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5화
“헉!”
“미, 미친…”
“소, 손짓 하나에 쑤, 쑥대밭이 됐어.”
특별 1반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몸을 잘게 떨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손짓 한 번에 저 거대한 면적을 날려 버릴 수가 있나.
“테구르님과 스케먼이 마정석으로 만든 건물인데….”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철광석과는 강도에서 수십 배는 차이가 난다.
아무리 강한 공격을 받아도 지금과 같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특히나 범위 공격은 넓어질수록 힘이 줄어들기 마련.
한데 이준 사부란 사람의 힘은 줄어들긴커녕.
되레 더욱 파괴력이 높아졌다.
“얼마나… 강해야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처음 봤던 게이트는 평화로웠으나.
지금은 지옥을 연상케 했다.
곳곳에서 화마가 치솟았다.
폭삭 내려앉은 건물.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지.
시야를 계속 돌려봐도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허수가 망연자실하며 중얼거렸다.
“형님께서 열심히 가꾼 곳이…”
그의 눈에 이곳에서 이준이 행했던 게 선히 보였다.
여길 개발한다고 테구르와 얼마나 머리를 맞대었나.
잘 그리지도 못하는 조감도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도 했다.
주택 개발을 열심히 한 테구르는 스케먼들과 일사분란하게 주변을 발전시켰다.
로티틸은 농지 개간을 맡았다.
페어리들이 피땀을 흘려 모래가 있던 곳에 풀을 자라게 했다.
죽은 땅도 살려놓은 페어리들.
밀과 벼농사를 하며 자급자족 생활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샥쿠님이 훈련하던 곳도 사라졌어.”
샤크로아들이 창을 휘두르며 수련하던 곳도 불에 타고 있었다.
찬란했던 곳이 엉망진창이 되자 허망했다.
자신의 게이트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이의 영역이다.
허수는 이준이 이곳을 얼마나 아끼는지 안다.
다른 게이트는 보여줘도 여기만을 꼭 감췄던 이준.
허수는 이곳을 이준이 가진 최후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모두에게 끝까지 감췄던 거지.
“형님께서… 슬퍼하실 거야.”
허수의 중얼거림을 무극자가 들었다.
뒷짐을 지고 몸을 돌린 그가 허수를 바라보았다.
“내 제자는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만 하느니라. 이런 곳은 없는 게 낫다.”
“…아닙니다.”
허수가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이준이 게이트에서 누군가와 재밌게 말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때 이준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걱정이 하나도 없는 오직 행복만이 가득했다.
여긴 이준의 보금자리.
이곳에서 만큼은 세상의 근심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네가 부정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무극자의 음성은 무미건조했다.
그에게 이곳은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
뜻깊은 곳이 아니었다.
아니, 역천에 잡아 먹힌 파천혈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혼원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 또한 쓸모없겠지.”
무극자가 혼원문까지 없애려 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허수와 이지안이 동시에 소리쳤다.
이지안은 혼원문이 오빠인 이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안다.
자신에게 혼원문을 소개했을 때 정말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었다.
입가에 지워지지 않은 미소.
사부란 단어를 말할 때면 가장 편안한 얼굴을 했다.
오빠가 혼원문과 사부란 사람을 정말 많이 아끼는 게 눈에 보였다.
그걸 알기에 이지안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혼원문만은 가만히 놔둬 주세요…”
“본좌가 왜 그래야 하지?”
“여긴… 사부와 추억이 담긴 곳이라 했어요.”
“제자가 그리 말했더냐.”
“네.”
이지안의 대답에 무극자의 이마에 내천자가 그려졌다.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심기가 불편해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여길 더더욱 부숴야겠다.”
무극자의 발이 무릎까지 올라오더니 바닥을 때렸다.
쿵.
쩌억 소리와 함께 대리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걸 시작으로 문주전과 사신전, 조사전이 무너져 내렸다.
입구에 걸린 혼원문이란 현판이 아래로 떨어져 조각났다.
테구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폭포와 조경 또한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아.”
무극자의 가차 없는 행동에 이지안이 안타까워했다.
오빠인 이준의 추억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 * *
이준은 변한 천살성을 유심히 보았다.
‘베네로딕, 칠좌들과 같은 종류의 흑마력이야.’
천살성의 검은 팔과 다리가 꺼림직했던 이유였다.
어째서 천살성의 신체에서 칠좌들과 같은 종류의 마기가 흘러나오는 걸까.
마치 인간이 신체 일부를 악마화한 느낌이었다.
‘어이없는 건 혼원신공의 마기도 강하게 느껴져.’
검게 물든 팔과 다리에는 칠좌의 마기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혼원신공의 기운 또한 보였다.
흑마력과 마기.
이로 인해 천살성의 성격이 음침해 보이기도 했다.
‘칠좌의 흑마력은 악마의 힘이야. 천살성이 어떻게 악마의 힘을 가지게 된 걸까?”
혼원신공의 마기는 천살성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었다.
혼원의 힘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악마의 힘은 당연하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던 순간.
[드디어 알았나 보군.]
이준은 심장의 격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올라오는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힘.
천살성이 지닌 흑마력과 상당히 비슷했다.
‘드래곤 하트로 만들어진 힘이야?’
[정답이다.]
‘드래곤 하트는 용족의 힘일 텐데 어떻게 악마의 힘을 가지게 된 거지?’
[천살성인 나와 마신지체라면 용족의 마력을 악마의 힘으로 변환하는 건 쉽지.]
‘그러니까 왜 하필 악마의 힘이냐고.’
[네 혼원은 애초부터 분노와 증오에서 태어난 힘이었으니까. 마신의 힘과 잘 어울리지.]
‘마신?’
분노, 증오, 혼돈, 살육, 악마.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게 바로 마신이었다.
마신은 악마들의 정점에 있는 존재였다.
혼돈과 살육을 즐기며 언제나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힘이 하나로 모여 순수한 알맹이가 남아야만 마신의 진정한 힘인 지배와 공포가 된다.
[그래. 네 가슴에 있는 회색의 서클은 지배와 공포라는 마신의 힘이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된 거야?’
[보시다시피.]
‘악마의 힘은 위험해.’
[인간이길 포기한 힘이기도 하지.]
‘알면 버리자.’
[그렇다면 혼원신공도 버려야겠군.]
‘뭐?’
[말했지 않나. 혼원은 분노와 증오에서 태어났다고. 지배와 공포를 버리려면 혼원신공도 버려야 한다.]
‘아.’
이준이 탄식했다.
혼원신공을 생각해보니.
패시브 스킬이 바로 지배와 공포였다.
그 어떤 공간도 장악하고 모두를 무릎 꿇게 만드는 위압감.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절대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며 도리어 적에게 두려움을 내렸다.
혼원신공을 배운 자신은 애초에 지배와 공포를 지닌 존재가 되어 있었던 거다.
‘그러면 나도 악마가 되는 건가?’
이준의 중얼거림에 천살성이 피식 웃었다.
냉막한 인상에 미소를 보이니 많이 어색해 보였다.
‘뭐가 우스워?’
[왜 그렇게 인간이길 바라는 거냐. 마신은 지고지순한 존재. 이 힘만 받아들이면 무극자 사부도 이길 수 있다.]
‘대신 소중한 사람들을 내 손으로 죽이겠지. 사부님이 죽으려 하는 이유를 몰라?’
[오랜 고독과 폭주하는 힘 때문이지.]
‘내가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면 사부님은 개죽음을 당하는 것뿐이야. 난 절대 사부님을 그렇게 죽게 두지 않아.’
[마신의 힘을 거절하는 인간이라. 천계의 신이 기겁하겠군.]
‘하지만 이젠 틀렸잖아. 너한테 악마의 힘이 자리 잡았으면 곧 나한테도 모습을 드러낼 거 아니야.’
[그렇겠지.]
‘X발. 산 넘어 산이네.’
이준의 욕에 천살성이 다시 한번 웃었다.
천살성은 풍부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천살성과 동화하기 전까지도 무표정에 작은 웃음밖에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두 번이나 큰 미소를 보게 됐다.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다.
[큭큭.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방법이 있어!?’
[한 가지만 다시 묻자. 정말 마신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을 건가? 인간이 최초로 신의 반열에 오를 기회다. 그냥 악마가 아니라 마신이다. 그래도 거부할 거냐.]
‘마신이면 뭐해. 제정신이 아닐 텐데. 그리고 무극자 사부님만 보면 신도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재앙이 인간 세상에 있는데 신이라는 작자들이 사부 하나 제어하지 못하잖아?’
[크크. 크하하하하.]
천살성이 크게 웃었다.
녀석이 감정을 드러냈다.
이준의 대답이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웃기냐. 나 정말 심각해.’
[하하. 미안하군. 인간이 마신의 힘을 거부한다는 게 재밌어서 그랬다.]
‘그래서 방법이 뭐야?’
천살성을 보며 꺼림칙해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보는 이준밖에 없었다.
[내가 인정한 놈답군. 좋다. 네 근심을 덜어주지. 난 마신보다 높이 떠 있는 찬란한 별인 천살성이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천살성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진한 미소에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너 몸이!?’
천살성의 몸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팔과 다리만 검었는데 이제는 전신이 검게 변했다.
목 부분까지 검게 물들자 천살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신의 힘을 없앨 방법은 없지만 내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면 다신 발현되지 않을 것이다. 네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만 아니면 된다.]
‘그래도 되는 거야?’
[내가 너 대신 마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거니 널 다시는 못 보겠지.]
이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렇게 좋은 놈을 보고 꺼림칙해했다니.
자신의 행동에 실망했다.
[이준.]
‘어.’
[너는 천살성이고 나는 이준이다. 네가 사부에게 패배하면 천살성이 패배한 거니 꼭 이겨라. 날 찬란한 빛으로 남게 해줘. 이것만 지켜졌으면 좋겠군.]
천살성이 마지막 부탁을 했다.
‘약속할게.’
[피의 별에서 무패의 별로 기억 남게 되는 건가? 크크.]
천살성의 얼굴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검은 심연 안으로 몸을 누였다.
그가 사라지니 틈이 벌어지면서 빛이 새어 나왔다.
“응?”
이준이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건 테구르와 로티틸 샥쿠와 파들락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왜들 그래?”
이준은 위로 고개를 올렸다.
하늘에는 흑염마조가 전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몸 절반이 무언가에 뜯겨 나가 있는 게 아닌가.
“조야 너 괜찮아? 왜 반쪽밖에 없어?”
[제, 젠장 맞을 작은 주인아! 하마터면 본좌가 죽을 뻔하지 않았느냐.]
흑염마조 뿐만이 아니었다.
“파랑이? 누가 쳐들어왔어?”
파랑이도 탐의 힘을 선보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큰 부상을 당한 듯.
몸이 상처로 가득했다.
파랑이는 마기를 포식하며 상처를 치료했다.
천만다행인 건 탐의 재생능력이 기막히다는 것이다.
몸을 다 잃는다고 해도 재생이 될 정도.
파랑이가 대기 중의 마기를 먹어 치우니 그 많던 상처도 아물어 갔다.
[작은 주인이 사용한 패천일공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패천일공을 한꺼번에 풀면 어쩌자는 거냐. 본좌와 파랑이가 막지 않았다면 작은 주인이 애지중지 키운 저 몬스터들은 전부 소멸됐을 것이다!]
흑염마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준이 단말마의 비명을 냈다.
“아.”
천살성을 만나기 전까지 펼치고 있었던 패천일공.
내부에서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기혈이 역류했다.
악마의 힘도 발현되자 천살성과 만났고 이야기를 끝내니.
패천기공이 사용된 것이다.
내부를 관조해봤는데.
‘이상이 없어. 상처도 깨끗하게 치료가 된 상태야.’
천살성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제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녀석.
소설에서 봤던 천살성과는 많이 달랐던 녀석이라 좋았는데 또 한 명의 친구를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