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7화
이준이 무극자를 향해 번개같이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무극자 앞에 나타난 이준.
무극기를 두른 주먹이 무극자의 가슴을 노렸다.
이에 무극자가 몸을 틀었다.
그가 이준의 주먹을 가볍게 흘렸다.
그리곤 무릎으로 이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쿵!
이준은 반대편 팔로 무극자의 무릎을 막았다.
단순한 공수였지만.
“윽!”
“억!”
“…뒤로 물러나!”
특별 1반 학생들은 충돌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았다.
멀리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파가 전해져 왔다.
이준과 무극자의 충돌은 계속되었다.
쿵!
쿵쿵!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무극기와 파천멸기가 서로를 물어뜯었다.
방어를 도외시하며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듯 서로에게 상처만을 입혔다.
막상막하의 싸움.
공수가 계속 이어지는 그때.
먼저 균형을 깬 사람이 있었다.
퍽-
이준이 무극자의 정권에 가슴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가 뒤로 쭉 밀려났다.
땅에 깊은 족적을 여러 개 만들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파천멸기가 담긴 주먹이라 그런지.
이준의 내기가 원활하지 않았다.
무극자는 옷의 매무새를 고치고는 입을 열었다.
“본좌와 손을 겨룰 무인이 생겼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
“간은 다 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덤벼 오거라.”
여유로운 무극자와는 달리 이준의 숨은 거칠었다.
그 짧았던 긴장감으로 인해 압박을 느낀 것.
혼원신공으로 호흡을 안정시키고 있으나.
고금제일인을 상대한다는 정신적 부담감은 상당했다.
‘사부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어.’
손을 섞으면서 느꼈다.
파천멸기를 담아 공격하고 있지만 육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울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극기가 담긴 주먹과 발차기를 가볍게 받아 냈다.
‘내 움직임이 전부 읽히는 느낌이야.’
오른쪽으로 이동할지.
왼쪽으로 이동할지.
어깨를 공격할지.
복부를 노릴지.
사부는 자신의 공격 루트를 알고 먼저 움직여 막았다.
‘이대로는 아무 의미 없이 내공만 소모하게 될 거야.’
이준은 허리에 찬 파멸겁을 꺼냈다.
파멸겁은 혼원문의 4대 기보 중 하나.
주작의 힘이 깃든 무기였다.
혼원신공을 운용해서 파멸겁을 사용한다면 무력이 배는 강해졌다.
이번에도 이 힘을 빌려 볼 생각이었다.
제2단계 형태로 진화한 파멸겁.
그걸 본 무극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좋은 생각이다. 상대에게 안 된다고 느끼면 기물의 힘을 빌리는 것도 방법이지.”
이준은 파멸겁을 꽉 쥐었다.
무극기를 집어넣자 회색의 화염이 파멸겁을 감쌌다.
그가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무극자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허.”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이준이 취한 기수식은 무극창법이 아닌 다른 무공.
진천무의 적익이나 풍살의 기숙식 또한 아니었다.
“패천일공을 파멸겁으로 펼칠 생각을 하다니.”
무극자의 말대로 이준은 기공을 창법으로 변환하여 사용하고자 했다.
패천일공의 기가 가장 원활한 자세.
두 발을 어깨 넓이로 펼치고 창을 적에게 겨누는 모습.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이준의 오른손이었다.
그의 활짝 펼쳐진 손바닥에는 살이 에일듯한 장력이 수십 겹 뭉쳐 있었다.
“제법 재밌는 생각을 했군.”
무극자가 파천멸기를 더욱 피웠다.
파멸겁을 휘둘러 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얼마든지 공격해 봐라.
파천멸기로 막아 주겠다.
이런 자신감을 보였다.
굉장히 오만한 태도.
이 세상에서 무극자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였다.
사부의 도발에도 이준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극성으로 발휘된 혼원신공.
이제 오른손 바닥에 모인 기운을 창에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나 이준은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혼원신공의 내기에 마력을 더했다.
심장 위에 새겨진 회색의 마력이 맹렬히 돌아갔다.
혈맥을 타고 빠르게 달리는 마력.
오른쪽 손바닥에 혼원의 내기와 마력이 서로 뭉쳤다.
어느덧 힘이 정점에 이르자.
“무공.”
이준의 입에서 스킬 명이 짧게 흘러나왔다.
손바닥에 가득 모인 힘을 창에 밀어 넣는 순간 회색의 화염이 무극자를 향해 불을 뿜어냈다.
* * *
콰과과과아앙!
천지가 무너지는 듯.
게이트가 흔들렸다.
대지가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졸지에 절벽이 생겨났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이 틈 사이로 떨어졌는데.
얼마나 깊은지 끝도 없이 떨어졌다.
특별 1반 학생들은 벌어진 틈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보법을 밟았다.
“조심해!”
“떨어지면 끝이야!”
게이트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나마 정상적이던 땅도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밟았다간 골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특별 1반 아이들은 잘 피해 나갔다.
가장 등급이 높은 박정연과 박혁진이 제일 빨리 위험 지역을 벗어났다.
그 뒤로 한지유와 허수, 진경수가.
그다음은 정예나와 정예은, 이지안, 류가을이 순서대로 안전 지역으로 나왔다.
남은 사람은 다섯 명.
홍원찬과 조용석,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였다.
조용석 또한 안전 지역에 도달했는데. 순간,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
비명의 주인은 서혜지였다.
그녀가 밟았던 돌이 부서진 것.
이곳에서 가장 보법이 약한 사람이라 위기 대처 능력도 떨어졌다.
“혜지야!”
“내 팔을 잡아!”
남선호가 손을 뻗었으나 팔이 닿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친구의 위험에 박혁진이 경공을 펼치려는 찰나.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조용석이 안전지대를 박차고 서혜지를 향해 움직였다.
주먹만 한 돌을 밟으면서 나아갔다.
살수답게 경공과 보법이 무척이나 뛰어났다.
조각난 돌을 밟으며 서혜지에게 접근했는데.
“혁진 형님. 용석이가 밟을 돌이 없습니다!”
허수가 박혁진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저러다 조용석도 죽게 생겼다.
“그러면 밟을 돌을 만들어 주자.”
쾅!
박혁진이 멀쩡한 바닥을 향해 천월을 휘둘렀다.
천월의 힘에 의해 돌과 흙이 위로 튀어 올랐다.
그는 곧바로 검풍을 일으켜 조용석이 있는 곳으로 돌을 날렸다.
뒤에서 날아온 돌들.
밟을 게 생긴 조용석은 무사히 서혜지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욱… 실례.”
조용석은 서혜지의 옆구리를 잡곤 몸을 돌렸다.
박혁진과 허수가 돌을 날려 준 덕분에 조용석은 무사히 안전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악… 하악….”
조용석이 서혜지를 내려놓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아찔한 상황.
살예로 단련한 정신력이 없었다면 필시 죽었으리라.
“고, 고마워.”
서혜지는 빨갛게 변한 얼굴로 숨을 고르는 조용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후우우…. 아닙니다.”
서혜지가 급히 몸을 돌렸기에 조용석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조용석.
여자를 밝히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게 이준이 계도해 준 덕분이다.
그가 없었다면 동료를 위해 희생하려는 조용석도 없었을 터다.
특별 1반 모두가 위험 지역에서 벗어났다.
이준과 더욱 멀어진 그들.
먼지가 게이트를 뒤덮을 정도로 피어나자 더는 앞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정연아 어떻게 됐어? 뭐가 보여?”
“아직 안 보여.”
정예나의 질문에 박정연이 고개를 저었다.
박정연의 눈에도 앞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먼지구름은 그녀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하나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 듯.
먼지구름 안은 흐릿하기만 했다.
“혁진이도?”
“네. 저도 안 보여요. 그보다는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요.”
“준이만 놔두고 나갈 수 없어.”
한지유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고집은 황소고집.
한 번 정하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박혁진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게이트의 하늘에도 금이 가 있었다.
땅뿐만 아니라 하늘에도 틈이 벌어진 것이다.
“아.”
한지유의 고운 아미가 찡그려졌다.
“우린 준이처럼 게이트를 마음대로 열지 못해. 여기 있다간 방금처럼 죽을지도 몰라.”
“맞습니다. 누님. 형님께서 항상 혼자 싸우신 것도 저희가 도움이 안 돼서입니다. 저 싸움을 지켜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지만…. 저흰 형님께 방해만 될 뿐입니다.”
등급이 오르고 성장을 했다 치면 더 강한 적이 나타났다.
죽어라 싸우는 게 가능한 적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되레 이준의 발목만 잡을 정도로 적의 수준은 높았다.
그 때문에 항상 뒤로 빠져야만 했다.
그나마 천외천과 최후의 전쟁을 벌였던 싸움에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이준을 도와줄 수 있구나.
이제 그의 짐이 되지 않아도 되구나.
천외천과 싸우면서도 기뻤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였다.
더 어려운 적이 나타나니 다시 무능력하다는 걸 느꼈다.
뿌득!
한지유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에도 도움은커녕 이준을 놔두고 도망치듯 게이트를 나가야 하니 분했다.
“나가자. 여기서 사라져 주는 게 준이한테도 좋을 거야.”
박혁진의 재촉에 한지유가 마지못해 움직였다.
[본좌가 문을 열어 주지.]
흑염마조의 목소리가 특별 1반 아이들에게 들렸다.
그들의 앞에 밖으로 통하는 문이 생겼다.
“준이는 괜찮겠죠?”
[작은 주인을 믿고 기다려라.]
박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한지유가 게이트 앞에 섰다.
“꼭 살아 돌아와.”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는지.
그녀가 큰 목소리로 말하곤 게이트를 나갔다.
[작은 주인이 저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군.]
흑염마조는 게이트를 닫고 먼지구름이 있는 곳을 유심히 보았다.
* * *
패천일공을 사용한 이준이 파멸겁을 회수했다.
혼원신공을 돌려 내공을 다시 채웠다.
이전이었다면 탈진에 빠졌을 터.
지금은 패천일공을 사용해도 혼원신공이 빠르게 내공을 채워 줬다.
게이트를 가득 메운 먼지가 바람에 의해 사라졌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생각지도 못한 힘이 섞여 있다니.”
무극자가 백의를 털어 내며 말했다.
단정했던 머리는 충격의 여파에 의해 흐트러져 있었다.
“패천일공으로는 무리야.”
사부는 자기를 죽이라고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릴 시간을 자신에게 줬다.
그런데도 사부를 놀라게만 했을 뿐.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역시나 사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좌가 네게 양보하는 건 3초식뿐이다. 마지막 하나를 펼쳐 보거라. 네 한계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사부는 가볍게 손을 나눈 걸 1초식으로 여겼다.
패천일공을 받은 게 2초식.
이제 마지막 일격을 끝으로 봐주는 건 끝이라 선언했다.
“저도 이제 앞뒤 안 가릴 겁니다.”
퍽-
이준은 파멸겁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창을 잡은 손에 무극기의 아지랑이가 몰려들었다.
“패천이공을 펼치려 하는가 보군.”
무극자는 이번에도 방어만 하려는 듯.
이준이 패천이공을 준비하든 말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대신 패천일공을 맞았을 때와는 다르게 파천멸기의 벽을 만들어 냈다.
무극자의 앞에 검은 막이 생겨났다.
그 또한 패천이공의 위력을 알기에 조치를 내린 것.
거기다가 이준은 마력도 사용하니.
맨몸으로 맞는다면 아무리 그라도 위험할 거라 여겼다.
무극자가 방어를 갖추는 사이.
이준은 패천이공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하늘의 결을 찾아야 해.’
눈에 무수히 많은 선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투명한 선을 찾아야 한다.
그 결이야 말고 가장 완벽한 자연의 흐름이었다.
결을 찾아 자르기만 하면 가장 위력적인 패천이공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찾고 또 찾은 결과.
‘찾았다!’
눈에 보이는 맑고 투명한 선을 잘랐다.
선이 툭 하고 끊기는 순간!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