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0화
[내가 저 노인 맡을 테니까 네가 남은 두 사람 맡아.]
[알았어.]
[빨리 처치해야 해. 보아하니 백마존 같은데…. 이런 자들이 100명은 있다는 소리니까.]
[위험한 놈들이긴 하다. 우리가 미적대다간 다른 가문의 피해가 커질지 몰라.]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해치우자.]
박정연이 전음을 끝내니.
“이야기는 다 나눴느냐.”
일마존이 두 사람을 향해 너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박정연과 박혁진이 세 마존을 향해 검을 겨눴다.
뇌신공을 끌어 올리면서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예의가 없는지고. 노부가 너희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겠노라.”
일마존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의 손바닥에 검은 기운이 회오리치며 몰려들었다.
“우선 이 성가신 진을 부숴 주지.”
일마존의 팔이 하늘 높이 들렸다.
그러더니 바닥을 향해 일장을 내리쳤다.
쾅!
파천멸기가 페어리 필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필드를 엉망으로 만든 것으로 효과가 사라지진 않았다.
이는 일마존도 아는 사실.
그는 이곳에 펼쳐진 페어리 필드가 능력을 올리는 진법과 비슷하다는 것도 안다.
하나 아무리 단단한 진법도 약점은 있었다.
이곳에 생성된 페어리 필드 또한 마찬가지.
일마존이 파천멸기가 깃든 장력을 바닥에 내려친 건 기운의 흐름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흐름의 경로만 알아내면 진을 부수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았군.”
페어리 필드는 요정왕 로티틸에게서 나왔다.
로티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만 억제한다면 페어리 필드는 힘을 잃을 것이다.
“삼마존. 저 몬스터를 죽이게.”
“알겠소이다.”
삼마존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순간 모두가 그의 신형을 놓쳤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 로티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블랙급 보스 몬스터가 됐다지만 천외천, 그것도 삼마존을 상대로는 버거웠다.
삼마존의 경지는 현경 완숙과 끝자락의 사이.
각성자의 등급으로는 SS급 끝자락의 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실력 차이가 크게 나서 그런지.
로티틸도 삼마존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적이 나타나고 나서야 뒤늦게 몸을 황급히 뒤로 뺐다.
“죽어라!”
삼마존이 로티틸의 머리통을 쥐려는 순간!
“삼마존 위를 보시오!”
뒤에서 이마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마존의 위에서 박혁진이 떨어지고 있었다.
뇌기를 잔뜩 머금은 검강을 든 채 말이다.
안 피하면 몸이 두 조각날 거라 판단한 삼마존이 퇴보를 밟았다.
공격을 회수하고 몸을 뒤로 빼기까지.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사이 박혁진의 검강이 허공을 갈랐다.
“아깝다. 한 명 제거할 수 있었는데.”
박혁진이 정말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삼마존의 신형도 빨랐으나 속도로 치면 박혁진이 한 수 위였다.
뇌신공은 극신을 바탕으로 한 무공.
이 무공 앞에서 속도로 승부를 본다면 필패였다.
그만큼 속도만큼은 뇌신공을 따라올 만한 무공이 없었다.
“고맙소. 이마존.”
“저 빌어먹을 무공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옛 기억이 떠올라서 그러오.”
이마존 또한 삼마존처럼 행동했다가 팔이 잘릴 뻔하지 않았던가.
그때 옆에 천주가 없었다면 외팔이로 살아야 했을 터.
“극신에 대항하면 안 되오. 정공법으로 갑시다.”
“지금 저 애송이를 상대로 합공을 하자는 것이오?”
“일마존이 최선을 다하라지 않았소.”
“응당 최선을 다할 것이오. 하지만 합공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소.”
상대가 비슷한 나이를 지녔다면 이처럼 창피하지는 않았을 터.
한데 상대는 고작 약관(20살)도 안 된 핏덩이였다.
그런 놈을 상대로 합공이라니.
수치스러웠다.
그때 일마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전검왕과 뇌후의 무공이네. 창피해할 필요 없어.”
박정연과 박혁진의 무공은 뇌전검문의 신공.
그들이 익힌 무공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다.
“알겠소.”
일마존의 경고에 삼마존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뇌후를 겪었다.
미친 검귀의 무공.
애송이들이 익혔다 해도 차원이 높은 무공은 어디 가지 않았다.
“대신 이마존이 내 보조를 맞춰 주시오.”
“뜻대로 하시오.”
이마존은 선뜻 양보를 했다.
이마존과는 달리 삼마존은 뇌전검왕을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을 뿐.
직접 뇌신공을 겪은 사람은 이마존이었다.
그러니 그 무서움이 덜한 것.
뇌전검왕의 무공을 제대로 알려면 몸소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마존이 보조를 맞추겠다고 한 거다.
삼마존을 통해서 저 미친 무공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말이다.
“애송이. 노부를 상대한 걸 영광으로 알아라.”
삼마존이 옆구리에 찬 도를 뽑아 휘둘렀다.
그의 이명은 도존.
도에 관해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남자였다.
또한 도가 검보다 위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뇌전검왕의 검법을 꺾으면 도가 확실히 검보다 좋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니.
삼마존으로서는 꼭 박혁진을 꺾어야만 했다.
* * *
철혈검가에만 백마존이 등장한 게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놈들이 속속 합류했다.
천외천이 서초 쪽에서 나타났다는 보고에 전선을 무사고로 옮긴 마벽도 백마존을 마주했다.
천만다행인 건 최하위 마존들이었다.
최상위에 있는 마존들은 SS급 끝자락에 있었으나 최하위는 초입.
최상위보다는 상대할 만한 자들이었다.
물론 이들 또한 굉장히 막강한 무력을 가졌다.
아마 죽을힘을 다해 상대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강하군. 아군이 전멸할지도 모르겠어.”
웨어파드의 수장 파들락의 말이었다.
이곳에 등장한 마존의 숫자만 열은 되어 보였다.
저들을 막지 못한다면 모두 죽을 것이다.
푸확-
파들락의 손톱이 몬스터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 어떤 도검보다 날카롭고 깊은 상처였다.
상대가 단번에 목숨을 잃을 정도.
파들락을 중심으로 웨어파드들이 몬스터를 차근차근 죽여 갔다.
“대응할 방법이 있나?”
펑-
혈마 류한길도 아수라파천장을 뿌리면서 적을 죽였다.
마벽과 몬스터가 부딪히고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몰리는 느낌을 받으니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있지. 하지만 희생이 필요해.”
“자세히 말해 봐.”
류한길은 파들락을 한 명의 지휘관으로 보았다.
그에게 이준의 존재는 신.
진씨 가문의 진병철처럼 이준의 신도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준이 함께 싸우라고 붙여 준 파들락을 몬스터로 보지 않았다.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했다.
밑으로 깔보는 건 이준을 능멸하는 일이었으니까.
“전략이 있다면 말해 봐.”
펑펑-
류한길의 아수라파천장이 불을 뿜어내며 몬스터를 녹여 냈다.
“미끼를 주고 나와 수하들이 암살을 하는 거지.”
“음….”
“고민은 짧을수록 좋다.”
혈마는 손을 놀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예전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않고 파들락의 말에 따랐을 터다.
하지만 이제부터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딸이 금강권문의 무공을 계승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적을 이겨야 한다지만 생명을 하찮게 여길 순 없지 않나.
이준과도 나쁜 짓을 안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앞으로 정의로운 마벽이 되기로 했는데 적을 이기기 위해 수하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건 다짐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 미끼. 내가 하지.”
“네가 괜찮겠어? 미끼의 역할은 죽는 것이다.”
“나 같이 강한 각성자면 죽지 않고도 미끼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지 않겠나?”
“네 말이 맞긴 하지만 너 하나로는 부족해.”
백마존의 숫자만 열 명이 넘었으니.
적어도 저들의 수준에 맞는 각성자들을 쥐여 줘야 했다.
“저도 할게요.”
류가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안 돼!”
이에 류한길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퍽-
아수라파천장에 적중된 몬스터의 몸이 날아갔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내공이 순식간에 가득 담겨 있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강한 이들을 겪다 보면 제 성장도 빨라질 거예요.”
“넌 아직 무공도 제대로 못 하지 않느냐.”
류가을은 금강권문의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무공을 대성해도 모자랄 판국에 실전으로 성장한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존만 아니었어도 대견하게 생각했을 텐데.
하필 마존을 상대로 배움을 알아 가겠다고 하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싸우면서 적응했어요.”
“그래도 안 된다. 목숨을 잃을 것이다.”
“혼자 싸우겠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각성자 여럿이 마존에게 붙을 때 저도 껴 달라는 소리예요.”
“그래도 안 돼!”
류한길은 극구 반대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게 하겠나.
류한길의 행동은 당연했다.
“저도 가을 누나랑 함께할게요.”
“원찬이 너까지 왜 그러느냐.”
“저희가 큰 성장을 이룰 방법은 저들하고 싸워 얻는 경험뿐이에요. 다른 특별 1반 학생들한테 밀리고 싶지 않아요.”
류가을의 속에 맺혀 있던 말을 홍원찬이 대신해 주었다.
사마고에서 천재라고 불렸던 나날들.
하나 무사고에 오니 천재들이 수두룩했다.
넘보지 못할 산 중에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도 있었다.
박은비, 서혜지, 남선호.
일반 각성자 중에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
이 세 사람을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특별 1반 천재 중에 가장 약한 무력을 가진 정예은조차도 이기는 게 불가능했다.
그녀를 넘는다 해도 앞에는 더 강한 학생들이 있었다.
검화와 검룡은 어떤가.
자신이 바닥이라면 그 두 사람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이 차이를 메우지 못한다면 평생 좌절하고 살 거다.
SS급인 금강권문의 무공을 가졌다 하더라도.
아니, 무공이 SS급인데 천재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더한 절망에 빠질 터다.
SS급 무공은 그만큼 등급을 초월하는 강력함을 가졌으니까.
“뇌마! 원찬이 좀 막아 봐.”
“련주. 애들을 한번 믿어 보시지요.”
“뇌마까지 왜 이래. 이대로 애들을 죽게 할 심산이야? 살마도 뇌마와 같은 생각이냐.”
“용석이가 파천자께 신임을 받았다 하오.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겠소.”
“미친 새끼들.”
혈마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파천자를 만나고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도 포함됐다.
하나 이건 아니었다.
이건 전쟁.
어느 한쪽이 전멸해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
류한길이 신경질적으로 아수라파천장을 날렸다.
극성으로 펼쳐지자 장력에 닿은 몬스터들이 일제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본 파들락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마벽의 련주가 허락했다. 조용석. 암습을 준비한다. 명령권자는 너다.”
4대 성지의 금역에서 겁쟁이 파들락은 막내였다.
그러나 밖에서는 블랙급 보스 몬스터.
백호의 수호성이던 시절로 돌아왔다.
그의 권위적인 말투는 사람들에게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조용석은 파들락의 말에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이끌어 보겠습니다.”
“네 판단에 따라 승패가 정해진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도록.”
“네!”
* * *
그 시각.
이준은 진무열에게 잡혀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극기 대 파천멸기.
혼원신공 대 파천신공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대사형의 무공은 불안정해. 파천멸기를 제어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어.’
이준은 진무열의 약점을 노렸다.
혼원신공과 무극기는 강하면서 안정성 또한 뛰어났지만.
파천신공과 파천멸기는 강하긴 해도 굉장히 불안했다.
내공을 극성으로 펼칠수록 마기가 뇌를 자극해 광기에 휩쓸리게 되었으니.
이성적인 판단은 할 수 없고 오로지 살육만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래야지만 내가 이겨.’
이준이 생각해야 할 사람은 천주만이 아니었다.
백마존과 천외천, 그리고 군단 규모의 몬스터들.
천주에게 붙잡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빠르게 이기는 방법은 천주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폭주하면 적어도 천주와의 경험 차이는 좁힐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