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9화
페데리아는 마계의 수문장이었다.
동족이 인간계로 가는 길목을 열어 주고 지키는 역할을 하는 그녀였기에.
악마 중에서도 무력이 강했다.
그녀는 마계의 방패임과 동시에 창.
칠죄종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한낱 인간을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찌 인간 따위가 마계에 있는 날 느, 느낀단 말이냐….”
그녀가 말을 더듬자.
수하들이 이상함을 느꼈다.
“페데리아 님?”
“왜 그러십니까?”
“너희는 포탈에서 살기를 느끼지 못했느냐?”
“살기 말입니까?”
“아무런 기운도 없는데.”
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페데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만 포탈 너머에 있는 살기를 느낀 거야.’
그런 족속들이 있었다.
기운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한 괴물들이.
물론 마계에서도 천재들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칠죄종이요.
두 번째가 마계를 이끌어 갈 칠죄종의 후계자였다.
그들은 모두 최고위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들.
하찮은 인간 따위와 비교할쏘냐.
물론 그들 또한 피나는 노력을 해야 기운을 완벽히 다룰 수 있었다.
한데 인간이 같은 공간도 아닌 곳을 향해 어떻게 기운을 쏘아 내는 건지.
그도 모자라 오직 자신에게만 살기를 보낸 것이다.
‘칠죄종이나 가능한 일을! 위, 위험하다.’
페데리아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포탈을 닫아!”
“악마 군단이 다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닥치고 닫으라고!”
그녀가 악마력까지 뿜어내며 소리치자 수하들이 화들짝 놀라며 행동에 나섰다.
왜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상관의 명령이니 따랐다.
하지만 곧 포탈을 닫는 일을 멈춰야 했다.
“무슨 일인가요?”
한 여자가 마계의 입구에 등장했다.
악마들이 그녀를 향해 예의를 갖췄다.
“에스텔 아데스 님을 뵙습니다.”
수문장인 페데리아도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에스텔 아데스.
색욕의 후계자였다.
이준의 손에 잡혀 고블린의 몸에 들어간 색욕의 대리인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악마다.
“포탈을 닫다니? 인간계에 선발대를 보내는 중 아닌가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습니다.”
“변수가 있다고 포탈을 닫는다는 건 이해가 안 돼요.”
에스텔은 페데리아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페데리아는 순순히 이유를 밝혔다.
“인간계에 저희가 확인하지 못한 놈이 있습니다.”
“고작 인간 한 명 때문에 포탈을 닫고 선발대를 입구에 대기시키려는 건가요?”
에스텔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누군가.
마계를 지배하는 악마였다.
그런데 한낱 인간 때문에 입구를 닫으려 하다니.
악마의 수치였다.
“칠좌와 오좌, 사좌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입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페데리아는 포탈 건너편에 있는 인간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은 숨겼다.
제 위신을 깎아 먹는 말을 할 순 없었으니까.
“악마도 아닌 것들이 죽었다고 포탈을 닫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요.”
대화가 안 먹혔다.
에스텔이 직접 포탈 가까이로 갔다.
“안 됩니다!”
“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에스텔이 포탈 거울 앞에 섰다.
밖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곳에 입매를 비틀며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붉디붉은 입술을 핥았다.
“맛있게 보이는 인간이잖아?”
에스텔은 색욕의 후계자.
잘생긴 인간만 보면 마력이 미쳐 날뛰었다.
색욕의 피를 이어받은 악마의 숙명이랄까.
그녀는 상대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 욕심을 채우고 싶어 했다.
페데리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에스텔이었다.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인지하지 못했다.
‘확실해. 저 인간은 나를 정확히 느끼고 있어. 에스텔은 눈에도 안 들어온 거야..’
페데리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러다 큰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노파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스텔이 겁도 없이 돌발 행동에 나섰다.
“저 인간 내 장난감으로 삼아야겠어.”
“에스텔 님!”
페데리아가 그녀를 불렀다.
하나 에스텔은 이미 포탈 너머로 몸을 던진 후였다.
페데리아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에스텔을 데리러 인간계로 갈 건지.
아니면 이대로 포탈의 문을 닫을 건지.
“에스텔이 죽으면 내가 그동안 지켜 왔던 명예도 사라진다. 이래서 어린 것들이 싫은 건데 쳇.”
돌발 행동을 한 에스텔을 잡아다가 족치고 싶었지만 우선은 그녀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페데리아는 하는 수 없이 인간계로 넘어가야만 했다.
* * *
포탈을 응시하고 있던 이준의 기에 색욕의 마력이 감지됐다.
“색욕은 고블린의 몸에 가둬 놨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색욕의 마력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좌에게서 느껴졌던 기운보다 약한 마력이었다.
“뭐지?”
이준이 포탈을 응시하고 있는데 더욱 많은 악마가 모습을 보였다.
그들과 함께 색욕의 마력을 지닌 여자도 나타났다.
“여기에 맛있어 보이는 인간이 있을 줄 몰랐어.”
“누구냐.”
“호호호. 인간이 날 무서워하지 않다니 신기해. 널 만난 기념으로 내 정체를 가르쳐 주지. 난 마계 칠대 가문 중 색욕의 아데스. 그곳의 후계자다.”
“마계도 가문이 있어?”
“하찮은 너희도 피를 이루고 사는데 위대한 마계가 없을까.”
그녀의 말이 끝나자.
“에스텔 님!”
포탈에서 나온 페데리아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마계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럴 생각이에요. 저 인간만 제 장난감으로 만들고요.”
에스텔은 이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눈에는 꼭 가지고 싶다는 탐욕이 담겨 있었다.
“바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여긴 위험…!”
페데리아가 말을 하다 말았다.
뒷골이 서늘해진 느낌.
목에 칼이 닿은 듯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아주 큰 거물이 내 앞에 나타났어. 그것도 색욕과 관련된 악마가 말이야.”
이준의 미소가 짙어졌다.
사좌가 이지안을 공격하고부터 그의 적에 칠죄종이 추가됐다.
천외천을 최우선의 적으로 뒀지만.
이지안을 공격한 이상 칠죄종도 천외천과 같은 선상이었다.
눈앞에 보인다면 꼭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때마침 나타난 것이다.
신분으로 보아 고위급 정도가 아니었다.
마계의 정점에 서 잇는 악마.
색욕의 후계자였다.
‘확실해졌어. 사좌는 반쪽짜리 악마였어. 저 두 악마가 진짜 악마고. 죽이면 마계에 대해 쏠쏠한 정보를 얻겠는데?’
저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했다.
사좌 때와 같이 살려 줄 생각은 없었다.
겁도 없이 인간계에 내려온 악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인간계에 내려오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말이다.
“죽으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호호호. 자신만만하구나. 난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해. 밟아 줄 때 더 재밌거든.”
에스텔과는 달리 페데리아의 불안감이 극에 달할 때였다.
“에스텔 님 피하십시오!”
이준의 한쪽 팔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활짝 펴진 손이 오므려진 순간!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그의 손에서 나온 수십 가닥의 살기가 두 악마를 향해 쇄도했다.
“……!”
“이런!”
에스텔은 반응도 못 하고 눈만 크게 떴다.
그나마 페데리아가 반응했지만.
“흐윽!”
악마력을 간단히 부순 회색 아지랑이가 페데리아의 팔과 다리를 휘감았다.
가시처럼 뾰족한 기운이 어깨와 심장, 목젖, 눈알, 이마를 겨눈 채 멈춰 섰다.
에스텔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상황은 훨씬 안 좋았다.
“컥!”
이준의 무극기가 가시가 되어 에스텔의 몸에 박혔다.
수십 개의 가시가 한 번에 박힌 상황.
인간이었다면 곧바로 즉사했을 텐데 악마라 목숨이 질겼다.
“…말도 아… 어어….”
“운이 없다고 생각하라고 했잖아.”
눈 깜짝할 시간에 제압된 두 악마.
포탈에서 쏟아지는 악마들이 도와줄 새도 없이 제압당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광경.
에스텔은 몰라도 페데리아는 마계의 수문장이었다.
악마들이 보기에 그녀는 인간에게 쉽게 잡힐 만한 존재가 아닌데.
싸워 보지도 못하고 잡혔으니.
그들로서는 이준이 공포스러웠다.
“마계에 처박혀서 너희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것이지. 왜 인간계로 올까?”
“꺄아아악!”
가시 형태의 무극기가 회전하며 에스텔의 눈을 꿰뚫었다.
두 눈을 파 버린 이준.
악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끄으으… 내 어머니가 널… 가만두지 않… 으실 거…야….”
“색욕의 진짜 주인?”
“그래….”
“내가 널 죽이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이준의 물음에 페데리아가 대신 대답했다.
“인간계를 가장 처참하게 짓밟을 것이다.”
“저 카오스 몬스터로?”
“그래. 색욕의 분노만으로 인간계는 쑥대밭이 될…헉!”
퍽-
에스텔의 머리가 이준의 손에 의해 수박처럼 깨졌다.
몸만 덩그러니 남았다.
“미, 미친 새끼!”
“알아. 많이 들은 소리야.”
“네가 뒷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뒷감당?”
이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가운 얼굴을 한 그의 몸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패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정도면 어때?”
쿵.
이준이 발을 굴렀다.
진각에 의해 땅이 진동한다.
주위로 기세가 퍼져 나갔다.
땅의 진동이 끝날 때쯤이었을까.
악마들, 카오스 몬스터들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천 마리가 죽은 게 아니었다.
이곳에 나타난 모든 악마가 소멸했다.
무극군림보 중 사보, 멸과 무극기를 더한 결과였다.
“헉!”
그 광경에 페데리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악마들이 전부 죽었다.
전멸.
선발대는 정찰병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숫자가 수만은 됐다.
입구를 통해 전부 넘어오지는 못했으나.
단 한 번의 공격에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내가 포탈을 파괴하지 않은 건 너 같은 최고위급 악마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야. 내 생각대로 나와 줘서 고마워. 너희의 기억은 요긴하게 써 줄게.”
퍼버버벅!
페데리아 또한 무극기의 가시에 의해 벌집이 되어 죽어 버렸다.
* * *
이준은 무한한 내공을 전부 소모했다.
단전이 텅 빈 상태.
그 많던 내공이 썰물 빠지듯 전부 사라졌다.
“후우우….”
그 많은 악마를 죽이기 위해 내공을 전부 사용했다.
무극자 사부였다면 내공이 남았겠지만 이준은 아직 그를 따라가려면 멀었다.
자연경에 올랐으나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았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는데 할 건 해야지.”
이준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모투술을 사용했다.
[모투술(S)이 발동했습니다.]
[상단전의 힘이 모투술(S)을 제어합니다.]
[상대방의 기억을 읽습니다.]
[대상 – 에스텔 아데스]
[지나갔던 과거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상대방의 기억을 읽습니다.]
[대상 – 페데리아 헤이얀]
[지나갔던 과거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두 최고위급 악마의 기억이 고스란히 이준의 머리에 각인 되었다.
덕분에 마계의 생태계와 그쪽 상황을 알 수 있게 됐다.
“칠좌 같은 대리인을 세워서 마계의 문을 열게 한 이유가 있었네.”
현재 칠죄종은 인간계로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칠좌를 대리인으로 세운 것이다.
“마계는 당분간 신경 쓸 필요가 없겠어.”
에스텔과 페데리아가 죽었다 해도 선발대가 전부 죽은 이상.
마계는 더 이상 인간계를 공격하지 못한다.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인간계로 넘어오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까.
“이번 일로 인해 천주 대사형이 더 빨리 이곳으로 넘어오겠어.”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떼죽음을 당했다.
거기에 페데리아랑 에스텔이란 최고위급 악마가 속해 있었다.
이들의 마기와 생명만으로도 차원의 균열은 많이 벌어질 터.
얼마의 시간이 남은지 짐작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이 터지냐.”
이준이 투덜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벨렌 로레스와 무극단에게 꽂혔다.
“…….”
그녀는 이준을 사람이 아닌 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입을 떡 벌린 채.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다 막혔다.
무극단도 똑같은 표정이다.
그들은 이준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가주가 상식을 뛰어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사, 사람이 아닐 거야. 그, 그치?”
김봉팔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이, 인간의 탈을 쓴 시, 신 아닐까요?”
“그게… 확실한 것 같아. 아니고서야 인간이 저런 광경을 어떻게 만들어. 그렇지 않소, 단주?”
김봉팔의 물음에 사형준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
이준이 보인 무력은 사람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무공이었다.
적에게 더 재앙인 건 이준은 아직 패천기공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페데리아란 최고위급 악마를 상대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