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5화
쉘터 안.
바깥 상황이 보이는 화면에는 긴장이 흘렀다.
쉘터에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얼마나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지.
침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정말 전쟁이 시작되는 거야?”
“쉘터를 채운 보급품으로만 보면 전쟁을 오래 할 것 같은데.”
“천외천은 우리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가지고 이러는 거냐.”
쉘터로 식량과 옷들이 끊임없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불안해졌다.
이곳은 임시 거처.
몬스터들의 위협을 피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집처럼 편하고 오래 있을 만한 곳이 아닌데 보급품의 양을 보자 걱정이 앞섰다.
얼마나 전쟁을 오래 하려고 이 정도 양의 보급품을 비축해 놓는 것일까.
“이러다가 며칠 안 돼서 다시 밖으로 내보내 주겠지, 안 그래?”
“하, 하긴. 오대 가문이 과한 대응을 할 때가 많긴 했어.”
“파천자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몇몇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을 너무 쉽게 봤다.
일본에 있던 천외천도 이준이 직접 움직여 모조리 섬멸했으니.
한국으로 진격해 오고 있는 천외천도 이준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라 믿었다.
“맞아. 한국은 파천자 보유국이잖아?”
“우린 여기서 잘 먹고 잘 자다가 나가면 돼.”
사람들의 동조에 주변에 내리깔렸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 공기가 다시 경직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천외천은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태평하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파천자가 여러 명도 아니고 혼잔데 천외천을 전부 상대할 수 있을까?”
“천외천은 몬스터도 부리는 놈들인데 숫자로 밀고 온다면 파천자도 어쩔 도리가 없지.”
“그렇긴 하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검제와 괴개도 있긴 하나.
일본에 나타난 천외천에 비하면 약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천외천은 어떨까.
일본의 천외천에 비해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들을 상대할 자가 많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준을 제외한다면 암담했다.
“그래도 검룡과 검화의 실력이 SS급에 들었다고 하니 믿어 봐야지 어쩌겠어요.”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어.”
“특히 파천자가 가르친 무사고 특별 1반이 그렇게 성장을 많이 했다고 해요. 거의 모든 학생이 S급에 들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습니다.”
쉘터의 안의 분위기도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했다.
이를 지켜보던 마벽의 각성자들이 전음을 사용했다.
[사람들을 잘 지켜봐야 한다. 지금은 전쟁 전이고 전황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아서 가만히 있겠지만 전황이 불리해지면 소란이 일 것이다.]
[소란이 일어 봤자 쉘터 안 아닙니까?]
[모르는 소리! 저들은 일반인이야. 정신력이 각성자와는 다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중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배신 말입니까?]
[그렇지. 매국노가 처음부터 나라를 팔기 위해 태어나진 않아. 자기 혼자 살려는 이기심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사마련과 가문연맹이 어떻게 됐는지 잊진 않았지?]
[아. 물론입니다.]
사마련과 가문연맹의 공통점이 있었다.
분열이 되기 전, 제 살길을 찾아 나선 것.
선수를 쳐서 권력을 틀어쥐기 위해 그들이 택한 건 타국과의 은밀한 거래였다.
권력을 대가로 맹세한 충성이었다.
다만 그게 다른 나라의 각성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오대 가문이 이를 빨리 알아채고 처리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한국의 중요한 기밀이 일본의 손에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혈마께서 감시를 단단히 하라고 하셨으니 긴장의 끈을 놓지 마.]
[예!]
선동꾼이나 매국노가 나타난다면 쉘터는 위험에 빠질 터.
혈마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벽의 각성자를 배치해 놓은 것이다.
* * *
이준은 서초 게이트에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혼원신공으로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었다.
혈맥을 타고 도는 내기가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을 지나쳤다.
“후우우.”
이준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졌다.
저녁이 되자 쌀쌀해진 날씨였다.
옆에서는 박정연도 몸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부터 뇌신공을 운공한 그녀였다.
파직-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눈을 떴다.
눈가에 스파크가 번쩍이다 사라졌다.
“어느 정도 온 것 같아?”
박정연의 물음에 이준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지척까지 왔어.”
이준의 말을 들은 사형준이 몸을 돌렸다.
사형준은 백호각주인 송선형에게 이준의 말을 전달했다.
“적이 지척까지 왔다 합니다.”
“벌써 말인가!? 전 가문에 당장 알려야겠어.”
송선형은 백호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백호각원들은 신기지가의 비선과 접촉하여 적이 왔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이준은 천주의 기를 느끼며 방향을 잡았다.
위쪽, 북한에서부터 느껴지는 대규모의 병력.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량에는 물량으로 대응해야겠지. 파랑아.”
[응!]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 위로 올라가 마력을 뿌렸다.
그러자 주변에 네 개의 게이트가 생겼다.
그곳에서 테구르와 로티틸, 샥쿠, 파들락이 나왔다.
그 뒤를 따라 스케먼과 페어리, 샤크로아, 웨어파드들이 쏟아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또 적인가요?”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뒤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대사라도 있는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명령을 내려 달라는 몬스터였다.
“적 몬스터와 구분할 수 있게 무장했네.”
“인간들과 같은 무기에 방어구를 착용시켰습니다요.”
“잘했어. 때마침 너희를 이끌 사람이 오네.”
이준이 있는 곳으로 특별 1반 학생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가오다 말고 대규모의 몬스터로 인해 걸음을 멈췄다.
“아군이야.”
이준의 외침에 특별 1반 학생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흉악한 기세를 뿜어내는 몬스터를 보며 절로 긴장했다.
4대 성지의 금역 몬스터는 죄다 레드급 이상의 등급을 보유했다.
거기다가 막판에는 계승의 꽃을 하나 더 먹여서 등급이 더욱 오른 상태.
이 흉포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도 계승의 꽃을 먹은 영향이었다.
현재는 몬스터 전원이 블랙급.
특별 1반이 몬스터를 보자 긴장한 이유였다.
“샥쿠.”
“예 주인님.”
“저기 단발머리 여자애 있지? 쟤를 따라가.”
“알겠습니다.”
샥쿠와 샤크로아들이 한지유의 뒤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신기지가의 무력은 오대 가문과 마벽에서 제일 약해 샤크로아를 붙였다.
4대 성지의 금역에서 제일 전투력이 강한 몬스터가 바로 샥쿠와 샤크로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계승의 꽃을 하나 더 먹어 절대종이 아니라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절대종의 수호성 정도는 되어야 샤크로아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신기지가 소속인 한지유의 뒤에 붙인 거다.
“테구르는….”
“허수의 뒤에 붙겠습니다요.”
허수는 만독암가, 정씨 자매와 같이 싸운다.
만독암가의 암기와 독에, 스케먼의 마법 공학이면 궁합이 굉장히 좋았다.
“그렇게 해.”
“수야. 이 형님 뒤에 붙어 있어라. 내가 다 쓸어 주겠다.”
이준에게는 비굴한 모습을 매번 보였으나.
허수에게만큼은 그토록 허세를 부렸다.
지금처럼 말이다.
“저는 괜찮으니 저기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케어해 주시겠습니까?”
허수의 요구에 테구르가 정씨 자매를 보았다.
테쿠르가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주둥이에 난 털을 쓰다듬었다.
“네 짝지냐?”
“……”
“말 안 하면 신경 안 쓴다?”
“맞습니다.”
“킥킥. 동생의 짝지면 이 형님께서 최선을 다해야지. 애들아, 들었지? 잘 보호해.”
“찍찍!”
스케먼들이 창을 높이 치켜들며 응답했다.
이준은 웨어파드인 파들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웨어파드는 백호의 수호성.
제힘을 찾으니 상당히 강했다.
문제는 웨어파드의 뛰어난 공격성이었다.
웨어파드는 혼란을 야기시키는 전법에는 특화됐지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는 취약했다.
그들에게 명령을 잘 내려 줄 사람이 필요한데.
“넌 딱히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는데 어쩌지.”
“아닙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 파트너가 없다고.”
“아닙니다! 있습니다.”
파들락의 쫑긋한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전쟁에서 제외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인한 것.
그때 박정연이 손을 들었다.
“나, 나! 내가 파트너 할래.”
박정연의 해맑은 미소가 보였다.
그녀라면 웨어파드들을 잘 이끌 테지만 탈락이었다.
그녀의 파트너는 따로 있었으니까.
“철혈은 페어리가 지원할 거야.”
“헤헤. 잘 부탁드려요.”
“아쉽긴 한데 이쪽도 좋아. 작고 귀여워.”
“헤. 감사합니다.”
로티틸이 꾸벅 인사를 했다.
페어리들이 박정연과 박혁진의 뒤에 섰다.
그리고 몇몇 페어리들이 각 가문으로 흩어졌다.
페어리의 특기는 힐링.
치유사의 역할이기에 인원을 나눴다.
이제 웨어파드만 남았다.
이준이 특별 1반을 쓱 보다가 시선이 한쪽에서 멈춰 섰다.
“용석이 네가 웨어파드를 지휘해 볼래?”
“헉! 제, 제가 말입니까?”
“살막의 후계자니까 살수들을 지휘한 경험은 있을 거 아니야?”
“이, 있긴 하지만….”
“자신 없어? 자신 없으면 말고.”
“제, 제가 한 번 지휘해 보겠습니다.”
조용석이 용기 내어 말했다.
“웨어파드는 지휘가 엉망이면 힘을 내지 못해. 네가 잘하냐 못하냐에 따라 살막의 피해가 적어질 거야. 알아들었지?”
웨어파드의 특기는 은신, 암살이었다.
살수인 살막과의 시너지는 최고일 터.
조용석이 지휘만 잘한다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녀석들 내가 애지중지하게 키운 몬스터야. 몬스터라고 총알받이 시키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무, 물론입니다.”
“동료로 생각하고 힘을 합쳐 봐.”
조용석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믿음과 신뢰를 보여야 금역의 몬스터 또한 목숨을 걸고 싸울 테니까.
“모두 위치로 돌아가. 적들이 서울로 진입했어.”
박정연을 비롯한 특별 1반 학생들이 몬스터를 이끌고 각자의 위치로 갔다.
이준은 앞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살이 떨리는 기운. 가까이서 느끼니까 존나 강하잖아. 그치, 파랑아?”
[저런 마기는 나도 처음 느껴 봐.]
“너도 무서워?”
[…살짝?]
“그래도 싸워야 해.”
[도망은 안 쳐.]
“내가 저 사람을 잡고 있을 테니까 파랑이는 돌아다니면서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을 구해 줘.”
[주인 혼자 괜찮겠어?]
“나 고금제일인 제자야. 설마 여기서 죽을까.”
[알겠어.]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에서 폴짝 내려왔다.
높은 빌딩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전력이 밀리는 곳이 있으면 바로 합류하려고 위로 올라간 거다.
“현무각주님.”
“말씀하십시오. 가주.”
“사신가의 인원들을 데리고 다른 가문으로 합류하세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각의 주인들이 놀라 소리쳤다.
“여긴 제가 혼자 맡을 거예요. 곁에 사람이 있으면 싸움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요.”
“아니 됩니다.”
“가주를 또 혼자 두다니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무극단도 같은 생각입니다.”
“항명은 불가해요. 사신가의 가주로서 내리는 명령이니 모두 물러나세요.”
가주로서의 명령.
가문에 속한 사람은 모두 그 말을 들어야 했다.
항명은 곧 죽음뿐이었다.
“불가합니다.”
“이곳에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솔들은 이준의 말에 항명했다.
“여러분이 있으면 제가 제대로 싸우지 못해요. 천주와의 싸움이에요. 그가 여러분을 노리면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가문에 합류해서 싸우세요. 그게 절 도와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