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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494화 (491/705)

제490화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드넓은 하늘과 땅이 일그러지며 검은 비가 떨어졌다.

뚝뚝.

작은 빗방울이 소나기로 변했다.

산들바람은 폭풍이 되어 회오리쳤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

이준과 무극자가 있는 공간을 싸그리 초토화시켰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마치 이 천재지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검은 비가 그쳤다.

천둥 번개 또한 멎었다.

마지막으로 폭풍까지 사라졌다.

고요.

정적이 흘렀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이어진 무음.

그러던 그 순간.

파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무음이던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럴… 수가….]

[으음… 인간이 아니다.]

[신계의 요주의 인물답구나!]

결계를 펼치고 있던 사신수들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그들은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을 보고 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치고는 굉장히 조용한 장소였다.

하나 사신수가 보기에는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 전야였다.

태풍이 불기 전의 정적이랄까.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강한 힘이 부딪혔는지 보였다.

[멍하니 있을 거냐? 인간들을 이동시켜!]

흑염마조가 세 신수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과 같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인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우린 방관자다. 인간의 목숨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일이 아니야.]

현무가 냉정하게 말했다.

사신수는 본래 인간들의 세상에 참견하지 않는다.

혈난이 일어난다 해도 방관하는 게 사신수의 일.

천계, 마계, 신선계, 지옥계가 인간 세상에 관여하지 못하게 막는 게 그들의 본문이었다.

원래라면 결계도 쳐 주지 않아야 했지만.

두 재앙의 싸움.

이들의 기운이 마계나 지옥계에 영향을 끼친다면 굉장히 골치 아팠다.

차원이 뒤틀리는 건 사신수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천계와 마계의 싸움으로 인해 현세에 게이트라는 게 생겼다.

이 때문에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

사신수들은 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것뿐이었다.

흑염마조는 이 부분을 노렸다.

[인간들의 목숨이 차원의 틈으로 흘러가면 누가 좋아할까? 천계? 아니면 신선계? 아니다. 마계가 가장 좋아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으로 마신의 부활을 강행할 테니까. 놈들은 네게 정말 고마워하겠군.]

[주작의 말도 일리가 있어.]

[우리가 방어 결계를 친 것도 마계에 흘러가는 충돌의 여파를 막기 위해서 아닌가.]

백호와 청룡이 흑염마조의 편을 들었다.

방관자이기 전에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수호자였다.

이는 엄청난 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 흑염마조의 말대로 하는 게 가장 좋았다.

[아니면 마계에게서 대가라도 받았나?]

[지금 날 능멸하는 것이냐!]

현무가 버럭 소리쳤다.

마계와 연관 짓는 건 사신수에게 굉장히 치욕스러운 발언이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인간들을 너희들의 게이트로 옮겨라.]

흑염마조가 성화와 흑염을 동시에 태웠다.

청룡의 몸에선 번개가.

백호의 몸에선 초록빛이 번쩍였다.

현무도 마지못해 힘을 드러냈다.

혹한의 눈바람이 현무의 주위에 들이쳤다.

사신수가 힘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곳곳에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땅이 터지고 또 터졌다.

황폐한 땅은 물론 멀쩡한 건물과 나무들.

심지어 산까지 통째로 날아갔다.

지하에 자리한 쉘터도 폭발에 휩싸였다.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쉘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직 이준과 무극자가 서 있는 자리만 멀쩡했다.

* * *

번쩍-

오대 가문과 마벽의 각성자들이 지옥지대로 이동됐다.

“어찌 된 일이지?”

검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몸이 불에 휩싸이고 나서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우뚝 솟아 있는 기둥.

그리고 용암이 흐르는 곳에 자리한 건물.

낯이 익은 곳이었다.

“이곳은 주작의 거처 아닌가.”

“갑자기 우릴?”

“준이가 저희를 보호하려고 이곳으로 보냈을 거예요.”

“허.”

박정연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음성은 매우 우울했다.

밖에서 혼자 싸우고 있을 이준이 걱정됐다.

상대는 무지막지한 적.

여태 봐 왔던 몬스터나 천외천과는 격이 달랐다.

이준의 사부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재앙에 가까웠다.

괜히 메시지 창에서 최종 보스라고 나왔을까.

각성자 시스템에서도 경고를 보낼 정도면 상대가 얼마나 강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상처를 입으셨으면서 또 우리를 생각하시다니, 큭!”

진경수가 분해하면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허수와 조용석 또한 마찬가지.

이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괴롭혔다.

“정말 분합니다.”

“저희는 왜 선생님께 도움이 안 될까요?”

“젠장!”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각성자들에게 전해졌다.

모두의 얼굴에는 분함이 가득했다.

그들보다 더 화가 난 곳도 있었다.

“X발! 정신 차리시오, 단주!”

무극단과 사신가였다.

가주를 제외하면 사신가 최고의 각성자인 사형준이 사경에 빠졌다.

팔 한 짝을 잃었다고 정신이 혼미해진 건 무극자의 파천멸기 때문.

이 기운은 보통의 힘이 아니었다.

무극기도 물어뜯어 먹는 지독한 마기.

사형준의 몸으로 흘러간 파천멸기가 치료를 방해하고 있었다.

가주에게 도움도 되지 못했을뿐더러.

이젠 무극단의 단주까지 잃게 생겼다.

“사 단주. 정신을 잃으면 아니 되네. 내가 치료해 줄 터이니 조금만 참으시게.”

현무각주인 이의태가 사형준의 전신에 침을 꽂았다.

내공을 끌어 올려 침의 힘을 극대화시켰다.

“이것도요.”

이지안이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극빙하수더냐?”

“네. 가주 오빠가 줬어요.”

극빙하수는 AA급 영약.

극음의 성질을 가졌다.

많은 양기를 가진 사형준에게는 최고의 치료약이었다.

음기를 가진 사람에게 극빙하수를 먹이면 독약이겠지만.

양기를 타고난 사람에게는 마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영약이었다.

양기가 없다 하더라도 이곳은 지옥지대.

불의 기운이 차고 넘치는 곳이니 극빙하수를 중화하는 데 최고의 장소였다.

이지안은 극빙하수를 사형준에게 먹였다.

“선생님. 기가 잘 흐르게 다리 좀 주물러 주세요.”

“알았어….”

차경진이 재빨리 사형준의 다리를 주물렀다.

“괜찮으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겠지?”

“호전이 안 되더라도 가주 오빠가 돌아오면 해결될 거예요.”

이지안은 차경진을 위로했다.

사신가에서 사형준과 차경진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연인 관계.

사형준은 무극단의 일로 굉장히 바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차경진을 보러 갔다.

이준을 호위한다는 핑계를 대며.

심부름을 왔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

이준이 사신가로 올 때면 차경진도 함께 왔다.

그녀도 사형준과 같은 마음.

표현은 서툴러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애틋했다.

‘제발 정신 차려요.’

차경진은 다리에 활력을 돋우면서 속으로 일어나라고 계속 되뇌었다.

“정말 지독한 마기야.”

이의태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치료에 특화된 현무계 무공을 사용했는데도 상처가 더디게 나았다.

좀만 늦게 치료했다면 이미 괴사했을 정도.

현무계 무공을 사용해서 이만큼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이 마기만 없다면 사 단주의 팔을 붙일 수 있을 터인데….”

이의태가 안타까워했다.

무인에게 있어서 팔은 생명과도 같았다.

검사라면 다른 손으로 다시 검법을 익혀야 했고.

권사라면 한쪽 팔로만 싸워야 했다.

하필 사형준은 권사.

신권이라 불리는 각성자였다.

이제 한 팔로 밖에 권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예전의 실력을 발휘하기란 요원해졌다.

“괜찮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맞습니다.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무극단에 사형준이 없으면 팥앙금 빠진 찐빵.

그들이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 사형준의 역할이 가장 컸다.

만약 단주의 자리가 빈다면 이름만 무극단일 뿐.

사신가에서 가장 강한 무력 단체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니.

살아 주기만 하면 됐다.

“내 신의란 명성을 걸고 꼭 살려 내겠네.”

이의태는 자신이 가진 의술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그 어떤 때보다 집중했다.

사형준을 살리기 위해.

사형준을 괴롭히는 지독한 마기를 몰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치료했다.

* * *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세상이 조용해졌다.

모든 게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 남은 공간.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재밌구나. 재밌어.”

제자인 이준과 싸우는 것이 그리 좋을까.

무극자는 싸우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말에도 이준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푸확-!

무극자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몸에는 여러 갈래의 선들이 그어졌다.

그곳에서 피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혈인이 된 무극자였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릴 법도 하나.

무극자는 고금제일인답게 굉장히 태연했다.

되레 양반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네 천살은 고요하구나.”

“…….”

“본좌의 천살은 요란하기만 할 뿐 실제로 하늘을 부수지 못했어. 마신지체와 혼원신공이 함께한 효과인가?”

무극자는 애초에 마신지체를 바탕으로 혼원신공을 창안했다.

하나 역천마신지체를 타고난 그였기에 혼원신공과 불협화음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본좌가 계속 이 몸을 차지했다면 너와 재밌는 광경을 만들었을 터인데. 아쉽구나. 본좌의 안에 있는 녀석이 발악하니 이만 사라져 주겠다.”

무극자의 눈이 검게 번쩍이다 사라졌다.

이준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우.”

무극자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내… 제자 준아….”

혼원을 지배했던 역천이 사라지니 무극자의 몸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말을 내뱉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이준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억지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겨서 다행 쿨럭쿨럭… 이구나.”

무극자는 피를 토해 내면서도 이준을 따스하게 보며 말했다.

이준은 감정이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지만 무극자는 제자가 어떤 심정인지 알고 있었다.

“…이 사부를 이겨 줘서 고맙구나. 드디어 눈을 감는 날이 왔어….”

무극자는 이때만을 기다렸다.

그에게는 영겁의 시간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

자신이 정신을 놓으면 역천이란 괴물이 나올 것을 알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평생을 괴물로 살아갔을 것이다.”

무극자에게 보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

억울하게 죽게된 마중화, 주경아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사람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평생을 사랑하는지.

정말 지고지순한 마음이었다.

그의 절절한 음성에 이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여 놨던 감정이 무극자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사부님….”

무극자가 이준에게 밝게 웃어 줬다.

회광반조의 현상.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이는 무극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이준의 앞에 섰다.

“내 제자야.”

“사부님….”

“넌 나를 죽인 게 아니다. 구원을 해 준 것이니라.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알겠느냐?”

“…사부….”

“사부가 알아들었냐고 물었느니라.”

“알아들었어요.”

“그래. 그것이면 됐다. 항상 웃음을 잃지 말고.”

“네….”

“그래 어디 우리 제자를 마지막으로 한번 큭….”

“사부님!”

무극자의 한쪽 무릎이 굽혀졌다.

그는 허물어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이미 내장이 조각나고 심장이 부서진 상황에도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안아 보자꾸나.”

무극자는 이준의 어깨를 붙잡고 일어나 그를 안고 토닥였다.

“내 제자 준아. 사부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것이니라.”

그 말을 끝으로 무극자가 모래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부니이이임!”

이준은 무극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힘껏 안았으나.

허공엔 재만이 풀풀 흩날렸다.

사부를 보는 건 정말 마지막이었다.

영혼도, 육신도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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