 배우면 등급이 수직 상승한다는 소문.
아니, 한국이 이미 입증한 결과였다.
파천자에게 한 번이라도 배운 각성자는 모두 강해졌으니까.
* * *
“후우우. 오랜만에 키보드 좀 놀렸더니 피곤해.”
한민성이 안경을 벗고 손가락으로 두 눈을 꾹꾹 눌렀다.
그는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방금 전 채팅도 근무의 일환.
각성자 사관 학교를 세계에 홍보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말하길 좋아하는 커뮤니티를 적당히 이용하면 이만큼 좋은 홍보 효과를 가진 곳이 또 어디 있겠나.
곧 서양 쪽에서 미끼를 물어 올 것이다.
“문제는 파천자께서 교수직을 맡냐는 건데….”
예전이었다면 충분히 교수직을 수락할 만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굉장히 어려웠다.
이준이 모습을 감춘 지 벌써 두 달.
그가 그토록 아끼는 특별 1반 아이들도 만나 주지 않았다.
연락을 계속 취해도 받지 않은 이준.
이대로라면 교수직은 물론, 앞으로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듯싶었다.
“상심이 이루 말할 수 없겠지.”
한민성이 다시 안경을 쓰자.
똑똑.
-이사장님 남지우입니다.
“들어오세요.”
그의 비서인 남지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미국 쪽 가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어디 쪽입니까?”
한민성의 질문에 남지우가 인상을 썼다.
“왜요?”
“하나만 해 주시겠습니까?”
“뭐를?”
“존대나 반말 중 하나 말입니다.”
“아, 미안해요. 남 비서가 너무 편해서 말이에요. 계속 존대를 써 줄게요.”
“그러십시오.”
남지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파스콜 가문의 가주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파스콜 가의 가주가? 많이 급했나 보군요.”
“지금도 미국의 여러 가문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 자녀들을 입학시키고 싶다는 문의입니다.”
“파천자 님의 효과군요.”
“네.”
“우선 입학하려면 가문의 정보 공개를 승인해야 한다고 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보 공개를 동의하는 순서대로 전자 입학 통지서를 발행하시고요.”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남지우가 밖으로 나갔다.
한민성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빌딩의 1층.
별다방에서 한지웅이 전화를 받았다.
“그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야. 아직 결론이 안 나서 끝나면 다시 전화하마.”
한지웅은 동생과 몇 마디 통화를 나누고 끊었다.
“이게 우리가 함부로 정할 게 아니오. 파천자 님의 동의 없이 무슨 일을 진행한단 말이외까!”
진병철이 언성을 높였다.
류한길도 거들었다.
“맞다. 그분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망정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두 분 다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한지웅이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이곳에는 오대 가문과 마벽만 모여 있는 게 아니었다.
유럽에서 전용기를 타고 직접 온 손님들도 함께였다.
그들의 옆에는 13살부터 19살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곁에 있었다.
유럽 가문의 자제들.
모두가 기품있었다.
몇몇은 거만하기까지 했다.
마치 ‘왜 우리가 이런 작은 나라에서 유학을 해야 하냐’라는 얼굴이었다.
“진정하게 생겼소? 그분이 우리가 벌인 짓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하겠소?”
“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나 류한길은 파천자 님의 동의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씨 가문도 마찬가지오.”
진병철과 류한길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데 검제와 괴개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들 빼고 모두가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이제야 오는 것이오?”
두 사람도 검제와 괴개에게 인사를 했다.
“혈마 넌 또 왜 심술이냐.”
괴개가 씩씩대는 류한길을 콕 집어서 말했다.
“신기가주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지 않소.”
“신기가주의 입장도 헤아려 줘. 한국의 전력을 늘리고 세계와 화합하려는 것 아니냐.”
“그 화합을 하려다가 파천자 님의 분노를 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오!”
“안다. 그래서 나와 춘식이도 이곳에 왔지 않냐.”
“흥. 보나 마나 일을 그냥 진행하려고 하겠지.”
류한길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파천자가 중심이다.
그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조용히 있으면 됐다.
한데 그가 없는 틈을 타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상심이 얼마나 클지 모르는 파천자는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이러다 정말 큰 일 난다.
파천자의 성격을 알고 있다면 당장 말려야할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필 심기가 불편할 때 그의 허락도 없이 일을 진행한다?
탈이 날게 분명했다.
그가 분노하면 누가 감당할까.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왔다.
“우리 말을 들어 보고 화를 내라.”
“안 들어 봐도 뻔하오.”
류한길은 귀를 완전히 닫아 버렸다.
그를 본 괴개가 혀를 찼다.
“쯧. 저 성질로 마벽의 련주를 잘도 한다. 춘식아 네가 말해.”
“알았다.”
박춘식이 별다방에 있는 이들을 차례대로 훑어보았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오대 가문과 마벽의 가주를 제외하면 전국의 중소 문파 가주와 유럽, 중국, 일본 등.
각 나라의 손님들이 모두 짐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와 있었다.
“우선 내 소개부터 하겠소. 철혈검가의 검제라 하오. 이렇게 직접 한국을 방문해 주어 감사하오.”
인사를 마친 검제가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학교에 입학할 수는 없을 것 같소.”
“검제 님!”
“무슨 말입니까! 입학이 가능하다고 해서 먼 길을 온 것인데.”
“파천자께 사정이 생겼소. 교수직을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황인데 여러분의 자제를 입학시켜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소. 파천자께서 교수직을 거절해도 자제들을 입학시킬 겁니까?”
“그건….”
“이 일을 근시일 내에 해결할 터이니 우리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