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화
무사고 특별 1반 운동장.
이준은 가문을 나와 무사고로 왔다.
근 6개월만.
학년말이라 그런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학교는 꽤 많이 변해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는 학생들.
이준이 지나가는데도 아는 척하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
이준을 알아보는 학생들은 없었다.
그가 학생들을 지나쳐 특별 1반의 운동장에 도착했다.
“애들이 왜 이렇게 없어?”
운동장에는 사마고 3인방.
허수와 진경수뿐이었다.
이준이 오랜만에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수련에만 열중했다.
특별 1반 또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
초식을 멈추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이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 선생님!?”
류가을이 토끼 눈을 떴다.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돌려 이준을 보았다.
“선생님이라고?”
“헉!”
“저, 정말이야.”
“언제 오셨어요?”
이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나타나서 그런지.
반가움과 당혹한 표정을 지은 특별 1반이었다.
“조금 전에 왔어. 그런데 다른 애들은 아직 안 온 거야?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이준의 물음에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래?”
“가문의 일 때문에 등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경수의 대답에 이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준이 사라진 6개월 동안 작은 변화가 있었다.
진경수는 이준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프랑스 마법 학회가 한국에 개입한 것부터.
그들의 활약에 사람들이 환호한 일.
국민을 등에 업고 가문에 월권을 행사하는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아예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왔구만.”
이휘의 행태와 프랑스 마법 학회의 행동을 보면 국가를 복속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신가는 괜찮으십니까?”
“패룡이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어요.”
“선생님의 가문과 신기지가가 가장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을 건데.”
학생들은 패룡이 죽었다는 걸 몰랐다.
그러니 저런 걱정을 하는 것일 터다.
그보다 이준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졌다.
“성마회란 놈들이 어떤 식으로 가문들을 압박하고 있는 거야?”
“실력을 문제로 1차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지.
이휘의 실력도 SS급 완숙이었다.
마법사의 경지로는 9서클.
거기다가 숨기고 있는 흑마력까지 사용하면 거의 SS급 끝자락.
10서클에 육박했다.
실력을 문제로 물고 늘어진다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거다.
“다른 건?”
“타 가문과의 격차나 명성, 영향력 등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훈련하는 시간도 부족한 판국에 귀찮은 날파리가 꼬였어. 경수 학생네는 괜찮나요?”
“저희 가문은 신생 쪽에 속해서 문제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마벽도 괜찮고?”
“저희는 평온합니다.”
허수는 애초에 가문 출신이 아니었으니 상관없겠고.
문제는 프랑스 마법 학회가 아니었다.
천외천이 세상을 향해 경고한 게 6개월 전.
남은 시간은 이제 반년밖에 없었다.
그때 동안 백마존에게 대항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했다.
그래야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도중에 이상한 놈들이 난입해 분탕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뭔 짓거리를 하는지 눈으로 봐야겠어.”
“신기지가로 가시는 겁니까?”
“그러려고요.”
“사신가는 들리셨는지요? 신기지가보다 사신가의 일을 먼저 처리하시는 게….”
“이미 해결하고 오는 길이에요.”
“네?”
“사신가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아,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벌써 처리하셨군요.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진경수는 말을 하면서 흠칫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느꼈던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아닌.
좀 더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아니에요. 경수 학생이랑 허수는 만독암가로 가서 상황을 지켜봐 주세요.”
“타 가문에 저희가 개입해도 되겠습니까?”
“방학 동안 친구 집에 놀러 가 있는다고 생각하세요. 이참에 서로 더 돈독해지는 것도 좋겠네요. 너희들도 만독암가로 가.”
이준이 사마고 출신 3인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도요?”
“어. 그냥 싹 다 가는 게 좋겠다. 진경수 학생은 잠깐 귀 좀 빌려 주세요.”
“네, 선생님.”
진경수가 이준의 입에 귀를 바짝 댔다.
이준의 목소리는 오직 진경수의 귀에만 들렸다.
진경수의 눈이 커졌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믿을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전 신기지가로 가 볼 테니까 정씨 자매한테 곧 보자고 전해주세요.”
“옙!”
이준이 몸을 돌려 천천히 걸었다.
경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빠르게 사라졌다.
“수야 선생님 말이다. 너무 평범한 것 같지?”
“예. 형님.”
“난 왜 저 모습이 더 무섭냐.”
“고수가 될수록 평범해진다고 보았습니다.”
“어디서?”
“무협지에 그리 나왔습니다.”
“무협지라면 인정.”
진경수와 허수의 대화에 류가을이 끼어들었다.
“기도를 숨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 정도의 각성자면 당연히 평범한 모습으로 위장할 수 있잖아요.”
“가을이 네 눈에는 저게 그냥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는 거야?”
“네.”
“너희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진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류가을의 등급 때는 보이는 게 적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아는 것도, 보이는 것도 많아졌다.
그렇기에 진경수는 지금 류가을처럼 이준이 그저 기도를 숨긴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허수가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처럼 기를 숨길 수 있다는 건 내기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S급만 돼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선생님은 본인이 기를 감추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내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워 마치 공기와 같다 이 말이지.”
“이걸 보시면 저희가 왜 이렇게 놀라는지 아실 겁니다.”
허수는 류가을에게 한 권의 책을 줬다.
“무협 소설?”
“거기에 경지에 대한 설명이 기똥차게 되어 있어. 수야 마지막 권 줬지?”
“예.”
류가을은 경지의 설명이 나와 있는 부분을 속독했다.
대부분은 그녀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SS급 현경의 경지부터는 모르는 내용이라 흥미롭게 책을 봤다.
내용을 읽을수록.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우리가 왜 놀랐는지 알겠어?”
“이게 정말 맞을까요?”
“우리가 겪어 온 바로는 그 소설에 나와 있는 설정은 정확해. 딱 들어맞아. 그렇지 수야?”
“물론입니다. 그 어떤 교본보다 그 책이 가장 정확합니다.”
“세상에… 선생님의 경지가….”
“기를 완벽히 컨트롤하는, 정확히는 자연과 동화되어 평범하게 보이는 경지. 생사경이 아닐까 싶다.”
“헉!”
“그런 경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홍원찬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모르지. SS급도 나왔는데 그 윗줄인 SSS급이 없을까?”
“새, 생사경 얼마나 강할까요?”
“손가락만 까딱하면 한국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
“배, 밸런스 붕괴 아닌가요?”
“선생님의 강함은 이미 예전부터 밸런스 붕괴를 일으켰어. 19살의 나이에 SSS급에 올랐다는 건 말 다 했지.”
“대, 대단하다고 표현하는 게 민망할 정도예요.”
“저런 분이 우리 선생님이라는 거지. 아군이면 든든하지만 적군이면….”
“재앙. 아니 파멸적인 존재겠군요.”
“그렇지. 선생님과 적이 되면 결말은 똑같아. 사신가의 일을 끝냈다는 걸 보면 이휘도 좋게는 끝나지 않았을 거야.”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준의 경지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생사경에 오른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니 몸이 절로 떨려 왔다.
SS급은 현경도 보기 힘든 게 현실.
그런데 생사경이라니.
무협지에서도 생사경은 밸런스 붕괴라 잘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선생님이… 생사경….”
류가을은 넋이 나간 듯.
계속 이준의 경지를 중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생사경은 6개월 전의 경지.
이준은 현재 지고무상한 위치에 올라 있었다.
* * *
“귀가 간지러운데 누가 내 욕하나.”
이준이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걸었다.
계속 바뀌는 주변 풍광.
어느새 신기지가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이준은 신기지가의 정문을 지키는 각성자를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예전에 한 번 본 각성자였다.
여전히 신기지가의 문을 지키고 있어 인사를 했다.
“파천자 님!?”
“헉! 며, 몇 개월 동안 사라지셨던 분이 여긴 왜…?”
“수련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동안 지유가 학교를 빠졌다고 들었거든요. 이유를 물어보려고 왔어요.”
“그, 그렇습니까? 바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각성자들이 급히 문을 열려고 하자 안쪽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 나엘 님.”
호통을 친 사람은 못 보던 인물이었다.
금발 머리 외국인.
불어를 쓰고 있는 듯 보이나 각성자 시스템으로 인해 남자의 목소리가 한국어로 들려왔다.
그가 수문 위사 각성자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이러니까 가문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거다. 너희같이 규칙도 지키지 않는 머저리 때문에 말이야!”
“이… 분은 신기지가의 귀빈으로 가주님께서 특별히 모시는 분이라….”
“귀빈이라도 규칙은 규칙이다. 상대의 신분을 철저히 밝히고 안쪽에 보고하는 게 너희의 일이야. 그 이상은 관리 담당인 내 소관이고.”
“외국인이 신기지가의 식솔로 들어온 건가?”
이준은 나엘이란 금발 머리 남자를 보자 그의 소속을 바로 알아챘다.
프랑스 마법 학회 각성자이자 성마회 소속.
이휘와 같이 한국으로 들어온 프랑스 마법 학회의 마법사 같았다.
“그게 말입니다….”
“됐다. 내가 말하겠다.”
나엘이란 남자의 말투는 굉장히 강압적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수문 위사 각성자를 무시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신분을 밝혀라.”
“날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고도 이딴 행동을 하는 거야?”
“난 관리자로서 규칙대로 하는 것뿐이다.”
“그 규칙에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없는 건가? 아니면 외국 새끼들은 원래부터 싸가지가 없는 거야?”
“시비를 거는 것인가!”
“네가 먼저 싸가지 없게 대하는데 내가 좋은 말을 할 수 있겠어?”
“남의 가문에 왔으면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먼저다.”
“병신인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뭐야!?”
“이름은 이준. 이명은 파천자. 용무는 친구인 한지유를 만나러 왔다. 네가 말한 규칙대로 했으니까 그 면상 치우고 빨리 문 열어.”
이준의 말에 노엘이란 남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누구도 신기지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돌아가라.”
노엘이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이준이 수문 위사 각성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요즘 신종 자살 수법이 성행하는 건가요? 6개월간 세상과 단절돼 있더니 별 미친놈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병신 짓을 하네요.”
이준의 폭언에 노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안색이 변했다.
“그 이상 계속해서 나를 모욕했다간….”
“했다간 뭐? 나랑 싸우게? 그러면 너 아주 고통스럽게 죽을 텐데. 똥오줌 다 지리면서 나한테 살려 달라고 할 텐데 괜찮겠냐.”
“이, 이!”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하나 알려 줄까? 너희랑 같이 한국에 들어온 이휘 있잖아? 그 새끼, 내가 조금 전에 죽이고 왔어. 이래도 내가 네 X으로 보이냐?”
이준은 앞서 노엘과 대치하며 빌드업을 했다.
한국 최고 각성자에 대한 무시와 모욕.
면박을 주려는 듯한 행동은 이미 선을 넘었다.
현재의 세계는 모든 게 무력으로 대변됐다.
이준이 타 가문에 들어가겠다면 문을 열어야 하는 게 약자로서의 행동이었다.
하나 노엘은 약자.
주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이준 앞에서 허세를 부렸다.
이준으로서는 힘으로 노엘을 찍어 눌러도 됐다.
약자를 징치하는 건 강자의 권리였으니까.
충분히 빌드업을 했으니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였다.
이준은 조금 전에 노엘이 보였던 미소를 지었다.
그와 함께 가공할 살기가 노엘을 덮쳐 왔다.
“무, 무슨…!?”
살면서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던 살기.
노엘은 저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덮쳐 오는 공포는 절망이란 감정을 싹트게 했다.
기세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무너트리는 수준.
하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난 말이야. 예의를 아주 중요시해. 그런데 네가 나한테 모욕감을 줬네?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위신을 찾으려면 널 죽일 수밖에 없겠지?”
“미, 미친놈….”
“그 미친 새끼를 도발한 게 바로 너야. 병신아.”
펑!
노엘의 옆 공기가 터졌다.
“아아악!”
공기가 폭발하면서 노엘의 팔을 앗아 갔다.
“이런, 기를 잘못 겨냥했다. 쏘리.”
이준이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노엘이 땅에 뒹굴자 성마회의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내며 마법을 시전했다.
“나한테 명분을 줘서 고맙다..”
이준은 썩소를 날리며 기세를 피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