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5화
일본에 이어 한국도 대규모 균열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경제가 붕괴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하, 또냐?]
[쉘터 가는 것도 지겹다.]
[옛날이 그립다. 그때는 지금처럼 게이트가 불안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한국도 안전한 국가가 아님.]
[킹정. 안전한 곳은 미국이나 유럽밖에 없음.]
커뮤니티로부터 퍼져 나가는 불안감.
돈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가려고 이미 짐을 싸기까지 했다.
[그 소식 들음?]
[무슨 소식?]
[요즘 인천공항 미어터진다함.]
[외국으로 튀러?]
[ㅇㅇ. 유럽이 안전하다고 하니 이민까지 신청해서 빠져나간대.]
[나도 돈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이민 갔다.]
몇몇 사람들은 일본의 대균열로 인해 언젠가는 한국도 대균열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를 대비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 정착한 이들도 꽤 많았다.
최근 대규모의 균열이 일어나면서 외국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 결과, 인천 공항이 포화될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
이러니 사람들이 더 동요하는 것이다.
[어!?]
[왜?]
[새로운 소식 들어옴?]
[이 시국에 들어온다고?]
[너희들만 알지 말고 알려줘.]
[미친!]
[기사 떴다. 확인해봐.]
채팅하던 사람들이 이제 막 뜬 기사를 클릭해서 봤다.
사진의 배경은 인천 공항.
사진에 찍힌 인물 중에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꽤 있었다.
[마법학회 프랑스 지부 소속으로 돌아온 패룡이라니…]
[만독암가, 신기지가, 철혈검가에서 쫓겨난 이들도 함께야.]
[패왕도가 출신도 있잖아!?]
[저거 무슨 조합임?]
네티즌들이 사진을 보며 놀라고 있을 무렵.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인천 공항에서는 인터뷰가 시작했다.
“오랜만에 귀국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기자가 이휘에게 마이크를 주며 물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깜깜무소식이다가 갑자기 귀국한 연유가 무엇입니까? 혹, 사신가와 관련이 있으십니까?”
“사신가?”
“아직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신력권가가 사신가로 이름을 변경한 지 꽤 되었습니다.”
이휘의 얼굴 근육이 씰룩였다.
상당히 기분 나쁜 모양.
하지만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흥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유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뒤에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까?”
기자가 이휘의 뒤를 보며 질문했다.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문에서 쫓겨났던 이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면 안 되나?”
“그건….”
남자의 눈빛에 기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의 강렬한 눈빛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쓸어 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우곤.
도왕 최강규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와 가문의 후계를 두고 경합했을 정도로 뛰어났던 각성자.
끝내 패배해서 단전이 부서져서 쫓겨났지만 몇십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마법학회의 한국 지부를 설립하기 위함이다.”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최우곤이 마법학회 소속이라니.”
“들어봤어요?”
“아니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서양과 동양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건의 수출과 수입만 간간이 있었지, 지부 설립이라는 중차대한 일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최우곤씨에게 하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패왕도가 소속이 아닌, 마법학회 소속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내가 바로 프랑스 마법학회의 검은 날개다.”
“드, 들어봤어. 프랑스 마법학회의 특수마법전단의 검은 날개…”
“그 암살자가 최우곤이었어?”
“어떻게? 그는 단전이 박살 났는데.”
모두가 얼떨떨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을 본 성마회의 일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혔다.
자신들의 정체를 말하면 아예 기겁할 테다.
그때 정신을 차린 기사가 다시금 질문했다.
“그 말은 즉, 서양의 마법학회가 드디어 교류를 허용하겠다는 소리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한국이 어떤 성의를 보이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콧대 높은 대답이었다.
한국을 통해 간을 보겠다는 뜻.
프랑스 마법학회가 한국 위에 있는 것처럼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기사에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생방송으로 다 나가고 있지 않나?”
자신만만을 넘어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최우곤이었다.
이휘와 눈빛을 교환한 그가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멀리서 왔더니 피로하군.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겠다.”
성마회의 일원들이 어깨를 활짝 편 채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 * *
사신가 앞에 외제 차가 멈췄다.
그 차에서 이휘가 내렸다.
정문에는 사신가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큭 사신가라. 얼마나 변했는지 볼까?”
이휘와 여자가 다가오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각성자가 팔을 뻗었다.
“멈추십시오.”
이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대신 옆에 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갔다.
“어머. 신입인가? 우리를 몰라보는 거야?”
“무슨 용무로 사신가를 찾아오셨습니까?”
“용무는 딱히 없는데.”
여자의 말에 각성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들으면 깜짝 놀랄 건데.”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안으로 못 들어가십니다.”
“좋아. 알려 줄게. 여기 계신 분은 권왕 님의 막내아들 패룡 이휘 도련님. 그리고 나는 이분을 모시는 적화권 차보영이야.”
“패룡!?”
“적화권이라면 차경진 님의 동생분?”
“어머 날 알아?”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위사 각성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됐어. 도련님이 살짝 기분이 나쁘셨겠지만 너그러운 분이시라 이해해 주실 거야. 그렇죠, 도련님?”
“위사 각성자의 본분을 다한 거니 난 괜찮아.”
프랑스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귀국하는 즉시 가문을 엎어버릴 기세였건만 지금은 조용히 있었다.
“그러면 우린 들어가도 되지?”
“당연합니다. 안쪽에 기별 넣겠습니다.”
“조용히 권왕 님만 찾아뵐 거야”
“알겠습니다.”
이휘와 차보영이 사신가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낯선 사신가를 봐야만 했다.
구조는 변한 게 없지만 가솔들의 등급과 그들이 배운 무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모두 신력권가의 무공이 아니야.”
“네. 등급도 평균이 A급이에요. 엄청난 전력입니다.”
“그 새끼 밑에서 배우면 빠르게 성장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실패작이 참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가솔들에게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데….”
“어쩌실 생각이세요?”
“내가 어떻게 해야 그 새끼가 화가 날지 생각 중이다.”
어느새 권왕이 기거하는 건물에 도착했다.
권왕 이건무의 거처였으나 옛날의 철옹성은 온데간데없고 조촐한 병력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이휘를 알아봤다.
“이휘 도련님?”
“오랜만이야.”
“어떻게 여기에!?”
“비행기 타고 왔지.”
“공부는 끝내셨습니까?”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아버지는?”
“안쪽에 계십니다.”
이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이건무.
머리에는 새치가 가득했다.
2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이휘가 눈을 감고 있는 이건무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그간 강녕하셨어요.”
“이휘더냐.”
“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예 집으로 돌아온 것이냐.”
“공부를 다 마쳤어요.”
“그렇구나.”
이건무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세요?”
“신력은 새롭게 변했다.”
“알고 있어요.”
“차라리 유럽에서 네 꿈을 펼쳐 보지 그러느냐. 여긴 네가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제가 마법을 익혔기 때문에요?”
“난 너희들끼리 싸우는 걸 원치 않아.”
“단전이 깨진 만큼 많이 약해지셨군요.”
“사람은 누구나 변하지.”
“전 이 가문을 예전으로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강력한 힘으로 가솔들을 통제했던, 그 누구도 신력권가를 넘보지 못했던 시절로 말입니다.”
“네 눈으로도 보지 않았더냐. 지금도 충분히 강해. 앞으로는 더 강해질 게야.”
이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라면 지금의 가문보다 훨씬 강하게 키울 수 있어요.”
“결국 준이와 싸우겠다는 소리구나.”
“아버지께서는 끼어들지만 말아 주십시오.”
“네가… 위험할 수 있다. 그래도 말이냐?”
“제가 위험할 일은 없을 겁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알겠다.”
이건무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휘의 음성은 결연하다 못해 비장했으니까.
뜻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가 피부까지 느껴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건 모두 이건무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언제나 강함만을 추구하며 형제들끼리 경쟁과 증오를 부추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머니도 곧 이곳으로 모셔 오겠습니다.”
“……”
이건무가 눈을 감자 이휘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대기하고 있던 차보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했어.”
“가문의 운명이요?”
“그래.”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그 새끼가 나타날 때까지 가문은 가만히 둘 거야. 아니 아예 여기에 스며드는 게 좋겠어.”
“그리고요?”
“그 새끼가 나타나면 보는 앞에서 차근차근 망가트려 줄 거야.”
“도련님다운 생각이세요.”
“우선 어머니부터 꺼내야겠어.”
“철혈검가로 모실게요.”
두 사람은 뇌옥에 갇힌 최미진을 꺼내기 위해 철혈검가로 걸음을 옮겼다.
* * *
‘후우우’
이준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토록 날뛰던 혼돈의 기운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그를 보고 있던 흑염마조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아. 어떤 원리로 인해 혼돈의 기를 다스릴 수 있는 거지?]
이준은 기운을 컨트롤하는 중이라 차마 흑염마조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저 꼬맹이 덕분인가?]
흑염마조가 고개를 돌려 파랑이를 보았다.
파란 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분위기 또한 바뀌었다.
왠지 모르게 범접하기 어려운 오로라가 풍겼다.
녀석이 혼돈의 기를 먹고 성장했기 때문.
절대종이 가진 강함을 지니기에는 아직 부족했으나 웬만한 몬스터는 녀석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녀석 때문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텐데. 정말 작은 주인의 정신력 때문에?]
이해해 보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다.
태어나고부터 쭉.
천살성의 광기를 이겨 내는 인간은 보지 못했으니까.
마신지체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준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지니고서도 버티고 있었다.
전무후무한 일.
[어쩌면 1년이 아니라 반년 안에 혼돈의 기를 통제할 수 있겠어.]
사신수인 주작의 중얼거림이었다.
완전한 통제는 천주에게서 파천멸기를 가져오는 것뿐.
그러나 그전까지 적어도 혼돈의 기로 인해 애꿎은 사람이 죽는 일은 없을 거다.
‘다 들렸어. 6개월로 줄었네?’
[혼원신공에 집중해.]
‘이제 괜찮거든.’
[작은 주인 같은 별종은 큰 주인 말고는 처음이다.]
‘내가 사부님을 많이 닮긴 한 것 같아. 재능 쪽으로 말이야.’
고금제일인의 제자.
이 하나만으로 천재라는 게 인증됐다.
그 어떤 고수가 많은 사람 중에 둔재를 제자로 삼으려 할까.
고금제일인의 제자는 천재들을 아예 찜쪄먹는 재능충만이 뽑힐 수 있는 거다.
그 사람이 바로 이준인 것이고.
[인정하긴 싫지만 맞는 말이다. 본좌가 본 인간 중에 작은 주인의 재능이 큰 주인과 제일 흡사하다.]
‘오, 웬일이래, 억!’
잠깐 동안은 괜찮았으나 다시 혼돈의 기운이 날뛰었다.
[한시도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마.]
‘으으. 조금은 쉬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젠장!’
이준이 다시 집중하려는데.
‘그런데 바깥은 어때? 내가 사라졌다고 걱정하고 있을 텐데.’
[남 걱정할 시간에 작은 주인이나 신경 써!]
‘어억!’
그는 흑염마조의 버럭에 대꾸하지도 못하고 혼돈의 기를 억제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각.
철혈검가에 손님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