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화
수학여행의 첫날은 무난했다.
위험이 있나 주변을 탐사하는 게 전부.
이후에는 자유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자 시작된 캠프파이어.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화였다.
전교생이 나무가 타들어 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 좋다.”
“얼마 만에 휴식인지 모릅니다.”
특별 1반 학생들도 긴장을 풀었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은 이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다.
어차피 굴림을 당할 거,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 편히 쉬자고 마음을 먹었다.
“혁진 형님. 학교에 안 나오는 동안 어떻게 폐관수련을 했는지 알려 주십시오.”
허수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박혁진에게 물었다.
“그럴까?”
박혁진도 입이 근질거렸는지 각을 잡았다.
“다들 나랑 누나가 할아버지의 수련동에 들어간 건 알고 있지?”
“네.”
“거기에는 무슨 몬스터가 있어요?”
“특별한 몬스터가 있었지.”
“무슨 몬스터요?”
홍원찬이 눈을 반짝였다.
등급이 수직 상승을 했다고 하니, 어떤 몬스터를 잡고 성장했을까 궁금했다.
“흐흐. 너희 용 봤어?”
“드레이크를 잡으셨습니까?”
“아니면 드라고니?”
모두 드래곤 형태의 가진 몬스터였다.
강한 몬스터기도 해서 각성자의 성장에 굉장히 좋았다.
“그놈들은 특별한 몬스터가 아니지.”
“그러면 어떤 놈들인데요?”
“그건 말이야.”
박혁진이 뜸을 들였다.
모두의 눈이 그에게도 쏠렸다.
심지어 관심 없어 보이던 이지안도 눈을 반짝이는 게 아닌가.
이 맛에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제 입을 열 차례.
너무 뜸을 들이면 김이 새기 마련이었다.
박혁진이 입을 열려는데.
“청룡을 만났겠지.”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 네가 왜 말해!”
박혁진이 비명을 질렀다.
“내 마음이다.”
“두고 봐. 복수 할테다.”
“그러던지. 늙어 죽을 때까지 실패하겠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자식.”
“난 혼자서 자랐거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진경수와 정예나는 박정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야?”
“사신수인 청룡을 만났어?”
“응. 청룡 님한테 수련까지 받았어.”
“헐!”
“미쳤다. 사신수를 만났다는 게 말이 돼?”
모두의 눈이 커졌다.
사신수는 한국의 수호 동물.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방신이었다.
몬스터와는 비견되지 않은 존재.
전설로만 내려오는 존재들이라 실존하는지도 불분명했다.
“실제로 보니까 어때?”
“보자마자 몸이 굳었어.”
“당연하지. 블랙급 몬스터를 봐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사신수인 청룡은 오죽할까.”
진경수가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무려 청룡을 만나서 훈련받은 썰이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나.
평온한 얼굴을 한 이준이 비정상이었다.
“그래서 어떤 훈련을 받았어?”
정예나의 물음에 박정연이 곧바로 대답했다.
“뇌기를 다스리는 법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방법을 배웠어.”
“그게 다야? 다른 건 없어?”
“응.”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 안 할래?”
“들켰네. 사실은…”
박정연이 입을 열려는데 박혁진이 먼저 말했다.
“준이가 가르쳤던 방법과 많이 틀리지 않았어요. 호흡은 짧게 초식은 천천히. 만약 초식 중간중간에 호흡이 흐트러지면 다시 처음부터 검식을 펼쳐야 했어요.”
“아.”
“그 미친 훈련을….”
모두가 탄식했다.
설마 청룡도 이준과 같은 훈련을 시킬지 누가 알았겠나.
하지만 이준의 초식 훈련을 받지 않았던 홍원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초식 훈련이 그렇게 힘든 건가요?”
“너희는 초식 훈련을 안 받아봤구나?”
진경수가 눈을 크게 뜬 채 말했다.
홍원찬의 질문에 허수가 대답을 해주었다.
“말도 마. 사람이 할 훈련이 아니다. 원찬이 너도 곧 초식 훈련을 받을테니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거야.”
허수의 진중한 눈빛에 홍원찬이 침을 꼴깍 삼켰다.
허수뿐만이 아니라 특별 1반 모두가 홍원찬을 안쓰럽게 봤다.
자신들은 이미 지옥의 초식 훈련을 경험한 상태.
이 훈련은 영영 모르는 게 나았다.
다시 돌아가서.
허수가 박혁진에게 재차 말했다.
“그걸 몇 달 동안 한 겁니까?”
“이건 하루 일과 중 하나야. 물에서 뇌신공을 조절하거나 뇌기를 쏘아 보내는 훈련도 했어. 내가 토르인 줄 알았다.”
“큭큭, 토르래.”
“개웃겨.”
특별 1반 모두가 깔깔 웃었다.
“이걸로 웃으면 안 되는데?”
“또 있습니까?”
“제일 어이없는 훈련이 있었지.”
박정연이 박혁진을 막았다.
“야, 너 그것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지?”
“응. 안 돼?”
“하지 마.”
“왜, 이게 클라이맥스잖아.”
“그냥 입 닥쳐.”
박정연의 만류에 오히려 정예나와 진경수가 팔짝 뛰었다.
“정연이 의견은 필요 없으니까 말해 봐. 어떤 훈련이길래 저래?”
“비밀은 함께 나눠야지.”
모두의 시선이 박혁진의 입으로 모였다.
그가 입을 벌리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때.
박혁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 벼락 맞아 봤니?”
“뭐?”
“네?”
“벼락이요?”
“어. 벼락 맞으러 높은 언덕에 서 봤냐 이 말이지.”
홍원찬이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죽을 일 있나요. 각성자가 초월적인 육체를 가졌다 해도 벼락을 직격으로 맞으면 신체에 데미지를 입잖아요.”
각성자는 벼락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
그저 신체에 데미지가 점점 축적될 뿐.
한, 두 번은 괜찮겠지만 계속 맞는다면 각성자도 죽게 된다.
그만큼 벼락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기운이었다.
“난 그 벼락을 맞으려고 쌩 지랄을 떨었어. 이게 훈련 중에 가장 빡셌어.”
박혁진의 말에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청룡은 무언가 특별한 훈련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뇌기에 익숙해지려고 벼락을 맞다니.
정상인이 할법한 훈련이 아니었다.
“정연 누님의 얼굴이 붉어질 만합니다.”
“강해지느라 고생했다.”
“심심한 위로를 보낼게.”
허수를 비롯한 정예나와 진경수가 박정연을 위로했다.
“준이 넌 웃지 마.”
박정연이 얼굴을 붉힌 채 이준을 향해 소리쳤다.
“안 웃어. 풉!”
하지만 이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째 청룡도 무극자 사부와 훈련 방식이 일맥상통할까.
자신이 뇌속성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사부 또한 청룡처럼 했을 것이다.
이는 100% 확신할 수 있었다.
사부님은 괴짜 중의 괴짜였으니까.
* * *
모두가 잠이 든 새벽.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지유?’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도 천둥처럼 들리는 이준의 감각.
검을 휘두르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천막 밖으로 나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베이스캠프와 한참이나 떨어진 바닷가 근처.
한지유는 땀을 흥건히 흘린 채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검이 다급해.’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좋은 검법을 펼칠 수가 있나.
저건 훈련을 안 하는 것보다 못했다.
탁!
이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한지유의 초식이 중간에 끊겼다.
검을 거둔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뭐 해?”
“수련.”
“내가 보기에는 수련이 아닌데?”
“수련 맞아.”
이준이 그녀의 앞으로 가서 손을 뻗었다.
“자.”
그녀의 손에 민트 초콜릿을 건넸다.
“먹고 마음을 가라앉혀 봐.”
그녀가 껍질을 까서 민트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표정이 한결 풀렸다.
“그동안 훈련한 거 다 까먹었어?”
“아니야….”
“그러면?”
“그냥… 분해서.”
“뭐가 분한데.”
“다들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
“정연 누나랑 혁진이 때문에 그래?”
“응….”
한지유가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친한 친구들이 강해졌다는 건 좋아할 일.
하지만 그럴수록 벽이란 게 생긴다.
한지유가 지금 그 처지에 놓였다.
“잘하고 있는데 왜? 조급해하지 마.”
“더 잘하고 싶어. 난… 항상 너한테 도움을 못 주고 있잖아.”
“도움을 못 주다니. 신기지가에서 얼마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사장님이 내 정체를 숨겨 주지 않았다면 난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야.”
“가문이랑은 달라.”
한지유의 음성에 힘이 담겼다.
분한 목소리가 가득했다.
“네가 직접 도와주고 싶은 거야?”
“…응….”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분한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에 눈물이 고였다.
“울보네. 고작 도움이 안 된다고 울기나 하고.”
“고작이 아니야. 너도 도와주고 싶고 정연 언니한테 지고 싶지 않아.”
지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여러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 눈치 없는 이준은 그저 웃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기막힌 우연이네. 장백검문에 관한 설명문을 봤을 때랑 어떻게 똑같냐.’
검후와 뇌후는 라이벌 관계.
검후는 뇌후에게 지기 싫어서 장백검문의 무공을 발전시키고 또 발전시켰다.
특히, 유독 검후가 뇌후를 의식했달까.
한지유가 박정연에게 느끼는 감정이 검후가 뇌후에게 보였던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박정연이 한참을 앞서 나가자 한지유가 위기의식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특성 때문에 라이벌 구도가 성립된 건가?’
참 재미난 일이었다.
“장백검문의 무공은 뇌전검문에 전혀 뒤처지지 않아.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를 가져.”
“그래도….”
“그러다 주화입마에 빠진다? 천천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벽을 깨고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정말?”
“나 못 믿어?”
“믿어….”
이준의 미소를 보자 한지유의 얼굴도 한결 나아졌다.
‘편안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에게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
언제나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었다.
가문의 무공이 약해 식객의 힘에 좌지우지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자신이 강해져야만 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이준이었다.
“오늘부터 고된 일과가 될 거니까 가서 조금이라도 자.”
“알았어.”
그녀가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이준 앞에서만은 얌전한 고양이가 되는 한지유였다.
* * *
이준의 말대로 전날과는 전혀 다른 일과가 시작됐다.
“이, 일어나!”
“비상이야!”
“몬스터가 공격해 왔어.”
학생들은 베이스캠프에서 다급하게 나왔다.
잠에서 덜 깬 이들을 깨우는 학생들.
몬스터의 공격을 막으려고 앞에 나선 이들.
선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
여러 부류로 나뉘었다.
특별 1반 학생들은 선두에 서 있었다.
그들의 귀로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은 하지 말고 막기만 해.”
“저걸?”
“어. 할 수 있지?”
박혁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꼭 막기만 해야 해?”
“공격을 가하면 훈련 난이도를 대폭 올릴 거야.”
크루즈에서 날아오는 수백 개의 초록색 탄들.
배 앞머리에는 쥐같이 생긴 몬스터가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진 총을 연사하고 있었다.
“이, 이걸 어떻게 방어만 해?”
“방어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불리해요.”
진경수와 홍원찬의 볼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초록색 탄이 바닥을 강타했다.
쾅!
탄이 폭발하면서 독액을 튀겼다.
“큭!”
“잡담하지 말고 기막을 펼쳐!”
박정연의 외침에 특별 1반 학생들이 내공을 끌어 올려 탄을 막았다.
한편 바다에 뜬 크루즈에서는 테구르가 스케먼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방어막을 부술 정도의 탄을 쏴! 중상을 입게 해선 안 돼.”
“찍!”
“찍찍!”
이준의 명으로 인해 수련을 도와주러 온 테구르였다.
그의 왼팔이 된 후 부름을 많이 받고 있었다.
완전히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 테구르는 이준의 명에 최선을 다했다.
“마력탄 교체!”
“찍!”
마법 공학총에서 불을 뿜어냈다.
마력탄이 하늘로 쑥 쏘아졌다.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간 마력탄이 쪼개지는 순간!
하늘에 유성이 내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멋진 광경.
하나 무사고 학생들은 장관을 구경하지 못했다.
유성의 마력탄을 막는 게 그들의 역할.
모두가 내공을 끌어 올려 기막을 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진법을 펼칠 수 있는 학생들은 수비진을 만들었다.
“원찬아! 부서진다.”
“저 혼자는 무리예요.”
“내가 도와줄게.”
진법에 일가견이 있는 한 사람.
한지유가 검을 집어 놓고 홍원찬의 옆으로 와서 신기지가의 진법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