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9화
“지켜!”
“결계가 무너지면 무사고 학생들이 위험하다!”
“목숨을 걸고 결계를 사수하라!”
백마존과 천외천, 몬스터의 전 병력이 무사고 앞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나락의 투명실로 인한 안개는 사라졌다.
함정 또한 몬스터의 물량으로 훼손된 지 오래였다.
“지원군이야.”
“조금만 더 힘을 내!”
검기와 검강, 마법이 난무했다.
치열했던 공방은 시간이 흐르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크헉!”
“이, 이런 곳에서 내가 죽다니… 우웨애액!”
폭주한 백마존 중 서열이 가장 낮은 자들부터 목숨을 잃어 갔다.
폭주해서 잠깐 동안 강해졌을 뿐.
그들은 균열에 마기를 빼앗기고 있었다.
선천지기까지 싹싹 긁어다가 힘을 쓰니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 것.
아니었다면 이렇게 장기간의 싸움은 무리였을 터다.
백마존들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것일까.
“제왕단은 나를 따라라.”
“만천단은 뭣들 하는 게야! 제왕단에게 선수를 내줄 것이냐!”
검제와 괴개가 친위대를 이끌고 마존들을 향해 합공을 시작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너희 따위에 죽을 내가 아니다.”
수백 대 일의 싸움.
아무리 백마존이 강하다고는 하나.
SS급 각성자와 최소 AA급 각성자의 합격진이었다.
몇 번은 합격진의 공격을 막겠지만.
죽는 건 변함이 없었다.
“억.”
“귀마!”
“네 이놈들!”
귀마란 자가 죽자 옆에 있던 마존이 격분해 제왕단을 공격했다.
륜이 맹렬히 회전하며 제왕단의 합격진을 향해 날아갔다.
검제가 제왕검형으로 륜을 받아쳤다.
끼이이익!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폭주한 백마존.
그는 강했다.
하지만 검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걱-
륜을 던진 마존의 뒤에 나타난 제왕단주가 목을 잘라 버렸다.
이게 바로 합격진의 장점이다.
누군가가 적의 공격을 막아 줄 수만 있다면 필살을 할 수 있었으니까.
“태상 가주. 괜찮으십니까.”
“괜… 찮네.”
검제의 소매에 피가 맺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돌렸다.
“저들이 합공했으면 큰 화를 당했을 걸세.”
“자존심이 강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인 게지.”
백마존이 도리어 합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못해도 SS급, 현경의 무인들.
머릿수만 백 명이다.
저들이 합격진을 구사했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고 말았으리라.
백마존의 자존심이 각성자들을 살려 준 것이다.
“혁진이 쪽은 어떤가.”
“특별 1반 학생들이 붙었습니다. 괜찮을까요?”
“그 아이들이라면 잘 해낼 것이네. 그보다 요령요화는 랭킹보다 더 강해 보이는군.”
요령요화의 진(眞) 세계 랭킹은 103위였다.
검제와는 36위 정도 차이.
일본에서 봤을 때는 이 정도까지 강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버러지들이!”
“호호호호. 본녀에게 고개를 조아려라!”
“그 더러운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 주마.”
쉬지 않고 놀리는 입은 굉장히 험했다.
일본에서는 조신했는데 무엇이 요령요화를 변하게 했을까.
검제가 그녀를 신기한 듯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본에서 그와 같이 싸운 건 미야와키 칸나였다.
빙의된 요화 은서단이 아닌 미야와키 칸나였기에 지금과 다른 것이다.
검제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요화 은서단이 고개를 돌려 검제와 눈을 마주쳤다.
“영감탱이가 어디다 한눈팔고 있어! 빨리 안 싸워?”
그녀가 검제에게 버럭 소리쳤다.
한 명이라도 손을 보태야 하는 상황.
1분 1초가 아까웠다.
검제의 곁에 있던 제왕단은 은서단에게 대꾸도 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들의 주인인 검제가 마존들을 향해 쇄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예 머저리들은 아니야.”
대한민국에서 그 누가 검제와 제왕단을 보고 머저리라고 할 수 있을까.
미야와키 칸나의 몸에 빙의한 은서단만이 가능한 말이었다.
* * *
“큭!”
박혁진이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혁진… 커억!”
한눈을 판 진경수도 무사하지 못했다.
일마존의 주먹이 진경수의 복부에 정확히 꽂혔다.
진경수가 배를 부여잡으며 뒤로 걷다가 이내 무릎을 꿇었다.
그러던 그때.
지잉-
일마존의 머리 위로 도강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다.
“하앗!”
허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광룡도법을 연거푸 사용했다.
일마존을 양단하는 도강.
온 힘을 다해 일마존을 공격했다.
쿵 소리와 함께 일마존이 수강으로 참마도를 붙잡았다.
허수는 손목과 팔에 힘을 잔뜩 주었다.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모양.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허수의 팔에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일마존이 수강을 살짝 틀자.
허수가 앞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곧 일마존의 발이 날아왔다.
허수가 참마도를 옆으로 그으며 막으려 했지만 일마존의 발이 더 빨랐다.
‘늦었어!’
일마존은 권각술의 고수.
온몸이 무기였다.
봐라.
다리에 단단히 두른 마기를.
한 대만 맞아도 치명상을 당할 정도로 강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허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곧이어 발이 날아와야 하지만.
쿵!
“끝까지 포기하지 마!”
뒤로 나뒹굴었던 진경수가 대신 팔로 일마존의 다리를 막고 있었다.
“예!”
“전륜마멸진이다. 혁진아.”
“제가 앞장서죠.”
박혁진을 선두로 왼쪽에는 진경수가 오른쪽에는 허수가 자리했다.
[전륜마멸진을 펼쳤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살상력이 100% 증가했습니다.]
[어떤 속성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 속성은 어둠, 부 속성도 어둠.”
박혁진이 전륜마멸진의 속성을 골랐다.
[주 속성을 ‘암’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속성이 암속성으로 전환됩니다.]
[부 속성을 ‘암’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전륜마멸진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암 속성의 공격력 +250%]
[광 속성 저항력 -100%]
[암 속성 공격력 +100%]
[광 속성 저항력 - 50%]
“성가신 진법을 구사하는구나.”
일마존이 눈살을 찌푸렸다.
박혁진과 진경수, 허수가 펼친 진법은 공수가 완벽한 진법.
거기다가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 줬다.
구성원에 따라 진법의 수준이 상승하는 게 바로 전륜마멸진이다.
무극자가 만든 진법이라 약점이 딱히 없었다.
있다면 더 큰 힘과 부딪히면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것?
이뿐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일마존은 전륜마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마존의 권강과 박혁진의 천월이 부딪혔다.
일마존은 재차 부딪히고자 다른 주먹을 뻗었는데.
쿵-
검이 아닌 주먹이 날아왔다.
“으음….”
일마존이 신음했다.
마주친 권강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한데 직접 부딪히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 울렁거림을 참고 주먹을 휘둘렀으나.
이번엔 도가 앞을 막았다.
진법을 이룬 셋이 번갈아 가면서 공격했다.
“어디서 그딴 진법을!”
울렁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일마존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가 보기에 셋이 펼친 진법은 너무도 엉성했다.
한 합씩 돌아가면서 공격하는 건 효율이 그닥 좋지 못했으니까.
일마존은 파천멸기를 발산하며 셋을 향해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권강과 각기.
각강과 권기.
다양한 공격을 섞어 가며 세 사람을 몰아붙였다.
하나 그들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철혈의 성벽같이 견고했다.
일마존의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다면 세 사람의 호흡은 아직까진 정상이었다.
그가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을 때.
“컥!”
“사마존! 괜찮나?”
사마존이 땅에 처박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삼마존이 거대한 도강을 횡으로 그었다.
빛무리가 반짝이더니.
세상이 반쪽으로 잘려 나갈 듯한 기세였다.
각성자들이 호신강기를 펼쳤으나 삼마존의 도강을 막기란 어려웠다.
선두에 있던 각성자들이 도강에 의해 잘려 나가려는 찰나.
쾅!
도강이 무언가에 부딪혀 소멸했다.
먼지구름 속에서 팔을 매만지며 나오는 한 사람.
무극단의 김봉팔이었다.
“젠장! 위험하다고 날 던지면 어쩌자는 거요.”
그가 무극단의 단주인 사형준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위기의 순간에 김봉팔만 한 구원자가 없었다.
절대 방어의 특성을 지닌 그.
내공을 사용할 시간도 필요 없었다.
그저 몸만 있으면 됐다.
“미안하다.”
“주군께 단주의 진짜 모습을 말할 거요.”
“싸움이 끝나면 부단주 뜻대로 해.”
“저, 저!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퉷!”
김봉팔이 씩씩거리며 입에 고인 피를 뱉었다.
“부단주, 뒤!”
사형준이 그를 향해 외쳤다.
김봉팔이 몸을 돌리자 아까와 같은 도강이 아래로 떨어져 오고 있었다.
“이런 X발!”
김봉팔은 ‘불굴의 의지’를 써 버리고 난 후였다.
이제 무적 상태도 아니기에 잘못 맞으면 골로 갈지도 몰랐다.
“현무의 벽!”
그가 다급하게 천무를 사용했다.
주변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더니 얼음 장막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김봉팔의 주위를 얼음벽이 감싼 상황.
그곳으로 도강이 떨어졌다.
쩌어엉!
마치 철을 때린 듯.
삼마존의 도강이 방탄력에 밀려났다.
“빌어먹을. 죽다 살았네. 단주. 저 새끼 같이 족치는 게 어떻소.”
“혼자는 안 되나?”
“방금 전에 날 던진 걸 없던 일로 해 주겠소.”
“내가 서포트하지.”
사형준이 흔쾌히 승낙했다.
김봉팔이 눈을 한껏 부라리며 삼마존을 향해 짓쳐 나갔다.
“넌 뒤졌어.”
* * *
“내, 내가… 큭!”
삼마존이 무너져 내렸다.
사형준과 김봉팔, 무극단이 합공을 하자 아무리 그라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하악… 하악… 뒤지게 명이 기네….”
김봉팔이 허리를 숙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삼마존은 정말 강했다.
머릿수로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죽는 쪽은 김봉팔이었다.
합공도 버텨 낸 무력.
천외천이 왜 위험한 존재였는지.
삼마존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아아!”
삼마존은 한쪽 팔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불태웠다.
삼마존이 좌수를 사용해 역수로 도를 움켜쥐었다.
“…모두 이곳에서 사라지게 해주마.”
삼마존의 도에서 파천멸기가 폭발적인 기파를 뿜어냈다.
“윽.”
“아,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어?”
“괴물…!”
한쪽 팔이 잘리고도.
단전이 텅 비었을 텐데도.
짙고 강한 마기가 도에서 분출되고 있었다.
삼마존이 허리를 숙였다.
역수로 된 도를 뒤로 늘어트린 채 앞으로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풍회멸도라는 것이다!”
삼마존의 도가 좌에서 우로 그어졌다.
도에서 빠져나온 파천멸기가 검은 회오리를 만들었다.
강기의 폭풍이 무극단을 모조리 날려버리려는 듯했다.
이에 사형준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두 손에 순식간에 모여두는 기류.
옷과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흩날렸다.
회오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손바닥에 압축한 기를 날렸다.
사형준의 손을 떠난 무형의 장력이 회오리에 부딪히자.
쿠후우웅.
바람이 산화하는 소리를 내며 회오리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사형준이 사용한 무공은 천무 중 백호 계열의 장법.
백아였다.
“크윽…!”
삼마존이 이를 갈았다.
최후의 일격이 막히자 다시 한 번 펼치려는 모양.
삼마존이 굽혔던 무릎을 피려는데.
“삼마존은 폭멸을 하라!”
일마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일마존의 명령이었다.
삼마존은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폭멸공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신마회를 위하여!”
그의 내공이 담긴 음성과 함께.
콰아아앙!
파천멸기가 폭발하며 그의 몸이 터져 나갔다.
삼마존의 몸에 있던 파천멸기는 하늘에 난 균열로 모두 흡수가 됐다.
“호신강기를 펼쳐!”
“나라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소.”
사형준과 김봉팔 그리고 무극단이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이 넓은 곳을 전부 막기란 불가능했다.
각성자들을 보호하며 싸우고 있던 파랑이도 멀리 있는 상황.
그 누구도 이들을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일촉즉발.
삼마존의 피와 육편이, 미처 호신강기를 펼치지 못한 각성자에게 닿으려는데.
마치 화면이 되감기라도 하는 듯.
피와 육편이 터져 나왔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공간의 색깔이 온통 검게 변하더니.
색을 되찾았을 때는 펑 소리가 끝난 다음이었다.
“하, 뒤지겠네.”
이준의 목소리였다.
저 멀리서 무극기를 이용해 삼마존의 폭발을 저지한 것이다.
패천기공의 일공 무공으로 인해 내공이 바닥난 상태.
혼원신공의 회복력과 드래곤 하트의 마력으로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