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1화
이의태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혈마 류한길은 새롭게 리뉴얼된 활력탕의 효과를 제대로 본 것.
효과를 봤다면 이제 지옥을 맛볼 차례였다.
“억.”
류한길이 괄약근을 쪼였다.
밖으로 나오려는 적을 힘으로 막았다.
“저, 저 잠시 화, 화장실을….”
“갔다 오세요.”
이준이 흔쾌히 허락했다.
‘각주 님 말대로 부작용이 심하네.’
하지만 알고도 류한길에게 먹였다.
설사 좀 하면 어떠냐.
실력 향상에 있어서 버전 2 활력탕만 한 게 없는데.
게다가 악마 교관과의 조합으로 약 기운이 극대화되기도 했다.
그래서 부작용도 심한 거다.
가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의아해했다.
“뭘 잘못 먹었나?”
“저녁에 날것은 안 먹었는데 말이오.”
“밥은 우리도 같이 먹지 않았소.”
“혼자 좋은 거라도 몰래 먹다 배탈 난 게 아니오?”
“허허.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면 될 것을.”
리뉴얼된 활력탕의 부작용이란 건 꿈에도 모르는 가주들이었다.
‘내공으로 보호가 가능하면 각성자에게 독이 먹히겠습니까.’
사백초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내부에 있는 걸 모두 쏟아붓게 하는 독이었다.
그런 독이 버전 2 활력탕의 재료로 들어갔으니.
내공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탈진이나 안 되면 다행이었다.
류한길이 핼쑥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야간 훈련은 무리인 듯싶은데요.”
“아닙니다. 할 수 윽!”
류한길이 다시 엉덩이에 힘을 줬다.
얼굴까지 시뻘겋게 변한 그였다.
가주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심하게 배탈이 났으면 혈마가 저러는지….”
“괜찮소이까?”
검왕과 철왕이 혈마에게 물었다.
“화, 화장실 갔다 오면 괘, 괜찮을… 거다….”
“그냥 야간 훈련을 빠지는 게 어떻소?”
진병철의 만류에도 류한길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그, 그럴 수 없… 크윽!”
대적을 상대하고 있는 그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막고 있는 벽이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는 버텨야 했다.
결국 그는 황급하게 천막에서 뛰어나갔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대로 왔소.”
“저러다 수학여행이 끝날 때까지 설사만 하다가 가는 거 아니오?”
“설마 그러겠소이까? 명색이 S급 각성자인데 설사로 인해 훈련을 못 한다는 건 크흠.”
검왕이 더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개망신이라는 걸.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거다.
“파천자 님. 저희끼리 먼저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살마가 의욕을 보였다.
이준에게서 훈련을 받으니 성장이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공심법은 물론이고, 기본 능력까지 오르고 있달까.
아무튼 혼자 무공을 사용할 때보다 효과가 뛰어난 것 같았다.
이제 학교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가주들 또한 살마와 같은 생각을 했다.
막혀 있던 혈을 기가 막히게 뚫어 준 훈련이었기에 힘들어도 계속하려는 거다.
“어쩔 수 없네요. 저희끼리 시작하죠.”
이준과 가주들이 천막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꿀 같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
학생들은 지겨운 훈련에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자, 다시 바다로 입수.”
학생들과 선생들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가주들도 뒤따라가려는 그때였다.
“이거 마시고 들어가실게요.”
이준의 손에는 여섯 개의 병이 들려 있었다.
“신버전의 활력탕입니까!?”
혈마가 먹었던 약이었다.
“그 귀한 걸 그냥 주시는 건지…?”
“사신가와의 거래 전 샘플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오, 좋습니다.”
“빨리 마시고 싶군요.”
가주들에게 병을 건넸다.
병뚜껑을 따고 바로 마시는 가주들.
냄새가 고약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혈마의 성장을 직접 봤으니까.
각성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실력의 성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신버전의 활력탕은 자신들을 위로 올려 줄 영약.
안 마실 이유가 없었다.
“크으으. 명약이라 그런지 달면서도 씁니다.”
“난 밤샘 훈련도 가능하오.”
“혈마는 이 좋은 걸 혼자 마신 거였소?”
“이거 주화입마에도 효과가 뛰어난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극독을 먹고 좋아하는 가주들이었다.
곧 혈마와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음에도.
이준은 마음껏 좋아하게 놔두었다.
저 웃음은 얼마 가지 않을 테니까.
* * *
[가르친 학생으로 인해 내공이 +1 상승했습니다.]
[가르친 학생으로 인해 내공이 +3 상승했습니다.]
……
……
……
[가르친 학생으로 인해 정신력이 +1 상승했습니다.]
이준은 메시지를 보고 흡족해했다.
꿀빤다고 해야 하나.
스탯 치가 쭉쭉 올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게 강해지고 있었다.
‘의욕 넘치는 가주님들 덕분에 편하구만.’
야간에 시작된 훈련이거늘 벌써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해는 낮보다 저녁.
특히 빛 한점 없는 새벽이 가장 무서웠다.
특히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몬스터까지 출몰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학생과 선생들은 수중 심법 훈련을 계속했다.
“저게 뭐지?”
“어디?”
“저기 아주 작게 빛나는 불빛 있잖아.”
호위 각성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얀 불이 켜졌다가 꺼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
“나만 본 게 아니지?”
“파천자님 께 말해 볼게.”
호위 각성자가 몸을 돌리려는데 이미 이준이 옆으로 와 있었다.
“고스트맨이네요.”
불빛을 내는 건 바로 고스트맨이라는 몬스터였다.
불빛을 본 자라면 몬스터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먹기로 유명했다.
“저, 저 이제 어떡합니까?”
“불빛을 봐서요?”
“네….”
“저도 봤는데요?”
이곳에 있는 모든 호위 각성자들과 고스트맨이 발한 빛을 봤다.
“다, 다가옵니다!”
“으악!”
순식간에 접근해 오는 고스트맨을 본 호위 각성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스트맨이 긴 낫으로 자신들을 가르고자 들이민 것.
몸이 두 동강 날 거라 여겼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잡놈들이 누굴 공격하려 든다는 말이냐!”
혈마의 손에서 발출된 붉은 장력이 고스트맨을 찢어발겼다.
안 그래도 계속 설사가 나와서 짜증이 가득했다.
신경도 예민해진 상태에서 고스트맨의 모습을 발견한 것.
스트레스가 가득 쌓여 풀 곳을 찾던 차에 마침 몬스터도 나타났겠다, 지체없이 손을 썼다.
아수라파천공이 10성에 도달해서 그런지.
카오스 몬스터이자 레드급 몬스터인 고스트맨을 단숨에 제압했다.
“별것도 아닌 놈이… 으으….”
물론 여전히 혈마의 안색은 창백했다.
악명 높았던 혈마가 멋지게 등장했으나 괄약근을 뚫고 나오려는 적들 때문에 다시 쭈구리가 됐다.
“수학여행이 끝날 때까지 수련에 참가하지 못하겠네요.”
“끄응. 죄송합니다.”
결국 혈마는 수련하는 걸 포기했다.
자칫하다가는 바지에 지릴 수도 있는 상황.
그래도 나름 마벽의 총주인데 밖에서 실수할 순 없었다.
“배탈이 날 수도 있죠. 괜찮아요.”
이준도 이제는 살짝 미안해졌다.
내공으로 40대 초반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던 혈마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족히 10년은 늙어 보였다.
“수학여행이 끝나면 몸보신할 약 좀 보내 드릴게요.”
“그렇게까진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해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이준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혈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학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현상.
지금보다 더 고생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사백초가 지독하네. 다른 독초를 넣어서 실험해 보라고 해야겠다.’
혈마는 신버전의 활력탕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확인하는 실험체였던 것이다.
‘혈마가 활력탕의 효과를 많이 받아서 더 저러는 걸 거야.’
이준은 신버전의 활력탕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혈마의 증상을 효능의 부작용이라 굳게 믿었다.
* * *
수학여행 마지막 밤.
학생들과 선생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어느새 마지막 훈련만이 남았다.
몬스터 레이드.
전 교생이 함께 사냥할 몬스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이 천막에서 나와 그들 앞에 섰다.
이제 레이드할 몬스터가 어떤 놈인지 알 차례였다.
“모두 함께 잡을 몬스터는 바로….”
학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어떤 몬스터이기에 수중 심법 훈련이 끝나고 긴 휴식 시간을 줬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떨리기도 했다.
“이 녀석이야.”
“뀨!”
이준의 주머니에 있던 파랑이가 어깨로 올라와 앉았다.
“청호!?”
“파랑 님?”
“헉!”
“말이 된다고 생각해?”
특별 1반이 유독 놀라 했다.
그들은 파랑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블랙급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가 바로 저 파랑이였다.
파랑이의 진짜 정체는 청호가 아니라 십미호였다.
지배자 종에 있는 몬스터를 레이드하는 게 말이 되나.
SS급, 현경에 오른 박혁진과 박정연도 파랑이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다.
“준아. 파랑이를 어떻게 잡아.”
“이건 불가능해.”
“표현을 레이드라고 한 것뿐이지 나도 너희들이 파랑이를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파랑이를 통해서 실전 감각을 익히란 말?”
박정연의 말에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파랑이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 줄 거야. 허수도 파랑이한테 도움을 꽤 많이 받았어.”
“제가 산 증인입니다. 파랑 님과 싸우고 나면 약점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허수가 보증했다.
그 어떤 수업보다 값진 훈련.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파랑이였기에 가능한 훈련이었다.
“들었지? 잔말 말고 전투 준비해.”
이준의 말에 모두가 뒤로 물로 섰다.
“파랑아. 네 힘을 보여 줘.”
“뀨규!”
“아주 개 박살을 내버리는 거야. 알았지?”
“뀨우!”
이준이 손으로 박혁진과 박정연을 가리켰다.
“쟤들만 조심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잘 알고 있지?”
“뀨!”
파랑이가 그만 설명하라는 듯 볼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이준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들은 훈련을 못 하니까 패스. 그 외에 걱정할 애들은 없겠네.”
이준이 바라본 곳에는 가주들이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모두 신 버전의 활력탕을 먹고 설사병이 난 상태.
맛이 가 있었다.
얼마나 아래로 내려 보냈는지 살까지 빠져 보였다.
“지유랑 가을이를 집중적으로 봐줘. 알았지?”
“뀨뀨!”
“다치지 말고 갔다 와.”
파랑이가 이준의 어깨를 밟고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생김새만 보면 정말 귀여운 아기 여우였다.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몬스터.
하지만 파랑이는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했다.
녀석의 정체를 아는 박정연이 벽운을 겨누며 외쳤다.
“다들 조심해. 귀엽다고 얕보지 마.”
“네!”
학생들의 대답이 신호라도 된 듯.
파랑이가 앞으로 내 달렸다.
“온다!”
파랑이가 움직인 자리에 남은 한기에 바닥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느새 만들어진 얼음 필드에 박정연이 아차 싶었다.
“이런!”
파랑이는 여러 속성을 그중에 얼음 속성을 가장 잘 사용하는 몬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