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8화
조용석은 뒤로 빠진 채 기회만 엿봤다.
‘내가 뒤를 점하고 있는데 왜 압박을 받는 것 같지?’
이준은 허수를 맹렬히 찍어 누르고 있었다.
뒤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접근하면 허수를 공격하던 무형도가 목표를 바꿀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공격할 포인트를 알아내야 해.’
아니면 자신이 죽는다.
다시 사마고로 전학 가고 싶었다.
무사고는 자신에게 너무 벅찬 곳.
남들은 파천자에게 수련받아 좋겠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실력이 늘어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준에게 안 좋은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직접 죽이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사고에 붙어 있어야 했다.
뿐인가.
파천자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여자는 일절 쳐다보지도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몰래 만날 수도 있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지안.
그녀에게 접근하면 파천자란 무서운 선생에게 책잡힐 터.
아버지의 귀에 자신의 행동이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녀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조용석은 이지안을 애절하게 보며.
‘아디오스.’
작별 인사를 했다.
여러 여자를 섭렵했지만, 이토록 좋아하는 사람은 이지안이 처음.
짝사랑만 한 채 그녀를 보내야 했다.
이지안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하늘에서 기회를 내려 준 듯.
공격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다!’
조용석은 지체하지 않고 경공을 펼쳤다.
[굶주린 사냥꾼(AA)이 발동했습니다.]
[도망치는 상대나 등을 보인 상대에게 살상력 +100%, 이동 속도 +100% 상승합니다.]
특성이 발동해서인지 조용석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였다.
이준의 머리 위에 순식간에 도착한 그가 일도양단의 수법으로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 * *
“오랜만에 학교 오는 것 같다. 그치?”
“응.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박혁진과 박정연은 학교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우리 보면 준이가 놀라겠지?”
“그러지 않을까.”
“빨리 가서 준이를 놀라게 하고 싶…?”
박혁진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학교 운동장에는 엄청난 기운의 풍압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제는 SS급 각성자.
현경 초입에 올라 놀랄 일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이 깨져 버렸다.
“누나!”
“특별 1반이 있는 곳이지?”
“어.”
“가 보자.”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미세한 전류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이미 특별 1반이 있는 운동장에 도착해 있었다.
“무형도야!”
“우리 준이 매력이 넘친다.”
“난 이제야 검강을 시원하게 뽑는데 쟤는 무형도를 휘두르고 있네.”
박혁진이 입을 앞으로 툭 내밀며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며 이준을 바라보는 박혁진.
“위험한데?”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파괴력이 막강한 무형도가 그대로 허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어떤 힘 조절도 없는 채 말이다.
“어어?”
그때였다.
이준의 뒤를 선점한 채 날아가는 한 사람.
그가 이준의 등 뒤를 노렸다.
“빠른 움직임이지만 그걸로는 어림없어.”
이준에게는 절대 방어의 무공이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운.
자아가 있는 듯한 무극기는 이준이 위험할 때 빛을 발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준의 반탄지기로 인해 공격자가 되려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박혁진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부욱 소리와 함께 이준의 반탄지기가 찢어지는 게 아닌가.
아주 조금의 틈이었으나 조용석의 경지치고는 큰일을 해낸 셈이었다.
물론 이준의 옷깃을 베는 것까지는 무리였다.
이준의 경지는 SSS급.
생사경에 있는 각성자인데 조용석의 공격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나 내공 사용 안 했다.”
조용석에게 약속했듯.
이준은 그에게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무극기의 아지랑이가 발현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
다만 이준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기가 절로 움직였다.
주인이 무방비로 있자 혼원신공이 반탄지기를 내보낸 것이다.
쾅-
반탄지기가 올라와 조용석의 살검을 가로막았다.
“푸웁!”
“저럴 줄 알았다.”
박혁진이 탄식을 했다.
뒤에서 기습하던 남자가 피를 뿜으며 날아가 처박힌 게 보였다.
그렇다면 허수는?
“크으윽.”
허수는 참마도를 양손으로 잡고 무형도를 막았다.
하나 이준은 한 손으로 무형도를 쥔 채 허수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등치로 보면 허수가 이준보다 우세해야 했지만.
완력이나 힘에서도 이준이 월등히 앞섰다.
“그 기습 아쉬웠어. 검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으면 좋았을 건데 말이야.”
이준의 도발에도 조용석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재밌겠는데?”
“야, 끼지 마. 훈련 중이잖아.”
박정연이 말렸지만 박혁진은 말을 들어 먹지 않았다.
“준이한테 인사만 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박혁진의 신형이 번개처럼 사라졌다.
뇌신공이 10성에 오르자 인간의 속도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청룡의 힘도 얻어서 그런지.
박혁진은 SS급 초입이면서도 굉장히 강했다.
그도 뒤에서 기습한 조용석처럼 이준을 노렸다.
조용석과 다른 점은 박혁진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범한 검.
원래라면 뇌신공으로 인해 뇌력이 일어나야 정상이었다.
박혁진의 천월이 이준의 지척에 다다른 순간!
파직-
천월에서 한줄기 뇌전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빛이 반짝인 것도 몰랐을 터다.
천월이 이준의 어깻죽지에 닿으려 했다.
별다른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검.
오히려 조용석의 살검이 더 날카롭게 보일 정도로 평범한 검이었는데.
부욱-
이준의 반탄지기를 뚫고 피부를 가르기 직전, 이준의 목소리가 박혁진에게 들렸다.
“오랜만이네.”
“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
“너라는 걸 모를 리가 있냐. 좀 강해졌다?”
“끼어도 돼?”
“그러던지. 안 봐준다.”
“내 실력이 너한테 얼마나 먹히는지 알고 좋은 기회구만.”
“그런데 혁진아. 너 한 번 죽었다.”
“응?”
“밑에 봐봐.”
박혁진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언제부터인지 무형도를 잡은 반대편 손에 뾰족한 꼬챙이로 된 무형의 기가 박혁진의 복부에 닿아 있었다.
“와, 넌 진짜 괴물이다.”
“칭찬 고마워.”
이준의 얼굴에 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무극자 사부가 사라지자 친구가 돌아왔다.
그것도 굉장히 강해진 상태로.
곧 그의 할아버지인 검제를 따라잡을 것 같았다.
박혁진이 뒤로 물러났다.
“수야. 오랜만이야.”
“으음… 형님 제가 말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준은 여전히 무형도로 허수의 참마도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오, 자신감. 청룡한테 좋은 거라도 받았나 봐?”
“모르는 것도 없다.”
“네 단전에서 뇌령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모른 척할 수가 있나.”
“각오해. 예전의 내가 아니야.”
“정연 누나도 왔겠네?”
“저기.”
박혁진이 뒤편에 있는 박정연을 가리켰다.
그녀는 이준을 보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누나는 어째 더 예뻐졌냐.”
스무 살이 돼서 그런가.
미모가 만개했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공주병 걸려.”
이준도 박정연을 향해 싱긋 웃었다.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좋았다.
특별 1반 학생들이 전부 모였다.
물론 박정연은 유급할지, 졸업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
만약 졸업을 선택한다면 특별 1반에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알았으니까 덤비기나 해.”
“흥분된다.”
“변태냐. 비무하면서 흥분하게.”
“혀, 형님… 저 힘듭니… 다.”
이준과 박혁진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자 허수가 참지 못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쏘리. 곧 벗어나게 해 줄게.”
뒤로 물러난 박혁진이 심호흡을 했다.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이준.
자신의 무공이 얼마나 통할지 모르나 기대가 됐다.
* * *
“경수 형님. 저 사람이 검룡 박혁진 선배님인가요.”
“어….”
홍원찬의 질문에 진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보다 훨씬 강해 보여요.”
“내가 잊고 있었어.”
“네?”
“쟤도 괴물이라는 걸 말이야. 선생님이 두각을 드러내기 이전엔 박혁진이 더 유명했잖아.”
검룡 박혁진.
무사고의 공식적인 랭킹 1위.
하나 이준이 부상하고부터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누나인 박정연도 있었고, 한지유도 치고 올라왔으니까.
한데 지금은 어떤가.
예전 그 재능충이던 괴물이 돌아왔다.
“박 선배님은 얼마나 강한가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막 S급 초입에 올랐을 땐가?”
“예에!?”
홍원찬의 눈이 커졌다.
듣고 있던 류가을 또한 같은 표정이었다.
이준을 제외하고, 학생이 S급에 올랐다는 말은 처음.
무사고의 검룡이 유명하긴 하나 그 정도로 강할지는 몰랐다.
“정말 대단해요.”
“장난 아니지.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S급 완숙에 올랐을까요?”
“흠….”
진경수는 박혁진의 검을 눈여겨봤다.
천월.
박혁진의 독문병기인 아티팩트였다.
그 천월에 담긴 힘은 전보다 훨씬 적었다.
하지만 그 적은 힘으로도 이준의 방탄지기를 갈랐다.
“그보다 위에 있을 수도.”
“S급 끝자락이란 말이에요.”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런데 쟤보다 더한 녀석이 저 뒤에 있어.”
진경수는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검화 선배님 맞죠?”
“그래. 선생님을 제외하고 무사고에서 제일 강한 각성자가 쟤일 거다.”
홍원찬의 시선은 박정연에게 꽂혀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자리한 미소.
꼭 여신이 웃는 것 같았다.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한 그녀는 국보로 지정해도 될 만큼 매력적이었다.
한지유와 이지안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정말… 예쁘시다.”
“예쁘지. 성격도 좋아. 거기다가 걸 크러시 넘치지, 완벽해.”
“빙화 선배님처럼 인기가 정말 많으셨겠어요.”
“정연이는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팬이 많아.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알아?”
“뭔데요?”
“임자가 있다는 거지.”
모두의 시선이 진경수에게 꽂혔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절친인 정예나도 눈을 크게 뜬 채 진경수를 봤다.
“너희들 정말 몰라?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아챘을 건데.”
“답답하니까 빨리 말해.”
“우리 선생님이잖아.”
“네에!?”
“개소리하지 마.”
정예나가 버럭 소리쳤다.
“무시하죠. 들을 가치도 없어요.”
한지유는 냉랭한 목소리로 진경수의 말을 부정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봐라. 내 말이 틀렸는지.”
한지유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부정했지만 홍원찬만은 진경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검화 선배님께 잘 보여야겠어요.”
“당연하지. 미래에 파천자의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데 미리 친분을 쌓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역시 형님의 처세술은 따라올 자가 없어요.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릴게요.”
“큭큭.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널 선생님의 최측근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두 사람의 죽이 척척 맞자 한지유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조용히 하고 비무나 보죠?”
뒷골이 서늘할 정도의 음성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어, 어. 그, 그래.”
“넵.”
주변이 싸늘해졌을 때쯤.
열기가 불타오르는 충돌이 일어났다.
공간을 접하는 박혁진의 움직임.
“사라졌어….”
한지유조차 그의 보법을 놓치고 말았다.
모두가 그의 신형을 놓친 사이.
박혁진은 이미 이준과 격돌한 상태였다.
그의 검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빛이 반짝였다.
5초가 흐르자 뒤늦게 일어난 반응.
“억!”
“피, 피해!”
특별 1반 학생들의 지척을 뇌전이 가르고 지나갔다.
“식겁… 했어.”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래요.”
땅이 얇고 깊게 갈라진 위에는 박혁진에게서 나온 뇌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준 못지않은 파괴적인 무공에 학생들은 멀찍이 물러나 비무를 봐야만 했다.