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2화
얼음 필드는 각성자에게 최악의 바닥이었다.
그 어떤 무공을 사용해도 항상 보법과 함께했다.
그런데 바닥이 미끄럽다면 보법을 정확히 밟을 수 있을까.
넘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무엇보다 다른 몬스터도 아닌 파랑이가 만든 얼음 필드다.
미끄러운 건 당연했고, 얼음을 밟다가 발이 얼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박정연의 외침에 학생들이 뒤로 빠졌지만 얼음 필드는 어느새 그들의 아래에 있었다.
“파랑 님이 사라졌습니다!”
허수가 소리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얼음 필드를 만들고 사라진 파랑이.
움직임을 좇기 위해 많은 눈동자가 파랑이를 좇았다.
“우왁!”
“억.”
파랑이가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들의 몸을 밟으며 이동했는데 파랑이의 발에 밟힌 학생들은 강한 힘에 밀려 뒤로 처박혔다.
파랑이는 얼음 필드 말고는 딱히 마력을 끌어 올리지 않았다.
그저 한 명, 한 명씩 발로 밟아 학생들을 무력화시켰다.
“내가 잡아 볼게.”
박혁진이 땅을 박찼다.
파랑이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앞을 막아섰으나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박혁진이 따라붙으면 귀신같이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애들아! 파랑이가 이동하는 경로 싹 다 막아.”
특별 1반이 파랑이의 기를 찾으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특별 2, 3반 또한 합류했다.
“어디에서 튀어나올 거냐.”
이제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니 슬슬 모습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랑이가 드디어 나타났다.
“여기!”
한지유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파랑이가 꼬리를 휘둘러 그녀의 다리를 공격했다.
한지유가 검으로 꼬리를 막으려 했지만 파랑이가 한 발 더 빨랐다.
결국 그녀는 파랑이의 공격에 중심을 잃고 말았다.
바닥에 검을 꽂아 넣어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어깨를 때려 오는 다음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악!”
파랑이의 꼬리 공격에 한지유가 얼음 바닥에 강하게 부딪혔다.
“지유야!”
“누님!”
한지유를 좋아하는 파랑이었지만 이건 훈련.
파랑이는 그녀에게 가차 없이 철퇴를 가했다.
파랑이가 공격한 곳은 한지유가 막기 어려워하는 부분.
왼쪽 다리와 어깨는 그녀의 약점이었다.
고수와의 싸움에서는 조그만 약점이 패배의 큰 요인.
파랑이는 한지유에게 약점을 정확히 알려 준 것이다.
한지유가 통증을 참고 일어나는 사이, 파랑이가 사라졌다.
다음 목표는 류가을이었다.
지금까지는 꼬리와 발만 사용하던 파랑이가 드디어 마력을 보였다.
녀석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나왔다.
“가을아 피해!”
여러 갈래의 검은 아지랑이가 류가을에게 휘둘러졌다.
“늦었어!”
뒤로 빠지기에는 이미 늦었다.
류가을은 아무것도 못 한 채 나가떨어지는 것보다 대항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수라파천공을 주먹에 둘렀다.
그녀의 특기는 기공.
장법으로 적을 상대하는 게 특기기도 했으나 권법에도 능숙했다.
붉은 기가 가득한 주먹이 검은 아지랑이와 부딪혔다.
쿵!
그녀의 주먹이 검은 아지랑이를 막았다.
쿵쿵!
주먹과 아지랑이가 연신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기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강한 기운에 일반 학생들이 움찔했다.
내공은 상대적.
약한 기는 강한 기운에게 쫄기 마련.
특히 마기와 같은 종류는 약한 기운을 제압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가을아. 조금만 더 붙잡고 있어.”
특별반 학생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왔다.
파랑이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류가을의 주먹을 상대하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틈을 내어주는 것처럼.
학생들이 포위망을 좁히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파랑이를 몰아넣었다고 해도 공격할 사람은 한정적.
인원을 정해야 했고, 박정연과 박혁진, 허수가 무기에 내공을 집어넣었다.
세 사람의 검과 도가 강맹한 기운을 머금은 채 파랑이에게 떨어졌다.
쾅!
굉음이 울렸다.
그들이 있는 얼음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질 정도.
그러나 세 사람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검과 도를 가로막은 무언가가 느껴졌으니까.
“누님, 형님. 큰일 난 것 같습니다.”
“그러게.”
“검이 꼼짝도 안 해.”
먼지가 가라앉고 안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류가을을 공격하는 검은 아지랑이가 세 사람의 무기를 붙잡고 있는 게 있었다.
강기도 단번에 잘라 버리는 기운을 담았음에도 파랑이의 마력에 막힌 것이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준이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똑바로 안 해?”
허수는 최선을 다해 공격했지만 박정연과 박혁진은 검에 자비를 담았다.
자신들의 공격에 파랑이가 다칠 것을 우려해서.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파랑이는 지배자 종 몬스터.
만에 하나 궁지에 몰린다면 알아서 힘을 보일 터다.
“파랑아. 너 얕보였다. 이대로 자존심 상하게 가만히 있을 거야?”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저었다.
귀엽게 보여서 그렇지, 자존심 하나는 무척이나 강한 녀석.
자존심에 상처가 나자 귀엽고 앙증맞았던 모습이 서서히 변했다.
* * *
“허, 허허….”
“화면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처음 보오.”
가주들은 배 아픈 것도 잊고, 파랑이의 커진 모습에 감탄했다.
압도적인 위압감.
블랙급 보스 몬스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마기를 느껴야만 했다.
“파천자께서는 어떻게 저런 몬스터를 키우게 됐는지 알아?”
혈마가 진병철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이준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그라고 생각했으니까.
“저 몬스터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잘 모릅니다. 특별반 애들한테 들은 게 다입니다.”
“어떤 것들인데?”
“무사고에 봉인된 게이트에서 얻었다고 했나?”
“맞습니다. 그건 우리 신기지가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무사고 밑에서? 허, 엄청난 게 숨어 있었어. 또?”
“몇몇 아이들은 저 몬스터에게 존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진병철의 말에 철왕이 맞장구쳤다.
“우리 사위가 그리 부르는 건 들었소이다.”
“사위는 무슨.”
검왕이 옆에서 시비를 걸었으나 철왕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존칭하는 이유가 있어?”
“이 건에 대해서는 내가 말해도 되겠소, 진 가주?”
“그러시오.”
“큼큼. 존칭하는 이유는 말이오.”
철왕이 목소리를 다듬었다.
허수에게 들은 말을 할 때가 왔다.
“파천자가 끔찍이 아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일반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고 하오.”
“일반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고?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는 나에게도 못 해 준다고 했지만, 이건 말해 주더이다. 사신수와 같은 서열에 있다 하오.”
“헉!”
“사, 사신수 말이오?”
“내가 아는 그 사신수?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할 때 그 사신수 말이지?”
“그렇소.”
철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랑이는 청호 계열 몬스터.
그러나 청호와는 달랐다.
무력이라던지, 꼬리가 다섯 개를 넘어간다던지.
파랑이는 베일에 싸인 몬스터였다.
TV에서 거대화된 모습이 나왔을 때는 그저 경악했다.
저렇게 강한 몬스터를 인간이 다룬다는 게 믿겨 지지 않았다.
“자, 잠깐! 그렇다면 저 몬스터가 지배자 종 중 한 마리라고?”
“7대종 중 한 마리라면…”
“탐욕종 아니오?”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여우였다.
청호 계열, 여우형 몬스터니 얼추 맞았다.
그때 진병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몬스터가 어딜 봐서 탐욕종 같습니까? 내가 아는 지식에서는 흉측한 괴물이라고 하던데.”
“내 생각도 그렇소.”
“파천자께서 들으면 노발대발하시겠소.”
“그리고 탐욕종은 서양 쪽에 있지 않습니까. 동양의 지배자종은 사신수가 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그리 들었소.”
가주들이 혼란에 빠졌다.
저 거대한 몬스터가 과연 탐욕종일까.
아니면 사신수와 연관이 있는 몬스터일까.
만약 탐욕종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였다.
아무리 이준의 무공이 하늘에 닿았다지만 7대종이 본모습을 드러내면 그라고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파천자께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허, 허허.”
“난감한 일입니다.”
가주들이 파랑이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이준이 옆으로 왔다.
“난감하실 필요 없어요.”
유령 같은 움직임.
그의 기척을 읽지도 못했지만 가주들은 그러려니 했다.
이미 수없이 놀라게 한 파천자니까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신기가주가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파랑이가 7대종 중 탐욕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잖아요.”
“괜찮으시다면….”
“사실 저도 파랑이의 진짜 정체를 몰라요. 처음 만났을 때는 청호였고, 지금은 십미호예요.”
“십미호?”
“다들 십미호에 대해서 모르시죠?”
“예.”
“혈마는요?”
“아는 게 없습니다.”
“주인인 저도 파랑이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래서 계속 키우는 중이에요. 정체가 뭘지 궁금하거든요.”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할 수도 있지만 파랑이는 제가 잘 다독일 수 있어요.”
무극자 사부와 마찬가지로 파랑이는 친구였다.
외톨이일 적 마음의 위안을 준 녀석.
이준에게 파랑이는 몬스터가 아니고 애완여우에 가까웠다.
“만약 위험해지더라도 다른 수단이 있어요.”
“주작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주작!?”
“이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혈마를 비롯한 뇌마와 살마의 눈동자가 커졌다.
갑자기 주작이란 단어가 나오자 놀란 것이다.
“세 분은 파천자께서 주작과 친분이 있다는 걸 모르시겠군요.”
신기가주의 말에 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대 가주들은 주작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주작의 보금자리에서 며칠 동안이나 함께 지냈다.
그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이준이 데리고 다니던 검은 독수리가 바로 주작이었다는 사실을.
“무튼 파랑이는 제가 잘 컨트롤할 테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배탈은 다 나으셨나 봐요?”
“억!”
“가, 갑자기.”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화장실 좀 갔다 오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가주들의 배에 동시에 신호가 왔다.
그들이 다시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준이 고개를 돌려 파랑이를 보았다.
“에이. 저렇게 귀엽게 생긴 녀석이 무슨 탐욕종이야. 절대 그럴 리 없지.”
격하게 부정했다.
제발 탐욕종이 아니라고 말이다.
* * *
“뀨.”
파랑이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녀석을 상대하던 학생들은 전부 쓰러졌다.
박혁진과 박정연도 포함이었다.
SS급, 현경 초입에 있으나 아직 파랑이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그동안 훈련했던 게 헛수고네, 헛수고야.”
이준은 말과는 달리 해맑게 웃고 있었다.
울릉도에 오기 전보다 모두의 실력이 높아졌다.
아주 만족할 만한 결과.
파랑이로 인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이 특성을 개화했다.
그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준이었다.
무려 천 명이 넘는 인원.
사대 가문의 가주들과 마벽의 가주들.
그리고 한민성과 선생들까지.
등급이 올랐다.
특성은 덤.
그들 덕분에 보상으로 스탯이 계속 올랐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혼원신공이 12성 직전에 도달했습니다. 대성하시려면 마지막 조각을 흡수하십시오.]
[패천기공의 제한이 풀립니다.]
[패천기공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칭호 파천자의 효과로 패천일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패천기공의 깨달음: 6.2%]
드디어 패공기공을 정식으로 얻을 수 있게 됐다.
두근거리는 가슴.
언제나 새로운 무공은 설렜다.
심지어 이 무공은 무극자 사부의 마지막 심득이었다.
루트 창을 열어 테크트리 포인트를 패천기공에 전부 투자했다.
띠링-
알림이 울리며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가 나왔다.
[패천기공(측정불가)을 터득하셨습니다.]
[은거자 루트를 전부 찍으셨습니다.]
[은거자가 전인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N)]
‘사부님이 남기신 메시지인가?’
지체 없이 메시지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