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4화
“오오!”
“역시 우리들의 주인님이시다.”
“저분은 한계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그쵸, 파들락 님?”
“인간 중에 저리 뛰어난 사람이 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테구르, 샥쿠, 로티틸과 파들락은 경이로운 표정을 한 채.
이준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감탄했다.
이준의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강맹하기도 했으며 부드럽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장 놀란 이유는 이준이 마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내공과 마력, 둘 중 하나를 사용했다.
자신들의 주인은 여태 내공을 사용했는데.
이제는 마력까지 지니게 됐다.
두 개의 힘을 동시에 지닌 최초의 인간.
그런 자가 자신들의 주인이었다.
뿐인가.
“주인님께서 마력을 다루고 있습니다요!”
이준의 동작에 마력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있었다.
억지로 마력을 끌어내는 게 아닌,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이를 본 테구르가 호들갑을 떨었다.
“샥쿠님, 보셨습니까요?”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께서는 마력을 다루고 있지 않아. 마력이 저절로 반응해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뿐이지.”
샥쿠의 눈동자도 커져 있었다.
대기의 마력이 이준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게 그의 눈에 보였기 때문.
호흡을 뱉었을 때는 네 가지의 색깔이 뿜어져 나왔다.
샥쿠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
다른 몬스터도 그와 같이 보이긴 하겠으나.
샥쿠만큼 정확히 보이진 않을 거다.
이준을 섬기는 몬스터 중 그가 제일 강했으니까.
“응? 저건 뭐지?”
샥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걸 말하시는 겁니까요?”
“사대 속성과는 질이 다른데… 암흑인가?”
테구르는 눈에 힘을 뽝 주며 이준을 관찰했다.
그러나 녀석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테구르는 만능 잡캐 중 한 마리지 전투에 특화된 몬스터가 아니었다.
“저, 저도 보여요!”
로티틸은 샥쿠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로티틸의 눈에도 사색의 빛깔 말고도 다른 색이 보였다.
정말 희미하게.
“암흑이긴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로티틸은 이준의 마력을 보자 고개를 저었다.
요정왕도 이준의 속성이 뭔지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
대신 파들락이 무언가 아는 듯 말을 더듬었다.
“서, 설마 지, 지배의 공포!?”
파들락은 백호의 수호성.
테구르처럼 신분이 수직상승 한 몬스터가 아닌.
뼛속까지 귀족인 몬스터였다.
그 때문에 아는 지식도 많았다.
백호의 수호성으로 아직 모든 힘을 수습하진 못했으나.
그래도 옛날의 힘을 대부분 되찾은 상태였다.
“지배의 공포는 뭐지?”
“그런 속성도 있어요?”
“이, 인간이 가질 수 없는 힘일 텐데.”
지식 또한 마찬가지.
지배의 공포는 백호가 미쳐 있을 때 나타났던 기운이었다.
혼돈 그 자체.
일반 암흑보다 더 상위에 있는 속성.
아니, 속성 중 최상위에 존재하는 힘이었다.
[마신의 힘이 주인님한테 나타났어.]
파랑이도 이준에게 나타난 힘이 신기한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지배의 공포는 마신이 다루는 기운.
마계의 악마. 그 중에서도 최고 존엄한 악마에게서나 보였다.
인간에게서는 절대 나타날 일이 없던 힘이 보인 거다.
“히에에엑!?”
“마, 마신의 힘이요?”
테구르와 로티틸이 기겁을 했다.
마계와 관련된 단어가 나오니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역천의 기운을 흡수해서 보이는 현상 같군.]
[마조는 저 현상이 어떻게 나타난 건지 알아요?]
[역천은 말 그대로 하늘을 거스른다는 뜻. 여기에 혼돈의 속성을 지닌 혼원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혼돈과 역천이면…]
[두 단어 모두 순천과는 반대되지. 거기다가 작은 주인은 마신지체와 천살성까지 지녔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흑염마조는 예상했다.
드래곤 하트를 먹고 파천멸기를 수습할 때부터 알아봤다.
하나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다.
어디까지나 예상.
설마 인간이 마신의 기운을 지닐까 싶었다.
그 강한, 고금제일인조차 마신의 힘은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제자라는 인간이 가지게 됐다.
어떻게 보면 고금제일인인 무극자다운 안목이었다.
[이 또한 큰 주인이 예상하고 있던 결과인가? 하, 사신수인 나보다 몇 수나 미래를 내다보는 건지.]
백호나 현무, 청룡도 이준이 지배의 공포를 얻을지 몰랐을 터.
알았다면 모습을 드러냈겠지.
세 신수도 마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시련을 넘기면 더 커다란 시련이 닥쳐오는군.]
[저 힘에 잡아 먹히면 어떡해요?]
[서클이 높아지지 않은 이상은 보조적인 효과만을 누릴 거다. 아직은 괜찮아.]
[다행이에요.]
파랑이가 한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준을 지켜보았다.
* * *
이준은 혼원신공의 내기를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빠르게 손을 뻗었다.
펑-
공기가 터졌다.
그가 다음 동작을 할 때쯤.
손을 뻗었던 방향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이번엔 손을 활짝 편 채 휘둘렀다.
빛이 번쩍이더니 수기가 허공을 찢어발기며 용암이 분출하고 있는 산을 훑고 지나갔다.
쩌어억 소리와 함께 화산이 쪼개졌다.
그 거대한 산이 갈린 모습에도.
이준은 만족하지 않았다.
‘천주 대사형은 도만이 아니라 온몸이 무기였어.’
천주는 도를 주 무기로 사용했지만 손과 발 전부를 잘 사용했다.
전신이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도 같았다.
신체 어디에 힘을 보내야 하는지.
내기를 얼마나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천주 대사형이 했던 행동을 따라해 보자.’
이준은 천주를 떠올리며 진천무를 펼쳤다.
적익, 풍살, 무옥으로 이어지는 무공.
싸울 때는 땀 한 방울 안 나던 이준의 얼굴은 흠뻑 젖어 있었다.
혼원신공의 내기를 최대한으로 압축한 결과.
그 어떤 싸움보다 힘겨웠다.
게다가 동작도 천천히 하니.
몸 안의 거대한 내기가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파괴력이 막강한 무공일수록.
최상승의 무공일수록.
내기의 컨트롤은 배로 힘들었다.
특히 진천무 같은 무공은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혼원신공이 있어서 그나마 피를 토하고 죽지 않은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진천무의 내기를 제어했다.
기의 역류 현상이 일어났는데 더 큰 무공을 사용하려는 듯.
동작을 멈추었다.
이준의 양손에 무지막지한 기류가 모여들자.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팔을 안쪽으로 오므리며 두 손을 가슴 사이로 가져갔다.
패천기공의 일공인 무공.
현재 이준이 사용하려는 힘이었다.
“큭!”
이준의 이마에 힘줄이 툭 튀어나왔다.
진천무를 사용할 때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한데 패천일공의 내기를 압축하려 하니.
단전에 있던 기가 극도로 광폭해졌다.
마치 ‘네 뜻대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듯.
몸 밖으로 기운을 마음껏 분출하려 했다.
‘비, 빌어먹을! 생각했던 것보다 저항이 더 거세!’
마력도 있겠다 힘들어도 패천일공의 내기를 압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편 흑염마조는 이준이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를 다급하게 말렸다.
[애써 잠재운 기운 다시 폭주시킬 작정이냐. 어서 기운을 풀어라!]
허나, 이준은 흑염마조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패천일공의 내기에 온 정신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였다.
‘…무리하지 않으면 사부님을 이길 수… 없어.’
패천일공도 제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무극자 사부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진천무로 싸웠다간 필패였다.
그러니 사부가 혼원문에서 사라질 때 패천기공을 보여줬겠지.
이 무공으로 자신을 죽이라고 말이다.
[저 고집불통! 큰 주인이랑 성격이 똑같아!]
흑염마조가 버럭 소리쳤다.
이준이 왜 이렇게 무리하는지 알기에 더욱 속상했다.
[큰 주인을 압도적으로 이길 순 없다. 작은 주인의 뜻은 자살행위와 같아…]
이준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무극자를 제압해서 살리겠다는 희망을.
어떻게든 제 손으로 사부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을 펼치고 있었다.
착하고 애틋한 마음이라 안쓰러웠다.
저렇게 무리하는 것도 오직 패천기공만이 제 사부를 구할 방법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왜 하나 같이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려는 건지. 바보들 같으니라고.]
흑염마조가 사신수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개입하는 건 사신수의 규칙을 어기는 일.
그렇게 되면 더 큰 재앙이 벌어질지 몰랐다.
사제지간의 마음을 아는 흑염마조라 더욱 답답했다.
이 길의 끝은 결국 누구 하나 죽어야만 종료되는 게임이었으니까.
흑염마조가 답답해하거나 말거나.
이준은 혼원신공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끈기 있게 버티고는 있지만 내상이 심했다.
그토록 거대한 기운을 분출하지 않고 내부에 가둬두니.
기혈이 엉망이 된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통증은 익숙해졌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기를 압축하고 밖으로 한꺼번에 힘을 내보내는 과정이 남았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게이트 수십 개는 무너트릴 수 있어.’
더는 기운을 갈무리할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
이제 패천일공을 내보일 차례.
가둬놨던 괴물을 풀어놓으려는 찰나였다.
[이런 건 언제나 나한테 맡기지 않았나? 이제 내가 필요 없어진 건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눈앞에는 자신의 모습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천살성?’
[그래도 날 잊지 않았군.]
천살성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동화했을 때부터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귀에 대고 속삭이지도.
도움을 주지도.
살인 충동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천살성이 그가 되고 그가 천살성이 됐으니까.
굳이 소통할 이유가 없었다.
‘너 그 모습은 뭐야?’
[이거 말인가? 후후. 맞춰봐.]
천살성의 모습은 좀 달라 있었다.
백발에 회안을 가진 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팔과 다리가 검게 물들어 있는 건 꺼림직해 보였다.
* * *
4대 성지의 금역.
[혼원문 영역]
무극자가 정문 앞에 서서 뒷짐을 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혼원문에 와서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내려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특별 1반 학생들이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야?”
“선생님. 아니, 이준 형님의 게이트 안입니다.”
“헉!”
“준이는 대체 게이트가 몇 개야!?”
박정연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그동안 봤던 게이트와는 전혀 달랐다.
게이트 안의 쉘터랄까.
자급자족이 가능하게끔 농작물이 풍부했다.
뿐인가.
수만 명은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집들도 있었다.
현대 양식과 중세 양식 그리고 한옥까지.
없는 게 없었다.
현재도 개발이 되고 있는 상황.
아직도 비어있는 대지가 많아 개발된다면 수십만 명.
아니 그 이상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쉿! 조용히 해. 우리 납치됐어.”
박혁진이 박정연을 조용히 시켰다.
그들은 이준의 사부란 사람한테 잡혀 왔다.
한가하게 주변을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으음…”
“어떻게 해야 해?”
“이대로 도망을 갈- 억.”
진경수가 정예나한테 한 대 맞았다.
“저 사람한테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아니…”
“우린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아무 데도 못 가.”
정예나의 말이 맞았다.
오대가문과 마벽의 각성자가 한 사람으로 인해 공포를 느꼈다.
전의는 물론 살겠다는 의지조차 꺾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상대로 어떻게 도망을 칠까.
괜히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여긴.”
무극자의 목소리가 특별 1반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들렸다.
섬뜩하면서도 권위적인 목소리에 특별 1반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됐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극자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많은 시선에도 무극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들었다.
그의 검지가 수많은 건물을 가리켰다.
“나와 맞지 않구나.”
검지에서 빛이 번쩍이자.
공간이 십자가 모양으로 갈리더니.
혼원문 아래에 만들어진 건물과 농지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