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6화
[천살성이 마신의 힘에 의해 빛을 잃었습니다.]
[천살성이 심연으로 가라앉았습니다.]
[혼원신공으로 완전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살성이 사라진 후, 이준은 패천일공과 이공을 뜻대로 펼칠 수 있게 됐게 됐다.
기운을 압축해도 그 어떤 반발이 없었다.
이준은 밥도 먹지 않은 채 무공 수련에 열중했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음. 그럭저럭 맛있군.]
“헤헤. 마조께서 흡족해하시니 이 충복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요.”
이준은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수련하는데 그 옆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헷, 마기보다 맛있는 음식은 정말 오랜만이야.]
파랑이 또한 테구르가 만들어준 고기를 먹고 있었다.
[넌 싸움 빼고 전부 잘하는군. 작은 주인이 옆에 두는 이유가 있었어.]
[테구르는 유능한 부하라구요. 싸움만 잘했으면 만능 몬스터였을 거예요.]
흑염마조와 파랑이가 극찬했다.
“아이고 아닙니다요. 이 모든 게 주인님이 제게 주신 은혜 덕분이지요.”
두 절대종의 칭찬에 테구르는 몸둘바를 몰랐다.
우쭐할 법도 하나 이준에게 공을 미루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테구르가 최상위 포식자에게서 살아남은 처세술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요. 저희만 맛있는 걸 먹어도 되는 겁니까요?”
테구르는 이준의 눈치를 봤다.
식사와 잠까지 끊어가면서 훈련에 열중했다.
그런데 종복들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지 눈치가 보인 것이다.
[작은 주인이 밥을 안 먹는다고 우리까지 전부 쫄쫄 굶을 순 없지.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마조님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배를 든든히 하고 응원하면 돼.]
[현명하군.]
[마조님도요.]
파랑이가 어느새 흑염마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 착하고 귀여웠던 파랑이가 마조에게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옛날이었다면 식음을 전폐하고 이준의 옆에 딱 붙어 있었겠지.
[곡차도 먹고 싶군.]
흑염마조의 말에 테구르는 걱정을 집어넣었다.
절대종에게 인정받아서인지 테구르의 행동은 굉장히 빨랐다.
“바로 대령하겠습니다요!”
테구르가 곡차를 준비하러 가자 흑염마조가 눈을 빛내며 이준을 봤다.
[기의 흐름이 완벽해졌다.]
[자연이 스스로 주인님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요.]
[자연경 완숙에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이제 내공이 부족할 리 없겠어.]
이준은 여태 자연경의 초입에 있었다.
패천일공을 사용하면 단전이 비는 것도 그 때문.
자연의 기를 완전히 보듬지 못했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제는 그 단점도 극복했다.
패천일공과 이공을 사용해도 내공이 부족할 리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이 부족하다면 몰라도.
이준은 현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패천일공을 사용하고 자기가 대신 막는 연습.
보통의 각성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각성자 최초 자연경에 오른 인물이다.
고금제일인의 제자이기도 했다.
이준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폭주를 일으킨 게 엊그제 같은데… 타고난 천재야. 이렇게 단시간에 빨라지다니.]
고금제일의 괴물 대 차세대 천재간의 싸움.
생각만으로 흑염마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지금의 이준이라면 무극자와 싸울 수 있겠다 여겼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하루.
그때 동안 이준이 얼마나 더 발전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큰 주인. 이번에는 긴장을 해야할 거야.]
* * *
무극자와의 약속 시간이 다 됐다.
“후우우.”
무극기를 갈무리하며 긴 숨을 내뱉은 이준이 눈을 떴다.
회색으로 번쩍이는 안광.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줌을 지리게 만드는 위압감이었다.
[그 사이 실력이 많이 올랐군.]
“그런가.”
[자신 있나?]
“자신감은 언제나 있지.”
이준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무극자 사부와의 싸움이었다.
최선을 다해 맞서 싸워 이겨낼 것이다.
[큰 주인의 제자답군. 배짱 한번 좋아.]
이준은 여타 무인과는 달랐다.
무극자 앞에서도 고개를 뻣뻣이 드는 유일한 인물.
곧 무극자와 싸울 텐데 기가 죽지 않았다.
이 하나만으로도 무극자와 싸울 자격은 충분했다.
“금역의 문을 열어줘.”
[그러지.]
흑염마조가 4대 성지의 금역 게이트를 열었다.
[나도 갈래!]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저희도 가겠습니다요.”
“데려가 주세요!”
“주인님의 싸움은 곧 저희 싸움.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
그의 뒤를 테구르와 로티틸, 샥쿠가 따르려 했다.
하지만 이준은 그들을 막았다.
“너희는 여기에 있어. 자칫하다가는 싸움에 휘말려 죽을지 몰라.”
이준의 말에 테구르의 눈망울에 물이 맺혔다.
“저희를 위해 주인님께서 또 혼자 싸우려 하시다니 흑!”
“오버하지마. 내가 너희 평생 부려 먹어야 하는데 싸움에 휘말려 죽으면 나만 손해잖아. 내가 어떻게 키운 녀석들인데.”
“흑흑. 일부러 모진 말씀까지. 그렇게 안 하셔도 주인님의 마음 잘 이해합니다요.”
테구르가 팔로 눈물을 닦았다.
[테구르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충성도가 MAX라 더는 오르지 않습니다.]
[테구르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충성도가 MAX라 더 오르지 않습니다.]
[로티틸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충성도가 MAX라 더 오르지 않습니다.]
[샥쿠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충성도가 MAX라 더 오르지 않습니다.]
[파들락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충성도가 MAX라 더 오르지 않습니다.]
……
……
……
이준은 메세지 창에 올라오는 녀석들의 마음에 피식 웃었다.
“정말인데.”
진심이 100%.
신의 꽃이라는 계승의 꽃을 두, 세 개나 먹여 키운 몬스터들이다.
돈으로 환산이 안 될 만큼 녀석들의 가치는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녀석들이 죽으면 속이 굉장히 쓰릴 것이다.
투자한 돈을 전부 회수하고 단물이 쏙쏙 빠질 때까지 부려 먹어야 했다.
“거짓말 마십시오! 저희를 생각해 혼자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요. 흑흑!”
“저희가 도움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우에엥!”
“크윽! 분하고 억울하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이런 분이 제… 주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단단히 오해를 했다.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몬스터들.
감정이 올라왔는지 테구르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전염이라도 됐는지 몬스터들이 연이어 울음을 터트렸다.
이에 이준이 소리쳤다.
“그만 울어.”
그의 목소리가 게이트에 울렸다.
순식간에 울음이 멈췄다.
“너희 나 죽으라고 기도하는 거지?”
저들의 행동에 괜히 민망한지.
이준이 농담을 건넸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절대요!”
“제 충의가 주인님께 닫지 않았나 봅니다. 충의를 보이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테구르와 로티틸은 손사래를 쳤다.
[샥쿠가 당신에게 충의를 보이려고 합니다.]
[파들락이 당신에게 충의를 보이려고 합니다.]
샥쿠는 자신의 창을 역수로 잡은 채 심장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파들락 또한 날카로운 손톱으로 제 목을 노리니.
“동작 그만!”
이준이 다시 소리쳤다.
농담 한번 했다고 과민하게 반응했다.
이게 다 충성도 MAX를 찍어서 나온 행동이었다.
여기에 자신에 대한 오해까지 더해지니.
극단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샥쿠와 파들락의 움직임이 멈췄다.
녀석들은 정말 자진하려는 듯했다.
“진정하고 내 말대로 여기에 있어. 내가 돌아와서 시킬 일이 있어서 그래.”
“말씀만 하십시오. 무엇입니까?”
“갔다 와서 말해줄게.”
“알겠습니다.”
샥쿠가 이준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충성심을 자극하니 죽으려 한 것일 뿐.
돌아와서 명령을 내리겠다고 하니 고분고분해졌다.
“너희 때문에 시간 지체됐잖아.”
“죄, 죄송합니다요.”
“돌아와서 보자.”
이준이 금역의 게이트로 들어갔다.
흑염마조까지 사라지자 게이트가 사라졌다.
“방금… 주인님께서 돌아오면 보자고 하신 걸 들었습니까요?”
“들었어요! 살아서 오시겠다는 소리잖아요.”
“주인께서는 약속을 칼같이 지키시는 분이라 돌아오실 거다.”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리면 되겠군요.”
네 마리의 보스 몬스터는 이준이 사라진 게이트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 * *
지잉-
이준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왔다.
“뭐야.”
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4대 성지의 금역은 무릉도원이었다.
중앙에 커다란 오아시스가 있었고 그 주위에 자리한 야자수.
주변에 나무집과 숲이 우거져 있었다.
정글같은 숲을 지나 내려가면 계승의 꽃밭이.
페어리들의 정원과 샥쿠의 천중 호수.
그리고 테구르가 지은 주택가가 즐비하게 있었다.
한데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삭막하게 변한 대지.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건물의 잔해와 재.
움푹 패고 갈라진 땅.
자신이 알던 곳과는 너무도 달랐다.
더 큰 충격인 건.
“혼원문이… 무너졌어?”
혼원문이 사라졌다.
그토록 웅장하던 폭포와 건축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큰 주인 짓이군.]
“사… 부님 짓이라고?”
[잊었나? 큰 주인은 작은 주인이 알던 무극자가 아니야. 그 옛날 무림을 공포에 잠기게 한 파천혈신이다. 감정이라곤 눈곱만도 없는 냉혹한 인간이지.]
“그럴 리가 없어…”
이준은 무극자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의 기에 무극자 아니 파천혈신이 몸을 돌렸다.
“왔느냐.”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무엇을 말이냐.”
“왜 혼원문이 사라졌냐고요!”
“그냥 없앴다.”
“그, 그냥이요?”
이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냥이라니!
혼원문이 그냥 없앨 곳인가?
이곳은 자신과 사부의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혼원문뿐만이 아니었다.
황폐하게 변해버린 이곳은 사부와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곳이다.
그때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놈의 제자는 어찌 그리 그림을 못 그릴꼬.
-여긴 배산임수가 뛰어나 집터로 기막힌 곳이니라. 이곳에 건물을 짓거라.
-가아아알! 여기에 나무를 심으면 마정석 운반에 차질이 생긴다는 걸 모르느냐! 허, 이 사부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요정의 꿀을 파랑이의 거처 근처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 마기가 요정의 꿀에 영향을 주면 더욱 고품질의 꿀이 탄생할지 모르니라.
-망나니 제자가 이제야 사부의 깊은 뜻을 알아듣는구나. 괜찮은 마을이 탄생했어.
-홀홀홀. 이 모든 게 고금제일의 사부가 있어서 순탄하게 만들어지는 줄 알 거라. 알았느냐.
4대 성지의 금역을 개발한다고 얼마나 의논했는지.
그때가 제일 머리가 많이 빠졌다.
틈만 나면 호통을 지르던 사부.
금역이 점점 바뀌어 갈 때마다 사부의 흡족한 음성이 귀에 선명히 들렸다.
그랬던 곳이 황폐한 대지로 변한 것이다.
“정말… 왜 이렇게 변하셨어요.”
“이 모습이 원래 본좌였다.”
사부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곳이 어떻게 되든 간에 상관없는 모습이랄까.
이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준의 회안이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무극기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에 파천혈신이 만족한 얼굴을 했다.
“그새 성장했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본좌를 이길 수 없다.”
쿵.
파천혈신도 이준과 마찬가지로 기를 발산했다.
그가 진심으로 파천멸기를 뽑아내니 4대 성지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허공에서 무극기와 파천멸기가 부딪혔다.
“오거라. 네 실력을 보여봐.”
파천혈신은 오른팔을 뒤로하고 왼팔을 들어 올린 채 손가락을 까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